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화
월요일 아침, 수출 대행 2팀은 간단한 회의를 하고는 각자 자신 의 자리로 가서 일과를 시작했 다.
“최동해!”
그런데 최동해의 옆에서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이상섭이 낮은 목소리로 작게 으르렁거렸다.
“네!”
놀라 보는 최동해를 보며 이상 섭이 서류를 내밀었다.
“너…… 이 서류 어떻게 된 거 야?”
이상섭의 말에 최동해가 급히 서류를 보았다.
“그건 가나에 보내는……
“그걸 내가 몰라서 묻냐?”
탁!
이상섭이 숫자가 적힌 곳을 강 하게 지적했다. 그에 최동해가
의아한 듯 서류를 보다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건......"
“숫자가 하나 빠졌지? 그 덕에 상대 쪽은 우리 물건을 십분의 일 가격으로 받을 테고……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힐끗 최 동해를 보았다.
‘이런......"
어떤 상황인지 잘 몰라도 아마 도 천만 원을 쓴다는 것이 백만 원을 쓴 것 같았다.
가끔 그런 일이 있다. 나라마다 쓰는 화폐가 다르고 그 환율이 다르니 실수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상섭은 다시는 실수하지 말라고 그를 닦달하는 것이고 말이다.
“제가 어제 할 때는 제대로 했 는데……
“제대로 했는데 이 서류는 아니 네? 이 서류 이대로 보냈으면, 네 월급으로 이 숫자 하나 책임 질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제가 분명히……
하지만 문제는…… 최동해는 변 명으로 실수를 무마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이상섭이 한숨을 쉬 고는 서류를 내려놓았다.
“다시 작성해서 가지고 와.”
“알겠습니다.”
최동해의 말에 이상섭이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리다가 다시 멈췄 다.
“최동해, 따라와. 그리고 강진이 도 할 일 많지 않으면 같이 가 자.”
인턴 시작한 지 삼 주 정도 된 시점이라 부서 직원들은 편하게 말을 놓기 시작했다.
특히 이상섭은 사수라서 가장 빨리 말을 놓았고 편하게 그들을 대했다.
강진과 최동해가 일어나자 이상 섭이 최미나에게 말했다.
“커피 한잔하고 오겠습니다.”
“내 것도 한 잔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강진과 최동해를 데리고 이상섭 은 일층에 위치한 커피숍으로 향 했다.
일층 커피숍에서 커피 세 잔을 마주하고 세 사람이 앉았다.
“동해야, 너도 인턴 동기들 통 해서 대충 이야기는 들었을 거 야.”
이상섭의 말에 최동해가 그를 보았다.
“어떤 이야기를 말씀하시는지?”
“알잖아. 너 정직원 못 될 거라 는 것. 나 때는 2주 정도면 인턴 들 사이에서 될 놈과 안 될 놈들 에 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는 데.”
직구로 들어오는 이상섭의 말에 최동해가 입술을 깨물었다가 고 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나하고 과장님이 널 왜 이렇게 들들 볶으면서 일 가르치
는지는 아냐?”
“다른 회사 가서 적응 잘하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소한 뭐라도 배우고 가라고 볶아대는 거야.”
고개를 끄덕이며 이상섭이 커피 를 마시고는 강진을 보았다.
“그리고 강진이는 원래부터 정 직원이 될 생각이 없었고.”
“네.”
강진의 답에 이상섭이 피식 웃
었다.
“사실 너도 우리 타깃 중 하나 야.”
“타깃요?”
“네가 식당을 하지 않았고, 심 리학과가 아니라 무역학과 나왔 으면 너도 동해처럼 빡세게 일하 고 있을 거야.”
“저도 정직원 대상이 아닌가 보 네요?”
“당연한 것 아니냐? 네가 좀 빠 릿빠릿하고 눈치가 좋기는 해도
그뿐이잖아. 실무에 대해 알기를 하냐? 서류 업무에 능숙하기를 하냐?”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 부서분들은 다 저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그거야 그렇지. 너처럼 사회성 좋은 놈도 없으니까. 하지만 일 잘하는 인턴을 떨어뜨리면서까지 너에게 좋은 인사 점수를 줄 수 는 없어. 그건 이해하지?”
“그럼요.”
스윽!
이상섭이 최동해를 보았다.
“동해야.”
“네.”
“네 문제가 뭔지 아냐?”
