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화
가게로 향하던 강진은 입구에 서 있는 뜻밖의 사람을 볼 수 있 었다.
“숙수님?”
가게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은 바로 김봉남이었다. 강진의 부름 에 김봉남이 그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왔나?”
“연락이라도 하고 오시죠.”
“밥집에 밥 먹으러 오면서 연락 을 하고 오는 사람도 있나? 아니 면……
김봉남이 가게를 보았다.
“이곳은 연락을 하고 온 사람들 만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인가?”
“그럴 리가요. 들어오세요.”
말을 하며 강진이 가게의 문을 열며 말했다.
“저희 가게 찾기가 쉽지 않으셨
을 텐데……
“찾기 쉽던데?”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신들 때문에 보통은 못 보고 지나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가게 문을 열 고 안으로 들어간 강진은 곧 김 봉남이 왜 가게를 쉽게 찾았는지 알았다.
가게 안에 귀신이 한 명도 없었 다. 보통 강진이 회사를 가면
TV를 보며 놀고 있을 텐데, 한 명도 없는 것이다.
귀신이 없으니 김봉남도 쉽게 가게를 찾은 것이었다.
“사람도 없는데 TV를 틀어 놨 나?”
한쪽에 켜져 있는 TV를 본 김 봉남이 하는 말에 강진이 어색하 게 웃었다.
귀신들 보라고 틀어 놓은 TV인 데, 귀신들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으니 끄지 않고 나간 것이
다.
“도둑 들까 봐 TV를 틀어 놨습 니다.”
“ 도둑?”
“TV를 틀어 놓으면 사람이 있 는 줄 알고 도둑이 안 들지 않겠 습니까.”
“그것도 일리가 있군.”
자신의 변명을 믿는 김봉남을 보며 강진이 일단 차를 가져다주 었다.
‘그런데 용수 이놈은 어디에 갔 지? 숙수님 온 것 보면 좋아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할 때 김봉남이 가 게를 둘러보며 차를 마시다가 말 했다.
“주방 좀 봐도 되나?”
“운암정 주방도 구경시켜 주셨 는데 제 주방도 보셔야죠.”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 로 가자, 김봉남이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 깔끔하군.”
“음식을 만드는 곳이니까요.”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은 청결함에서부터 시작을 하지. 아무리 맛집이라고 해도 청결하지 않은 주방은 그 자체로 최악의 식당이야.”
말과 함께 김봉남이 주방을 둘 러보다가 한쪽에 있는 무쇠 식칼 을 보고는 손을 내밀어 집었다.
“요즘은 이런 식칼 잘 안 쓰는
데……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렇죠. 잘 안 쓰죠.’
이 무쇠 식칼은 배용수가 풍물 시장에서 사달라고 해서 사 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배용수가 자 신의 전용 칼로 사용하고 있었 다.
강진에게 좋다고 사용해 보라고 했지만…… 강진은 무거워서 사
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몇 번 칼질을 하는 것이야 문제 가 안 되지만, 여러 요리를 하게 되면 손목에 무리가 오는 것이 다.
김봉남이 칼날을 스윽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무게도 적당하고…… 날도 관 리가 잘 되어 있군.”
“감사합니다.”
“칭찬이 아니라 정말 관리가 잘 되어 있군.”
칼날에 손가락을 살짝 대며 날 을 살피는 김봉남의 모습에 강진 이 고개를 끄덕였다.
‘칼 가는 숫돌이 세 종류나 되 는데 관리가 잘 되어야지.’
무쇠 식칼 관리를 위해 강진은 배용수가 추천한 숫돌을 세 개나 사야 했다.
시작하는 숫돌, 가는 숫돌, 마무 리 숫돌…… 이렇게 세 개로 배 용수가 열심히 관리를 하는 것이 다.
식칼을 잠시 보던 김봉남이 내 려놓고는 냉장고를 향해 다가갔 다.
“열어도 되겠나?”
일반 가정집 주부도 자신의 냉 장고를 남들이 마음대로 여는 것 을 싫어한다.
마치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것이 요리 사라면 더하기에 김봉남은 일일 이 강진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이 다.
“그러세요.”
강진의 허락에 김봉남이 냉장고 를 열었다. 그리고 재료들을 보 다가 고기를 꺼내 보았다.
“육질이 좋군.”
“제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로 최선의 요리를 내는 것이 요리사가 아니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피식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맞지. 하지만 요즘은 적당한 재료로 적당한 요리를 내
는 식당들이 너무 많지.”
그러고는 김봉남이 냉장고 안을 이리저리 보다가 반찬들을 꺼냈 다.
