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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82화 (82/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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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을 한 강진은 육개장을 끓 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등학 생 귀신들을 도와준…… 대가라 고 하기는 그렇지만, 김소희가 오늘 육개장과 매운 닭발을 먹으 러 오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오늘 난 나가 있는다.”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보통 처녀귀신도 아니고 처녀

귀신 보스가 오는데, 당연히 넌 나가 있어야지.”

말을 하며 육개장에 들어갈 고 기를 삶고 있는 통을 슬쩍 열어 본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토요일 점심때 운암정 가자.”

지나가는 투로 말하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았다.

“운암정?”

“숙수님 나이 드신 것 같아서 걱정이라며.”

“그건 그랬지.”

배용수는 선지해장국집에 얼마 전에 왔던 숙수라는 분이 나이가 드신 것 같다며 슬퍼했었다.

귀신들 중에 강진과 가장 오래 있는 것이 배용수다. 그리고 도 움도 많이 받고 말이다.

그래서 한 번은 배용수와 함께 가야지, 했었는데 이번에 가려는 것이다.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수련원 에 배용수를 호출했던 것도 미안

하고 말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 허연욱 씨도 같이 데리고 가자.”

“허연욱 씨?”

“명의라며?”

“아……

배용수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 인지 안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 가 물었다.

‘하긴 허연욱 씨가 명의기는 하 지.’

침을 맞아 보면 안다. 일반 한 의원에서 맞는 것과 얼마나 다른 지 말이다.

그래서 배용수는 허연욱을 데리 고 가서 숙수님의 몸 상태를 체 크해 보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가면 뵐 수는 있는 거 야?”

인터넷 검색을 해 봐도 정말 유 명하고, TV에도 나오는 유명한

분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 같은 사람이 가서 보려고 한다고 볼 수 있나 싶은 것이다.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웃었 다.

“손님은 왕이다. 최소한 우리 가게에서는 아직 그 말을 실천하 고 있지.”

“그래?”

“게다가 우리 숙수님은 손님이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싶다고 하

면 칼을 들고라도 나가시는 분이 야.”

“ 칼?”

“요리하다가도 나가신다는 거 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손님이 놀라겠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럼 토 요일에 가는 거다.”

배용수가 기분이 좋아진 듯하자 강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

“오케이!”

배용수가 웃으며 주방을 나가 자, 강진이 육개장에 들어갈 고 기를 젓가락으로 찔러 보고는 불 을 껐다.

11시가 가까워 오자 강진은 가 게 밖에서 서성거렸다. 곧 김소 희가 올 시간이 되기에 기다리는 것이다.

평소라면 이 시간대에는 귀신들

이 문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

11시가 되면 가게로 들어와 현 신을 하기 위해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귀신이 아무도 없었다.

보통 처녀귀신도 아니고 보스 처녀귀신이 온다고 하니 일찌감 치 자리를 뜬 것이다.

가게 입구를 두리번거리며 기다 리자 잠시 후 사람들이 파도처럼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벌어지며 생긴 길을 따라 김소희가 천천히 걸어

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포스가 대단하기는 하네.’

김소희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녀의 귀기라고 해야 할 분위기 에 길을 비켜주는 것이다.

김소희가 자신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것을 보며 강진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셨어요?”

“온다 했잖은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랬죠. 들어가시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 다.

화아악!

김소희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곧 그녀의 모습이 변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은 곱게 땋은 머리로 변했고, 옷 역시 깨 끗한 한복으로 변했다.

그런 김소희의 뒷모습을 보며 강진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말없이 늘 자신이 앉는 자리에 앉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소주 를 가져다 놓았다.

소주가 자리에 놓이자 김소희가 소주 뚜껑을 따고는 강진을 보았 다.

“잔을 줘야 하지 않겠나?”

“안주 가져올 테니 같이 드세 요.”

“가져오게.”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이미 준 비가 된 육개장을 건더기를 푸짐 하게 해서는 담아 내왔다.

“매운 닭발은 1분만 기다려주십 시오.”

육개장을 내려놓은 강진이 다시 주방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올 때에 맞춰 준비해 놓은 닭발을 토치로 한 번 지졌다.

