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화
주말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강진은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횡단보도에 선 강진은 음악을 들으며 서 있었다. 그리고 말없 이 신호를 보는 그의 시선에 최 동해가 보였다.
최동해는 강진을 힐끗거리고 있 었다. 모습이 마치 아는 척을 해 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표정
이었다.
그에 강진이 슬쩍 손을 들어 아 는 척을 하고는 다시 신호등을 보았다.
그거면 됐다. 자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도 그를 좋아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가서 말 을 걸 필요는 없다.
그저 같은 회사 동료로서 가벼 운 수인사 정도면 족했다.
그런 강진의 모습에 최동해가 뭔가 움찔하다가 신호등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호가 바뀌고 강진은 횡단보도 를 건넜다. 그리고 회사에 다가 갈 때 자연스럽게 최동해가 옆에 다가와 같이 걸었다.
같은 곳을 목적지로 둔 두 사람 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같이 가게 된 것이다.
무언가 말을 걸고 싶은 듯 힐끗 거리는 최동해였지만, 강진은 시 선을 주지 않고 걸었다.
그렇게 말없이 엘리베이터를 타
고 사무실에 들어간 강진과 최동 해는 선배들의 컴퓨터 전원을 켜 놓았다.
선배들이 오면 바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각자 서류를 보기 시작 했다. 인턴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만 아직 봐야 할 서류는 많이 있었다.
직원들은 모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임호진의 책상 앞에 모여
있었다.
일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이라 주간 일정 회의로 시작을 하는 것이다.
회의가 길어질 때는 회의실을 예약해 하지만, 오늘은 간단하게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 사무실에서 바로 진행이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프랑스가……
“……그럼 다들 그렇게 하는 걸 로 하고……
회의를 마무리 지으며 임호진이 강진과 최동해를 보았다.
“일주일 해 보니까 어때요? 할 만해요?”
“할 만합니다.”
강진의 답에 최동해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두 사람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임호진이 직원들에게 눈짓을 하 자 그들이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 갔다.
직원들이 자리를 비켜 주자 임 호진이 강진과 최동해를 보았다.
“이강진 씨는 정직원 될 생각 없죠?”
임호진의 물음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정직원이 될 생각 없는 걸 아 는데 다시 묻는 것을 보면……
스윽!
강진이 최동해를 보았다. 자신 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최동해 보고 들으라는 질문이었다.
최동해를 슬쩍 본 강진이 고개 를 끄덕였다.
“네.”
강진의 답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도 복사하고 팀원 들 심부름 위주로 일을 하세요.”
“네.”
그러고는 임호진이 최동해를 보 았다.
“최동해 씨는 정직원 생각 있어
요?”
“있습니다. 아니 꼭 되고 싶습 니다.”
최동해의 말에 임호진이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최동해 씨 스타일대로 일 을 하면 우리 회사에 남을 수 있 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 다.”
최동해의 답에 임호진이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최동해 씨는 이상섭 씨와 일대일로 실무를 익히게 될 겁니다. 그리고 아이템 하나 찾 아서 진행해 보세요. 아이템 찾 는 건 이상섭 씨가 도와줄 겁니 다.”
“제가요?”
“싫습니까?”
“아닙니다.”
“단…… 일의 진행은 최동해 씨 가 하지만, 모든 절차는 이상섭 씨의 확인을 받으세요. 누군가와
통화를 했으면 그 내용을 녹음해 서 들려주고, 서류를 봤으면 그 것 역시 이상섭 씨에게 말을 해 야 합니다. 특히 숫자가 들어가 는 서류는 반드시 이상섭 씨에게 확인받고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득의양양한 얼굴로 최동해가 고 개를 끄덕이며 강진을 힐끗 보았 다.
그 시선에는 의기양양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앞으로도 심부름이 나 하고 복사를 해야 하는 강진
과 달리 자신은 이제 실질적인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강진은 그 시선이 안쓰 럽게 여겨졌다.
‘일이라도 제대로 배우고 가라 는 거군.’
강진은 임호진이 최동해에게 실 질적인 업무를 맡기는 이유를 짐 작했다.
