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96화 (96/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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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강신의 물음에 강진이 입을 열려는 순간 배용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 최고의 한식집입니다.”

배용수의 단호한 목소리에 강진 이 그를 보았다. 배용수는 어느 새 주방에서 나와 있었다.

‘숙수님이 주방에 들어가셔서 나온 건가?’

김봉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가까이 있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배용수를 힐끗 본 강진이 그가 한 말을 따라 했다.

“한국 최고의 한식집입니다.”

“한국 최고?”

왕강신의 말에 배용수가 또 대 답을 했고, 강진이 그대로 말을 전했다.

“그리고 지금 주방에서 안주를 만드시는 분은 한국 최고의 요리

사십니다.”

“한국 최고라는 단어를 너무 쉽 게 붙이는 것 아닌가?”

“한국에서 최고입니다.”

배용수의 단호한 말을 강진이 따라 하자, 왕강신이 그를 보다 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같은 요리사가 그렇게 말 을 한다면…… 대단한 대가이신 가 보군.”

“드셔 보시면 아실 겁니다. 왜 한국 최고의 요리사인지.”

강진의 입을 빌어 배용수가 하 는 말에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이 고는 기대감이 어린 눈으로 주방 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한국 최고의 요리사라…… 기 대가 되는군.”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힐끗 주 방을 보았다. 주방에서는 김봉남 이 프라이팬을 천천히 흔들며 고 기를 볶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김봉남이 쟁반 에 음식을 들고 나왔다.

“돼지 앞다리살로 만든 돼지고 기 숙주볶음과 김칫국입니다•”

‘‘그럼 이제 술을 마셔도 됩니

까?”

“드시지요.”

김봉남의 말에 왕강신이 호기심 과 기대감이 어린 눈으로 술잔을 들어서는 코로 가져갔다.

“흠! 역시 향이 좋군요•”

향을 한 번 맡은 왕강신이 색을 보다가 입에 넣었다.

꿀꺽!

“아……

감홍로를 마신 왕강신이 탄식을 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 하오!”

기분 좋은 얼굴로 탄성을 토한 왕강신이 술을 다시 따르려 하자 김봉남이 말했다.

“안주부터 드십시오.”

김봉남의 말에 왕강신이 고기와 숙주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

고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맛이 있었다. 미소를 짓는 왕강 신을 보며 김봉남이 말했다.

“조금 짠맛이 있을 겁니다.”

“조금 그렇기는 한데 맛있는 짠 맛입니다. 게다가 단맛과 짠맛이 어울리니 별미로군요.”

말을 하던 왕강신이 의아한 듯 김봉남을 보았다.

“그런데 일부러 짜게 하신 겁니 까?”

“단맛을 더 강하게 하는 것이 짠맛입니다. 감홍로의 단맛을 더 강하고 기분 좋게 즐기려면 안주 가 조금 짠맛이 도는 것이 좋습 니다.”

“그렇군요.”

“요즘 사람들 말로 단짠단짠입 니다.”

“하하하! 단짠단짠이라…… 좋 군요.”

웃으며 왕강신이 술을 잔에 따 르고는 잔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중국 사람들은 자리에서 잘 일 어나네.’

어제 술 마실 때도 자주 일어나 말을 하던 왕강신을 떠올리며 강 진이 잔을 들었다.

취하도록 먹을 생각은 아니지만 귀한 술이라고 하니 한두 잔은 먹어 볼 생각이었다.

강진이 잔을 들자 왕강신이 문 득 김봉남을 보았다.

“혹시 올해 나이가?”

“일흔다섯 살입니다.”

“아! 제가 일흔셋이니 형님이 되시는군요.”

그에 왕강신이 자리에 다시 앉 으며 김봉남을 보았다.

“한 말씀 해주시지요.”

왕강신의 말에 김봉남이 자리에 서 일어나 잔을 들었다.

“좋은 식당에서 좋은 사람을 만 났습니다. 오늘 만나게 되어 기 쁩니다.”

“저 역시 반갑습니다.”

왕강신의 말에 김봉남이 잔을 쭈욱 들이켜자, 왕강신도 잔을 들이켜고는 내려놓았다.

“하오! 하오!”

좋다는 말을 연발하는 왕강신을 보며 강진도 술을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크윽! 이게 무슨 단맛이……

쓰기만 하구만, 이라고 생각을 하던 강진의 얼굴에 살짝 의아함 이 어렸다.

술이 목을 넘어가고 잠시 후, 입안에 단맛이 감도는 것이다.

“단맛이 나는군요.”