촤아악!

토치에서 불길이 솟구치는 것과 함께 닭발의 겉면이 타들어갔다.

그렇게 불 향을 입힌 강진이 음 식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그 사이 이미 김소희는 육개장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떻게, 입에 맞으세요?”

“복래의 음식맛이군.”

“감사합니다.”

김소희의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 인 강진이 닭발을 내려놓았다.

“이것도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닭발을

집어 입에 넣고는 고개를 갸웃거 렸다.

“늘 먹던 맛이 아니군?”

“김복래 여사님의 레시피에 살 짝 제가 한 가지를 가미했습니 다.”

“ 뭔가?”

“토치로 마지막에 살짝 불 맛을 입혔습니다.”

아직 레시피에 없는 요리는 힘 들지만, 레시피에 있는 요리에 뭔가를 더 가미하는 것 정도는

강진도 가능했다.

레시피에 있는 요리도 맛이 있 지만, 사람들 입맛이라는 것도 다 제각각이니 말이다.

“토치?”

김소희의 물음에 강진이 주방에 서 토치를 가지고 왔다.

“흠…… 본 적이 있는 물건이 군. 그걸 토치라고 하나?”

“가스 토치라고 하죠.”

“왜 그걸 가스 토치라고 하나?”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그냥 사람들이 가스 토치라고 하니 토치라고 할 뿐입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는 별다른 말없이 닭발을 집어먹을 뿐이었 다.

딱히 궁금해서 물었다기보다는 강진이 앞에 있으니 그냥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빈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쪼르륵!

소주를 따르던 강진이 김소희의 가슴에 달려 있는 노리개를 보았 다.

자신이 사준 노리개를 강진이 볼 때 김소희가 눈을 찡그렸다.

“자네 지금……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김소희가 가슴에 손을 살짝 올렸다. 양반 집 여식이라 차마 어디를 보느냐 는 말을 하지 못하고 손으로 가 리는 것이다.

그 말에 강진이 급히 시선을 돌 리며 말했다.

“노리개가 잘 어울린다 생각을 했습니다.”

“노리개?”

노리개라는 말에 김소희가 가슴 에 달린 노리개를 보고는 슬며시 손을 내렸다.

“맛이 좋네.”

화제를 돌리려는 김소희의 말에 강진도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을 했다.

“저승식당이 전국에 있다고 하 던데 다 가보셨습니까?”

“가 봤네.”

“어디가 가장 맛이 좋던가요?”

“저승식당은 다 맛이 좋지.”

“그렇습니까?”

“일반 음식점과는 다르니까.”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리 연습장 같은 것으로 음식 맛이 전수되는 건가?’

자신이 가진 요리 연습장과 같 은 것이 더 있나 생각이 드는 것 이다.

그러다가 강진이 물었다.

“그래도 더 입에 맞는 곳이 있 을 것 아닌가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잠시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내 고향은 전주네.”

김소희가 무슨 의미로 말을 한 지 이해한 강진이 물었다.

“전주에도 저승식당이 있나 보 군요.”

“있지. 그런데 잘 가지는 않네.”

“왜요?”

“거기 주인이 나는 불편하네.”

“왜요?”

“그런 것이 있네.”

더 이상 말을 하기 싫은 듯 김 소희가 소주를 들다가 강진을 보 았다.

“자네도 한잔하겠나?”

“주시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말과 함께 강진이 소주잔을 챙 겨서는 옆 테이블에 앉았다. 전 에 같이 먹자고 했을 때, 합석하 자는 건 줄 알고 김소희와 같이 앉았다가 한 소리를 들었으니 말 이다.

그 모습에 김소희가 작게 고개 를 끄덕였다.

“자네는 예(禮)를 아는군.”

“예까지는 몰라도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는 말아야죠.”

웃으며 강진이 잔을 길게 내밀 자 김소희가 소매를 걷으며 소주 를 잔에 따라주었다.

김소희가 따라 준 소주를 받아 마신 강진이, 이번에는 김소희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탁 자에 앉은 채 조금은 이상한 합 석을 이어나갔다.

