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화
“서류에야 금융권만 보이지, 사 채까지는 안 뜨니 그쪽까지는 몰 랐던 거지. 사장놈이 도박에 미 쳐서 회사를 담보로 사채를 이리 저리 끌어다 쓴 모양이야.”
“하긴, 사채 쓴 것까지는 서류 에 안 나오니까요.”
게다가 소문이 퍼지기에는 너무 중소 업체고 지방이라 여기까지 는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상섭을 보며 임호진이 말했다.
“식칼 수출해서 현금 들어오면 그걸로 도망치려고 한 모양이 야.”
“입금되면 바로 뽑아가려고 한 모양이군요.”
“그렇지. 부동산과 자산이야 이 미 사채업자들이 두 눈뜨고 보 고 있으니 식칼이라도 팔아서 튀 려고 한 거지.”
“그런데 왜 병원에 있어요?”
“그걸 사채업자 쪽에서 알았나 봐.”
“아..”
이상섭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물었다.
“그럼 그 사장하고 같이 왔던 사람은 누구예요?”
“그건 모르겠는데.”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상섭이 대화 중간에 끼어 있어 서 그런지 몰라도 임호진은 편하
게 말을 놓고 있었다.
“나도…… 아! 전에 해장국집 앞에서 본 선배님 기억하나?”
“네.”
“선배님한테 전화 받고 알은 거 라 자세히는 몰라.”
“그렇군요.”
“어쨌든 다행이야. 괜히 더러운 꼴 볼 뻔했어.”
“그러게 말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임호진이 책상
에서 엉덩이를 떼어낼 때, 이상 섭이 말했다.
“그리고 이강진 씨가 아프리카 중고차 수출 건에 의견을 냈습니 다.”
“의견?”
임호진이 강진을 보자, 이상섭 이 설명을 해 주었다. 그 설명을 듣고 있던 임호진이 말했다.
“업체에서 부품 떼어낼 수 있 대?”
“그쪽에서도 쓸 만한 부품들은
이미 떼서 팔고 있었답니다.”
“어디로?”
“폐차장 내에 쌓아 놨다가 필요 하다는 사람이 오면 팔았던 모양 입니다. 아! 그리고 기존에 모아 놓은 부품들이 좀 있는 모양입니 다.”
이상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임호진이 말을 했다.
“우리 입장에서도 단발성이 아 니라 연결이 되는 아이템이 좋기 는 하지. 게다가 그쪽에서도 계
속 거래를 이어갈 수 있으면 도 움이 될 테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서 아프리카 쪽에 중고 부품 거 래처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래서?”“알아보니 거래처 찾 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 습니다. 그쪽 중고 부품 시장이 꽤 활성화가 되어 있더군요.”
“잘 됐네. 아! 효진에서 한 달 에 한 번 중고 자동차 부품들 아 프리카로 보내고 있으니, 그쪽에 연락해 봐. 내가 효진 오 과장한
테 전화해서 부탁해 놓을 테니 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모아 놓은 부품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중고차 보낼 때 어떻게 끼워 넣어서 같이 보낼 수 있으면 보내게.”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상섭이 자리로 돌아가자 임호 진이 강진을 보았다.
“앞으로 우리 팀에서 미팅 갈 때, 이강진 씨 시간 되면 같이
가도록 해요.”
방금 전까지 편하게 말을 놓다 가, 일 이야기가 나오자 임호진 은 다시 존대를 하고 있었다.
“그럼 저도 좋죠.”
“귀찮을 텐데 좋아요?”
임호진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리학과라고 하지만, 배운 것 은 어디까지나 책에서 배운 것일 뿐입니다.”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웃었다.
“배운 것을 실생활에 적용해 보 고 싶다는 거군요.”
“네.”
“꽤 잘 쓰는 것 같던데요?”
“그건 제가 본 거에 어떻게 끼 워 맞추는 정도입니다.”
“끼워 맞추기?”
“눈치로 때려 맞추고, 설명만 심리학으로 끼우는 거죠.”
“어쟀든 우리로서는 좋군요. 눈
치든 심리학이든 잘 보고 파악 좀 해 보세요. 좋은 거래인지 나 쁜 거래인지…… 그럼 그렇게 하 기로 하고.”
임호진이 최동해를 보았다.
“아침에 하라고 한 일들 어떻게 됐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최동해가 서류를 내밀자 임호진 이 그것을 받아 살피고는 눈을 찡그렸다.
“최동해 씨, 여기 오타 있잖습
니까.”
