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58화 (58/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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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례식장?”

“가시죠. 아까도 말했다시피 고 영우 씨 말고도 오늘 봐야 할 고 객님들이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두치가 힘없 이 앉아 있는 고영우를 데리고 나가다가 강진에게 고개를 숙였 다.

“돈 안 되는 손님 모시고 와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매상 한 번 올리러 오겠습니 다.”

웃으며 강두치가 고영우를 데리 고 나가자, 강진이 그들이 앉았 던 자리를 치웠다.

치울 것이라고 해도 물 컵과 물 통, 그리고 강두치가 던진 잔의 물기뿐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자리를 정리한 강진은, 이혜선이 있는 자리로 돌아와 편 하게 술을 마시고 회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12시 55분에 처녀귀신들이 자 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에 또 보세.”

이지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자주 오세요.”

“그리하도록 하지. 그럼 쉬게.”

이지선의 말에 강진이 작게 한 숨을 쉬었다.

“쉬고 싶지만 저는 내일 장사 준비를 해야 해서…… 지금부터 시작이네요.”

“그럼 수고하게.”

도와주겠다거나 하는 말없이 수 고하라는 말로 말을 마무리 지은 이지선이 가게를 나서자 다른 귀 신들도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 섰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이 힐끗 가 게 밖을 보았다. 멀어져 가는 처 녀귀신들 외에 다른 귀신들은 없 었다.

‘하긴 처녀귀신 있는 곳에 일반 귀신이 올 일은 없지. 그럼 처녀 귀신이 오늘 마지막 손님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식탁 을 정리하고는 주방에서 선지해 장국을 끓일 재료를 꺼내 손질하 기 시작했다.

“술을 먹지 말 걸 그랬나?”

술을 먹어서 그런지 유난히 몸 이 피곤했다. 그에 강진이 한숨 을 크게 토하고는 냉장고에서 야 관문차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 다.

“후우!”

차가운 차를 잔뜩 마시자 조금 정신이 든 강진이 찬물에 세수까 지 하고는 꺼내 놓은 내장에 밀 가루를 부었다.

촤아악!

밀가루를 뿌린 강진이 막 그 안 에 손을 들이밀려 할 때 오순영 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사장.”

오순영의 목소리에 강진이 고개 를 들었다. 옆에 오순영과 배용

수가 서 있었다.

그런데 오순영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응? 무슨 일 있으세요?”

“우리 가게에 좀 가줘.”

“할머니 가게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강진이 놀라 묻자, 배용수가 한 숨을 쉬었다.

“감이 떨어졌더라.”

“감? 무슨 감?”

“사골 끓이는 불 조절 감 말이 야.”

“왜 못 만들어?”

“레시피대로 만들려고는 하는 데…… 불 조절이 여사님 마음에 안 드시나 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오순영을 보았다.

“제가 간다고 주방에 들어오게 할까요?”

“이 사장이 잘 말해야지. 그리 고 나와 친분이 있는 걸 아니까,

아들이 들어가게 해 줄 거야.”

아들은 오순영이 살아 있을 때 강진을 만난 줄로 아니 말이다.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손질을 하던 선지해장국 재료들을 보았 다.

“이건 어떻게 해요?”

“그건…… 들고 갈 수 있겠어?”

거기 가서 손질하면 어떠냐는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머리를 긁 었다.

지금 꺼내 놓은 재료들을 선지 해장국집으로 가지고 간다라

‘이걸 손으로 들고 가기에는 힘 든데……

잠시 생각을 하던 강진이 고개 를 저었다.

“일단 가게부터 가죠.”

마음을 정한 강진이 손을 씻고 는 꺼내 놓은 재료들을 힐끗 보 고는 배용수를 보았다.

“귀신들 들어와서 여기 재료 옆

에 좀 있어줘.”

“왜?”

“꺼내 놓으면 상하잖아.”

그래서 귀신들을 옆에 붙여 놓 으려는 것이다. 귀신들이 있으면 온도가 떨어지고 서늘하니 말이 다.

“우리가 무슨 귀신 냉풍기도 아 니고, 음식 옆에 있으라고 해?”

“그럼? 밀가루로 범벅이 된 걸 냉장고에 넣어 둘 수는 없잖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갔다 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오순영을 보았다.

“가시죠.”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그와 함 께 가게를 나섰다.

오순영과 가게를 나온 강진은 해장국집이 있는 곳으로 걸으며 물었다.

“불 조절을 못 해요?”

“그러게 말이야. 내가 잘 가르 쳤는데……

사골을 끓일 때엔 불 조절이 중 요하다. 강한 불로 끓여야 할 때 는 화끈하게, 약한 불로 할 때는 은은하게 끓여야 한다.

