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화
강진의 시선을 느꼈는지 중국 귀신이 그를 보았다.
중국 귀신은 이십 대 정도로 보 였는데 꽤 깔끔하게 죽은 인상이 었다.
최소한 다른 귀신들처럼 온몸에 피 칠갑을 하거나 어디 없는 곳 은 없으니 말이다.
그런 중국 귀신이 자신을 보는 것에 강진이 슬쩍 시선을 피하고
는 중국인들을 보았다.
중국인들은 4인 가족인 듯 노인 과 중년 부부, 그리고 어린 여자 아이가 일행이었다.
“니하오.”
강진의 말에 중국인들이 웃었 다.
“니하오.”
“니하오.”
그리고 뭐라 뭐라 중국어로 말 을 하는데 강진은 웃으며 말했
다.
“조금입니다. 아주 조금.”
강진의 입에서 나온 것은 중국 어였다. 그에 윤수홍이 강진을 보았다.
“중국어 할 줄 압니까?”
“제가 아르바이트를 할 때 중국 인들이 좀 있었어요. 같이 있다 보니 조금 배웠습니다.”
말 그대로 조금 배운 수준이라 남에게 내세울 정도는 아니었다.
강진의 말에 윤수홍이 손님들에 게 말을 하자 그들이 웃으면서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에 강진이 악수를 나누고는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강진이 중국어로 말을 하자 일 행들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신기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 렸다.
“이때까지 간 곳과는 분위기가 다르네요.”
“이런 곳이 현지 음식점이지. 호텔 음식은 다 비슷비슷하잖 니.”
중국어로 나누는 대화를 다는 못 알아듣지만 대충 의미는 알아 들은 강진이 말했다.
“현지에 오셨으면 현지 음식을 드셔야죠.”
단어를 생각하는 듯 잠시 멈췄 다가 조금은 더듬거리며 이어지 는 강진의 말이었지만, 못 알아 들을 수준은 아닌 듯 중국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중국인들을 보던 강진이 노인의 뒤에 서 있는 중국 귀신 을 보았다.
‘수호령인가?’
강진의 시선에 중국 귀신이 그 를 보고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중국 귀신의 아는 척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 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음식이야 이미 조리가 다 끝난 상태라 그릇에 담아서 내놓기만
하면 되었다.
그에 강진이 음식을 담으며 배 용수에게 작게 말했다.
“중국 귀신이 나한테 말 건다.”
강진의 말에 그렇지 않아도 중 국 귀신 쪽을 보고 있던 배용수 가 말했다.
“네가 귀신 보는 걸 알 테니까, 말을 건 거지.”
“어떻게?”
시선이 몇 번 닿기는 했지만 그
래도 말을 걸지도 않았고, 귀신 을 봤다는 표현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 귀신이 어떻게 자 신이 귀신을 보는지 안다는 말인 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배 용수가 그를 보았다.
“한국에만 저승식당이 있겠어?”
“그건…… 아니겠지?”
“외국에도 그들 문화에 따른 저 승식당이 있을 거야. 중국에서 저승식당 가 본 귀신이면 여기
주인이 귀신 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여기가 저승식당인 줄은 어떻 게 알고?”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넌 정말 몰라도 너무 몰라.”
“내가 이 일한 지 얼마나 됐다 고 다 알겠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귀신들이 여기 무슨 지도 보고 찾아오는 줄 알아?”
“JS 금융 사람들이 알려 주는 것 아냐?”
“뭐…… 알려주기는 하지. 하지 만 위치는 안 알려줘.”
“그럼 어떻게 알고 오는 거야?”
“저승식당은 특유의 기운이 있 어. 뭔가 귀신들에게 따뜻하고 포만감을 주는 느낌이랄까?”
“그래?”
“귀신들은 그 기운을 느끼고 오 는 거야. 그래서 저 귀신도 여기 기운을 느끼고 네가 저승식당 주 인인 것을 안 거고.”
말을 하던 배용수가 홀을 보고 는 말했다.
“손님들 기다린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음식들을 담아서는 탁자로 가져갔다.
음식들이 놓이자 중국인들의 얼 굴에 미소가 어렸다.
“맛있겠군.”
“어제 호텔에서 먹은 것보다 더 푸짐하네요.”
중국인들의 대화에 강진이 말했 다.
“저는 음식 좀 더 내오겠습니 다.”
강진이 더듬거리며 하는 말에 노인이 그를 보았다.
