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65화 (65/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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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은 숫자가 잘못 기재된 서 류를 들고는 삼십 대 중반의 남 자에게 갔다.

“강성수 대리님.”

“응? 왜?”

수출 대행 2팀의 정직원은 총 7명이다. 그중에 최미나와 같이 대리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 강성 수였다.

과장 진급을 할 연차이기는 한 데 진급이 좀 느린 쪽이었다.

어쨌든 강성수에게 강진이 서류 를 내밀었다.

“확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진이 서류를 내밀자 강성수가 서류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 덕였다.

“확인 잘했네. 고마워.”

“아닙니다. 제 일인데요.”

“그럼 수치는 원래 서류 걸로

옮겨 적어.”

“네.”

강성수가 전화기를 집어 들자, 강진이 서류를 들고는 자신의 자 리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수치를 바꿔 적고는 그 옆에 시간을 적었다. 혹시라 도 나중에 이것이 문제가 될 경 우를 대비해서 내용 변경 시간도 같이 적어 두는 것이다.

A스 I

서류를 변경한 강진이 박충만을

보자 그가 서류를 다시 보기 시 작했다.

박충만의 도움으로 강진은 모든 서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끄응!”

강진이 신음을 뱉으며 몸을 비 틀었다. 하루 종일 서류를 보느 라 몸을 굽히고 있었더니 몸이 다 쑤셨다.

“끄으응!”

다시 한 번 신음을 토한 강진이 시간을 보았다. 퇴근 시간이 다 가오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서류를 들고는 이 상섭에게 가져갔다.

“2차 확인했습니다. 한 번씩 보 시고 문제없으시면 최미나 대리 님에게 주시면 됩니다.”

“고마워.”

이상섭이 서류를 받다가 강진이 다른 서류들도 더 들고 있는 것 에 그를 보았다.

“다른 팀원들 사업도 다 확인했 어?”

“네.”

“빨리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 없나 확인을 해야 해.”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 다 했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지? 우리가 받았다가 틀린 것 발견하면 한마 디 듣게 될 거야.”

“괜찮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그에게 서류를 주고는 다른 팀원들에게 도 서류들을 넘겼다.

그 모습을 보던 임호진이 입을 열었다.

“꼼꼼히들 확인해요.”

임호진의 말에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류를 확인하기 시 작했다.

임호진과 오랜 일한 팀원들이니 그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바로 틀린 걸 찾아서 혼내 주라 는 의미였다.

이상섭이 강진이 다 했다는 말 을 믿지 않은 것처럼, 임호진도 믿지 않았다.

수출 대행 2팀이 하는 사업들 전부를 강진이 확인을 했다. 그

것도 그냥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요점이 정리된 서류와 일반 서류 를 이중으로 확인한 것이다.

중요한 건 틀리지 않게 해야 하 는 것이지 빠르게 하는 것이 아 니었다.

그런데도 강진이 확인했다고 말 을 하자 잘못된 것을 찾아 버릇 을 고쳐 주려는 것이다.

물론 임호진에게 무슨 나쁜 뜻 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일을 성급하게 하면 안 좋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팀원들도 알 기에 자신들에게 온 서류를 꼼꼼 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강진이 최미나에게 종이 한 장을 가져왔다.

“대리님.”

“저도 뭐 주게요?”

최미나는 금요일날 당직을 서야 하기에 강진에게 자기가 하는 사 업을 주지 않았다.

최미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제 회식 자리에서 말했던 음 식 레시피요.”

“어머!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는 데……

“하늘같은 직장 상사분이 한 말 을 어떻게 잊겠어요. 제가 간단 한 걸로 몇 개 적어왔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종이를 내밀었 다. 종이를 받아 든 최미나가 메 뉴를 읽었다.

“김치볶음, 매운 김치볶음, 들기 름 김치볶음? 김치볶음이 세 종

류나 되네요?”

“초보자 모드입니다.”

“아…… 정말 쉽기는 하네요.”

“말 그대로 볶기만 해도 어느 정도 맛은 보장되는 음식이죠.”

“하긴 김치볶음은 말 그대로 김 치만 볶으면…… 되네요.”

김치볶음 레시피에는 설명이 길 지 않았다. 그냥 김치 잘라서 볶 고 설탕 조금 넣으라는 식이었 다.

