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잠시 쉰 강진이 그릇들을 들고 는 주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주방 한쪽에는 설거지가 되지 않 은 그릇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 다.
음식을 내고 서빙하는 것만 해 도 힘들어 설거지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릇들을 미리 사 놓기를 잘했 어.”
뚝배기 그릇 오십 개를 미리 사 놓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강 진이 하나씩 설거지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人}사삭! 사사삭!
열심히 그릇 닦기를 반복하던 강진은 허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 꼈다.
“끄응!”
그가 허리를 비틀다가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옆에 서서 꼼꼼하게
강진이 설거지한 그릇들을 보고 있었다.
물론 터치를 하지는 못하고 위 에서만 보는 것이지만 말이다.
“너는 사장님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감시만 하고 있는 거 냐?”
“음식점에서 깨끗한 그릇은 기 본 중에 기본이야. 너 숟가락에 고춧가루 묻어 있으면 거기서 밥 먹고 싶겠냐?”
“에휴! 됐다.”
“되기는 무슨! 그릇은 그 음식 점의 품격을 보여 주는 거야.”
“그 타들어간 그릇들도 있잖 아.”
“타들어간 그릇? 돌솥밥집?”
“그런 것 말고, 삼겹살집 같은 데 가면 그릇 타들어가 있는 것 들 있잖아.”
강진의 말에 무슨 말인지 안 배 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고깃집 가면 반찬 그릇이 여기저기 타 있지.”
“그럼 그 그릇들도 가게의 품격 이냐?”
“그것도 그 가게의 품격이지. 장사가 얼마나 잘 되면 그릇들이 타들어가겠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물론 장사가 잘 되니 그릇 이 타들어가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단순히 불판 옆에 놓여 있다 보니 그을린 것 들이기도 했다.
“그것도 바꿔야 하는 것 아냐?
플라스틱 그릇 타면 환경 호르몬 도 나오고 하잖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잠시 머 뭇거리다가 눈을 찡그렸다.
“어쨌든 깨끗이 해.”
“하고 있거든?”
한숨을 쉬며 그릇을 닦으며 강 진이 중얼거렸다.
“저녁에는 네가 좀 해라.”
“왜?”
“허리 아파서 침이라도 좀 맞아
야겠어. 신기하게 허연욱 씨한테 침 맞으면 너무 시원하고 좋더 라.”
“그러든가.”
덜컥!
이야기를 나누던 강진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홀로 향했 다.
‘풍경 사놓는다는 것을 계속 까 먹네.’
고개를 내민 강진은 중년 부부 가 들어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그리고 그 중년 부부를 향해 오 순영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오 순영의 얼굴은 어느새 아가씨가 아니라 노인의 것으로 변해 있었 다.
“아이고! 내 새끼 왔어! 살 빠 진 것 봐…… 요즘 일이 힘들 어?”
오순영은 남자를 이리저리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 그런 오순영의 모습에도 남자는 신경 쓰지 않고 가게를 둘러보고 있었
다.
하긴 오순영이 하는 행동을 볼 수 있다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 거나 무당일 것이다.
‘새끼? 자식인가?’
어감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자식 은 자식이니 말이다. 그에 강진 이 오순영을 보다가 말했다.
“식사하러 오셨어요?”
원래라면 영업이 끝났다 하고 내보내야 할 이들이지만, 오순영 의 자식이라면 다르다.
강진의 말에 남자가 가게를 보 다가 말했다.
“영업시간 끝난 것 같은데…… 선지해장국 됩니까?”
“그럼 되지. 되고 말고. 이 사 장, 어서 한 그릇... 아니 두
그릇 줘.”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힐끗 그 녀를 보고는 말했다.
“지금 설거지하는 중이라 조금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 요?”
“기다리겠습니다.”
중년 부부의 말에 강진이 고개 를 끄덕이고는 일단 하던 설거지 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오순영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왔다.
“적당히 하고 빨리 음식부터 내.”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설거지를 가리켰다.
“설거지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나중에 해! 우리 애 배고프대.”
서두르는 오순영의 행동에 강진 이 홀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그 해장국집 사장이에요?”
“ 맞아.”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올 줄 알았어?”
“주말만 장사를 하는 거라 매상 에 타격은 없겠지만, 우리 집 것 먹고 거기 가서 먹으면 이야기가 들어갈 테고…… 그럼 궁금해서
라도 한 번은 올 거라고 생각을 했죠.”
“어쨌든 설거지 그만하고 빨리 밥 줘.”
안달을 하는 오순영의 모습에 강진이 그녀를 힐끗 보았다.
