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79화 (79/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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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김소 희가 입을 열었다.

“생각은 해 보았는가?”

“잘 모르겠어요.”

이예림의 말에 김소희가 귀신들 을 보며 말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거라. 평소 너희가 마음에 품고만 있었지 하 지 못했던 일…… 그것이 너희의

미련이다.”

김소희의 말에 이예림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걸 모르니 자신들도 이곳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걸…… 모르니 여기 있는 거 잖아요.”

이예림이 참지 못하고 작게 중 얼거리자 김소희가 그녀를 보았 다.

“알고 있다?”

“언니도 미련을 못 버리니 이렇 게 떠도시는 것 아닌가요?”

이예림의 조금은 당돌한 물음에 김소희가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구나.”

스윽!

김소희가 검을 들었다.

갑자기 검을 드는 김소희의 모 습에 강진이 놀라 급히 이예림의 앞을 막아섰다.

“왜 그러세요?”

이예림을 등 뒤로 숨기는 강진

의 모습에 김소희가 눈을 찡그렸 다.

“지박을 풀어 달라고 한 것 아 닌가?”

“그건 그런데…… 왜 검을 갑자 기?”

“지박령을 풀어주는 것에는 두 방법이 있다. 첫째는 묶여 있는 미련을 스스로 풀어내는 것. 두 번째는 묶여 있는 끈을 힘으로 잘라내는 것이다.”

“아? 그럼 혹시 아가씨께서 그

끈을 잘라 버리실 수 있으십니 까?”

“나는 무신이기도 하다.”

스윽!

검을 자신의 얼굴 앞으로 가져 가는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물었 다.

“그럼 간단하게 두 번째로 하시 지, 왜 첫 번째를 애들한테 물으 신 것입니까?”

“미련을 푼다는 것은 한이 풀릴 수 있다는 것……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지박령은 미련을 풀면 승천을 할 수 있다는 겁니까?”

“귀신들보다 승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지박령이다. 그들은 한과 미련이 장소나 물건에 남아 묶여 있는 것…… 최소한 승천을 할 수 있 는 단서는 남아 있는 것이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손을 들 었다.

“잠시만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강진이 말했다.

“그럼 여기서 풀려나면 승천을 할 단서가 사라지는 것 아닙니 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이 장소가 남으니 단서가 사라 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절 박함은 줄어들겠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박령으로 이 자리에 계속 머 문다면 떠나기 위해 생각을 하고 노력을 할 것이다.

자신이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 지, 그 이유를 말이다. 하지만 지 박령에서 풀려난다면 이 자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않을 것 이다.

그럼 승천을 할 가능성이 줄어 들 것이다.

그에 강진이 고등학생 귀신들을

보았다.

“어떻게 할래?”

강진의 물음에 이예림과 최가은 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풀려나겠어요.”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두 귀신의 말에 강진이 영수를 보았다.

“너는?”

“저도 같이 갈게요.”

영수의 답에 강진이 귀신들을 보며 말했다.

“승천이 늦어질 수도 있어.”

“언제 승천할지도 모르는 일인 데 기다리면서, 지루하게 여기서 죽치고 있고 싶지 않아요.”

이예림의 단호한 말에 강진이 다른 귀신들을 보고는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러고는 영수에게 고개를 돌렸 다.

“너는 나하고 잠시 이야기 좀

하자.”

그러고는 강진이 영수를 데리고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귀신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강진 이 영수를 보았다.

“너는 미련이 뭔지 아는 것 같 은데…… 풀지 그러니?”

강진의 말에 영수가 잠시 머뭇 거 리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눈치채셨어요?”

“예림이한테 고백이라도 해. 그

걸로 미련이 풀릴 수도 있고, 그 러면 승천을 할 수도 있어.”

강진의 말에 영수가 고개를 돌 려 한쪽에 있는 귀신들을 보다가 말했다.

“예림이하고 가은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예요.”

“오랜 친구네.”

“예림이는 중학교 때부터 좋아 했어요. 하지만 고백할 수가 없 었어요. 고백했다가 안 되면 친 구로도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요.”