“카레도 있네. 카레는 어려

O... ”

카레가 있는 것에 살짝 놀랐던 최미나가 만드는 방법을 읽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쉽네?”

“어떤 요리든지 어렵게 하면 어 렵고, 쉽게 하면 쉽습니다.”

“그렇네요. 양파 두 개를 채를 썰든 조각을 내든 해서 프라이팬 에 넣고 기름을 살짝 두른 후 볶 는다. 캐러멜색이 될 때까지 십

오 분 정도 계속 볶는다.”

“채를 썰면 좋겠지만 그게 어려 우시면 그냥 대충 조각내서 볶으 시면 됩니다.”

“그런데 십오 분이나 볶아요?”

“캐러멜색이 날 때까지 볶으시 면 됩니다. 불에 따라 다르지만 타지 않는 불로 하면 십오 분 정 도 걸릴 겁니다.”

강진의 말에 최미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글을 마저 읽었다.

“양파가 캐러멜색이 되면 국그

릇으로 물을 두 번 붓는다. 그리 고 카레를 넣고 타지 않도록 잘 저어주고 걸쭉해지면 맛있게 먹 는다. 이게 끝이에요?”

“지금 적어 드린 건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일단 해서 드셔 보 시고 입에 맞으시면 다음에는 양 파가 캐러멜색이 되기 일이 분 전에 다른 재료들을 넣으시면 됩 니다. 돼지고기, 감자, 당근 등등 먹고 싶은 걸로 아무거나요.”

“아무거나?”

“아무거나 넣으셔도 돼요. 그러

면서 자신만의 히든 레시피를 찾 는 거죠.”

강진의 말에 최미나가 미소를 지으며 레시피가 적힌 종이를 보 았다.

“고마워요.”

“이것들 해 보시고 맛이 좋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알았어요.”

최미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레시 피를 볼 때 이상섭이 강진을 보 았다.

“잘 확인했네.”

“이상 없으세요?”

“응…… 네가 체크해 놓은 것 외에는 문제없어.”

그러고는 이상섭이 다른 직원들 을 보았다. 그 시선에 김혜인과 다른 직원들도 고개를 저었다.

문제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 시 선에 이상섭이 강진을 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넌…… 참 일을 빨리 배운다.”

“감사합니다.”

“아니야. 진짜 빨리 배워.”

그러고는 이상섭이 강진을 보다 가 미소를 지었다.

“인턴 끝나도 연락하고 지내 자.”

“인턴 끝나면 저희 가게 자주 오세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이상섭을 보던 강진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자신

의 가방을 챙겼다.

“수고하셨습니다.”

강진의 말에 직원들이 작게 고 개를 끄덕였다. 퇴근 시간이 되 면 퇴근하는 강진의 모습은 이제 익숙하니 말이다.

“내일 뵙겠습니다.”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선 강 진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 베이터에는 퇴근을 하는 사람들 이 있었다.

그들 곁에 선 강진에게 뒤에 있

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이강진 씨죠?”

자신의 이름이 들려오는 것에 강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잘생긴 남 자가 서 있었다.

“네?”

“인턴 모일 때 한 번 본 적 있 는데…… 저는 국내 지원 2팀 황 규식입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이강진입니 다. 그럼 인턴이세요?”

“네.”

황규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요.”

그것으로 강진이 더는 말을 하 지 않았다. 그에 황규식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이강진 씨 평이 좋던데요.”

“그런가요?”

“심리학을 전공하고 맛집도 운

영하고 한의사도 아닌데 진맥도 할 줄 아는 인턴…… 흔하지 않 잖아요. 게다가 무역회사에서요.”

가벼운 농 속에 칼이 숨겨져 있 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강진 이 속으로 웃었다.

“거기에 혹시 내가 정직원이 될 생각이 없다는 것은 포함이 안 됩니까?”

“포함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 부서 형들도 강진 씨 같은 인턴이라면 부담이 없다 고 하더군요.”

“태광무역 분들은 참 좋은 분들 인 것 같아요. 보통 인턴 자르는 것 어렵지 않게 생각하는데요.”

“맞습니다. 그래서 꼭 이 회사 에 들어오고 싶습니다.”

황규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돌아보았다.