“더 있습니까?”
“제가 들으니 중국분들은 음식 을 풍성하게 놓고 먹어야 대접받 는다 느낀다고 하더군요.”
강진의 말에 노인이 웃었다.
“하오! 하오!”
‘좋아하네.’
노인의 목소리에서 기분 좋음을 느낀 강진이 말했다.
“그럼 드시고 계세요.”
강진은 앞접시들을 가져다주고 는 다른 음식들도 가지고 나왔 다.
그리고 음식들을 탁자에 가득 놓은 강진이 마지막으로 마파두
부를 들고 나왔다.
“마파두부입니다.”
강진이 내온 마파두부에 윤수홍 이 의아한 듯 보았다. 한식으로 차려 달라고 했는데 마파두부가 나오니 말이다.
그리고 중국인들도 의문이 담긴 눈으로 강진을 보았다. 맛있는 한식을 먹게 해 주겠다고 해서 왔는데 마파두부가 나온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강진이 말 했다.
“타지에 가서 그 현지 음식을 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타 지에 나가면 고향 음식이 먹고 싶은 법이죠.”
“아…… 하긴 저도 외국에 가면 가끔 한식 식당에 갑니다.”
그러고는 윤수홍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고향 음식이 먹 고 싶었는데 잘 됐군. 한국 음식 도 맛이 있지만 타지 나오니 고 향 음식이 먹고 싶더라고.”
“그래서 마파두부를 만들었습니 다. 중국 사천 요리처럼 만들어 보기는 했는데 현지인 입맛에 맞 을지 모르겠습니다.”
“맛있어 보이네.”
“식기 전에 드세요.”
그리고 강진이 뒤로 물러나자 중국인들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 다.
음식을 먹으며 기분 좋게 떠드 는 중국인들을 보며 강진이 후식 을 준비했다.
후식을 준비하는 사이 윤수홍이 주방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왕 선생께서 같이 드시자고 하 시네요.”
“왕 선생요?”
“저기 어르신이 왕 선생님이십 니다.”
윤수홍의 말에 강진이 머리를 내밀었다. 노인이 손을 드는 것 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윤수 홍을 보았다.
“저는 음식 해야죠.”
“그래도 잠시 나와서 드세요.”
그러고는 윤수홍이 힐끗 홀을 보고는 작게 속삭였다.
“선생께서 손이 크십니다.”
윤수홍의 말에 강진이 손을 닦 았다. 손이 크다는 말…….
‘팁 이다.’
팁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에 강진이 홀로 나오자 노인이 웃으며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왕 선생의 말에 강진이 자리에 앉았다.
“음식이 참 맛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특히 마파두부가 정말 맛있습 니다. 우리 고향 음식보다 더 맛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나라마다 추구하는 맛 이 차이가 있구나.’
자신이 만들기는 했지만 마파두 부는 자신의 입에는 너무 맵고, 너무 향이 강했다.
그런데 왕 선생은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 이다.
그런 왕 선생을 보며 강진이 슬 쩍 탁자 위를 보았다. 음식들은 골고루 비워져 있었다.
특히 갈비찜과 잡채는 반 이상 비워져 있는 것을 보니 중국인들 의 식성에도 잘 맞는 모양이었 다.
맛있게 먹는 부부와 아이를 보 던 강진이 말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일어나려 하자 왕 선생 이 웃으며 말을 했다.
“그러지 말고 같이 먹읍시다.”
“마음은 고맙지만 저는 여러분 을 접대해야 하는 사람이지 같이 즐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강진의 말에 왕 선생이 웃었다.
“접대라…… 자네는 우리 중국
인들에 대해 잘 아는군.”
“중국 분들과 관계를 맺으려면 접대를 잘해야 한다고 하더군 요.”
‘‘하하하!’’
가볍게 웃은 왕 선생이 말했다.
“윤 사장, 술 한잔해야겠어.”
“그러시죠.”
윤수홍이 강진을 보았다.
“술 좀 주시겠습니까.”
“그럼요.”
강진이 일어나 소주를 꺼내오자 왕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술 같지가 않아. 독한 것 없나?”
“독한 술?”
강진의 물음에 윤수홍이 말했 다.
“중국인들은 도수가 50에서 60 짜리로 마십니다. 한국인들에게 나 소주가 술이지, 중국인들에게 는 차와 같습니다.”
“그래도 차 같겠어요.”
“말이 그렇다는 것이죠. 어쨌든 독한 술 없습니까?”