쉬운 것 같지만, 사골의 색과 향에 따라 불을 조절해야 했다. 강진도 오순영한테 욕을 먹으면 서 불을 줄이고 키워가며 배웠으 니 말이다.

“내장 손질은 잘해요?”

“그거야 매일 하던 거니까.”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육수를 가져다 썼지, 내장 은 직접 손질해서 썼을 테니…… 그럼 사골이 문제네.’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 던 강진의 눈에 굳게 닫혀 있는 가게가 보였다.

“문이 닫혀 있네요.”

불까지 꺼 놓은 가게를 보며 강 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오순 영이 말했다.

“뒤로 가면 주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어.”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가게 뒤 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가게가 진짜 크네요.”

“손님이 많이 오니까.”

“여기 땅값도 비싼데, 이층으로 올리지 그러셨어요?”

오순영의 가게는 크기는 하지만 일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변 에 있는 건물들이 대부분 사층 이상인 것을 보면 땅이 아까운 수준이었다.

강남 건물이 비싼 건 땅값이 비 싸기 때문이지, 건축비가 비싼 것은 아니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고개를 저었다.

“음식은 주방에서 나가는 순간 부터 맛이 떨어져. 그런데 이층 을 만들면 주방에서 이층까지 음

식을 올려야 하니 서빙해야 할 거리가 길어지잖아.”

“이층에도 주방 만들면 되잖아 요. 제가 예전에 일하던 칼국수 집은 주방을 일층, 이층 두 곳에 만들어서 손님 받았는데.”

“내 몸이 두 개일 수는 없잖 아.”

주방 두 곳에 모두 자신이 있을 수 없다는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지해장국이야 어차피 만들어

놓은 걸 끓여서 내면 되는데…… 굳이 그것까지 관리하실 필요가 있어요?”

“있지. 주인의 눈길이 닿는 음 식과 안 닿는 음식…… 같은 음 식이라도 차이는 있어. 그래서 이층을 올리지 않고 일층에서만 손님을 받는 거야.”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걸음을 멈췄다.

“왜? 여기만 돌아가면 문이야.”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웃었다.

“할머니 살아 계실 때 국밥 한 그릇 못 얻어먹은 것이 아쉽네 요.”

작은 차이로 인한 맛의 변화도 용납하지 않는, 그야말로 장인 정신을 가진 오순영이다.

그런 오순영이 살아 있을 때 그 녀가 만든 선지해장국을 못 먹은 것이 아쉬웠다.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이 잘 만들어 줄 거 야. 나중에 그것 맛있게 먹어.”

오순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양손을 앞으로 길게 뻗으 며 깍지를 끼고는 몸을 비틀었 다.

O = = I O rz rr I

-i——r=『! —ir=r!

“자! 그럼 호랑이 잡으러 호랑 이 굴로 가 봅시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강진은 곧 가게 옆 에 난, 뒷문이라고 해야 할 입구

를 볼 수 있었다.

뒷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강진은 문을 통해 뜨거 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엄청 뜨겁네요.”

“오백인분 사골을 끓이는 거니 까. 사골 끓이는 솥만 해도 네 개가 넘지.”

말을 하며 오순영이 안으로 들 어가자 강진이 슬며시 고개를 들 이밀 었다.

주방 입구로 보이는 곳에는 커 다란 솥 네 개가 걸려 있고 그 앞에 임미향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조현수는 국자로 기름을 걷어내고 있었다.

“사장님.”

강진의 부름에 조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은 땀과 기름 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어? 이 사장님?”

“잘 되세요?”

“들어오세요.”

조현수의 말에 강진이 안으로 들어가며 임미향에게 작게 고개 를 숙였다.

그에 임미향이 눈을 찡그리고는 강진을 보다가 휙 하고 일어나더 니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에 강진이 어색하게 조 현수를 보았다. 그 시선에 조현 수가 미안한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누라가 오늘 일 때문에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음식들 다 버리셨다면서요?”

“응? 그건 누구한테 들으셨습니 까?”

“그야…… 손님들한테 들었죠.”

귀신한테 들었다고 할 수가 없 어 적당히 둘러대자 조현수가 한 숨을 쉬었다.

“조용히 버린다고 버렸는데…… 소문이 났나 보군요.”

“이야기 듣고, 음식을 할머니

레시피대로 만드실 것 같아 한 번 와 봤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그런데……

강진이 뭐라 말을 하려 할 때, 솥 앞에 선 오순영이 보였다.