“아직 일이 미숙합니다.”
“그건......"
잠시 말을 멈췄던 이상섭이 한
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인턴이 뭐냐?”
“네?”
“인턴이 뭐냐고.”
“아직 정식 직원이 되지 못한 수습 직원요……
최동해의 말에 이상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수습, 즉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야. 아무리 일 잘하는 인턴이라고 해도 완벽할 수는 없어. 언제 어느 때라도 사 고를 칠 수 있고, 모든 일과 상
황을 대비할 수는 없어. 왜? 일 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이 적어서야.”
잠시 말을 멈춘 이상섭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경험은 일을 하다 보면 늘어. 아까 같은 일도 네가 아직 미숙해서 그런 거지, 일을 못해 서 그런 것이 아니야.”
“감사합니다.”
“위로해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 야.”
그러고는 이상섭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최동해를 보았다.
“넌 마인드를 고쳐야 해.”
“마인드요?”
“그래, 아까도 그랬잖아. 내가 뭔가 지적했을 때 변명만 대고 말이야.”
“그……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들으려고 하는 말이 아니야. 좀 고치라고 하는 말이야. 너 성격 안 고치면…… 어딜 가도 사회생활하기 힘들
어.”
말없이 듣고 있는 최동해를 보 며 이상섭이 한숨을 쉬었다.
“넌 네가 왜 정직원이 못 되는 것 같아?”
“제가 잘…… 못해서요.”
“인턴이 일 잘하면 다 인턴 쓰 지 누가 정직원 쓰냐? 그리고 너 일 그리 나쁘지는 않아.”
“그런가요?”
“그래. 학교도 좋고 성적도 좋
아. 게다가 인턴치고는 서류 작 성도 곧잘 하지. 아마……
잠시 생각을 하던 이상섭이 최 동해를 보며 말했다.
“아마 이번에 들어온 인턴 중에 서도 스펙이나 실력은 다섯 손가 락 안에 들 거야.”
“그럼 성격 때문에 제가 정직원 이 안 되는 건가요?”
“왜, 고소라도 하게?”
“아닙니다.”
“성격도 실력이야.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하고 일하고 싶지, 같 이 일하기 싫은 사람하고 일하고 싶겠어?”
“제 성격이 어디가 문제입니 까?”
최동해의 물음에 이상섭이 그를 지그시 보았다.
“그걸 몰라서 묻냐?”
이상섭의 말에 최동해가 입맛을 다시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성격이 조
금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은 최동 해도 알고 있었다.
그런 최동해를 보며 이상섭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그렇게 살진 마라.”
“네?”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 야. 너 지금처럼 행동하면 어디 를 가도 대접 못 받아.”
“예를 하나만 들어 주십시오.”
“예‘?”
“저도 제 성격이 사회적이지 않 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성격 고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잖습 니까.”
최동해의 말에 이상섭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네 성격을 알 수 있는 예를 하나 들어줄게.”
“네.”
최동해가 굳은 눈으로 보자 이 상섭이 입을 열었다.
“전에 우리 점심시간에 중국집
간 적 있지?”
“네.”
“그때 과장님이 탕수육도 하나 시키셨고.”
왜 그런 이야기를 하나 싶어 최 동해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끄 덕였다.
각자 식사를 하나씩 시키고, 임 호진이 탕수육도 하나 먹자고 따 로 하나 시켰었다.
“네.”
“그때......"
이상섭이 말을 하다가 입맛을 다셨다.
“말씀해 주세요.”
“내 입으로 말하기도 민망하 다.”
“제가 그때 뭐 잘못했습니까?”
“잘못은 아니야. 그냥…… 매너 지.”
잠시 머뭇거리던 이상섭이 한숨 을 쉬고는 말했다.
“너는 짬뽕을 시켰지. 거기에 공깃밥도 하나 추가해서.”
“제가…… 좀 많이 먹습니다.”
“누가 너 많이 먹는다고 그러 냐? 다만…… 왜 탕수육을 다 먹 고 나서야 짬뽕을 먹느냐 이거 지.”
“네?”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보는 최 동해를 보며 이상섭도 얼굴이 살 짝 붉어졌다.
이런 걸 기억하고, 말하고 있는
스스로가 소심하고 한심하게 느 껴져 짜증이 난 것이다.