영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하지만 강진은 말을 하 지 않았다.

사실 연애 문제는 자신이 해결 해야 할 일이다. 누군가 해 주는 조언은 그냥 제삼자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차가 달려들 때 제가 애들을 밀쳤어요.”

“네가?”

“차가 굉음을 내며 달려오니 애

들이 굳어버리더라고요. 그걸 보 고 제가 애들을 밀었어요.”

“대단하네.”

“생각하고 한 것은 아니에요. 그냥 몸이 움직였어요.”

차가 달려드는데 친구들을 구하 기 위해 나섰다는 것이니 말이 다.

“하지만 이렇게 됐으니 제가 늦 었죠.”

“그래도 구하려고 했잖아.”

강진의 말에 영수가 잠시 있다 가 말했다.

“차가 저를 치고 애들이 튕겨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예림이 한테 고백을 했어야 했는데, 하 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이라도 하지 그래?”

“제가 하면…… 쟤들은 어떻게 해요?”

영수가 친구들을 보는 것에 강 진이 말했다.

“너 혼자 떠나게 될까 봐 고백

을 안 한 거니?”

“여자 친구들만 두고 저 혼자 떠날 수는 없어요. 저는 남자예 요. 쟤들을 지켜야 해요.”

영수의 답에 강진이 그를 보다 가 고개를 끄덕였다.

“ 가자.”

강진이 영수를 데리고 돌아오자 김소희가 말했다.

“이야기는 끝났나?”

“네.”

강진의 답에 김소희가 귀신들을 보았다.

“해도 되겠느냐?”

“네.”

영수가 단호하게 말을 하자 김 소희가 말을 했다.

“이 땅에 묶인 것이 풀리면 몸 이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때 의식을 풀면 안 된 다. 반드시 여기 이 자리에 남는 다 생각을 해야 하고 몸이 무겁 다 생각을 해라.”

“의식을 풀면요?”

“어딘가로 날아가게 될 것이 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어딘가? 그게 무슨 의미입니 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어떻게 설명을 할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두둥실 떠 있는 풍선과 같다. 미련을 자르면 너희들을 이곳에 묶고 있는 끈이 사라지는 것이

다. 그럼 너희들은 두둥실 떠오 르며 흘러간다.”

“그럼 어디로 흘러가는 겁니 까?”

“그건 나도 모른다.”

김소희의 답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위험한 것 아닙니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위험? 무슨 위험?”

“그......" 아.”

말을 하려던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귀신은…… 죽지 않지.’

“그럼 흘러가는 범위가 어디까 지입니까?”

“조선 땅 어디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최소한 외국은 아니네요.”

“이승에도 국가의 경계가 있는 것처럼, 저승도 경계가 있다. 저

승의 경계를 넘으려면 저승의 허 락이 있어야 한다.”

그러고는 김소희가 귀신들을 보 았다.

“이제 해도 되겠는가?”

김소희의 물음에 귀신들이 서로 를 보았다.

“정신 바짝 차려. 그리고 혹시 라도 떨어지게 되면 우리가 가던 공원으로 모여. 저녁 6시에 거기 서 만나는 거야.”

이예림이 영수와 최가은에게 말

을 하자 그 둘이 고개를 끄덕였 다.

“공원, 저녁 6시.”

“정신 차리자.”

귀신들이 손을 맞잡는 것을 본 김소희가 검을 잡고는 입을 열었 다.

“해 (解).”

작은 음성과 함께 땅과 귀신들 사이에 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투명한 세 가닥의 선은 땅과 귀신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이것이 애들을 잡고 있는 미련 의 끈인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김 소희가 검을 그었다.

스윽! 스윽! 스윽!

선이 잘려 나가는 것과 함께 귀 신들의 몸이 살짝 떠올랐다.

두둥실!

“집중하거라!”

김소희의 고함에 두둥실 떠오르 던 귀신들의 몸이 잠시 멈췄다.

하지만

화아악!

순간 이예림의 모습이 사라졌 다.

“예림아!”

“예림아!”

