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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47화 (47/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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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귀신들이 오는 것을 느낀 배용수와 다른 귀신들은 바로 도 망을 갔다.

하지만 오순영은 재료 손질을 해야 한다고 주방에 남아 있었 다. 물론 처녀귀신들이 두려워서 고개 한 번 내밀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주방을 잠시 보던 강진이 이혜 선에게 물었다.

“그런데 할머니도 너희하고 같 은 여자 귀신인데도 왜 너희를 무서워해?”

“우리는 보통 여자 귀신이 아니 라 처녀귀신이잖아요.”

“여자 귀신하고 처녀귀신하고 차이가 커?”

“그럼요. 하늘과 땅 차이죠.”

말을 하던 이혜선이 한숨을 쉬 고는 강진을 보았다.

“처녀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 요?”

“결혼 안 한 여자잖아.”

“정확하게는 남자와 자지 않은 여자예요. 결혼 안 했어도 남자 와 잔 적이 있는 여자는 그냥 여 자 귀신이고, 우리처럼 남자와 정을 통한 적이 없는 여자가 처 녀귀신이 되는 거예요.”

“음양의 조화니 뭐니 하는 그런 건가?”

“그럴 수도 있고…… 나도 자세 히는 몰라요. 그냥 남자하고 안 잔 여자들이 처녀귀신이 되는 것 만 알지.”

그러고는 이혜선이 주방을 보자 강진이 손을 들어 흔들었다.

“보지 마. 무서워하시니까.”

“무서우면 나가지 왜 있는대?”

“내일 장사할 것 손질하고 계 셔. 아! 혹시 선지해장국 좋아 해?”

“으! 싫어요.”

“나도 싫어.”

“그걸 어떻게 먹어?”

처녀귀신들이 동시에 손사래를

치는 모습에 강진이 물었다.

“맛있는데 싫어?”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혀를 찼 다.

“오빠는 여자에 대해 정말 모른 다.”

“내가?”

“남자가 물어보면 여자가 싫어 한다고 답해야 하는 음식 중 하 나가 바로 선지 들어가는 거야.”

“왜‘?”

“남자와 여자가 미팅할 때 선지 해장국을 먹을 수 있겠어?”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빙고.”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는 이혜선 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내가 너희들하고 미팅하는 것 도 아닌데 뭘 그런 걸 따져?”

“오빠는 남자잖아요.”

“그래서 선지해장국 먹을 거야? 진짜 맛있는데.”

강진의 말에 이혜선과 처녀귀신 들이 서로를 보았다.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에 강진이 다시 말했다.

“진짜 맛이 좋아.”

“그럼 줘요.”

“기다려.”

그러고는 강진이 주방에 갔다. 주방에는 오순영이 몸을 잔뜩 웅

크린 채 내장을 손질하고 있었 다.

하지만 그 손길은 바들바들 떨 고 있는 것이 마치 감기 몸살이 라도 걸린 것 같았다.

그런 오순영을 보며 강진이 그 옆에 쭈그려 앉았다.

“괜찮으세요?’’

w으9 으 ”

흐 으

말과는 달리 오순영의 얼굴은 잔뜩 굳어져 있었다. 그런 오순 영을 보며 강진이 힐끗 홀 쪽을

보았다.

“쟤들이 그렇게 무서우세요?”

“너무…… 추워.”

“추워요?”

“그게 아니라, 저 여자들이 추 워.”

춥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 해를 하지 못한 강진이 오순영을 보다가 말했다.

“너무 무서워하지 마세요. 착한 애들이에요.”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고개를 저었다.

“황소만 한 개의 주인들도 자기 개는 착하다고 하지.”

“아......"

오순영의 말에 강진은 어떤 의 미인지 알았다. 본능적으로 두려 운 것이다.

이건…… 어쩔 수 없다. 고소공 포증 환자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 지 않을 걸 알면서도 높은 곳에 서면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가 일찍 내보낼게요.”

“아니야. 손님을 쫓아내는 가게 는 없어.”

그러고는 다시 오순영이 재료 손질에 집중을 했다. 재료 손질 에 집중을 해서 두려움을 이겨 내려는 모양이었다.

그에 강진이 더는 오순영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건 그가 위 로를 한다고 해서 어떻게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말이다.