“미워하시던 것 아니에요?”
“내가?”
“가게 망하게 해 달라면서요?”
“그거하고 이거는 다르지. 어떤 어미가 자식을 미워해?”
“그…… 첫날 제가 뵌 것하고는 다르네요.”
“가끔 엄마도 자식한테 화를 낼 때도 있지…… 하지만 자식을 사 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아무 리 나쁜 짓을 했어도 내 새끼를 미워하는 엄마는 없어.”
웃으며 부부를 보는 오순영의 눈빛에는 정이 가득했다. 그 모 습에 강진이 한숨을 쉬고는 뚝배 기 두 개를 꺼냈다.
뚝배기 두 개에는 하얀 물기가 묻어 있었다. 강진도 몰랐었는데
뚝배기는 세제로 씻으면 안 된다 고 했다.
그랬다가는 뚝배기에 있는 작은 숨구멍들 안에 세제가 흡수되고, 나중에 끓일 때 세제가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강진은 1차로 뚝배기를 물로 씻어낸 후, 쌀뜨물에 담가 뒀다가 밀가루로 다시 한 번 더 설거지를 한다.
이렇게 해야 기름도 잘 닦이고 세제도 스며들지 않는 것이다.
밀가루로 설거지를 한 강진이 뚝배기를 불에 올리고는 뜨거운 물을 부었다.
냉장고에서 겉절이를 꺼내던 강 진이 한숨을 쉬고는 오순영을 보 았다.
“최선의 음식을 내야겠죠?”
“엄마는 늘 자식에게 최선의 음 식을 내는 법이지.”
자식에게 아무리 좋은 것만 먹 이고 싶어도 늘 최고의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엄마들은 그 재료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요리를 하는 것 이다.
오순영의 말에 입맛을 다신 강 진이 겉절이를 다시 넣고는 배추 를 꺼내 빠르게 손질을 하기 시 작했다.
겉절이의 최선은 바로 무쳐서 바로 먹는 것이지…… 미리 만들 어 둔 것을 내는 것이 아니었다.
배추를 빠르게 손질하며 강진이 힐끗 뚝배기를 보았다. 뚝배기의 물이 끓어오르자, 강진이 집게로
그릇을 집어서는 물을 버렸다.
이렇게 한 번 해야 숨구멍에 들 어간 기름기들이 쫘악 나오는 것 이다.
그리고 달궈진 뚝배기를 다시 불 위에 올린 강진이 선지해장국 을 담아 다시 끓였다.
선지해장국이 끓는 동안 강진은 오순영의 잔소리를 들으며 겉절 이를 만들었다.
“젓갈 조금 더…… 설탕도 조금 더 넣어.”
겉절이는 강진도 잘하는 것이지 만, 오순영은 오랜만에 자식에게 정말 맛있는 겉절이를 먹이고 싶 은 듯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더 넣으면 조금 달지 않을까요?”
“우리 애는 단맛을 좋아해.”
오순영의 말에 강진은 더는 말 하지 않고 티스푼으로 설탕을 집 어넣었다.
“그만.”
멈추라는 그녀의 말에 설탕 첨
가를 멈춘 강진이 겉절이를 버무 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빠르게 겉절이를 버무려 서 만든 강진이 그릇에 담고는 섞박지도 그릇에 담았다.
보글보글!
그러는 사이 선지해장국이 끓어 올랐다. 그에 뚝배기를 불에서 내린 강진이 음식들을 홀로 서빙 을 했다.
“선지해장국 나왔습니다.”
강진의 말에 여자가 날카로운
눈으로 선지해장국을 이리저리 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음식은 눈, 코, 입으로 먹는다 고 하지만…… 그렇게 보신다고 선지해장국이 아프겠어요?”
“네?”
“너무 뚫어지게 보셔서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고개를 숙인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서는 다시 설거지를 시작
하며 오순영에게 작게 말했다.
“그나저나 며느리분, 성격 좀 있어 보이시는데요?”
“휴! 처음에는 착하고 순했는 데……
“눈매는 아니던데?”
“내 아들이기는 하지만 좀…… 가장으로서는 낙제야. 사업한다 고 망해 먹고, 친구 돈 빌려줬다 가 날리고…… 나라도 벌었으니 이혼 안 하고 어떻게 살았지 아 니었으면 진작 이혼당했을 거
야.”
“ 보증은요?”
“그나마 보증은 안 서더라고.”
“다행이 네요.”
“뭐가?”
“보증까지 섰으면 남자의 패가 망신 삼대 요소가 완성이 될 테 니까요.”