영수와 최가은이 놀라 소리를 쳤지만, 이미 이예림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스르륵! 스르륵!

영수와 최가은이 땅에 내려서는

것과 함께 강진이 김소희를 보았 다.

“예림이는 어디로 간 겁니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검을 허공에 한 번 휘두르고는 입을 열었다.

“조선 땅 어딘가에 있겠지.”

“혹시 못 찾으십니까?”

“아무리 나라 해도, 조선 모든 귀신들의 위치를 알 수는 없네.”

그러고는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

다.

“이만 가 봐도 되겠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진의 답에 김소희가 잠시 그 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수요일쯤 가도록 하지.”

“네?”

“복래가 만들어 주던 육개장과 닭발볶음이 먹고 싶군.”

“아! 제가 맛있게 준비해 놓겠 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영 수와 최가은을 보았다.

“ 괜찮아?”

강진의 물음에 영수가 입술을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예림이는 똑똑한 애예요. 잘 찾아올 거예요.”

영수의 말에 강진이 최가은을 보았다. 최가은은 당장 울 것 같

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은아, 울지 마. 예림이 찾으 러 가야지.”

영수의 말에 최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영수가 강진을 보았다.

“고맙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너희 동네로 갈 거니?”

“그래야죠. 집에도 가보고 예림 이도 기다려야 하고.”

“너무 가족과 붙어 있지 마.”

“멀리서만 보고…… 다가가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 그럼 조심히 가고, 놀다가 지치면 서울 논현에 있는 한끼식당 찾아와.”

“한끼식당요?”

“내가 하는 가게야.”

강진이 주소를 이야기해 주자 영수가 몇 번 중얼거리고는 고개 를 끄덕였다.

“예림이 찾으면 갈게요.”

“그전에 승천할 수 있으면 하 고.”

강진의 말에 영수가 고개를 끄 덕이고는 최가은과 함께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럼 영수와 최가은을 보던 강 진도 숙소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가 문득 허공을 보았다.

“ 잠깐......"

뭔가에 생각이 미쳤는지 잠시 있던 강진이 입을 열었다.

“이예림, 이예림, 이예림.”

강진의 생각은 이거였다. 이예 림을 자신이 부르는 것 말이다. 서울에 있는 배용수가 자신의 부 름을 듣고 온 것처럼 말이다.

이예림의 이름을 세 번 부른 강 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위에 이예림은 없었 다. 그에 다시 몇 번 이예림을 불러 본 강진이 눈을 찡그릴 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갔어?”

옆에서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돌렸다. 옆에는 언제 왔는지 배용수가 있었다.

“갔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여기 완전히 지옥 그 자체 였어.”

살 떨린다는 듯 고개를 젓는 배 용수를 보던 강진이 잘 됐다는 듯 말했다.

“내가 너 부르면 오잖아.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강진이 상황을 설명하자 배용수 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 덕였다.

“가르쳐 줄 귀신을 만나지를 못 했나 보네?”

“그것도 배워야 하는 거야?”

“귀신은 귀신이 되는 순간 사람 으로 치면 아기와 같아. 귀신으 로서 사는 방법을 다른 귀신들로 부터 하나씩 배우는 거지. 그리

고 그 귀신들은 처녀귀신과 총각 귀신이 같이 다니니 다른 처녀나 총각귀신들이 다가가지 못했을 거야.”

“하긴 그것도 그렇네.”

영수 일행을 만났을 때, 그들은 자신들 외에는 다른 귀신을 본 적이 없다고 했었다.

일반 귀신들이야 당연히 그들을 무서워하니 못 오고, 같은 처녀 나 총각귀신들도 영수와 이예림, 최가은이 함께 있으니 다가오지 않은 것이다.

불과 물과 같은 처녀귀신과 총 각귀신이 같이 다니니 말이다. 그래서 귀신으로서의 생활 방법 에 대해 하나도 배우지 못한 것 이다.

그리고 방법을 모르니 강진의 부름에 답도 하지 못하는 것이고 말이다.

‘귀신이나 사람이나 배워야 하 는 건 마찬가지인가 보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수련원 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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