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화
강진이 가게를 둘러볼 때, 자리 를 안내해 준 직원이 메뉴판을 내밀고는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강진이 메뉴판을 보자 배용수가 말했다.
“메뉴판 볼 필요도 없고, 김치 찜 먹어봐.”
“김치찜?”
“2년 숙성을 한 제대로 된 김치
에다가 제주도 흑돼지 앞다리살 로 끓이는데 칼칼하면서도 돼지 기름이 어우러져서 아주 맛이 좋 아.”
“그런데…… 이런 가게에서도 김치찜을 해?”
“김치가 바로 한식의 기본인데, 당연하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직원을 보았다. 여직원은 메뉴판을 놓고 는 한쪽에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 여직원이
다가왔다.
“김치찜 주세요.”
강진의 말에 여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김치찜은 2인 이 상입니다.”
“아……
여직원의 말에 강진이 힐끗 배 용수를 보았다. 그 시선에 배용 수가 입맛을 다셨다.
“그랬다.”
배용수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았 다. 다만 귀신이 되고 난 후 처 음으로 메뉴를 생각하다 보니 거 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 이다.
그와 동시에 배용수의 얼굴에 살짝 불안함이 어렸다.
그 모습에 강진이 여직원에게 말했다.
“죄송한데 메뉴 좀 다시 볼게 요.”
“편하게 보세요.”
그리고 여직원이 다시 원래 있 던 곳으로 걸어가자 강진이 배용 수를 보았다.
“추천 좀 해 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잠시 있 다가 입을 열었다.
“떡갈비 정식 먹어.”
“떡갈비 정식?”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음…… 내가 생각을 못 했는
데…… 우리 가게 요리들은 대부 분이 2인 이상이야.”
“그래?”
“너도 요리해 봐서 알겠지만 음 식에도 양이라는 것이 있잖아. 1 인분 하는 것보다는 2인분을 만 들어야 더 맛있는 것도 있고.”
조금은 변명을 하는 듯한 배용 수의 말에 강진이 메뉴판을 펼쳤 다.
음식 이름과 함께 사진이 있어 서 고르기가 쉬웠다.
〈궁중전골〉
〈구절판〉
〈산나물 정식〉
메뉴도 꽤 많았다. 다만 대부분 의 메뉴가 모두가 2인 이상이었 다.
“혼자 온 사람은 이 두 개밖에 는 고를 게 없네.”
배용수가 말했던 메뉴인 떡갈비 정식과, 육개장 정식에만 2인 이 상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 다.
“그런데 왜 떡갈비 정식이야?”
“며칠 전에 육개장 먹었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소희가 온다고 해서 육개장을 끓였었다.
게다가 육개장도 많이 끓여야 맛있는 음식 중 하나라서 많이 끓였었다.
그래서 오늘까지도 육개장을 먹 고 온 것이다.
“그리고 떡갈비도 맛있어.”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여직원을 보았다. 그 시 선에 여직원이 다가오자 강진이 말했다.
“떡갈비 정식 부탁드리겠습니 다.”
“알겠습니다. 음식은 지금부터 조리를 해서 20분 정도 걸립니 다.”
“네.”
강진의 답에 여직원이 몸을 돌 리며 귀에 있는 이어폰을 눌렀 다.
“15번 테이블, 성인 남성 떡갈 비 정식 1인입니다.”
여직원이 주문을 넣는 것을 들 으며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성인 남성이라고 굳이 말하는 이유가 있어?”
“손님에 따라 양과 요리 스타일 을 조금 바꾸는 거야. 남성과 여
성, 노인과 아이 이런 식으로.”
“좋네.”
확실히 손님을 배려하는 식당이 었다. 다만…….
‘이렇게 많은 메뉴가 있는데, 혼 자 와서 먹을 건 많지 않네.’
강진이 메뉴판을 보고 있자 배 용수가 말했다.
“우리 식당에는 혼자 오는 손님 들이 거의 없어.”
‘‘거으]?”
“대부분 가족 모임이나 단체로 오거든.”
