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화
금요일 아침 10시 무렵 태광무 역 직원들은 경기도 어느 곳의 수련원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름 모를 산이 보기 좋게 뒤에 펼쳐져 있고 앞에는 작은 냇가가 흐르는, 경치가 좋은 곳이었다.
강진과 수출 대행 2팀 팀원들은 수련원에 배정된 숙소에 짐을 풀 었다.
강진이 커다란 창문을 통해 수 련원 밖을 내다보며 미소를 지었 다.
“여기 좋네요.”
커다란 창문으로 경치도 한눈에 보이고 방도 널따란 것이 좋았 다.
강진의 말에 커피를 마시던 임 호진이 말했다.
“저녁에 캠프파이어 할 때는 더 좋아요.”
“캠프파이어도 하나요?”
“수련원 오면 많이들 하잖습니 까.”
그러고는 커피를 마신 임호진이 일어났다.
“짐은 대충 놓고 나가도록 하 지.”
임호진의 말에 직원들이 그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수련원 앞에 있는 운동장에는 다른 직원들도 하나둘씩 모이고 있었다.
“이강진 씨!”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강진은 해외사업 2팀 오성 실 부장과 그 팀원들을 볼 수 있 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십니까?”
“저야 뭐 그렇죠. 그런데 요즘 잘 안 오시네요?”
“인턴 일도 힘들 텐데, 가게 일 로 힘들게 하면 되겠습니까?”
오성실과 팀원들이 발길을 하지 않는 것은 강진을 배 려 해서였다.
물론 강진 입장에서는 점심은 그래도 저녁 장사에는 와 주면 좋지만 말이다.
“그럼 인턴 끝나면 자주 와 주 세요.”
“그럼요. 사실 빨리 이 사장이 인턴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습 니다. 점심 식사할 곳 찾는 것도 일이거든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 운동 장 앞에 있는 단상에 한 사람이 올라갔다.
[아아! 아아!]
마이크에 대고 몇 번 목소리를 낸 남자가 말을 했다.
[곧 사장님 나오시니 다들 부서 별로 정렬해 주세요.]
남자의 말에 직원들이 부서별로 줄을 지어 서기 시작했다. 그에 강진도 오성실과 헤어지고는 팀 원들과 함께 줄을 맞춰 섰다.
직원들이 정렬을 하자, 곧 수련 원 건물에서 임원들과 함께 오태 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단상 위로 올라간 오태 광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누군지는 다들 아실 테니 넘어가겠습니다. 이번 가을 체육 대회에도 푸짐한 상품을 걸었으 니 다들 열심히 뛰고, 좋은 결과 얻어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멋진 남편, 좋은 아빠가 되시기 바랍 니다.]
그것을 끝으로 오태광이 단상에 서 내려가자 진행 요원으로 보이 는 젊은이들이 단상으로 올라갔 다.
[일정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 니다. 11시부터 축구, 탁구, 농 구, 씨름 네 종목의 예선이 시작 이 됩니다. 각 부서 팀장님의 핸 드폰으로 일정이…….]
진행 요원이 체육행사 진행 상 황에 대해 설명을 하자 강진이 이상섭에게 살짝 말했다.
“사장님 연설 짧게 하시네요.”
“쓸데없는 절차 같은 건 안 좋 아하시는 분이니까. 그리고 우리 가 무슨 교장선생님 훈화 듣고 있을 나이도 아니잖아.”
교장선생님 훈화라는 말에 강진 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건 그렇……
말을 하던 강진의 얼굴에 의아 함이 어렸다. 단상 밑에 천막이 쳐져 있었는데 그 밑에 낯이 익 은 얼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 교수님하고 광현 형이네?”
천막 밑에 교수님하고 최광현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주위에는 교수님 연구실 학생들 도 모여 있었다.
‘사장님이 부르셨나?’
회사 체육대회에 교수님이 자기 를 보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보니 임상옥 교수님이 오 태광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 끔씩 메모를 하고 있는 것이, 일 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에 강진이 핸드폰을 꺼내 최 광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기 어떻게 오신 거예요?〉
〈나 봤나 보네. 너 어딘데?〉
〈여기 사람 많아서 저 안 보일 겁니다. 어떻게 되신 거예요?〉
〈태광 사장이 오늘 체육대회인 데 같이 와서 공도 차고 맛있는 것 먹으라고 교수님 초대하셨어. 아! 게다가 학생들도 인당 이십 만 원씩 줄 테니까. 같이 오라고 하더라고.〉
〈인당 이십요? 학생들도 돈을 준대요?〉
〈돈 안 주면 우리가 여기까지 올 이유가 있나?〉
〈놀고먹으면서 이십만 원이면
엄청 좋네요.〉
〈그래서 왔지. 흐흐흐 게다가 우리 탁구하고 농구 나갈 건 데…… 우승하면 상금도 따로 챙 겨 준다고 하더라.〉
〈전투력 업이네요.〉
〈이따가 보자.〉
〈저야 팀원들 따라다녀야 하니 형이 오셔야 합니다.〉
〈그러든가.〉
그걸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강진에게 최동해가 말했다.
