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61화 (61/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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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최동해를 보던 강진이 입 을 열었다.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왜 피하 는 것 같아요?”

“그…… 제가 사람들과 쉽게 친 해지기 어렵습니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죠. 하 지만 다른 이유도 있을 겁니다.”

“그게 뭔데요?”

“제가 다 알려 드릴 수는 없어 요.”

“왜요? 제가 욕을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요?”

최동해의 물음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이상섭 씨가 먹을 걸 가 지고 동해 씨한테 이야기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요?”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이미 사 무실로 안으로 들어가 있는 이상 섭을 보았다.

이상섭은 최동해와 강진이 이야 기를 나누는 것 같자 먼저 안으 로 들어간 것이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물은 건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마음이지, 잘잘못이 아니에 요. 그리고…… 사실 식탐이 많 은 건 남들과 다른 거지 잘못된 건 아니죠.”

강진의 말이 최동해가 눈을 반 짝이며 그를 보았다.

“그렇죠? 먹을 걸 좋아한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 고, 잘못된 것도 아니죠. 그냥 다 른 사람하고 다른 거잖아요.”

잘못된 것이 아닌 다른 것이다. 이것은 요즘 많이 회자되는 말들 중 하나였다.

일종의 ‘다른 것을 인정하는 마 음’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식탐을 부리는 것이 사 회생활을 할 때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주기는 하지 만, 딱히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남이 먹을 것까지 모조리 먹는다면 타인에게 해를 주기도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땠어요?”

“조금……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리고요?”

자세하게 말을 해 보라는 강진 의 말에 최동해가 잠시 머뭇거리 다가 말했다.

“수치스럽기도 하고…… 그게 꼭 그렇게 나쁜 건가 싶기도 하 고.”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저 같아도 제 안 좋은 버릇을 지적당하면 수치스러울 겁니다.”

“그렇죠?”

자신을 이해해 준다 생각을 했 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최동 해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내가 최동해 씨의 행동 중에 안 좋은 것을 지적할 때마다, 최 동해 씨는 이런 감정을 계속 느

낄 겁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생기면 제가 하는 조언이 조언처 럼 안 들리고 비난으로만 들릴 겁니다.”

“아……

“그래서 저는 대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 도 동해 씨가 저를 좋아하지 않 는데, 이런 걸로 원수까지 되고 싶지는 않거든요.”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잠시 우 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욕, 아니 조언을 받아들 일 준비가 됐다면요?”

“말로 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 들이는 건 다른 겁니다. 일단 사 람에게 다가가는 것부터 하세요. 그리고 내가 사람이 다가오는 것 을 왜 피하는지 생각을 해 보시 고요.”

“다른 조언은 없나요?”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 세요.”

강진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최동해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뒤 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로 돌아온 강진과 최동해 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강진은 간단한 복사와 필요한 서류와 자 료들을 찾아주는 일을 했고, 최 동해는 서류를 작성하고 이상섭 이 가져다준 서류를 살피는 일을 했다.

어쨌든 일을 하고 있을 때, 임 호진이 피곤한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모두 모여.”

임호진의 말에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의 앞으로 모였 다.

모든 팀원들이 모이자, 임호진 이 입을 열었다.

“알고 있겠지만…… 가을이다.”

임호진의 말에 직원들이 눈을 찡그렸다.

“설마‘?”

최미나의 중얼거림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설마가 맞다.”

그러고는 임호진이 책상 위에 있는 탁상 달력을 집어 들며 입 을 열었다.

“날짜는 이번 주 금요일.”

“헉! 금요일이면 가나에 자동차 부품 가는 날인데요.”

“어떻게 해요? 저는 토요일에

프랑스로 초콜릿 보내야 하는 데.”

직원들이 금요일 전후로 일이 있음을 어필했지만, 임호진이 한 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봄, 가을 체육행사는 갑자기 공지된다. 그 이유는 다 아는 것처럼…… 아무리 논의를 해 봐도 모든 부서에게 딱 들어 맞는 날짜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 다.”

임호진의 말에 직원들이 한숨을 쉬었다.

태광무역은 좋은 회사다. 회사 도 크고 직원 복지도 좋고, 어쨌 든 한국 무역회사들 중에서 상위 권에 드는 좋은 회사다.

그만큼 직원들도 많고 하는 일 도 많고 거래처도 많았다.

