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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52화 (52/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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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향이 나가는 것을 보며 오 순영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쟤가…… 저런 애가 아니었는 데?”

아무래 도 임미 향이 강진에 게 한 말이 충격이었나 보다. 하지만 강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라도 이런 경우라면 달려들 겠지.’

본인은 육수를 사서 썼더라도, 시어머니의 레시피를 배운 사람 이 가게 근처에 해장국집을 차리 면 누구라도 열이 받을 일이었 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밥그릇 싸움 이니 말이다.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한 번 보고는 소주를 조현수의 앞에 내려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조현수가 소주 뚜

껑을 따서는 잔에 따랐다.

쪼르륵!

잔이 차자 조현수가 잠시 소주 잔을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가 선지해장국 만드는 방법은 아무에게나 안 알려주시 는데…… 어머니를 어떻게 아세 요?”

조현수의 물음에 강진이 슬쩍 오순영을 보고는 말을 했다.

“여사님께서 저희 가게 단골이 셨습니다.”

“이 가게에요?”

“네.”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없는데……

“어머니 일을 자식들이 모두 알 수는 없죠.”

“그건…… 그렇죠. 그래서요?”

“여사님께서는 손님들하고 음식 도 먹고, 폭탄주도 말아 드시고 그러셨습니다.”

“어머니가요?”

조현수는 정말 깜짝 놀란 듯했 다.

“여사님 폭탄주 잘 만드시던데, 모르셨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나이 드시 고는 폭탄주를 만드신 적이 없으 셔서요.”

“아! 제가 폭탄주도 좀 배웠는 데 한 잔 말아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조현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립니다.”

조현수의 말에 강진이 냉장고에 서 맥주를 하나 꺼내 왔다.

“그럼 말아 보겠습니다.”

뻥!

우렁찬 소리와 함께 맥주 뚜껑 이 높이 치솟았다. 이것 역시 오 순영에게 배운 기술 중 하나였 다.

잔에 맥주를 한 잔 정도 따른 강진이 소주를 그대로 그 위에 꽂았다.

꿀렁! 꿀렁!

소주가 맥주병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을 보며 조현수의 얼 굴에 미소가 어렸다.

“어렸을 때는 이게 그렇게 싫었 는데……

“싫어하셨어요?”

“엄마가 술 취한 사람들한테 웃 으면서 이런 거 만들어주는 것을 좋아할 아들은 없죠. 특히 질풍 노도라고 할 중고등학교 때 는…… 그때 제가 부순 술병만 몇 박스는 될 겁니다. 그냥 들어 서 내동댕이치고 그랬죠. 제발

좀 이런 것 좀 하지 말라고.”

잠시 말을 멈춘 조현수가 섞이 는 술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

조현수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 개를 끄덕이고는 힐끗 오순영을 보았다.

강진의 시선에 오순영이 한숨을 쉬었다.

먹고 살려면 한 병이라도 더

따야 했어.”

알고 있다는 듯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폭탄주가 술술 넘어가 기도 하지만, 만들다가 엎어지는 것도 많으니 술을 팔기엔 폭탄주 만 한 것도 없다.

쏟으면 쏟은 만큼 매상과 연결 이 되니 말이다.

소주가 어느 정도 맥주병 안으 로 들어가자, 강진은 스냅을 이 용해 소주병을 바로 세웠다.

촤악!

그와 함께 맥주병에서 거품이 솟구치자 엄지로 재빨리 입구를 막았다.

그러고는 글라스를 급히 세 개 가져다가 앞에 놓고는 엄지를 떼 어냈다.

촤아아악! 촤아악!

글라스에 하얀 거품이 뿜어져 나갔다. 그렇게 빠르게 세 개의 잔에 폭탄주를 뿜어낸 강진이 마 지막으로 맥주 입구를 엄지로 막 고는 조현수를 보았다.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조현수가 세 잔의 폭탄주를 보다가 말했다.

“엄마한테 정말 제대로 배우셨 네요.”

“그런가요?”

“엄마는…… 술자리에 늦게 온 사람이 있으면 벌주삼배라고 해 서 이걸 만들었어요.”

“벌주삼배요?”

“늦게 왔으니 일단 세 잔 먹고

시작하라는 거죠.”

조현수의 말에 강진이 다시 오 순영을 보았다.

“먹고 살려면 한 병이라도 더 따야 했다니까.”

같은 말을 다시 하는 오순영을 보며 강진이 작게 웃었다.

‘하긴 해장국 팔아서 얼마나 남 아. 다 술로 남기는 거지.’