“가시죠.”
“어디‘?”
“저희는 국내 영업 1팀하고 강 당에서 탁구한다는데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팀원들과 함께 강당으로 이동을 했다. 수 련원에는 실내 체육도 할 수 있 는 강당이 있었다.
강당으로 이동을 한 강진은 다 른 부서 팀원들이 몸을 푸는 것 을 보았다.
탁구랑 농구가 진행이 될 예정 이었다.
“자, 그럼 국내 영업 1팀, 수출 대행 2팀 이쪽 1번 탁구대로 오 시고요. 해외사업 1팀, 국내 지 원 1팀 2번 탁구대로 오세요.”
진행 요원의 외침에 각 부서들 이 탁구대 쪽으로 모였다.
“과장님, 파이팅!”
“상섭아 파이팅!”
직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임호진 과 이상섭이 가방에서 탁구채를 꺼냈다.
개인 탁구채까지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나름 취미로 즐기는 모양이었다.
“7점제로 2선승제입니다.”
태광무역의 체육 행사는 축구, 3대3 농구, 씨름, 탁구로 이뤄져 있었다.
거기에 축구는 각 부서들이 인
원을 합쳐서 하는 거라 실제로 하는 경기 수는 많지 않았다.
1박 2일 안에 모든 경기가 치러 져야 하는 만큼 정식 룰을 따르 지는 않았다.
각 선수들이 자리를 잡자 곧 진 행 요원이 시합을 시작시켰다.
탓! 탓!
탁구공이 좌우로 오가는 것을 보던 강진이 힐끗 강당 뒤에 있 는 관람석을 보았다.
관람석에는 몇몇 존재들이 있었 다.
‘귀신이네.’
강당 관람석에 서서 경기를 지 켜보고 있는 것은 귀신들이었다.
귀신을 보게 된 이후 여러 곳에 서 여러 귀신들을 보았다. 아무 래도 사람이 죽지 않은 땅 같은 것은 없어서 그런지 어디를 가도 귀신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귀신들은 조금 특이했다. 귀신 셋이 보였는데
모두 같은 운동복을 입고 있었 다.
남색 계통의 운동복을 입고 있 는, 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귀 신들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여기 수련회 온 학생들이 무슨 사고라도 당한 건가?’
귀신들은 모두 몸에서 피를 철 철 흘리고 있었다. 무섭다는 마 음보다는 안쓰럽다는 듯 귀신을 보던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 렸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귀신 일행 은 여자 귀신과 남자 귀신이 섞 여 있었다.
비율로 따지면 여자 귀신이 둘, 남자 귀신이 하나였다.
‘처녀귀신이…… 아닌 건가?’
쳐녀귀신은 일반 귀신들과 같이 있지 않는다. 아니 같이 있고 싶 어도, 다른 귀신들이 처녀귀신을 무서워해 자리를 같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 귀신 둘에 남자 귀
신이 같이 있는 것이다.
귀신들을 보던 강진이 슬쩍 옆 에 있는 강성수 대리에게 말을 걸었다.
“늘 여기에서 체육 행사를 하나 요?”
“사람 놀기도 좋고 경치도 좋아 서, 회사 행사는 대부분 여기서 해.”
“혹시 여기서 전에 사고가 있었 나요?”
강진의 물음에 강성수가 그를
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뉴스를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아서요.”
수련회에 온 학생 셋이 한 번에 죽었다면 뉴스로 나왔을 것이다.
강진의 생각이 맞았는지 강성수 가 고개를 끄덕였다.
“6년 전인가? 그때 주차장에서 사고가 있었어.”
“사고요?”
“지금은 주차장이 좀 밑에 위치 해 있는데, 그때는 여기 강당 옆 이 주차장이었거든.”
“그런데요?”
“차 한 대가 강당으로 이동하던 학생들을 덮쳤어.”
“왜요? 설마 음주 운전?”
음주 운전을 하고 죽은 고영우 의 일이 문득 생각난 강진이 그 렇게 물었다.
“그건 아니고……
강성수가 입맛을 다시고는 입을 열었다.
“급발진 사고.”
“급발진?”
“그때 사고로 학생들이 크게 다 쳤어. 다친 사람도 많고 죽은 사 람도 몇 있었지.”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 듯한 강성수의 모습에 강진이 말 했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운전자는 어떻게 됐어요?”