즉 모든 부서가 한가한 날을 잡 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한 부 서에게 좋은 날짜는 다른 두 부 서에게는 최악의 날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두 부서에게 한가한 날은 다른 네 부서에게 최악의 날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태광무역 사장은 행사를 4일 전에 갑자기 공지하곤 했다. 그것도 평일인 금요일로 말이다.

그리고 체육행사는 금요일에 시 작해서 토요일까지, 1박 2일로 진행이 된다. 태광무역에서 가장 큰 행사가 바로 체육행사였다.

“최미나 대리가 수고 좀 해 줘 야겠어.”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최미나의 말에 임호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상섭이나 미령 씨를 남길 수는 없잖아.”

“알겠습니다.”

최미나의 답에 임호진이 직원들 을 보았다.

“금요일 당직은 최미나 대리가 설 거야.”

임호진의 말에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서 중요하게 생 각하는 체육 행사지만, 회사를 통째로 비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부서마다 당직을 설 한 사람이 남아야 하고, 그것은 평 직원보다는 대리급이 서는 것이 다.

대리급은 되어야 무슨 일이 생 기든 커버할 수 있는 경험과 역 량이 있으니 말이다.

“금요일에 전화나 일 생기지 않 도록 일들 정리 잘하고, 거래처 들한테도 전화 돌려. 우리 회사 체육행사 한다고 하면 대부분 알 아들으실 거야.”

거래처들도 여러 번 겪은 일이

라 태광무역 체육행사가 있다고 하면 그에 맞게 일정을 조절할 것이다.

다행히 수출 대행 2팀은 일정 조절이 쉬운 편이었다. 중소기업 을 상대로 하는 수출 대행 업무 라, 따지기는 그렇지만 갑과 을 의 관계로 보자면 이쪽이 갑인 것이다.

“알겠습니다.”

답과 함께 직원들이 서둘러 각 자의 자리로 돌아가자, 최미나가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각자 진행하던 사업들 요점 정 리해서 이강진 씨에게 주세요. 그래야 내가 일 터져도 그것 보 고 확인하죠.”

“알겠습니다.”

직원들의 답에 최미나가 강진을 보았다.

“강진 씨는 팀원들이 주는 서류 받아서 확인 좀 해 줘요.”

“어떤 확인을 말씀하시는 거 죠?”

“정리된 서류하고 원래 서류를

이중으로 체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최미나 가 다시 자신의 일을 시작하자, 강진이 최동해를 보았다.

“체육행사에 대해 뭐 들은 것 없어요?”

자신이야 다른 인턴들 사이에서 왕따지만, 그래도 최동해는 그들 과 얽혀 있으니 뭐라도 들은 것 이 있나 싶은 것이다.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말했다.

“태광무역 사장님이 좀 특이하 시대요.”

“특이?”

“사장님이 직원 화합을 정말 중 요하게 생각하신대요.”

“그거야 어떤 회사든 다 그렇겠 죠.”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어쨌든 태광무역은 가을에 체 육대회를 열어요. 사장님과 임원 들 모두 참여하는 가장 큰 행사

로 경기도에 있는 수련원을 하나 빌려서 1박 2일로 진행을 한대 요.”

최동해는 체육대회에 대한 이야 기를 이미 들어 알고 있는지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최동해의 말에 강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1 박…… 2일요?”

“금요일 날 해서 토요일 날 끝 나는 거죠.”

최동해의 말에 강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불참은요?”

“불참?”

“불참할 수는 없어요?”

강진의 물음에 최동해가 고개를 저었다.

“당직 서야 하는 직원들 빼고는 전원 참석으로 알고 있어요.”

“절대?”

“사장님이 회사 행사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데, 누가 빠

지겠어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심각한 얼굴로 핸드폰을 꺼냈다.

‘신수호 변호사가 이걸 불가피 한 경우로 생각해 줄지 모르겠 네.’

한끼식당 운영 규칙상 쉬는 날 은 오직 일요일뿐이다. 그리고 그 외에는 늘 11시부터 새벽 1 시까지 영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금요일 날 외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일단 신수호

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해야 했다.

‘일이 있으면 일할 사람을 보내 준다고는 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이상 섭에게 잠시 통화를 하고 온다 말하고는 사무실을 나왔다.