水**

토요일 1시 무렵 강진과 배용수 는 서울 인근에 위치한 운암정을 보고 있었다.

“와……

강진의 입에서는 감탄성이 나오 고 있었다.

“굉장하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은 잠시 운 암정을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 다.

“우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식 요 리사의 가게라고 해서 고풍스러 울 것이라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운암정은 그것을 넘어서 고 있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듯한 고풍스러운 담이 길게 늘어 서 있고 그 안에는 정원이 있었 다.

정원 역시 옛날 왕이 거닐었을 것 같은 그런, 보기 좋은 정원이 었다.

그리고 그 정원 너머로는 궁궐 같은 한옥이 서 있었다.

“굉장하다.”

강진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허연욱이 말했다.

“처음 와 본 사람들은 놀라기는 하더군요.”

“선생님은 여기 와 보셨어요?”

“가끔 환자들과 여기에서 식사 를 하고는 했습니다.”

“환자요?”

“병원에 오길 꺼리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환자들과 여기에

서 밥도 먹으면서 진료를 하고는 했습니다.”

“왜 밥집에서 진료를?”

강진의 물음에 허연욱이 웃으며 말했다.

“삼송그룹 회장이 병원에 가면 뉴스에 나오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몸 상태에 따라 회사 주가도 출렁이고요.”

“그렇죠.”

“그와 같습니다. 자기 몸 상태 에 따라 회사나 주위에 영향이

가는 사람들은 저를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기를 원하지요.”

말을 한 허연욱이 미소를 지으 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제가 양방뿐만 아니라 한방에도 뛰어나니 어지간한 병 은제두 손가락과 눈만으로도 진단이 가능합니다.”

살짝 자기 자랑까지 하는 허연 욱을 보며 강진이 물었다.

“살아 계실 때 혹시 연예인들도 진료하셨어요?”

“그럼요. 의사와 환자 간의 비 밀을 지켜야 한다는 규칙이 있으 니 말은 못 하지만, 말만 해도 깜짝 놀랄 연예인들도 있습니 다.”

“좀 말해 주시면 안 돼요?”

“방금 말했잖습니까? 의사는 진 료 중에 알게 된 환자의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귀신이신데, 굳이 지킬 이유 가……

“귀신이 됐다고 제 신념도 사라

진 것은 아닙니다.”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다면야……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 배용수가 말했다.

“이제 좀 가면 안 될까? 영업시 간 1시 반까지야.”

“2시까지 라며?”

“주문은 1시 반까지만 받아. 그 리고 그 이후부터는 주문 안 받

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원래는 좀 일찍 올 생각이었지 만, 배용수가 점심시간에 가면 바빠서 숙수님과 이야기를 할 시 간이 없을 것 같다고 좀 늦게 가 자고 한 것이다.

브레이크 타임이 2시부터이니 지금 가면 딱 적당히 한가할 시 간이고 숙수님을 뵙기도 편할 것 이라고 말이다.

그에 강진이 서둘러 건물 안으 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곱게 한 복을 입은 여직원이 웃으며 말했 다.

“예약하셨습니까?”

“아니요. 혼자 왔습니다.”

“그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직원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 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갔다. 실

내엔 고풍스러운 장식이 되어 있 었는데, 벽에는 노리개와 같은 장식들이 걸려 있었다.

‘가게에서 노리개로 장식을 한 다고 하더니…… 진짜였네.’

배용수가 했던 말을 떠올린 강 진이 곧 직원이 안내해 준 자리 에 앉았다.

탁자들도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고 꽤 넓은 공간에 서로 떨어 져 있었다.

그것만 봐도 이 가게의 분위기

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간만 조금 좁혀도 탁자들이 더 들어갈 텐데, 손님들을 배려 한 것이다.

‘분위기 좋네.’

테이블들이 서로 떨어져 있어서 인지 옆에서 밥 먹는 소리가 시 끄럽게 들리지 않고, 불편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일단 좋은 가게였 다. 식탁을 많이 놓지 않음으로 써 손님을 배려하는 것이니 말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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