“안주를 먹어 보거라.”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주를 먹었다. 단맛 에 짠맛이 들어가니 단맛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맛있네요.”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미소를 지었다.

“음식에도 궁합이 있다. 좋은 궁합을 찾아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지.”

그러고는 김봉남이 옆에 있는 청백로 상자를 열어서는 술병과 잔을 꺼냈다.

청백로의 잔은 투명한 유리잔이 었다. 무척 얇고 작은 유리잔을 또 훅훅 불어 낸 김봉남이 청백 로를 따랐다.

쪼르륵! 쪼르륵!

투명함을 넘어 은은하게 청색

빛을 내는 청백로의 모습에 강진 이 말했다.

“이름하고 너무 어울리는 술입 니다.”

강진의 말에 왕강신 역시 고개 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름하고 너무 잘 어 울리는 술이야.”

왕강신이 있어서 지금 식탁에서 는 대화를 중국어로 하고 있었 다.

그래서 대화가 통하는 것이다.

어쨌든 두 사람의 찬사에 김봉남 이 술을 가리켰다.

“드셔 보십시오.”

김봉남의 말에 왕강신이 입맛을 다시고는 청백로를 입에 가져갔 다.

꿀꺽!

청백로를 입에 넣은 왕강신이 잠시 말이 없다가 미소를 지었 다.

“이건 상쾌하군요.”

“그렇습니까?”

“마치 한겨울을 입에 넣은 듯한 느낌입니다.”

왕강신의 말에 김봉남이 강진을 보았다.

“너도 먹어 보거라.”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잔을 보다가 말했다.

“62도라고 들어서 그런가, 좀 무섭네요.”

“남자는 술을 무서워해서는 안

되지.”

왕강신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 역시 웃으며 답했다.

“남자로서는 무섭지 않지만 가 게 주인 된 입장에서는 취할까 두렵습니다.”

강진의 말에 일리가 있다 여겼 는지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이고 는 말했다.

“맞아. 남자라면 술을 먹어도 취해서는 안 되고, 주사를 부리 는 것은 더욱 안 되지.”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건 남자 여자 나뉠 일이 아 닌 것 같은데……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왕 강신이 그를 보다가 김봉남에게 말했다.

“이 형제의 말이 옳습니다. 주 방에서 칼 다루는 일을 하는데 술에 취해서는 위험하니…… 제 가 대신 먹을까 합니다.”

왕강신의 말에 김봉남이 강진을

보았다.

“그럼 살짝 맛만 보거라.”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잔을 잡았다.

‘술을 강권하는 스타일은 아니 실 것 같은데…… 먹어보라고 하 는 거면 이유가 있으신가?’

게다가 방금 왕강신이 말을 한 대로 요리사가 술에 취하면 요리 를 하기 어렵다.

아니 어려운 것이 아니라 위험 하다. 주방은 칼과 불을 다루는

곳이니 말이다.

그것을 잘 아는 김봉남이 맛을 보라고 하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에 강진이 청백로를 조금 입 에 머금었다.

화아악!

입에 넣은 청백로의 독한 술기 와 함께 향이 느껴졌다. 그 향은 무척 상쾌한 느낌이었다.

‘한여름에 냉장고에 둬서 살얼 음이 낀 소주를 마시는 것 같

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고개 를 끄덕였다.

“좋군요.”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말했다.

“이것과 어울리는 안주를 만들 어 보거라.”

“제가요?”

“내가 감홍로 안주를 만들었으 니, 너도 하나는 만들어야 하지 않겠니?”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잠시 있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 주인 된 입장이니 손님의 주문을 거절할 수는 없죠. 알겠 습니다.”

강진이 잔에 남은 청백로를 입 에 털어 넣고는 맛을 음미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으로 들어온 강진이 냉수를 한잔 마시고는 슬쩍 배용수를 보 았다. 그는 홀에 있다가 김봉남 이 나오자 다시 주방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청백로하고 뭐가 어울려?”

“숙수님이 너보고 만들라고 했 잖아.”

주방에서 이야기를 들은 듯 배 용수가 홀을 보자 강진이 말했 다.

“내가 음식에 대해 뭘 알아?”

강진이 쉽게 답을 한 것은 배용 수를 믿어서였다. 술과 어울리는 안주를 강조하는 김봉남이다.

그렇다면 운암정에서 만든 술에 는 그와 어울리는 안주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숙수님이 드실 음식, 네가 만 들면 좋잖아.”

“내가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네 입김이 들어가잖아. 그리고……

강진이 슬쩍 홀을 보고는 작게 속삭였다.

“내가 맛있는 음식을 내드려야

나를 좋게 보시고 숙수님과 친해 질 수 있지 않겠어?”