최동해에 대한 판단이 끝난 것 이다. 정직원이 될 확률이 없으 니 차라리 실무라도 잘 가르쳐
놓고 내보낼 생각인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최동해가 정 직원이 될 사람이었다면, 인사 고과도 평가가 좋을 것이다.
하지만 팀원들과 임호진은 최동 해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 거 리만큼이나 최동해의 평가는 안 좋을 테니…… 정직원이 될 가능 성 역시 거리가 있었다.
‘우리 팀 사람들 착하네. 그냥 대충 일 시키다가 내보내도 될 텐데.’
내보낼 사람에게 실무를 알려 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인턴 에게 일을 맡겼으니 그 진행 상 황을 하나하나 옆에서 살펴야 한 다.
마치 헬스장에서 초등학생이 아 령을 들고 운동하는 것을 옆에서 살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차라리 내가 운동하고 말지, 옆 에서 운동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 은 신경이 더 쓰이는 일이다.
하지만 최동해는 자신이 한 걸 음 앞서 나갔다고 생각을 했는지
기분이 무척 업이 되어 보였다.
“가서 일들 하고…… 최동해 씨 는 이상섭 씨한테 일 배정 받으 세요.”
“알겠습니다.”
씩씩하게 답을 하고 최동해가 이상섭에게 가자 강진도 자신의 자리로 가서는 서류를 보기 시작 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때 최동해 가 말을 걸었다.
“어때요?”
“네?”
“오늘 저녁에 인턴 동기들하고 술 한잔하기로 했잖아요.”
“그래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은 처음 들 어보는 이야기라 고개를 갸웃거 렸다.
“단톡방에 올라왔는데 못 봤어 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젓다가 피식 웃었다.
‘이거……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왕따가 되어 버렸나 보네.’
자신이 모르는 단톡방…… 아마 도 인턴들끼리 정보 교환이나 친 목 도모를 위해 단톡방을 만든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모임에 강진은 빠진 것이다. 왜 빠졌는지는 짐작이 된다.
인턴 중 유일하게 무역학과가 아닌 자신만 빼고 만든 것이다.
“응? 왜 웃어요?”
최동해의 시선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잘 다녀와요.”
“네? 강진 씨는 안 가요?”
최동해의 물음에 강진이 웃었 다.
“최동해 씨한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네요.”
“뭐가요?”
의아해하는 최동해의 모습에 강
진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단톡방에 없다는 것 정도 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아요?”
“네? 단톡방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요?”
사뭇 놀란 듯이 묻는 최동해를 보며 강진이 웃었다.
“제가 단톡방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는 거, 이미 알잖아요.”
‘‘그건......"
잠시 머뭇거리던 최동해가 말했
다.
“몰랐어요.”
“그럴 리가요. 저하고 매일 마 주 보는데…… 단톡방에서 나온 이야기를 저한테 한 적이 한 번 도 없잖아요. 즉 내가 단톡방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동안 단톡방에 대해 한 번도 말을 하 지 않은 거예요.”
“그건......"
“그런데도 오늘 단톡방에 대해 말을 하고 동기들 모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우 월감의 표시네요. 나는 너와 다 르다는 표시겠죠. 내가 간다고 하면 ‘그래, 나는 이미 동기들과 이 정도 친목을 쌓았다. 내가 너 를 이끌어 준다.’ 하는 우월감을 느끼게 해 주니까. 아마도 내가 모른다고 말을 할 때 내 얼굴에 어릴 소외감이나 씁쓸함을 기대 한 것 같은데……
강진이 웃었다.
“미안하네요.”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급히 고
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그런 것이 아니 라……
“괜찮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다 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즐 기니까요.”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시간을 힐끗 보았다. 다섯 시까지 일 분 정도 남았다.
그에 강진이 책상을 정리하며 가방을 들었다.
“나한테 우월함을 보이고 싶으
면…… 나중에 성공해서 가게 매 상이나 올려줘요. 그럼 제가 엄 청 부러워해 드릴게요.”
그러고는 강진이 사람들을 보았 다.
“내일 뵙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었다.
“내일 봅시다.”