게다가 오순영이 만드는 해장국 은 가격에 비해 품도 많이 들고 재료도 좋은 것을 사용하니 많이

남지 않는다.

그러니 술로 마진을 남겨야 하 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글라스를 가리켰 다.

“거품 꺼지면 맛도 꺼집니다.”

강진의 말에 조현수가 작게 웃 으며 글라스를 집어서는 단숨에 마셨다.

꿀꺽! 꿀꺽!

보는 사람이 맛있을 정도로 시

원하게 폭탄주를 원 샷을 한 조 현수가 두 번째 잔을 들어서는 똑같이 마셨다.

사실 지금 만든 폭탄주는 거품 이 칠 할을 차지하고 있어서 글 라스에 따랐다고 해도 마시는데 불편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거품 반, 술 반으 로 들어오는 식감이라 부드럽게 쭉쭉 들어가는 편이었다.

맛있게 세 잔의 폭탄주를 마신 조현수가 젓가락으로 선지해장국 의 건더기를 집어서는 입에 넣었

다.

“크윽! 좋다.”

미소를 지으며 조현수가 국물도 한 숟가락 떠서는 입에 넣었다.

“맛있다.”

조현수의 말에 오순영이 미소를 지었다.

“맛있지. 엄마가 직접 끓여줘야 하는데……

아쉬워 하는 오순영의 모습에 강진이 조현수의 글라스를 당기

고는 맥주병을 흔들었다.

촤아악!

다시 술을 따라주자 조현수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자! 이제 아내분까지 보내고 하실 이야기 하시죠. 화를 내실 거면 내시고, 이야기를 하실 거 면 하시고.”

강진의 말에 조현수가 손에 쥔 글라스를 잠시 보다가 선지해장 국을 한 모금 먹었다.

그러고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선지해장국 만드는 것…… 어 렵지 않았습니까?”

“어렵더군요.”

강진의 말에 조현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쉽지 않죠?”

“그럼요. 사골을 열 시간이나 끓여야 하고, 내장도 손질해야 하고…… 이거 육십인분 만드는

데 하루 종일 걸립니다.”

“맞아요. 열 시간 동안 죽치고 기름 떠내다 보면 아주 곤혹이에 요. 게다가 여름에는 온몸이 익 다 못해 수육이 되는 것 같다니 까요.”

“여름에는 곤욕이겠습니다.”

귀신들이 늘 오고가서 음기가 넘치는 한끼식당이다. 하지만 사 골을 끓이는 동안에는 후덥지근 하고, 습기도 꽉 찬다.

한끼식당에서도 그런데, 일반 식당에서는 그야말로 한증막보다 더 심할 것이다.

강진의 말에 조현수가 맥주잔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 었다.

“정말 힘들더군요.”

조현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말하는 것을 보니 직접 사 골을 끓이기도 한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육수를 사다 쓰지는 않았나 보네.’

그리고 잠시 있던 조현수가 입 을 열었다.

“어머니는 본인이 어렵게 사셔

서 그런지 어려운 분들을 많이 도왔습니다. 아내는 모르지만, 레 시피 알려달라고 오는 분들 중 사정이 어려운 분들은 가게에서 일을 시키면서 됨됨이를 살핀 후, 됐다 싶은 분들은 몫 좋은 곳에다 가게도 차려 주셨습니 다.”

“아내분은 모르십니까?”

“못난 저를 만나 고생하다 보니 욕심이 좀 많습니다. 알았다면 그럴 돈으로 우리나 좀 도와 달 라고 했겠죠.”

“팔은 안으로 굽어야죠.”

아내를 책망하기보다 강진은 그 마음을 이해했다. 나도 먹고 살 기 힘든데, 가족이 다른 사람에 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면 서운한 것이 당연하다.

“어쨌든 어머니의 레시피를 알 고 있는 사람들은 꽤 됩니다. 하 지만 이 사장님처럼 레시피 그대 로 요리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 다.”

“제대로 만들려면 하루 잡아야 하니 저도 정말 힘드네요.”

“맞습니다.”

그러고는 조현수가 강진을 보았 다.

“제 아내의 물음대로…… 왜 선 지해장국을 파시는 것입니까? 어 머니께 배웠다면…… 아내 말대 로 우리 가게 근처에서 같은 메 뉴를 파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 습니까?”

‘본론인가? 아니면 간을 보는 건가?’

조현수를 보던 강진이 답을 했

다.

“저는 태광무역에서 인턴을 하 고 있습니다.”

“ 인턴?”