대신 선지해장국을 그릇에 담아

끓인 강진이 그것을 들고 홀로 나왔다.

탁!

“먹어 봐.”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숟가락을 들고는 선지해장국을 먹었다. 그 러고는 힐끗 주방을 보았다.

“쟤가 한 거야?”

“쟤가 뭐야? 버릇없이 어른한 테.”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그를 보

다가 피식 웃었다.

“오빠는 확실히 이쪽 공부 좀 해야겠다.”

“왜?”

“이승에서 태어난 시간이 나이 인 것처럼, 우리 귀신들은 죽은 순간이 바로 태어나는 거야. 그 러니까 우리가 쟤보다는 귀신 나 이가 더 많지.”

“그래도……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 야죠. 그리고 우리보고 존대하라

고 해도 우리가 할 사…… 아니 귀신도 아니고.”

싱긋 웃는 이혜선의 모습에 강 진이 고개를 저었다.

“귀신 세상도 복잡하네.”

그러다가 강진이 문득 이혜선을 보았다.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뭔데요?”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강진이 이혜선에게 오순영이 젊 어졌다가 다시 늙은 것을 이야기 했다.

“다른 귀신들은 이게 뭔지 잘 모르던데…… 흔한 건가?”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주방을 한 번 보고는 조금 큰 소리로 말 했다.

“사람은 몸을 가지고 있는데, 귀신은 몸이 없어요. 지금 우리 가 가지고 있는 몸은 영혼이 기 억하는 모습이에요.”

이혜선이 하는 말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주방에 있는 오순영도 들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영혼이 기억하는 모습?”

“가게 밖에서 귀신들 본 적 있 죠?”

“ O ”

“그건 죽을 때의 모습이에요. 그 모습은 바뀌지 않죠. 하지만 이 안에서는 현신을 할 수 있어 요. 그리고 현신을 한 모습은 영

혼이 기억하는 자신의 모습이에 요.”

“그…… 익숙한 모습이라는 거 지?”

“맞아요. 그래서 보통 여기 오 는 귀신들은 자신이 기억하는 가 장 익숙한 모습을 하죠. 그리고 익숙한 모습이라는 건 죽기 얼마 전 모습이 대부분이에요.”

“죽기 전 본 모습이 가장 익숙 할 테니까?”

“맞아요.”

“그럼 모습이 바뀌는 건?”

강진의 물음에 이혜선이 주방을 보았다.

“잠깐 나와 봐!”

첨벙!

이혜선의 말에 주방에서 물이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오라는 말에 오순영이 놀라 빨던 내장을 놓치거나 어떻게 한 모양이었다.

“나와 봐.”

이혜선의 재촉에 주방에서 오순

영이 주춤거리며 모습을 드러냈 다.

“거기에 서. 더 다가오면 오줌 싸겠다.”

이혜선의 말대로 다가오는 오순 영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보 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로 말이 다.

“야, 말이 심하잖아.”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오순영을 보며 말했다.

“젊은 모습이 좋아. 아니면 지

금 늙은 모습이 좋아?”

“네?”

“둘 중 어느 것이 좋아?”

“그야…… 젊은 모습.”

젊어졌을 때 오순영은 기뻐했었 다. 죽었다 해도 젊어지는 것은 여자의 꿈이니 말이다.

그런 오순영을 보며 이혜선이 말했다.

“눈 감아.”

“네?”

“눈 감아.”

이혜선의 말에 오순영이 눈을 감았다. 그런 오순영을 보며 이 혜선이 말을 이었다.

“네가 젊었을 때 기억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봐.”

“딱히…… 없는데요.”

“ 없어?”

“젊었을 때는 힘들기만 해

서……

“결혼할 때 행복하지 않았어?”

‘처녀귀신이라 결혼에 대한 환 상이 있나 보네.’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오 순영이 답했다.

“얼굴도 못 보고 한 결혼이 라……

오순영의 말에 이혜선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그럼 젊었을 때 진짜 열 받거 나 슬펐을 때를 떠올려봐.”

이혜선의 말에 오순영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리고...

화아악!

오순영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 다. 머리는 검게 변했고 옷도 변 했다.

전에 본 적이 있는, 이십 대 중 반 정도로 변한 오순영의 모습에 강진이 감탄을 했다.

‘이건…… 또 봐도 신기하네.’