강진이 다른 직원들에게도 고개 를 숙이고는 가게를 나가자, 최 동해 역시 가방을 들었다.
“저도 퇴근……
최동해의 말에 이상섭이 그를 돌아보았다.
“일 남았을 텐데, 가기는 어디 를 가요?”
“네?”
“내가 준 서류 다 봤어요?”
“그…… 내일 보려고 하는데 요.”
“금요일에 선적하는 아이템인 데, 화요일 날 봐서 뭘 어떻게
하자고요?”
이상섭의 말에 최동해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가방을 내려놓았 다.
“알겠습니다.”
최동해의 답에 이상섭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이강진 씨처럼 퇴근하고 싶어 요?”
“네?”
“그럼 이강진 씨처럼 사무보조
일이나 할래요?”
“아…… 아닙니다.”
최동해의 말에 이상섭이 그를 보다가 몸을 돌려 다시 모니터를 응시하며 말했다.
“앞으로는 내가 퇴근하면 최동 해 씨도 퇴근하는 겁니다.”
“네.”
작게 답을 한 최동해가 서류를 꺼내 보기 시작했다.
* * *
퇴근을 한 강진은 잠시 쉬고는 바로 저녁 장사 준비를 했다. 딱 히 할 것은 없었다.
밥만 해 놓으면 끝이었다. 그리 고 손님이 와서 달라는 것을 주 면 되니 말이다.
저녁에 인터넷을 보고 온 손님 두 테이블을 받은 강진은 쉬고 있었다.
“오늘은 뭐 하지?”
보통 귀신들이 음식을 주문하지 만 메인으로 나갈 음식 하나는 미리 준비를 한다.
그래야 주문이 밀리지 않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와 오순영이 주방을 서성이다가 말했다.
“오늘 메인은 구절판 어때?”
“구절판? 너무 고급 요리 아 냐?”
“구절판 별것 아냐. 밀전병 좀 만들어서 다른 재료들 싸 먹으면 되는 거니까. 먹기도 쉽고 맛도 있으니 귀신들도 좋아할 거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재료들을 꺼냈다. 구절판 안에 들어가는 재료는 다양하다.
꼭 정해진 것은 없지만 메인은 고기 혹은 해산물, 거기에 갖가 지 채소와 버섯 정도면 된다.
재료를 싸 먹을 수 있도록 가늘 고 작게 썰어내야 해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그리 어려운 요리
는 아니었다.
재료들을 꺼낸 강진이 요리 연 습장에 있는 구절판을 떠올리고 는 곧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타타탓! 타타탓!
재료들을 다듬던 강진의 귀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덜컥!
아직 11시가 안 된 시간이라 강 진이 의아한 듯 홀을 보았다. 가 게 입구에는 영업 끝났다는 화이 트보드를 걸어 놓았기에 사람이
라면 들어올 일이 없었다.
스윽!
홀을 본 강진의 눈에 최동해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쟤는 왜 또 왔어?’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손을 닦고는 홀로 나왔다.
“지금까지 야근한 거예요?”
강진의 물음에 최동해가 그를 보다가 의자에 앉았다.
“라면 하나 먹어도 됩니까?”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어떻게 끓여 줄까요?”
“물 하나 양에 라면 두 개 넣어 서 끓여 주세요. 스프는 다 넣어 주고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황당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렇게 먹으면 엄청 짤 텐데 요?”
“그렇게 해 주세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강진이 냄비에 1인분 물을 올리 고는 라면 두 개를 넣고는 끓였 다.
1인분 물이라 라면이 국물을 다 빨아들여 볶음 라면처럼 나왔다.
그에 강진이 라면을 들고는 최 동해의 탁자에 가져다주었다.
강진이 라면을 주자 최동해가 젓가락으로 라면을 먹으며 말했
다.
“밥도 한 공기 주세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두 말 하 지 않고 밥도 한 그릇 퍼서 가져 다주었다.
라면을 먹던 최동해가 그대로 냄비에 밥을 말았다. 그러고는 라면과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먹 기 시작했다.
‘얘는…… 대체 뭐지?’
보기만 해도 짠 라면과 밥을 최 동해는 우걱우걱 먹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