47 화
“저 인간하고 다시 외식을 하러 나오면 내가 인간이 아니다.”
유미선의 투덜거림에 강진이 힐 끗 홀을 보았다. 반주만 한 잔 하려고 했던 임호진은 어느새 남 자들과 어울려 소주를 마시고 있 었다.
오늘 온 손님들 대부분, 아니 모두가 오성실과 임호진에게 연 락을 받은 사람들이다.
거기에 이 근처 회사들에 다니 는 이들이라 알음알음 아는 사이 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합석도 하고 한 잔 씩 나누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유미선이 열이 받은 것 이다. 자기는 밥 먹으러 와서 설 거지를 하고 있는데, 남편은 술 판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잠시 있다가 슬며시 말했다.
“사모님.”
강진의 부름에 유미선이 힐끗 그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이 사장한테 한 말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유미선의 목소리에는 말 그대로 그에 대한 감정 같은 것은 없었 다.
아니 오히려 말을 하면서 눈에 호감이 어려 있는 것이, 투덜거 리던 것과 달리 도와주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이게 다 임 과장님이 술을 드셔서가 아니겠습니까.”
“맞아요. 무슨 아침부터 이렇게 술을 마시는지…… 하여튼 술을 안 마시고 오는 날이 없어요.”
투덜거리는 유미선을 보며 강진 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술이 원수죠.”
“어쩜,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네!”
대화에 맞장구를 쳐 주는 것만 큼 친밀감을 높여주는 것도 없
다.
“이따가 제가 밑반찬 좀 드릴게 요. 저희 집 밑반찬 아주 맛있습 니다.”
“정말요?”
“그럼요. 이따 완전 많이 퍼드 리겠습니다.”
“그럼…… 더 열심히 설거지해 야겠네.”
웃으며 유미선이 물을 틀고는 빠르게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강진이 몸을 돌려 홀
을 보았다.
홀에는 손님들이 이야기를 나누 며 해장국을 먹으며 술을 먹었 다.
그리고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 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이야 기를 나누며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이 카운터 쪽을 보았다. 카운터에서는 오순 영이 흐뭇한 얼굴로 손님들을 보 고 있었다.
‘할머니가 원한 것이 이런 모습 인가 보네요.’
손님들이 웃으며 밥을 먹는 모 습…… 오순영이 원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손님들이 행복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 말이다.
점심시간 내내 북적거리던 가게
는…… 두 시가 지나가자 한가해 졌다.
임호진은 아내하고 같이 와서 그런지 마음 편하게 술을 먹었지 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 다 보니 적당히 먹고 다들 집에 가는 것이다.
임호진과 장성태 그리고 오성실 만이 남아 오랜만에 잔을 기울이 고 있었다.
“부서가 다르니 술 한잔하기도 이렇게 어렵군.”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 신입 때는 부장님과 자주 술도 했는데 말입니다.”
“그때 너희들이 사고 친 것 수 습하느라 내가 고생 많이 했지.”
“그래서 저희가 부장님을 좋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웃으며 세 사람이 술잔을 기울 일 때, 강진은 유미선과 조강미 와 함께 주방에 있었다.
촤아악! 촤아악!
강진은 볼에 오이를 넣고는 양
념을 하고 있었다. 고생한 두 분 을 위해 강진은 간단하지만 맛있 는 오이무침을 바로 만들었다.
오이무침을 뚝딱 만들어낸 강진 이 두 사람을 보았다.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두 사람이 오이무 침을 먹고는 미소를 지었다.
“맛있다.”
“이것만 먹어도 밥 한 그릇 하 겠는데요?”
두 사람이 맛있다는 듯 오이무 침을 먹는 것에 강진이 일회용 비닐을 뜯었다.
“그릇에 싸 드리면 좋겠지 만…… 그릇을 다시 가져다주시 는 것도 불편할 테니 비닐에 싸 드릴게요.”
“아무려면 어때요.”
웃는 두 사람을 보며 강진이 비 닐에 오이무침을 담고는 말했다.
“겉절이하고 섞박지도 싸 드릴 게요.”
“그런데 이렇게 막 싸 줘도 돼 요?”
“일을 해 주셔서 제가 일당이라 도 드려야 하는데…… 드리면 안 받으실 것 같아서 이걸로 때우는 겁니다.”
진실이었다. JS 금융의 법칙은 사람을 쓰면 일당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용수도 JS 금융에서 일당이 빠져나가고 있고 말이다.
그럼 유미선과 조강미에게도 일
당을 줘야 한다.
하지만 일이만 원 줘 봤자 두 사람이 받을 것 같지 않으니 반 찬으로 챙겨 주는 것이다.
‘물물교환도 일당으로 쳐 줄지 모르겠네.’