임호진의 말에 최동해가 서류를 급히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서류 읽는 것이 불편해 요. 글자 조금 더 키우고……
임호진의 지적에 최동해가 입맛 을 다시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서류로 시 선을 돌릴 때, 핸드폰이 울렸다. 그에 전화를 본 강진이 이상섭에 게 고개를 돌렸다.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 다.”
“네.”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전화를 받으며 사무실을 나왔다.
“변호사님.”
전화를 한 사람은 신수호 변호 사였다.
[알려 드릴 것이 있어서 전화드 렸습니다.]
“제가 알아야 할 것이 또 있다
는 것이 많이 두렵네요.”
[한끼식당에 관한 내용은 아니 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무슨 일이 신데요?”
[채영호 고객님에 관한 일입니 다.]
“아! 채영호 씨…… 그렇지 않 아도 궁금했는데 어떻게 됐나 요?”
[장례 절차를 치르고 난 후 남 은 개인 자산은 보육원에 기부를
하고, 일부는 후원하고 싶다고 한 학생의 장학금으로 사용이 될 것입니다.]
“그 학생이 보육원을 나오면 집 이 필요할 텐데요?”
강진도 보육원을 나온 후에 가 장 곤란하게 생각한 것이 집이었 다.
그래서 고시원에서 살면서 아르 바이트를 했었고 말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 학생이 감 당해야 할 삶입니다. 제가 받은
의뢰는 학생의 학비까지입니다.]
“융통성이 없으시네요.”
[계약이란 건 신성한 겁니다.]
신수호의 말에 입맛을 다신 강 진이 말했다.
“그럼 다 잘 된 건가요?”
[반만 됐습니다.]
“반만? 그럼 다른 반은 무슨 문 제가 있나요?”
[채영호 씨 내외분이 든 보험 문제가 남았습니다.]
“보험?”
[국가에서는 채영호 씨의 유언 장을 근거로 자산을 내줬지만, 보험 회사에서는 법적 상속인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를 했습니 다.]
“유언장이 있는데도요?”
[쉽게 내주면 보험 회사가 아니 겠지요. ]
“그건…… 또 그렇네요.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는 이미 채영호 씨에게 수임
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수임료 를 받은 만큼 최선을 다해 일을 할 생각입니다.]
“승소하실 수 있겠어요?”
[최선을 다해 받아낼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채영호 씨 일이 더 진행이 되 면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그걸로 전화를 끝낸 강진이 핸 드폰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하긴 쉽게 주면 보험 회사가
아니지.”
그런 곳에서는 당사자가 살아 있어도 보험금을 주지 않을 방법 이 없나 살펴보고 또 살펴본다.
그런데 당사자도 죽고 법적 상 속인도 없으니 어떻게든 주지 않 으려 참으로 노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신수호 변호사를 만만하게 보 면 안 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귀신들 상대하는 사람인데.”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강진은 별문제 없이 회사 생활 을 이어나갔다. 임호진과 직원들 이 아직 말을 놓고 있지는 않지 만, 많이 편하게 대했다.
그리고 최동해와는 서로 소가 닭 보듯, 닭이 소 보듯이 하며 업무적인 이야기만을 이어나갔 다.
평일에는 회사를 나가고, 저녁 장사는 태광무역 사람들의 예약 정도만 운영을 했다.
예약이 없으면 그냥 쉬거나, 배 용수가 가르쳐 주는 칼질과 요리 를 연습하면서 보냈다.
거기에 주말에는 선지해장국을 끓여서 오십에서 육십인분 정도 를 판매했다.
그것 때문에 강진은 주말이 기 다려지면서도 힘이 들었다. 혼자 서 그 많은 음식을 만들고 서빙 하고 치우는 것이 쉽지 않으니
말이다.
다만…… 그렇게 팔고 나면 몇 십만 원을 한 번에 버니 힘들어 도 조금은 기다려지기도 했다.
생각 외로 선지해장국을 좋아하 는 사람들이 많은지 주말 점심만 되면 가게는 늘 북적거렸다.
게다가 한 번 먹고 간 손님들이 또 오거나 소문을 내다보니 더 북적거렸다.
어쨌든 그렇게 회사를 다니고 장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강진
은 또다시 주말을 맞이하고 있었 다.
“사장님, 여기 선지해장국 세 개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사장님, 여기 좀 치워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말을 하며 강진은 정신없이 선 지해장국을 담고 서빙하고 식탁 을 치웠다.
그 모습에 몇몇 손님들은 짜증
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이렇게 장사가 잘 되 면 직원을 좀 둬요.”
“이래서 밥 한 번 먹겠어요?”
“ 가자.”