“인간적으로 같이 먹는 음식이 있으면 서로 눈치껏 먹어야 할 것 아니냐? 근데 너는 탕수육만 먹다가, 그게 바닥이 나니까 그 제야 짬뽕을 먹었어.”
말을 하는 이상섭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생각을 하니 또 짜증 이 나는 거다.
그라고 해서 탕수육에 환장을 한 것은 아니지만, 눈에 딱 보이 게 그러니 그리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저기…… 제가 탕수육을 좋아해서.”
“아니지. 전에 돼지국밥 먹으러 갔을 때도 너는 수육만 먼저 다 먹고 난 후에 돼지국밥을 먹었 어.”
“제가…… 고기를 좋아해서
우물우물 말을 하는 최동해를 보며 이상섭이 한숨을 쉬었다.
“아니지. 돼지국밥하고 짬뽕은
너 혼자 먹는 거지만, 탕수육과 수육은 다 같이 먹는 거라서 그 것부터 먼저 먹은 거야. 넌 그 냥…… 식탐이 너무 많아.”
“그건......"
우물쭈물하면서 뭔가 말을 잇지 못하는 최동해를 보며 이상섭이 말했다.
“생각해 봐라. 누가 너 밥 먹을 때 그러면 기분 좋겠냐?”
말을 하지 못하는 최동해를 보
며 이상섭이 말을 이었다.
“일단 그것부터 고쳐라. 솔직 히…… 너하고 밥 먹기 싫다.”
이상섭의 말에 최동해가 고개를 숙였다.
“……네.”
그런 최동해를 보며 이상섭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리고 강진이가 심리학과잖 아. 동기 돕는다 생각하고 네가 좀 도와줘.”
“심리학과라고 성격 개조까지는 못하는데요.”
“네가 보고 느낀 것이 있을 것 아냐. 직설적으로 강하게 이야기 해 줘. 그래야 고치지.”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최동해를 보았다. 그러고는 입맛을 다시고 는 말을 했다.
“동해 씨가 정 성격을 고칠 생 각이 있으면 제가 직설적으로 이 야기는 해 줄 수 있죠. 하지 만……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지, 누가 하라고 한다고 해서 될 일
이 아닙니다.”
그리고 타인의 안 좋은 점을 지 적하는 것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 고 해도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
자신에 대해 감정도 좋지 않은 최동해에게 자신이 지적을 하면, 감정만 더 안 좋아질 수 있었다.
강진이 최동해를 보았다.
“지금 욕 듣고 싶으면 언제든지 저한테 말을 해요.”
“욕 2”
욕이라는 말에 최동해가 의아한 듯 그를 보자, 강진이 말했다.
“앞으로도 욕을 듣고 싶지 않으 면 나한테 말을 안 하면 됩니다. 그리고…… 듣고 고칠지 말지는 최동해 씨 선택이에요. 저는 지 적만 해 줄 겁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커피를 꿀꺽꿀 꺽 마시고는 이상섭을 보았다.
“들어가시죠.”
“그래.”
이상섭도 마저 커피를 먹고는,
카운터로 가서 최미나가 부탁한 커피를 받아 커피숍을 나섰다.
강진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가던 최동해가 슬며시 말했다.
“제가 고칠 것이 또 뭐가 있나 요?”
최동해의 물음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슬쩍 그에게 한 걸음을 다가갔다.
그러자 최동해가 옆으로 한 걸 음 물러났다.
“왜 물러나요?”
“강진 씨가 다가와서……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는 사람하고는 가까이 있고 싶고, 싫어하는 사람과는 멀리 있고 싶고…… 이건 누구나 다 같은 거죠. 동해 씨가 저를 좋아하지 않으니 이렇게 물러나 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 만 동해 씨는 다른 사람하고도 거리를 두더군요.”
“그게…… 문제가 되나요?”
“거리를 둔다는 건 말 그대로 거리를 두는 거죠. 저희처럼 물 건을 사고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 거래처와 거리를 두는 건 그리 좋은 점이 아닐 겁니다.”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잠시 생 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일단은 이것부터 고쳐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아! 하지 만 너무 상대의 공간에 갑자기 훅 하고 들어가지 마세요. 친한 사이가 아니면 친근함이 아니라
위협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최동해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첫 단계라 그런가, 욕은 안 하 시네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욕이라……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거리를 좁히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한 걸음 더 다가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 한 걸음을 내디디려면 여러 준비가 필요해요.”
“어떤 준비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