사무실을 나온 강진이 비상계단 으로 향했다. 탕비실에서도 통화 를 해도 되기는 하지만, 개인적 인 일이라 사람이 없을 비상계단 으로 향하는 것이다.

비상계단에 들어간 강진은 곧 신수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신수호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 이 말했다.

“이강진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해야 할 말만을 하는 신수호답 게 정 없는 물음을 들으며 강진 이 말했다.

“제가 금요일에 회사 체육행사

를 가야 합니다.”

[다녀오세요.]

“그런데 회사 체육행사가 1박 2 일입니다.

[하루 장사를 쉬어야겠군요.]

“그래서 사람을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안 된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는 강진의 귀에 신수호의 목소 리가 들려왔다.

[확인한 후에 다시 전화드리겠

습니다.]

그것으로 통화를 끊은 신수호에 게서 잠시 후 다시 연락이 왔다.

[금요일에 사람이 가서 장사를 할 겁니다.]

“다행이 네요.”

[그럼…….]

용건이 끝났으니 전화를 끊으려 는 신수호의 목소리에 강진이 급 히 말했다.

“저기, 잠시만요!”

[무슨 일이 더 있습니까?]

“오신다는 분은 저희 가게에 대 해 아시나요?”

한끼식당 손님인 귀신들에 대해 아냐는 것이었다.

[넷째 신수조가 가서 장사를 할 것입니다.]

“아! 그럼 다행이네요.”

한끼식당에서 살고 자란 신수조 라면 당연히 귀신에 대해 잘 알 것이다.

“그럼 열쇠는 따로 안 놔도 되 나요?”

[우리 형제들은 열쇠 없이도 가 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더 할 이야기 없으십니 까?]

“네.”

[그리고 잘하고 계십니다.]

“네?”

[이번에 오순영 씨를 승천시켰

더군요.]

“알고 계셨네요.”

[식당에 대해 저희는 모르는 것 이 없습니다. 어쨌든…… 앞으로 도 그렇게 가게를 잘 운영해 주 시기 바랍니다.]

“오 년 동안 열심히 하겠습니 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것으로 전화를 끊은 강진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비상 계단을 나왔다.

그러다가 문득 강진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일요일은 영 업 안 해도 되잖아?”

오랜만에 영업 규칙을 떠올리다 보니 그중 하나가 생각이 난 것 이다.

규칙상 일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강진은 그동안 일요일에도 영업을 쉬지 않았다.

귀신들을 상대로 영업을 쉬면

안 된다는 생각만 했지, 일요일 은 쉬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잠시 하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일요일엔 좀 쉬어야 겠어.”

그렇지 않아도 하루도 쉬지 않 고 일만 해서 피곤하던 참이었 다.

일과를 마무리한 강진은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최동 해는 슬며시 주위 눈치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상섭에게 다가갔다.

“선배님.”

최동해의 부름에 이상섭이 그를 보았다.

“왜?”

“저희는 회식은 안 하나요?”

“회식?”

갑작스러운 말에 이상섭이 의아

한 듯 묻자, 최동해가 말했다.

“다른 부서는 인턴 들어오고 회 식도 했다고 하는데…… 저희 부 서는 아직 안 해서요.”

최동해의 말에 이상섭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임호진을 보 았다.

그렇지 않아도 최동해가 하는 말을 들은 듯, 임호진이 잠시 있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다들 일 없으면 회식할까 하는데 어때?”

임호진의 말에 최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체육대회 때문 에 오늘 여기저기 전화 돌리느라 피곤했는데, 잘 됐어요. 목에 기 름칠 좀 해야겠어요.”

최미나의 말에 다른 직원들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임호진이 강진을 보았다.

“이강진 씨는 어때요?”

“저도 괜찮습니다만…… 이 근 처에서 먹는 건가요?”

“왜요?”

“제가 11시에는 가게에 들어가 봐야 해서요.”

“우리도 회식 늦게까지 안 하니 괜찮아요. 그럼 오늘 합시다. 다 들 하던 일 정리하고 10분 후에 나갑시다.”

임호진의 말에 사람들이 하던 일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강진이 힐끗 최동해를 보았다.

‘소심한 사람이 먼저 회식을 제

안하고…… 급하기는 급한가 보 네.’

강진은 최동해가 먼저 회식을 제안한 이유가 짐작이 되었다.

자신이 한 조언대로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 으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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