배용수의 말에 강진도 이해가 되었다. 보통 혼자 밥을 먹으러 이런 곳에는 오지 않는다.
한정식집이라는 것 자체가 혼자 보다는 모임이 어울리는 곳이니 말이다.
“그래도 거의라고 하면 있기는 하다는 것 아냐?”
“그렇지. 그래서 일단 메뉴 두 개가 있는 거야.”
“그래도 다른 것이 먹고 싶을 수도 있잖아.”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작게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창피하기는 한데…… 일일이 1 인분만 따로 만들 수는 없어. 양 도 문제기는 하지만 단가도 맞지 않아.”
단가라는 말에 강진은 더 묻지 않았다. 가게마다 사정이 있는 법이고…… 확실히 구절판을 1인 분만 달라고 하는 것도 이상했 다.
달라고 하면 줄 수야 있겠지만 1인분을 만들면 단가도 올라가기 는 할 것이다.
2인분에 3만 원짜리가 1인분에 2만 원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너도 먹어보면 알겠지 만 떡갈비 정식도 맛있어.”
“네가 일하던 식당이라 맛은 걱 정 안 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그리고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웃지 마, 무서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정 씨는 아직도 일하네. 어? 강 주임 임신했네?”
배용수가 홀에서 근무하는 여직 원들을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물었다.
“다 알고 지내나 봐?”
“같은 식구인데 다 알고 지내 지. 그리고 밥도 늘 같이 먹으니 까.”
말을 하던 배용수가 미소를 지
었다.
“내가 신입 때 식사 준비하던 것이 떠오르네.”
“신입은 설거지만 한다면서?”
“손님 식사 말고, 직원들 점심 하고 저녁은 신입이 만들어.”
“맛집에서 직원들은 맛있는 음 식을 못 먹는다는 거야?”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운암정에서는 신입이라도 요리
경력 삼사 년은 다 가지고 있는 애들이야. 직원들 식사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 경력 삼사 년이 라면 요리사라고 해도 될 것이 다.
그렇게 배용수와 이야기를 나누 는 사이, 여직원이 작은 손수레 를 끌고 와서는 음식을 놓기 시 작했다.
보기 좋은 사기그릇에 떡갈비와 밑반찬들이 나왔다.
음식들은 정갈했고 반찬도 꽤 많았다. 김치와 물김치, 거기에 작은 전과 나물까지…….
백반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그 래도 혼자 먹기에는 충분한 가짓 수였다.
“가짓수 많네.”
“맛도 있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젓가락을 집어서는 반찬 들을 먹어보았다.
아삭! 아삭!
나물은 부드러우면서도 아삭했 다.
나물은 삶는 것이 어렵다. 조금 만 오래 삶아도 죽은 것처럼 되 고, 너무 적게 삶으면 뻣뻣하다.
그런데 이건 정말 잘 삶아지고 맛있게 양념된 나물무침이었다.
그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다른 반찬들도 하나씩 먹어보았 다.
‘확실히 한국 제일의 한식당이 라고 불릴 만하네.’
반찬 하나하나가 정갈했고 맛이 좋았다. 거기에 떡갈비는…… 최 고였다.
이가 없어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우면서도 식감이 있었다. 또 씹을수록 육즙이 입에서 빵 하고 터지는 느낌이었다.
“맛있다.”
“그렇지. 아…… 나도 먹고 싶 다. 오늘 저녁에 떡갈비 해 줘.”
“이런 맛이 나올지 모르겠다.”
“내가 알려 줄게.”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밥을 입에 넣다가 미소를 지었다.
‘밥도 맛있네.’
밥에서는 윤기가 흐르고 단맛이 돌았다.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강진이 맛있게 밥을 먹는 것을 보며 배용수가 흐뭇한 얼굴로 고 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운암정 밥이 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자랑할 만했다.”
“나도 먹어보고 싶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음식을 먹다가 그를 힐끗 보았다.
“빙의라도 해 볼래?”
