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화
파스타를 다 먹은 김소희가 몸 을 일으켰다.
“잘 먹고 가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일어났 다.
“자주 오세요.”
“내가 자주 오면 다른 귀신들이 불편해하네.”
“다른 귀신들이야 자주 오니 상
관없습니다. 아주 거의 늘 붙어 있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잠시 생 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가하면 오도록 하지.”
“심심하시면 낮이라도 오세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살짝 고 개를 끄덕이고는 가게를 나서다 가 풍경을 보았다.
“좋은 풍경이군.”
“그런가요?”
“소리가 맑고 청아하니…… 좋 은 풍경이야.”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시게.”
김소희가 문을 열고 나서자 강 진이 그 뒤를 배웅해 주었다. 가 게를 나서고 귀신으로 변한 김소 희가 천천히 길을 가는 것을 보 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무슨 한이 많아서 사백 년 넘 게 이러고 있니?’
작아지는 김소희의 뒷모습을 가
만히 보던 강진이 한숨을 쉬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김소희가 먹은 그릇들을 치울 때 풍경 소리가 들렸다.
띠링! 띠링!
풍경이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강진의 눈에 처녀귀신들이 보였다.
“오빠, 우리 왔어요.”
이혜선과 같이 다니는 귀신들, 그리고 이지선과 그 일행이 가게 안에 들어오고 있었다.
“다 같이 오시네요.”
“우리 오라고 고추, 마늘 요리 해 놓은 것 아니야?”
“맞습니다. 앉으세요.”
“방금까지 김소희 씨 있었는 데.”
“아니까 지금 들어온 거예요.”
“김소희 씨 가기를 기다린 건가 요?”
“소희 언니는 나도 무섭거든 요.”
무섭다는 듯 몸을 떠는 시늉을 하는 이혜선을 보며 강진이 말했 다.
“대화해 보면 그리 무섭지 않은 데.”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본 능적인 거예요. 우리 안에 人}자 가 있다고 해도 그 앞에는 강아 지들이 못 가는 법이죠.”
이혜선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 덕인 강진이 테이블을 치우다가 이지선 일행 쪽을 보았다.
“이지선 씨는 오랜만에 오시네 요.”
“제주도에 가 있었네.”
“저는 한 번도 못 가 봤는 데…… 제주도 좋죠?”
“나름 볼 만하지.”
이지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물었다.
“아! 저희 같은 식당이 전국에 몇 곳 더 있다고 하던데…… 제 주도에도 있나요?”
강진의 물음에 이지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탐라도 식당이라고, 있지.”
“거기는 맛이 어때요?”
“제주도라 그런지 해물 요리를 잘하지. 하지만 요즘은 꽤 시끌 시끌해.”
“왜요?”
“중국 귀신들이 자주 오거든.”
“중국 귀신? 중국 귀신이 왜 한 국에 있어요? 그것도 제주도에?”
“제주도에 중국인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나?”
“그렇다고…… 중국 귀신도 와 요?”
“중국인도 꼭 중국에서 죽으라 는 법은 없지.”
“아......"
강진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 를 끄덕이자, 이지선은 고개를 저었다.
“중국 귀신들은 시끄럽더군.”
그러고는 이지선이 자리에 앉았 다.
“매운 냄새가 아주 좋군.”
“곧 음식 내오겠습니다.”
주방으로 들어간 강진이 곧 파 스타를 삶을 준비를 하고는 재료 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오빠, 우리 소주 가져가요.”
“그래.”
이혜선의 말에 답을 한 강진이 반찬 몇 개를 주방 싱크대에 올
리고는 말했다.
“여기 반찬들 좀 가져가.”
“명희야!”
“네.”
이혜선의 부름에 조명희가 일어 나 주방에 들어와서는 반찬들을 가지고 나갔다.
“아, 명희는 뭐 먹고 싶은 것 있어?”
“파스타 맛있겠는데요.”
“이거야 다 나가는 거고. 오빠
가 특별히 요리 하나 더 해 줄 게.”
“음…… 나 회 좋아하는데, 여 기는 회 안 되죠?”
회근}.
조명희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다가 웃었다.
“활어가 없으니 내가 회는 못 하지만…… 우리나라가 어떤 나 라야?”
“대한민국?”
“아니지. 배달의 국가 아니야.”
그러고는 강진이 시간을 보았 다.
“회 시키면 먹고 갈 시간은 되 겠다. 무슨 회 먹을 거야?”
“여기 배달도 시켜줘요?”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줘야 하 는데, 내가 못하면 배달이라도 시켜야지. 그래서 뭐?”
“모둠으로 해 주세요.”
조명희의 말과 함께 강진이 핸
드폰을 꺼내 주문 어플을 열고는 근처 횟집에서 회를 주문했다.
강남 논현, 즉 24시간 불이 꺼 지지 않는 동네라 그런지 새벽에 도 회를 배달하는 곳이 있었다.