“꼭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강진의 말에 황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띵!

엘리베이터가 일층에서 멈추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내렸다. 그 런 사람들과 같이 내리던 강진에 게 황규식이 다가왔다.

“저기, 괜찮으시면 커피 한 잔 드시겠습니까? 제가 사겠습니 다.”

“커피요?”

“만난 건 우연이지만, 인연으로 이어가는 것도 좋은 일 아니겠습 니까?”

황규식의 말에 강진이 시간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건물 내 위치한 커피숍에 들어 간 강진이 말했다.

“캐러멜 커피 부탁합니다.”

강진의 말에 황규식이 점원에게 주문을 하고는 진동벨을 들고 빈 자리에 앉았다.

“체육대회 가시죠?”

“모두 가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고개를 끄덕인 황규식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체육 대회 후에 인턴 한 명을 정직원으로 뽑는 건 알고 있습니 까?”

“그래요?”

“모르셨습니까?”

“처음 듣네요. 그런데 체육 대 회 후에 인턴을 뽑는 거면…… 설마 운동 잘하는 걸로 뽑는 겁 니까?”

강진이 황당한 듯 묻는 말에 황

규식이 고개를 저었다.

“운동으로 뽑는 건 아니에요.”

“그럼요?”

드르르륵!

말을 하던 황규식은 벨이 울리 는 것에 일어나서 음료를 받아왔 다.

그러고는 캐러멜 커피를 강진에 게 주고는 살며시 말했다.

“정확히는 인턴 중에 인기 있는 사람을 뽑는 거죠.”

“인기?”

“체육 행사 끝나고 인턴들은 비 밀 투표로 팀원 내에서 태광무역 과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뽑습니 다. 그중 과반수의 표를 받은 사 람은 인사고과와 상관없이 바로 정직원이 되는 거죠.”

황규식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웃었다.

“아......"

“ 아?”

강진의 중얼거림에 황규식이 의

아한 듯 그를 보았다.

“왜 ‘아’예요?”

“선배들이 이야기 안 해 준 이 유를 알 것 같아서요.”

“이유? 뭔데요?”

“가장 많은 표를 받는 사람이라 면 가능성은 있지만 과반수라는 것이 문제죠.”

웃으며 강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피곤했는데 달달한 캐러 멜 커피를 마시니 당이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맛있네.’

“이번에 태광무역에 들어온 인 턴이 한 17명 되나요?”

“그렇죠.”

“그럼 과반수가 되려면 9명이 한 사람을 뽑아야 되는 건데 그 건 말이 안 되죠. 인턴 중에 정 직원 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아, 정확히는 저 빼고 16명이군 요. 16명 모두 정직원이 되고 싶 어 하는데 어떻게 한 사람에게 과반수의 표가 가겠어요.”

말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은 강진이 말을 이었다.

“정말 인기 많은 사람이라도 세 표 받기도 힘들 겁니다.”

강진의 말에 황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일리가 있죠. 하지 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황규식 씨라면 정직원이 될 수 도 있는 표를 남에게 줄 겁니 까?”

강진의 물음에 황규식이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안 주겠죠. 하지만…… 이 투표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을 수가 없어요.”

“자기의 이름을 적을 수 없다?”

“자신의 이름을 적을 수 없으니 남의 이름을 적어야 하죠. 그래 서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만은 않 습니다.”

황규식의 말에 강진이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웃었다.

“확실히…… 어렵지만 불가능하 지는 않군요.”

“그렇죠?”

“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겁 니다.”

“요즘 청년 취업 역시 결코 쉽 지 않습니다.”

황규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해 본다면 황 규식의 말이 맞다.

요즘 청년들의 실업난을 생각한 다면, 체육 행사에서 인턴들에게

표를 받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 다.

그리고 강진은 황규식의 마인드 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어쩌면 얍삽한 행동일 수 도 있다.

평소 말 한 번 나누지 않다가 지금 말을 거는 이유 자체가 자 신에게 표를 달라는 행동이니 말 이다.

하지만…… 그것이 뭐 어떻단 말인가.

취업은 전쟁이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황규식은 지금 그 노력 을 하고 있었다. 강진은 살아남 기 위한 그 노력을 높게 평가했 다.

물론 그렇다고 황규식을 도와줘 야 할 의무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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