사람이 순식간에 젊어지니 말이 다. 물론 실체는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모습이 변한 오순영을 보며 이

혜선이 웃으며 말했다.

“밥값 대신이야.”

“ 밥값?”

오순영이 의아한 둣 보자 이혜 선이 선지해장국을 숟가락으로 툭 쳤다.

“맛있어.”

“고……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오순영이 도망치듯이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래 도 처녀귀신들 앞에 있는 것이

여전히 무섭고 두려운 모양이었 다.

그런 오순영을 보며 강진이 이 혜선을 보았다.

“고마워.”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선지해장 국을 먹으며 말했다.

“맛있어서 해 준 것뿐이야. 그 리고..

“그리고 뭐?”

잠시 망설이던 이혜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노인 귀신한테 반말하면 오빠 가 싫어할 것 같아서. 그럼 이제 저 여자는 노인 귀신이 아니니 까. 우리가 편하게 대해도 되 지?”

“그거야 마음대로 해.”

이혜선의 말대로 귀신들에게는 귀신들만의 사는 방법이 있으니 산 사람들의 규칙을 들이미는 것 도 이상했다.

게다가 이 가게에 있는 ‘사람’은

강진 하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다가 강진이 이혜선을 보았 다.

“그런데 너 말이 짧아진다.”

어느 순간 말을 놓고 있는 것이 다.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웃었 다.

“친해지면 적당히 말 놓는 거 지. 언제까지 요를 붙여. 왜, 기 분 나빠?”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됐다. 야라고 안 부르는 것이 어디냐?”

“내가 그 정도 눈치는 있지.”

이혜선이 웃으며 보는 것에 강 진이 웃었다.

“이에 선지 끼었다.”

“씁!”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급히 입 을 다물고는 물로 입가심을 했 다.

“내가 이래서 남자 앞에서 선지

나 순대를 안 먹는 거야.”

“뭐 어때? 친한 사이에.”

강진의 말에 입맛을 다신 이혜 선이 조심스럽게 선지해장국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보던 강진이 물었 다.

“그 처녀귀신 보스 있잖아.”

“처녀귀신 보스?”

“김소희 말이야.”

“아! 하긴 큰언니 정도면 보스

라고 불릴 만하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이혜선을 보며 강진이 물었다.

“왜 소희는 혼자 다녀?”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입을 닦 고는 다시 물로 입까지 가글했 다.

아마도 말을 할 때 이에 선지가 끼어 있을까 봐 신경 쓰이는 모 양이었다.

그것을 마친 이혜선이 강한나에 게 살짝 입을 벌렸다. 그 모습에

강한나가 이리저리 이혜선의 입 을 보고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이혜선이 강진을 보았다.

“소희 언니는 오빠 말대로 서울 일대 처녀귀신 보스급이에요.”

“역시 보스였네.”

“아까 내가 귀신들은 죽고 난 후에 나이를 먹는다고 했죠?”

“그렇지.”

“그리고 귀신들의 나이는 곧 힘

이에요.”

“오래 묵은 귀신이 강하다는 말 이네.”

“그렇죠.”

고개를 끄덕인 이혜선이 강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소희 언니는 임진왜란 때 죽었어요. 최소한 오백 년은 된 귀신이죠.”

“말하는 것 보고 조선시대 사람 인 줄은 알았는데, 되게 옛날 사 람이 네.”

“아! 그리고 소희 언니는 처녀 귀신이면서 무신이기도 해요.”

“무신?”

“소희 언니 밖에서 본 적 있어 요?”

“칼 들고 다니던데?”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진왜란 때 전주에 왜군들이 쳐들어와서, 소희 언니네 집에서 백성들을 모아서 항전을 했데요. 그러다가 죽었는데…… 그래서

검 들고 다니시는 거예요.”

“대단하네. 딱 봐도 중학생 정 도밖에 안 되던데.”

“대단하죠.”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왜 혼자 다니는 거야?”

강진의 물음에 이혜선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외로워서요.”

“외로우면 같이 다녀야지? 왜

혼자 다녀?”

“오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는 귀신들이 하나둘씩 사라져요. 승 천을 하든, 소멸을 하든…… 소 희 언니는 그걸 너무 많이 봐서 혼자 다니는 거예요. 더 이상 외 롭지 않으려고.”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외롭지 않으려고 외롭게 지낸 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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