그래서 모둠회 대 자로 주문을 넣고는 파스타를 만들어가기 시 작했다. 잠시 후, 요리를 끝낸 강 진이 처녀귀신들에게 서빙을 했 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평소에 뭐 하고 지내세요?”
강진의 물음에 이혜선이 파스타 를 한 입에 넣고는 말했다.
“아침에는 강남 돌아다니면서 여자 구경하고……
“여자가 여자를 구경해?”
“여자도 예쁜 여자들 좋아해 요.”
웃으면서 말을 한 이혜선이 말 을 이었다.
“지나가는 여자들 보면서 감상 도 하고 품평도 하고…… 그러다 가 심심하면 백화점 가서 옷 구
경도 하고 아이 쇼핑도 하고…… 그러다가 영화관 가서 영화도 몇 편 보고 그래요.”
“이지선 씨처럼 여행은 안 가나 보네.”
“아직 저희는 언니처럼 멀리 가 기 힘들어요.”
“그것도 힘이 있어야 하는 거 야?”
“그럼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문 이 열렸다.
띠링! 띠링!
풍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남자 두 명이 들어왔다.
“커억! 취한다.”
잔뜩 취한 얼굴로 가게를 들어 오는 남자가 하나, 그리고 그 뒤 를 따라오는 남자는 JS 금융의 강두치였다.
강두치는 차가운 얼굴로 남자의 뒤를 따라 들어오다가 이혜선과 이지선 일행을 보고는 미소를 지 었다.
“왜 이리 조용하나 했더니…… 처녀귀신분들이 전세를 내고 있 었군요.”
강두치의 말에 조명희가 움찔한 얼굴로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반대로 이혜선은 손을 들 어 아는 척을 했다.
“어머, 두치 오빠 왔네?”
“그래, 오빠 왔다.”
그러고는 강두치가 이지선을 향 해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나?”
“저야 늘 그렇지요. 누님도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마음이 좋습니 다.”
강두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지선이 그와 함께 들어온 남자 를 보았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현 신을 했음에도 뿌연 모습을 가진 자를 보던 이지선이 고개를 저었 다.
“두치 자네 얼굴이 굳어 있는
것을 보니 좋은 자는 아닌 모양 이군.”
“저희 회사에 대출이 아주 많 은…… 우량 고객이시죠.”
“방금 죽은 것인가?”
“술을 먹고 죽어서…… 정신이 라도 차리게 하려고 일단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수고하게.”
이지선의 말에 강두치가 남자를 향해 시선을 돌리다가 얼굴이 굳 어졌다.
남자가 이혜선 일행이 앉아 있 는 탁자에 기대 말을 걸고 있었 다.
“오빠가 술 한 잔 사 줄까?”
방금 죽어서 아직 처녀귀신이 무서운 줄 모르는 모양이었다.
술에 잔뜩 취해 말을 거는 남자 의 모습에 이혜선이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머! 오빠, 우리하고 놀고 싶 은가 보네?”
“너는 빠지고.”
“응?”
“못생긴 게 어디서 말을
남자의 말에 이혜선의 굳어졌다. 사실 이혜선이 것은 아니다.
다만 조명희가 나이도 조금 더 예쁠 뿐이었다.
“하!”
걸어.”
얼굴이
못생긴
어리고
황당한 듯 웃음을 터뜨린 이혜 선이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보았 다.
“오늘이 첫날이라, 내가 봐 줄 게.”
말과 함께 남자의 머리에 맥주 병이 그대로 내리꽂혔다.
쾅! 쨍그랑! 후두둑!
맥주병이 깨지면서 사방으로 유 리조각이 휘날리는 것을 보며 그 녀가 웃었다.
“고맙지?”
절대 고맙지 않을 상황이었지 만, 이혜선은 무척 만족한 듯했 다.
“이런 미친!”
욕과 함께 남자가 이혜선을 향 해 달려들려 하자, 강한나와 조 명희가 남자의 양팔을 붙잡고는 비틀었다.
우두둑, 우두둑!
“크아악!”
팔이 비틀리며 자빠지는 남자의 모습에 이지선이 강두치를 보았 다.
“이대로 보고 있을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말과 함께 강두치가 서둘러 남 자와 처녀귀신들에게 다가갔다.
“잠깐! 여기서 멈추고 진정하시 죠.”
“오빠, 난 아직 시작도 안 했 어.”
말과 함께 이혜선이 소주병을 들어 보였다. 거꾸로 들린 소주 병에서 소주가 철철 쏟아지고 있 었지만 그녀에게는 일명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맥주병 다음으로는 소주병으로 남자를 후려칠 생각이었던 게 분 명했다.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차 피 귀생 후진 놈이야. 적당히 하 자.”
강두치의 말에 이혜선이 입맛을 다시고는 그대로 소주병으로 남 자 귀신의 머리를 후려쳤다.