“맛 좀 봐도 되나?”
“먹으라고 만든 반찬인데, 못 드시게 할 이유가 없죠.”
강진이 젓가락을 내밀자 김봉남 이 반찬통들을 열었다. 반찬통에 는 김치, 가지무침, 콩나물과 다 른 나물무침들이 있었다.
“반찬이 네 개인가?”
“여기에 오이무침과 계란말이, 어묵볶음을 합니다.”
“그건 바로 해서 먹어야 맛있는 반찬들이군.”
“그래서 안 만들어 놓고 손님이 오면 그때그때 만들고 있습니 다.”
강진의 답이 마음에 드는 듯 고 개를 끄덕인 김봉남이 젓가락으 로 김치와 반찬들을 먹었다.
그러고는 김봉남이 미소를 지었 다.
“맛있군.”
“맛있으라고 만든 반찬입니다.”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반찬은 맛있어야지.”
기분 좋게 웃으며 김치를 집어
먹은 김봉남이 말했다.
“그런데 가게에 있는 메뉴
판…… 특이하더군.”
손님이 먹고 싶다는 것을 만들 어 준다는 메뉴판을 말하는 김봉
남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손님이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할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손이 모자 랄 텐데?”
정해진 음식은 미리 손질해 놓 은 재료로 만들면 된다. 그리고 계획이란 것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 그때 손님이 원하 는 메뉴를 만드는 것은 숙련된 요리사라고 해도 힘들었다.
새로운 메뉴에 따라 재료 손질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 말이 다.
“저희는 손님이 많이 안 오시거 든요.”
“그래? 반찬 맛만 봐도 손님이 제법 올 것 같은데?”
“제가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 어서…… 가게 문을 여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 회사?”
“여기 앞에 있는 태광무역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논현에 이만한 식당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인턴을 하나? 인턴 으로는 여기 월세도 감당하기 힘 들 텐데?”
김봉남이 가게를 둘러보는 것을 보몀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건물이 자가라서 월세 부담은 없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웃었다.
“이거 건물주셨군.”
“이 가게를 물려주신 분이 건물 주셨죠.”
“그런데 인턴은 왜?”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 생각을 했었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란 것이 그때그때 변하 는 것이니……
그러고는 김봉남이 말을 이었
다.
“아까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가게 오픈 시간과 영업시간은 손 님과의 약속이야. 그건 무슨 일 이 있어도 꼭 지켜야 하는 법이 네.”
“그래서 인턴 끝나고 나면 정해 진 시간에는 꼭 영업을 하려고 합니다.”
“어떤 장사든 신용이 없으면 성 공하기 힘들어.”
“알겠습니다.”
강진의 답에 김봉남이 주방을 주르륵 보다가 말했다.
“그럼 나한테는 뭘 해 줄 건 가?”
“식사하시게요?”
“그럼 식당에 뭐 하러 왔겠나?”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드시고 싶은데요?”
“그야 자네가 해 주고 싶은
잠시 말을 멈춘 김봉남이 냉장 고를 보았다.
“지금 자네가 낼 수 있는 최선 의 요리를 해 주면 되겠지.”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탁을 가리켰다.
“앉아 계세요.”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주방을 나왔다. 김봉남이 주방을 나가자 강진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배용수, 배용수, 배용수, 허연
욱.... ”
배용수와 허연욱 둘을 동시에 부르자 곧 옆에 두 귀신이 모습 을 드러냈다.
“귀신들 다 어디 갔어?”
강진이 작게 속삭이자 배용수가 홀에 있는 김봉남을 보다가 말했 다.
“숙수님이 밖에 계셔서 내보냈 어.”
배용수의 말에 허연욱이 말했 다.
“용수 씨가 다 나가라고 어찌나
성화인지, 귀신들이 놀라서 다 나왔습니다.”
두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숙수님이 밖에 있는 걸 보고 용수가 밖으로 다 내보냈구나.’
김봉남은 한끼식당을 찾아온 것 을 보고 배용수가 귀신들을 모두 내보낸 것이다.
귀신들이 있으면 김봉남이 가게 를 못 보니 말이다.
그러다가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
다.
“숙수님 옆에 있지 그랬어?”
“사람 옆에 귀신 있으면 안 좋 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렸다.
“ 나는?”
김봉남한테 안 좋다고 옆에도 없는 놈이 지금은 자신의 옆에 착 붙어 있으니 말이다.
너는 다르지. 그런데 왜 숙수
님 저기 계셔?”
배용수가 화제를 돌리자 강진이 말했다.
“식사하시 겠대.”
“그럼 어서 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허연욱을 보았다.