“이런 일당이라면 자주 와서 일 해야겠네.”
유미선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말로 부탁드리고 싶네요.”
강진이 섞박지와 겉절이를 비닐 에 담아 홀로 나왔다. 그러고는 아직도 술을 먹고 있는 세 사람 에게 다가갔다.
“이제 그만 가셔야죠.’’
“벌써요?”
임호진이 아직 밝은 가게 밖을 보자, 유미선이 눈을 찡그렸다.
“무슨 반주를 하루 종일 하려 고…… 해요.”
사람들 눈이 있어 화를 내지는 못하고 마지막 말을 누르는 유미
선의 말에 임호진이 아차 싶은 얼굴이 되었다.
그러더니 그가 장성태와 오성실 을 보았다.
“아무래도…… 저는 이만 가 봐 야 할 것 같습니다.”
임호진의 말에 오성실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서 혼나겠어.”
오성실의 말에 임호진이 머리를 긁었다.
“뭐…… 한두 번인가요.”
“이럴 때는 기러기가 좋구만.”
오성실의 웃음에 임호진이 몸을 일으켰다.
“이 사장, 여기 얼마에요?”
“어허! 제수씨들도 오랜만에 봤 는데 내가 내야지.”
오성실이 급히 만류를 하자 임 호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희 부서 인턴 가게 왔는데, 제가 내야죠.”
그러고는 임호진이 강진을 보았 다. 그에 강진이 슬쩍 유미선을 보았다.
그 시선에 유미선이 웃었다.
“받을 건 받아야죠. 얼마에요?”
유미선의 말에 강진이 탁자를 보았다.
“해장국은 7천 원씩에 소주 다 섯 병이니 4만 8천 원입니다.”
강진의 말에 유미선이 상을 보 았다.
“몇 그릇 더 온 것 같은데?”
“그거야 리필이죠.”
“그 리필이 세 그릇은 될 것 같 은데…… 괜찮겠어요?”
“음식 아끼면 좋은 음식점이 아 니죠. 다음에 또 오세요.”
강진의 말에 유미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임호진을 보았다. 유 미선의 허락이 아니더라도 자기 가 낼 생각이었지만, 유미선의 허락까지 떨어지자 임호진이 세 상 편한 얼굴로 오만 원짜리를
꺼내 내밀었다.
“오만 원 받았습니다. 여기 이 천 원요.”
기분 좋은 얼굴로 거스름돈을 받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오성실이 아차 싶은 얼굴로 말했다.
“참, 가기 전에…… 이 사장 차 한 잔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웃으며 강진이 냉장고에서 야관 문차를 가지고 나왔다.
“보약이라 생각하고 한 잔씩 하 고 가시죠.”
오성실의 말에 야관문차를 처음 본 유미선이 의아한 듯 물었다.
“이건 무슨 차예요?”
“야관문하고 감초하고 몸에 좋 은 한약 섞어서 만든 거라 몸에 좋습니다. 특히……
강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 며 말했다.
“야관문이 남자 몸에 좋은 것 아시죠?”
“어머! 알죠.”
“어서 주세요.”
유미선이 웃으며 잔을 들이밀자 강진이 웃으며 잔에 차를 따라주 었다.
“이 사장도 같이 앉아서 한잔합 시다.”
“저는 일단 이것부터 좀 치우고 요. 상이 이러니 차 마시는 분위 기가 안 나네요.”
그러고는 강진이 그릇들을 치우 자 유미선과 조강미도 도와주었
다.
그렇게 깨끗하게 탁자를 치운 강진이 의자와 잔을 가지고 와서 는 차를 따랐다.
“따뜻하게 마시는 것도 좋지만, 여름에는 시원하게 마시는 것도 좋죠.”
강진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마셨다.
“약초향이 은은해서 좋네요.”
유미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야관문이 남자 몸에 좋은 것
O.. ”
강진이 유미선을 보았다. 유미 선은 어느새 차가 담긴 물병을 들어 임호진에게 더 마시라고 따 라주고 있었다.
“아시는 것 같고.”
“그게…… 몸에 좋으면 좋죠.”
유미선이 어색하게 웃는 것을 보며 강진이 말을 했다.
“야관문은 여자 몸에도 무척 좋 습니다.”
“그래요?”
“일단 야관문은 혈관을 견고히 하고 혈류 내 노폐물이 쌓이지 않도록 합니다. 즉 혈액 순환을 좋게 해 주죠. 그리고 여성의 경 우는 생리 불순, 질염, 배뇨통에 좋습니다.”
“어머.. 약초에 대해 잘 아시
네요?”
유미선의 말에 강진이 쓰게 웃 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는데, 모르
면 그게 바보지.’
허연욱은 강진이 음식을 만들거 나 식재료를 다듬을 때 약성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해 주었다.