“팀원들과 얼마 전에 가게에 가 서 한 번 가서 먹은 적이 있습니 다. 제가 아는 할머니 선지해장 국 맛이 아니더군요.”

“그건......"

잠시 머뭇거리는 조현수를 보며 강진이 말을 했다.

“여사님이 안 계신다고 재료의 질을 떨어뜨리지는 않으셨을 겁 니다.”

“물론입니다. 저희 가게에서 쓰 는 재료는 늘 최고의 것으로 준 비합니다.”

“하지만 육수는 아니시죠.”

꿈틀!

강진의 말에 조현수의 눈썹이 크게 굳어졌다. 그것을 보며 강 진이 말했다.

“요즘은 공장에서 나온 육수도

많이 좋기는 하죠.”

“그걸 어떻게?”

“저도 요리 만드는 사람이 고…… 여사님께 힘들게 육수 만 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편의점만 가도 사골 육수 팩 팔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답 이 나오죠.”

“끄응!”

작게 침음성을 토하는 조현수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사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해장

국은 육수 만드는 것이 아주 힘 듭니다. 게다가 가스 값도 만만 치 않고……

“맞습니다.”

“하지만…… 가게 벽에 걸려 있 더군요. 맛있는 해장국은 좋은 재료와 정성이 만들어 냅니다.”

말이 없는 조현수를 보며 강진 이 말을 이었다.

“아마 할머니께서 살아 계셨다 면…… 가게 문을 닫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할머니께

선지해장국은 그냥 음식이 아니 라 가족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자 식들을 키우게 해 준…… 집과 같습니다.”

“집?”

“선지해장국이 없었다면 사장님 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강진의 말에 조현수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어렸을 때야 술 파는 엄마 모습이 싫어 선지해장 국을 싫어했지만, 지금이야 어떤 의미인지 아는 것이다.

선지해장국이 없었다면 자신이 나 형들이나 지금처럼 먹고살 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조현수를 보며 강진이 말 했다.

“그리고 저희 팀장님께서 옛날 맛이 아니라고 실망을 하시더군 요.”

스윽!

강진이 잔에 남은 폭탄주를 따 라 한 잔 마시고는 조현수를 보 았다.

“사장님은 할머니를 실망시켰 고, 할머니의 음식을 좋아하는 단골들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래 서 저는…… 조 사장님의 가게가 망할 때까지 선지해장국을 만들 생각입니다.”

“제 가게가…… 망할 때까지?”

조현수가 작게 중얼거리는 것을 보며 강진이 선지해장국을 가리 켰다.

“드셔보시니 어떠세요?”

“맛있습니다.”

“어떻게, 저희 해장국이 조 사 장님 가게 해장국 잡아먹을 수 있겠습니까?”

강진의 물음에 조현수가 물끄러 미 선지해장국 그릇을 보다가 숟 가락을 들었다.

후르릅! 후르릅!

맛있게 선지해장국을 먹고 겉절 이까지 씹은 조현수가 강진을 보 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선지해장 국을 먹었습니다.”

“그게 답이십니까?”

“어머니가 물려주신 가게입니 다. 쉽게 망하게 하지는 않겠습 니다.”

스윽!

일어난 조현수가 물었다.

“얼마입니까?”

“해장국 두 그릇에 소주, 맥주 한 병씩 해서 이만이천 원입니 다.”

“잘 먹고 갑니다.”

돈을 꺼내 내민 조현수가 강진 을 보았다.

“그리고 어머니 레시피…… 잘 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깊이 숙인 조현수가 몸 을 돌려 가게를 나가자, 임미향 의 목소리가 들렸다.

“따끔하게 한마디 했지?”

“ 가.”

“또 팔면 고소한다고 했어? 여 보! 아니, 무슨 말 좀 해봐.”

임미향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것 을 들으며 강진이 오순영을 보았 다.

오순영은 안쓰러운 얼굴로 가게 입구를 보고 있었다.

“따라가 보세요.”

오순영이 급히 문을 향해 나갈 때, 강진이 말했다.

“혹시 승천하시게 되면, 바로 가지 마시고 저 보러 오세요.”

“승천?”

자신을 돌아보는 오순영에게 강 진이 웃으며 손을 들었다.

“가 보세요.”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웃으며 가게를 나섰다.

화아악!

문을 투과해 사라지는 오순영을 보던 강진이 빈 그릇을 보았다.

“잘 됐으면 좋겠네.”

오순영이 한 부탁은 가게를 망 하게 해 달라는 것이지만…… 제

대로 된 선지해장국을 만들어 팔 게 한다면 망하는 것보다는 더 좋은 결과가 될 것이다.

오순영에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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