“숙수님 몸에 좋은 식재가 뭐예 요?”
허연욱을 부른 것은 이것 때문 이었다. 간과 신장이 안 좋으니
되도록 그 몸에 맞는 식재를 쓰 고 싶었다.
강진의 물음에 허연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간과 신장이 나쁘시니…… 알 부민이 많은, 단백질이 풍부한 식재가 좋습니다. 두부와 소고기 같은 음식이 맞을 것 같습니다.”
“알부민?”
“알부민은 단백질로 혈압 유지 와 영양소 및 호르몬 운반 작용 을 합니다.”
“일단 몸에 좋은 거네요.”
“지금 숙수님에게는 필요한 영 양소입니다.”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그렇다는데. 메뉴 뭐로 할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김봉남을 보다가 말했다.
“그럼 소고기 전복죽에 간장 두 부튀김이 좋을 것 같다.”
“생전복이 아닌데 괜찮을까?”
“생전복으로 하면 좋기야 하겠 지만 없잖아.”
지금 냉장고에 있는 전복은 냉 동이었다. 수족관도 없는 곳에서 생전복을 쓸 수는 없으니 말이 다.
“그리고 냉동 전복도 질 좋아서 괜찮아.”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냈 다.
“쌀은 일단 물에 담가 놓고, 전
복은 흐르는 물에 씻어야 돼.”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배용수의 말에 따라 강진이 재 료를 손질하며 말했다.
“그런데 전복죽에 간장 두부튀 김이 어울리나?”
“죽이라는 건 원래 좀 심심한 맛이잖아. 그리고 부드럽고.”
“그렇지.”
“두부튀김은 바삭해서 죽의 부 족한 식감을 채워주지. 거기에
간장 양념이 올라가니까 심심한 맛도 잡아 주고.”
배용수의 말에 허연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간과 신장이 안 좋으면 저녁에 소식하는 것이 좋습니다. 두부와 죽은 무겁지 않으니 좋은 식사입니다.”
“그래요?”
“과식은 그 자체로 몸에 안 좋 습니다. 아무리 배고파도 식사는 가볍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허연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말했다.
“적당히가 가장 중요하기는 하 죠.”
“맞습니다. 적당히 자고,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는 것이 몸 에 가장 좋습니다.”
“옳은 말이네요.”
이야기를 나누며 강진은 죽을 만들 쌀을 물에 담가 놓고는 재 료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타타탓! 타탓!
재료를 손질하던 강진의 귀에 풍경 소리가 들렸다.
띠링! 띠링!
풍경 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내 밀었다가 급히 나왔다.
“어르신.”
가게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왕 강신이었다. 강진이 나오는 것에 왕강신이 웃으며 가볍게 손을 들 어 보였다.
“식사 되나?”
“그럼요. 그런데 혼자 오셨어 요?”
왕강신은 혼자였다.
“애들 부부는 약속이 있어서 나 갔고, 손녀애는 방송국 간다고 갔네.”
“그럼 혼자 여기 찾아오신 거예 요?”
“내 나이가 몇인데, 설마 길이 라도 잃을까 걱정인가?”
“중국이라면 괜찮지만…… 여기 는 한국이잖아요.”
“중국이든 한국이든 택시 타면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것은 다 똑 같지.”
그러고는 왕강신이 웃으며 말했 다.
“계속 서 있어야 하나?”
“그럴 리가요. 여기 앉으세요.”
강진이 빈자리를 가리키자 왕강 신이 자리에 앉았다. 그에 강진 이 차를 가져다주고는 말했다.
“음식 뭐로 해 드릴까요?”
“자네가 주고 싶은 음식으로 주 게.”
“알겠습니다.”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왕강 신이 의자에 팔을 걸치다가 김봉 남을 보았다.
김봉남 역시 새로운 손님과 눈 이 마주치자 살짝 고개를 숙였 다.
“관광 오신 모양입니다.”
김봉남이 중국어로 말을 하자 왕강신이 웃었다.
“중국어를 하십니까?”
“작은 식당을 하는데 외국인 손 님들도 받다 보니 한두 마디 정 도는 하게 되었습니다.”
“잘하시는데요.”
“감사합니다.”
왕강신과 김봉남이 홀에서 이야 기를 나누는 것을 주방에서 보던 강진이 다시 요리를 하기 시작했 다.
‘과장님한테 전화를 해야 하 나?’
그런 생각을 잠시 하던 강진이 슬며시 핸드폰에 문자를 남겼다.
〈왕강신 어른께서 가게에 오셨 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대로 어르신에게 양해를 먼저 구하고, 허락을 하셨을 때 들어오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