빙의라는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허연욱을 힐끗 보고는 말을 했다.
“이미 아는 맛인데, 부담스러운 빙의까지 할 이유는 없지.”
“세상에 가장 위험한 맛이 아는 맛이라고 하더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강 진은 맛있는 밥과 떡갈비를 먹으 며 즐거운 점심을 보냈다.
밥을 다 먹자 디저트로 녹차와 다과 한 조각이 나왔다. 그것까 지 맛있게 다 먹은 강진에게 배 용수가 말했다.
“직원한테 맛있게 먹었다고 하 고, 숙수님에게 인사드리고 싶다 고 해.”
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 이고는 여직원 쪽을 보았다.
그 시선에 여직원이 웃으며 다 가왔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숙수님께 감사 인사를 드
려도 될까요?”
“그럼요. 잠시 기다리시면 숙수 님이 나오실 겁니다.”
말과 함께 여직원이 탁자를 보 고는 말했다.
“차와 다과 더 드릴까요?”
“감사합니다.”
강진의 말에 여직원이 몸을 돌 려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일흔 살은 돼 보이는 백발의 노인이 하얀 한복
을 입은 채 다가왔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그 노인이 바로 운암정의 주인 이자 한국 최고의 한식 요리사인 김봉남이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맛있게 드셨다니 감사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주신 숙수님한 테 제가 오히려 감사해야죠.”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김봉남 을 보다가 힐끗 허연욱에게 눈짓
을 보냈다.
그 시선에 허연욱이 살며시 김 봉남에게 다가갔다.
“제 기억 속의 숙수님보다 더 늙으셨군요.”
살았을 때 운암정에 오던 허연 욱이라 김봉남을 만난 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고는 허연욱이 김봉남의 안 색과 호흡 등을 살피기 시작했 다.
그러는 사이 강진은 김봉남과
짧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저도 작은 식당을 하고 있습니 다.”
“그렇습니까?”
“논현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 고 있는데, 손님들한테서 운암정 음식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이 군요.”
“아닙니다. 들은 것보다 더 맛 이 좋습니다.”
“다행입니다.”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기분 좋 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러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허연욱을 보았다. 그 시선에 허연욱이 말 했다.
“간이 나쁜 것 같습니다.”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김봉남에 게 말을 걸었다.
“몸이 조금 안 좋아 보이십니 다.”
강진의 말에 몸을 돌리던 김봉 남이 미소를 지었다.
“좋은 곳보다 안 좋은 곳이 더 많을 나이 아니겠습니까?”
“몸에 기운이 떨어지는 것 같 고, 피로하고 속이 더부룩하지 않으십니까?”
허연욱이 하는 말을 강진이 그 대로 따라 했다. 그 말에 김봉남 이 웃었다.
“나이 먹으니..
“나이가 먹는다고 해도 몸이 느 낄 정도로 갑자기 오는 경우는 드문 법입니다.”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혹시 의사십니까?”
“의사는 아닙니다.”
의사가 아니라는 말에 김봉남이 웃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의사도 아닌데, 진맥 한 번 봐 드리겠다고 하기도 그렇고……
그리고 김봉남이 다시 몸을 돌 리려 하자 강진이 문득 배용수를 보고는 급히 말했다.
“제가…… 용수 친구입니다.”
멈칫!
강진의 말에 몸을 돌리던 김봉 남이 멈췄다. 그러고는 다시 돌 아서 강진을 보았다.
“용수라면……
“배용수요.”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잠시 말 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안에서 차라도 한 잔 드려야 할 분이군요.”
그러고는 김봉남이 여직원을 보 았다. 그 시선에 여직원이 다가 오자 그가 말했다.
“계산은 나한테 달아주게나.”
“제가 내겠습니다.”
“아들 친구가 왔는데 돈을 받는 부모는 없습니다.”
아들이라는 말에 배용수가 작게 한숨을 토했다.
“하아!”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이리 오시죠.”
“알겠습니다.”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잠시 머 뭇거리다가 그를 따라 걸음을 옮 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