기다리다 지쳐 가는 손님들에게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주말 아르바이트를 좀 구해야 겠어.’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는 괜찮다. 음식이야 해 놓았고, 내
놓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테이블이 한 번 돌아가 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다. 손님 들은 줄을 서 있다가 자리가 비 면 들어와 앉아 버리고 주문을 한다.
치우지도 앉은 자리에 와서 앉 아 주문을 하고 성화를 부리니 강진으로서는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메뉴가 밀리고 정 신이 없는 것이다.
정신없이 그릇들을 치우고 음식
을 내며 폭풍 같은 점심시간을 보낸 강진이 한숨을 쉬며 의자에 앉았다.
“아르바이트를 써야겠어.”
강진의 중얼거림에 배용수가 그 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좋은 생각이 아니야.”
“왜?”
“혼자서 해도 충분해.”
“야, 넌 오늘 나 피똥 싸는 것 보고도 그런 말을 하냐?”
정말 힘들었다는 듯 한숨을 쉬 는 강진을 보며 배용수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네가 선후를 구분하지 못해서 그래.”
“선후?”
“일단 첫 번째는…… 지금 들어 와 있는 음식을 먹는 손님들이 선이야. 그다음이 다음에 들어온 손님들, 즉 음식이 아직 나가지 않은 손님들이야.”
“나도 그렇게 했어.”
“하기는 했지. 다만 그걸 손님 들이 들어오게 한 후에 해서 문 제지.”
“그럼?”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손님들만 들어오게 해야 해. 손님이 어느 정도 차면 가게 밖에 만석이라고 붙여 놓고, 빈자리를 정리해 놓 고 손님들을 순서대로 몇 명씩 받아.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입 구에 줄 서서 너를 날카롭게 보 지 않아도 되고, 너는 그 시선에 압박을 받지 않아도 되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생각을 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네.”
“그렇지. 게다가 가게 밖에 줄 을 서 있으면 사람들은 조급해하 지 않아. 맛집이라 그런가 보다 하지. 하지만 가게 안에서부터 기다리다가 자리에 앉았는데 그 릇도 안 치워지고 하면 짜증이 나게 돼. 그리고 결과는…… 아 까 나가는 사람들 봤지?”
“너 똑똑하구나.”
“내가 음식점에서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는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대단하다는 듯 보 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배용수가 말 을 이었다.
“그리고, 귀신들 오가는 가게에 서 정기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괜 찮겠어?”
“아……
“너처럼 여기서 사는 것에 비하
지는 않겠지만, 일하다 보면 귀 기를 흡수하게 될 테고 그럼 귀 신도 보게 될 테지.”
“일주일에 네 시간 정도 일한다 고 귀기가 얼마나 쌓이겠어. 그 렇게 따지면 우리 가게 자주 오 는 오성실 부장님이나 그분들도 이미 귀신을 봐도 잔뜩 봐야겠 다.”
“그건 다르지.”
“뭐가 달라?”
“그들은 손님이고 아르바이트생
은 일시라도 이 가게에 속하는 사람이니까.”
“그게 달라?”
“다르지. 집주인과 하숙생, 그리 고 손님처럼.”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하지 못 한 강진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너처럼 많이는 아니더라도 가 게랑 연결이 된다는 말이야.”
“가게랑 연결이 된다고?”
“전에 이야기했잖아. 귀신도 함 부로 남의 집에는 못 들어간다 고. 아르바이트생이 여기에서 일 하는 순간, 가게의 기운에 어느 정도는 연결이 되는 거야. 그리 고 우리 가게는 누가 뭐라고 해 도 귀기가 많지.”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는 몰라 도, 아르바이트를 쓰면 그 아르 바이트생도 귀기를 흡수하게 된 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럼…… 안 된다는 거네?”
“너처럼 귀신과 일하는 사람도
밖에서 귀신 보면 깜놀하는 데…… 일반인이 귀신 보게 되면 바로 정신병원 간다.”
배용수의 말에 입맛을 다신 강 진이 한숨을 쉬었다.
‘이 가게에서 일할 수 있는 건 나하고……
스윽!
강진이 옆에 있는 배용수를 보 고는 고개를 돌렸다. 한쪽에서는 오순영이 사람들이 먹은 그릇을 보며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었
다.
“다 먹었네. 역시 다 먹었어. 그 럼! 맛있는데 다 먹어야지.”
오순영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강 진이 한숨을 쉬었다.
‘귀신 아르바이트생뿐이라는 거 네.’
그것도 저녁 11시부터 오전 1 시까지만 일을 할 수 있는 초단 기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