특히 야관문을 마실 때는 늘 옆 에서 어디가 몸에 좋고 어디에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다 보 니, 본의 아니게 약초나 식재의 약성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이 다.
그런 강진을 보며 조강미가 바 로 말했다.
“이 사장님이 한의학에 조예가 깊어요.”
“한의학에?”
“우리 남편 병도 진맥으로 찾았 잖아요.”
“이 사장 진맥도 해요?”
갑자기 진맥 쪽으로 이야기가 가는 것에 강진이 어색하게 웃으 며 말했다.
“그냥 혼자 살다 보니 제 몸은 제가 치료할까 싶어서 공부를 조 금 한 겁니다.”
“그럼 저도 진맥 좀 해 주세 요.”
대뜸 손목을 내미는 유미선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그냥 사이비예요.”
“그래도 좀 봐 주세요.”
다시 부탁을 하는 유미선의 모 습에 임호진이 웃으며 말했다.
“식당에 와서 무슨...... 이 사장 불편해하잖아.”
“불편했어요?”
“아니…… 아닙니다. 저기, 손 좀 씻고 와서 봐 드릴게요.”
자리에서 일어난 강진이 주방에 들어가며 한쪽에 있는 배용수를 보았다.
“가서 허연욱 씨 좀 들어오시라 고 해.”
“그냥 불러.”
“부른다고 와?”
“너하고 연이 닿았으니 일이 없 으면 오겠지.”
“정말?”
“전에 최호철 씨도 필요하면 자 기 이름 세 번 부르라고 했잖 아.”
“그럼 부르면 진짜 와?”
“일 없으면 온다니까. 불러.”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작게 허 연욱의 이름을 불렀다.
“허연욱, 허연욱, 허연욱.”
허연욱의 이름을 세 번 부르자 강진의 옆에 그의 모습이 나타났
다.
“불렀습니까?”
“부르면…… 진짜 오네요?”
“부르니 오지요.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진맥해 달라는 분이 있어서 요.”
“그럼 나야 좋지요.”
허연욱이 웃으며 홀로 먼저 나 가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 나가 며 손의 물기를 닦아냈다.
그러고는 의자에 앉으며 유미선 을 보았다.
“어디까지나 재미로 보는 것이 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셔야 합 니다.”
“그럼요.”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보는 유 미선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 이고는 손목을 슬쩍 쥐었다.
그리고 그런 강진의 손을 허연 욱이 쥐었다.
잠시 말없이 손목을 쥐고 있던
강진의 귀에 허연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이 냉한 체질이십니다.”
허연욱의 말을 그대로 강진이 따라 했다.
“차가운 음식 드시면 배앓이를 자주 하시죠?”
“어머? 맞아요. 냉면 좋아하는 데, 먹고 나면 꼭 배가 안 좋아 요.”
“배앓이를 하시면서도 드실 정 도로 좋아하시나 보네요.’’
“여름에는 냉면이죠.”
웃는 유미선의 말에 허연욱의 말을 했고, 강진이 따라 했다.
“먹는 재미가 없으면 인생을 사 는 재미도 없지만…… 그래도 배 가 안 좋다는 것은 몸에서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몸에 받는 것들 중에도 맛있는 것도 많으니 냉면은 좀 피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세 번 먹을 것을 한 번만 드시던가요.”
“그게 마음대로 안 돼서요.”
“하긴,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어 도 스트레스가 되기는 하죠.”
웃으며 강진이 말을 이었다.
“맥주는 좋아하세요?”
“술은 안 좋아해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속이 냉한 분은 맥주도 몸에 안 좋거든요. 일단 차가운 음식보다는 따뜻한 음식들 드시고요. 물도 따뜻하거 나 미지근한 물을 드세요.”
“그게 끝이에요?”
“이게 끝인 것이 좋습니다. 어 디 아프신 데가…… 응?”
말을 하던 강진이 고개를 들었 다.
허연욱이 눈을 감은 채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왜?’
강진이 허연욱을 올려다볼 때, 사람들은 강진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말을 하다가 허공을 올려 다보니 이상한 것이다.
아니 뭔가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듯도 했고 말이다. 그에 우려가 생긴 임호진이 말했다.
“이강진 씨, 왜 그럽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잠시만요.”
그리고 강진이 다시 허연욱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강진의 시선 에 허연욱이 입을 열었다.
“혹시 요즘 한약이나, 약주 같 은 걸 먹었는지 물어보십시오.”
강진이 그대로 말을 하자 유미 선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
다.
“아는 분이 지치 가루를 주셔서 저녁에 티스푼으로 한 숟가락씩 먹고 있어요.”
유미선의 말에 허연욱이 혀를 차기 시작했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