윤수홍의 말에 강진이 냉장고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 가게에는 독한 술이 없는 데……
강진의 말에 윤수홍이 몸을 일 으켰다.
“그럼 제가 가서 사 오겠습니 다.”
“그럼 이분들은……?”
“식당에 밥 먹으러 왔으니 밥 드시겠죠.”
한국말로 말을 한 윤수홍이 왕 선생에게 말했다.
“제가 가서 술을 좀 사오겠습니 다.”
“고맙네.”
왕 선생의 말에 윤수홍이 고개 를 숙이고는 가게를 나섰다.
그 모습에 강진이 난감한 듯 중 국 가족들을 보다가 슬며시 일어 나려 할 때, 왕 선생이 웃으며
젓가락을 내밀었다.
“같이 먹세.”
‘어쩔 수 없네.’
사양을 몇 번 했는데도 이렇게 권유하니 강진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는 젓가락을 집었다.
‘설마 나도 먹었다고 할인해 달 라고는 안 하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자신이 만든 음식들을 집어먹기 시작했 다.
‘확실히…… 꿀맛이네.’
특히 소고기 갈비찜은 최고였 다. 사실 강진은 소고기 갈비찜 을 먹어 본 지가 아주 오래됐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명절 날 해 먹었던 기억이 있지만,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먹은 기억이 없다.
소갈비라는 것이 비싸기도 했 고, 소고기 갈비찜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집에 손님이 오거나 명절날이나 먹는 의미 있는 음식 이다.
그래서 강진은 부모님이 돌아가 신 이후에는 먹어 본 기억이 없 는 것이다.
뭐…… 보육원에서 소고기 갈비 찜을 먹을 일도 없고 말이다.
갈비찜을 먹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때도 맛있었는데……
갈비를 먹는 강진을 보며 왕 선 생이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만들었는데도 맛있나 보군.”
“누가 만들었든 맛있는 건 맛있 는 거죠.”
강진의 말에 왕 선생이 그를 보 다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수첩을 가지고 다니시네.’
수첩을 꺼낸 왕 선생이 볼펜도 꺼내서는 글을 적어 보여주었다.
〈왕강신 (王康愼)〉
왕 선생이 쓴 글을 본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강진이 볼펜을 가져다가 왕강신 의 이름 밑에 자신의 이름을 적 었다.
그러고는 왕강신과 자신의 이강 진의 강자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 렸다.
“저하고 강 자가 같으시네요.”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 하오!”
기분 좋게 웃으며 왕강신이 탁 자를 두들겼다. 그러고는 말했다.
“소주라도 먹지.”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일어나서 소주병을 가져왔다. 소주병을 받 은 왕강신이 물잔에 소주를 가득 따랐다.
그러고는 잔을 강진에게 내밀었 다.
‘많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잔을 받았다. 그에 왕강신
이 옆에 있던 물잔에 소주를 또 가득 따랐다.
넘칠 것처럼 출렁이는 물잔을 든 왕강신이 단숨에 소주를 마셨 다.
꿀꺽! 꿀꺽!
단숨에 소주를 원 샷을 한 왕강 신이 잔을 기울여 강진에게 보여 주었다.
‘다 먹었다고 하는 건가?’
한국도 술을 다 먹으면 머리에 털어 비웠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 강진이 소주가 가득 따라 진 잔을 보았다. 그리고 마시려 할 때, 배용수가 주방에서 몸을 내밀며 말했다.
“그거 다 마셔야 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힐끗 그를 보았다.
“받기 전에 네가 술이 약하다고 했으면 괜찮은데…… 윗사람이 준 술은 원 샷이야.”
그에 강진이 굳은 눈으로 술잔
을 보았다.
‘이 많은 걸?’
그런 강진의 마음을 읽었는지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원래 중국 애들은 술잔이 작고 도수가 높아서 생긴 문화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건 다 마 셔. 저 왕 선생이 너 좋다고 가 득 따라 준 거니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중국인들하고 일을 하기 는 했지만 술을 마시지는 않았
다.
그렇다 보니 딱히 중국의 술 문 화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 에 강진이 왕강신을 보고는 잔을 슬쩍 들어 보인 후 마셨다.
꿀꺽! 꿀꺽!
술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지만, 한 잔 정도야 객기로라도 단숨에 마실 주량 정도는 되었다.
그런 강진의 모습에 왕강신이 기분이 좋은 듯 연신 고개를 끄 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