그녀는 강진을 향해 손을 흔들 며 솥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다 불이 너무 세. 불 좀 줄이고 차가운 물 좀 부어.”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솥에 다

가가며 말했다.

“잘 아시겠지만, 지금 불이 너 무 강하네요. 물론 사장님이 알 아서 조치를 하시겠지만…… 불 좀 줄이고 냉수를 넣어서 온도를 낮춰야 할 것 같습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기 위 해 강진은 눈치와 심리학적인 대 화 기법을 사용했다.

뭐…… 사실 기법이라고 할 것 도 없었다.

사람은 누가 자신을 무시하면

대화를 하기 싫어지고 짜증이 난 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을 알아 주고 존중해 주면, 자신도 남을 존중하게 되고 대화가 편해진다.

그러니 네가 몰라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너도 알고 있겠지 만 이런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 다.

상대를 존중하면 나 역시 존중 을 받는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 본이었다.

물론…… 요즘 세상에는 반대

로, 상대를 존중하면 상대는 나 를 호구로 본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강진의 말에 조현수가 솥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은 불을 줄이는 것 이 좋겠죠.”

말과 함께 조현수가 불을 줄이 고는 솥 안의 물을 보다가 냉수 를 가져다가 부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 버리고 다시 만들고 싶어.”

오순영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힐 끗 그녀를 보고는 작게 말했다.

“지금 버리면 조 사장님 사기가 꺾여요. 지금은 으쌰으쌰 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것 이 좋아요.”

“그런가?”

“그럼요. 막 자전거를 타는 애 한테 너 이렇게 타면 안 돼, 하 는 것보다는 넘어졌을 때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더 중요하 죠.”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맞는 비유인가?”

“음…… 제 생각에는요.”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조현수 를 보다가 솥으로 고개를 돌렸 다.

“한 세 시간 끓이신 건가요?”

강진의 말에 조현수가 한쪽에 있는 시계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 였다.

“딱 세 시간 정도인데 잘 아시 네요.”

“저도 끓여 봤으니까요.”

“원래는 저녁 되기 전에 끓이려 고 했는데…… 끊었던 거래처와 다시 거래를 하려니 힘들더군 요.”

“물건 안 주겠대요?”

“거기 사장님이 화가 많이 나셨 더군요. 우리 어머니와 수십 년 거래를 하셨던 분인데…… 우리 가 바로 거래를 끊어서 그쪽도

타격이 컸었나 봅니다.”

“하긴 이 정도 가게에서 거래를 끊었으니 그쪽도 난감했겠네요.”

이런 가게에서 쓰는 사골은 어 마어마한 양이다. 그런 사골 거 래를 한 번에 끊었으니 그쪽에서 도 화가 나기도 할 것이었다.

아니, 아주 많이 화가 났을 것 이다.

“다 제 잘못이죠.”

한숨을 쉬는 조현수를 보며 강 진이 사골을 보다가 살며시 말했

다.

“저기…… 아무래도 사장님이 정말 오랜만에 사골을 끓이셔서 감이 아직 잘 안 잡히시는 것 같 습니다.”

“사실…… 조금 그렇습니다. 색 감이 조금 탁해 보이기도 하 고…… 이쪽은 조금 더 진해 보 이기도 하고.”

조현수의 말에 오순영이 말했 다.

“같은 시간을 끓여도 들어가는

사골의 양과 질이 조금씩은 다 차이가 나. 그래서 끓이면서 물 과 불을 조절해서 끓여야 하는 거야.”

오순영의 말을 그대로 강진이 옮겨 주었다. 그에 조현수가 미 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해 주셨던 말이군 요.”

“그래서 제가 오늘은 같이 사골 끓이는 것을 도와드릴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이 사장님이 도와주신다면 저 야말로 감사하죠.”

조현수가 환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말했다.

“그래서 그런데, 저희 가게에 내일 쓰려고 준비한 선지와 내 장, 그리고 사골이 있습니다.”

“아…… 이 사장님도 장사를 하 셔야 하는데……

“제안을 하나 할게요. 저희 가 게에서 쓸 재료들을 이곳으로 모 두 가져오고…… 같이 선지해장

국을 만들어요.”

“같이요?”

“그리고 내일 팔리는 선지해장 국의 육십인분만큼은 제가 가지 겠습니다.”

강진의 제안은 간단했다. 한끼 식당에 있는 재료도 가져와서 여 기서 같이 만들고, 내일 장사도 여기서 한다.

그리고 판매금의 육십인분은 자 신이 가지겠다는 것이었다.

‘고생하는 만큼 나도 뭔가는 챙

겨야지.’

일을 하면 그만큼 돈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강진의 지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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