“운전자는 무죄 받았어.”
“사람이 죽었는데요?”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운전 자가 그때 상황을 통제할 수 없 었다는 판결 받았을걸.”
“그럼 급발진인 건 어떻게 알았 어요?”
“주차장이라 자동차들이 많이 주차되어 있잖아. 거기 동영상
보면 급발진한 자동차 브레이크 등에 불이 선명하게 들어와 있 어.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빵! 하고 튀어나갔다는 거지. 게다가 차내 블랙박스에도 운전자가 소 리 지르는 것도 담겨 있었고.”
“아, 그래도 무죄라......" 좀 그 렇네요. 사람이 죽었는데.”
강진의 말에 강성수가 고개를 저었다.
“무죄 받으면 뭐 하냐? 그 운전 자가 학교 선생님이었던 모양인 데……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
잡아먹었다고, 학교 그만두고 자 살했다는 뉴스 본 것 같다.”
“ 자살요?”
강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자 강성수가 말했다.
“죄책감이 컸겠지. 차가 갑자기 튀어나간 거라고 해도 자신이 운 전하던 차에 학생들이 죽고 다쳤 으니…… 그 선생, 학교 그만두 고 급발진 조사하고 자동차 회사 를 고소한 모양인데…… 자동차 회사가 이겼어.”
“개인이 자동차 회사를 이기기 는 어렵죠.”
“그렇지. 판결나고 며칠 있다가 자살했다고 하더라.”
말을 하던 강성수가 한숨을 쉬 었다.
“이런 것 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참 한 치 앞을 몰라. 애들 데리 고 수련회 와서 이런 일이 생길 줄 어떻게 알았겠어?”
“죽은 사람만 불쌍하네요.”
“그렇지.”
“그런데 대리님 잘 아시네요?”
“말을 하다 보니 기억이 나네.”
그러고는 강성수가 고개를 저었 다.
“사람들이 매일매일이 똑같다 고, 지겹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어제도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것이 편한 인생이지 않나 싶다.”
“그렇네요.”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귀신들을 향해 고개를 돌
렸다.
‘밥은 먹고 다니나?’
귀신들을 위한 식당 주인이다 보니, 저 귀신들은 밥은 먹고 다 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이스!”
그때 들려온 이상섭의 외침에 강진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 다. 이상섭이 크게 손을 들자 임 호진이 기분 좋게 손뼉을 쳤다.
짝!
강성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승부가 난 모양이었다.
“수출 대행 2팀이 2 대 1로 승 리했습니다. 다음 일정은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럼 다
행사 요원의 부름에 다음 팀이 탁구대로 들어오자, 임호진이 숨 을 거칠게 몰아쉬며 수건으로 땀 을 닦았다.
탁구가 한자리에서 하는 것 같 기는 하지만 좌우로 계속 움직이 면서 하는 운동이라 체력 소모가
컸다.
“후우! 우리 다음 경기는 뭐 지?”
임호진의 말에 이상섭이 핸드폰 을 보았다.
“지금은 없고 점심 식사 후 한 시에 농구 있습니다.”
“그래? 그럼 좀 가서 뭐 좀 먹 자고.”
임호진이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기분 좋게 걸어가자 팀원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
수련원 운동장 한쪽에는 출장 뷔페 음식들이 펼쳐져 있었다.
거기에 한쪽에는 돼지도 한 마 리가 통째로 불 위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회사 사람들 중 경기가 없는 사 람들은 이미 뷔페 음식을 먹고 술도 한 잔씩 하고 있었다.
“와…… 대단하네요.”
강진이 놀란 눈으로 뷔페를 볼 때, 이상섭이 말했다.
“저녁에는 더 끝내줘.”
“저녁에는 어떻게 되는데요?”
“저기 운동장 전체가 바비큐장 으로 변해. 음식 장난 아니다. 거 기에 한쪽에서는 육개장도 끓이 고 난리 나.”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쟁반을 들고는 음식들을 담기 시작했다.
음식들을 먹어 본 강진이 고개 를 끄덕였다.
‘맛도 좋네.’
출장 뷔페기는 해도 확실히 맛
도 있고 좋았다. 하지만…….
‘내가 만든 것보다는 못하네.’
밥을 다 먹은 강진은 맥주를 한 잔씩 하고 있는 팀원들을 보고는 이상섭에게 말했다.
“저는 잠시 산책 좀 하고 오겠 습니다.”
“그렇게 하고, 이따 한 시 전까 지는 강당으로 들어와야 한다.”
“네.”
고개를 숙인 강진이 뷔페 쪽으
로 가서는 접시 두 개에다 음식 들을 담기 시작했다.
‘너희들도 좀 먹어야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강당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