“재밌는 말이기는 한데…… 두 가지 요소만으로도 속 많이 썩였 어.”
그러고는 오순영이 홀을 통해 자식과 며느리를 보았다.
“며느리가 속이 많이 썩었지.”
“그래서 가게를 주셨나 보네 요.”
“쟤 형들은 어렸을 때 고생해서 그런지 알아서 살길 찾고 똑 소 리 나게 사는데, 저 녀석만 저러 고 있으니……
잠시 말을 멈춘 오순영이 아들 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음식만 맛있으면 음식 장사는
망하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먹고 살 거라고 생각을 했지.”
안쓰러운 눈으로 아들을 보던 오순영이 주방을 나섰다.
“잘 먹네. 이렇게 잘 먹을 거면 서 왜 그랬어. 겉절이 더 줄까?”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강진이 만들어 놓은 겉절이를 그릇에 담 아서는 가지고 나왔다.
오순영의 목소리대로 겉절이는 이미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겉절이 그릇을 내려놓은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맛이 어떠세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 덕였다.
“맛이 아주 좋네요.”
“감사합니다.”
웃으며 고개를 숙인 강진이 빈 그릇을 들고 몸을 돌릴 때 여자 가 그를 보았다.
“이거 어떻게 만든 거예요?”
“좋은 재료에…… 정성을 조금
담았습니다.”
강진의 말에 여자가 눈을 찡그 렸다.
“혹시 우리 어머니 알아요?”
여자의 말에 강진이 오순영을 보았다. 그 시선에 여자가 고개 를 옆으로 돌렸다.
물론 여자의 눈에 오순영이 보 일 수는 없었다.
뭐지, 하는 얼굴로 오순영이 있 는 곳을 보던 여자가 다시 강진 을 보았다.
“어머니라 하시면 누구를 말씀 하시는지……r
“오 순 자 영 자요.”
“아! 할머니.”
강진은 모른다 하지 않았다. 여 자의 눈과 행동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오순영이 해 준 음식을 시집와 서 늘 먹었을 테니 그 맛을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강진이 아는 척을 하자 여자의 눈꼬리가 더 올라갔다.
“역시 아시는군요.”
“잘 알고 지냈습니다.”
“그럼 이 선지해장국과 겉절이, 그리고 섞박지도 어머니가 알려 주신 건가요?”
“어떻게 아셨어요? 맞습니다. 할머니가 저한테 직접 알려주셨 습니다.”
강진의 말에 여자가 눈을 찡그 렸다.
“당신, 양심 너무 없는 것 아니 에요? 어떻게 어머니가 알려준
선지해장국을 우리 가게 근처에 다 떡하니 팔 수가 있어요?”
여자의 말에 강진이 힐끗 남자 를 보았다.
남자는 굳은 얼굴로 선지해장국 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 에 강진이 여자를 보았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뭐가 잘못됐냐고요? 아니, 어 머니한테 음식을 배웠으면 최소 한 다른 곳에 가서 영업을 해야 죠. 설마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
것 알고 선지해장국 장사 시작한 거예요?”
여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 다가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여 전히 굳은 얼굴로 선지해장국을 보고 있었다.
강진의 시선이 남편을 향하자, 여자가 발로 남자의 발을 툭 찼 다.
“당신도 뭐라고 좀 해 봐요. 이 사람이 우리 어머니 레시피 가지 고 우리 가게 앞에서 장사를 하 잖아요!”
여자의 말에 남자가 해장국을 보다가 강진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니한테…… 잘 배우셨네 요.”
“여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 예요?”
여자의 눈짓에 남자가 강진을 계속 올려다보다가 손을 내밀었 다.
“조현수입니다. 이쪽은 제 아내 임미향입니다.”
조현수의 말에 강진이 손을 잡
았다.
“이강진입니다.”
“저…… 소주 한 병 부탁드리겠 습니다.”
조현수의 말에 강진이 냉장고로 가서는 소주를 꺼냈다.
“무슨 아침부터 술이에요?”
“당신은 가게로 들어가.”
“혼자 뭘 어떻게 하려고요?”
“어허!”
조현수의 말에 임미향이 잠시
그를 보다가 말했다.
“따끔하게 해요. 따끔하게. 아니 면 소송이라도 건다고 해요!”
“ 가.”
조현수의 말에 임미향이 자리에 서 일어나며 강진을 보았다.
“젊은 사람이 장사 그렇게 하는 것 아니에요! 사람이 은혜를 알 아야지.”
“가라니까!”
조현수의 말에 임미향이 강진을
한 번 쏘아보고는 가게를 나섰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