팡!
영화에서라면 소주병도 그대로 깨지겠지만, 실제 소주병은 깨지
지 않았다.
그리고 알다시피 깨지면 안 아 프지만, 안 깨지면 더 아프다.
그래서인지 남자 귀신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올 뿐이었다.
“크악!”
비명을 지르는 남자 귀신을 보 며 이혜선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소주병을 내려놓았다.
“이 정도로만 할게.”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황당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사람을 병으로 때리면 어떻게 해?”
“맞을 짓을 하잖아. 그리고 사 람은 무슨, 귀신이지.”
이혜선의 말에 고개를 저은 강 진이 술 취한 남자 귀신에게 다 가갔다.
“ 괜찮아요?”
“이런 개 같은 놈들…… 내가 가만있을 것 같아!”
고함을 지르는 남자 귀신의 행 동에 강두치가 한숨을 쉬며 그 뒷덜미를 손으로 쥐었다.
“크악!”
아픈지 비명을 지르는 남자 귀 신을 보며 강두치가 웃으며 말했 다.
“고객님, 진정하시고 일단 앉으 시죠.”
말과 함께 옆에 있는 의자에 남 자 귀신을 거칠게 앉힌 강두치가 강진을 보았다.
“우리 고객님 정신 좀 차리시 게, 냉수 한 잔 부탁드립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냉수를 한 잔 받아서는 가져다주었다.
“내가 이 개자식들을 가만두나 봐!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남자 귀신의 말에 강두치가 그 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잘 알죠. 어디 보자.”
강두치가 태블릿을 꺼내서는 읽 었다.
“호연그룹 셋째, 고영우. 나이 33세. 그리고 다른 내용들은 대 충 스킵해도 되겠고…… 일단 저 희 은행 우량 고객이시네요.”
“당연하지. 내 재산이……
“마이너스 22억 7천 5백 정도 되시네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과 여자 귀 신들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세상에, 22억?”
“무슨 연쇄 살인마도 아니고 마 이너스가 저래?”
“나도 저런 액수는 처음 본다.”
여자 귀신들의 말에 강진도 고 개를 끄덕였다.
‘마이너 스 22억이라니…… 무슨 짓을 어떻게 하고 다니면 저런 마이너스가 나오는 거야?’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남자 가 황당한 듯 소리쳤다.
“뭐? 무슨 개소리야! 은행에 있 는 내 돈이 얼만지 나도 모르는 데 무슨 마이너스?”
“그거야 이승권 은행이고……
저희 JS 금융은 저승권 은행이라 조금 다릅니다.”
웃으며 말을 하는 강두치에게 강진이 냉수가 든 컵을 내밀었 다.
“여기 물요.”
“감사합니다. 자! 그럼 정신 좀 차리세요.”
말과 함께 강두치가 그대로 냉 수를 남자에게 뿌려 버렸다.
촤아악!
“으악! 차가워!”
놀라 급히 얼굴을 훔치며 남자 가 강두치를 노려보았다.
“너 이 미친 자식! 너 어디 은 행이야!”
“JS 금융입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은행 따위가…… 너희 은행장 불러! 이 개자식아!”
버럭 고함을 지르는 남자의 행 동에 강두치가 웃었다.
“VVIP들에게는 인사하러 오시 는 분이지만, 고객님처럼 대출만 잔뜩 있는 분이 보실 수 있는 분 은 아닙니다.”
말을 하며 강두치가 들고 온 서 류 가방을 열었다.
“일단 서류 서명부터 하겠습니 다.”
강두치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놓자 남자가 코웃음을 치며 손으 로 그것을 집어던졌다.
파앗! 후두둑!
서류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 과 함께 남자가 강두치를 노려보 았다.
“미친놈.”
말을 한 남자가 주머니를 뒤졌 다.
“핸드폰은 또 어딜 간 거야?”
그러다가 남자가 강진을 보았 다.
“야! 010-****-****로 전화 걸어서, 당장 튀어 오라고 해.”
남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 었다.
“저희 식당은 식당이라, 대리 전화를 해 줄 이유가 없네요.”
“뭐? 이 자식이 내가 누군 줄.. 하
“호연그룹 셋째, 고영우, 나이 33세? 맞나?”
강진이 강두치를 보자 그가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시는군요.”
그러고는 강두치가 고영우를 보 았다.
“주워.”
“뭐?”
“주워.”
강두치가 싸늘한 얼굴로 노려보 자, 고영우가 술에 취한 와중에 도 두려움을 느꼈는지 시선을 피 했다.
그리고 그런 고영우를 보며 강 두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주워.”
강두치의 말에 고영우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서류를 줍기 시 작했다.
그런 고영우의 모습에 강진이 서류를 슬쩍 보았다.
〈음주 운전 교통 사망 책임 대 출 증서〉
‘음주 운전 교통 사망 책임 대
출 증서? 이건 무슨 서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