“그렇지.”

“그럼 숙수님 자주 볼 수 있잖 아.”

“아…… 그렇구나.”

강진이 김봉남과 친해지면 운암 정에 놀러가기도 편하고, 김봉남 이 한끼식당에 오기도 좋을 것이 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배 용수가 냉장고를 보았다. 아마도

청백로와 어울리는 안주를 생각 하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문득 홀 을 보았다.

‘용수가 어떻게 죽었는지 물어 봐야 하는데...

전에 운암정에 갔을 때 물어본 다는 것을, 아직까지 물어보지 못했었다.

‘용수 있는 곳에서 물어보기도 그렇고:

자신이 죽은 이유, 혹은 원인을

당사자가 있는 곳에서 물어도 되 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강진이 고개 를 끄덕였다.

‘오늘은 날이 아닌 걸로 하자.’

생각이 끝날 때쯤 배용수가 말 했다.

“청백로는……

말을 하던 배용수가 잠시 있다 가 말했다.

“이슬 같은 술이야.”

“이슬?”

“순수하고, 다른 맛이 가미가 안 됐다는 말이야. 그래서 맛이 강한 양념이 깃든 음식보다는 담 백하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 는 것이 좋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말했다.

“회?”

이슬이라고 하니 소주가 떠올랐 고, 소주하면 또 회가 어울리니 말이다.

“회도 좋지. 하지만 우리 가게 에는 회로 쓸 식재료가 없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해?”

“소고기 초무침 어때?”

“소고기 초무침?”

처음 들어보는 음식 이름이라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배용수가 말했다.

“양장피하고 비슷하다 생각을

하면 돼. 다른 건 소고기와 채소 가 들어가는 거지.”

“담백한 것과 양장피는 좀 다른 것 같은데?”

양장피는 겨자가 들어가 톡 쏘 는 맛과 다양한 식감으로 먹으니 담백한 맛과는 달랐다.

“비슷하다고 했지 같다고는 안 했어.”

그러고는 배용수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식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

다.

“……이렇게 하면 되겠어.”

“원래 있던 음식이야?”

“원래 있었는지는 모르겠네.”

“그럼 네가 만든 거야?”

“세상 모든 음식은 기존의 음식 에서 변형이 된 것일 뿐이야. 나 는 양장피, 구절판 그리고 소고 기 샤부샤부에서 떠올린 거고.”

“오! 대단하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해.”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곧 요리를 할 준비를 하 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소고기를 꺼낸 강진 이 그것을 얇게 썰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소고기를 얇게 썬 강진이 다른 재료들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십 분 후 강진은 김봉남의 식

탁에 음식이 담긴 그릇과 휴대용 버너를 내려놓았다.

음식들을 본 김봉남이 웃으며 말했다.

“샤부샤부인가?”

김봉남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소고기 초무침이라고 하겠습니 다.”

“소고기 초무침?”

“제가 청백로 맛을 보니 도수가

강하기는 하지만 맛이 맑았습니 다. 그런 술에 양념이나 맛이 강 한 안주를 먹으면 청백로의 맛을 해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소고기 초무침인가?”

김봉남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고기는 식으면 기름이 응고 되고 진득해집니다. 그래서 바로 한 점 한 점, 육수에 샤부샤부를 해서 익힌 후 채소에 싸서 드시 게 했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자신의 앞에 놓인 소스 그릇을 보고는 젓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흠…… 간장에 식초……

음…… 매실액인가?’’

“맞습니다.”

“청백로에 단맛이 어울린다 생 각을 했나?”

“청백로가 좋은 술인 것은 알지 만 일단 도수가 엄청 높습니다. 그리고 도수가 높으면 독하죠. 그래서 단맛을 살짝 가미했습니

다.”

“단맛이 과하지 않고, 이 정도 면 좋군.”

김봉남이 왕강신을 향해 말했 다.

“한 잔 드시죠.”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잠시만요.”

그러고는 강진이 얇게 썰어 놓 은 소고기를 육수에 넣고는 흔들 었다.

화아악!

뜨거운 육수에 담가진 소고기의 표면이 익었다. 몇 번 더 흔든 강진이 소고기를 꺼내 두 사람의 앞접시에 내려놓았다.

“고기로 채소를 싸서 소스에 찍 어 드시면 됩니다.”

강진의 말에 두 사람이 채소를 고기 위에 올리고는 말았다. 그 리고 청백로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고기말이를 소스에 찍어 먹었다.

아삭! 아삭!

두 사람의 입에서 채소가 씹히 는 소리가 맛있게 들려오자 강진 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묻지 않아도 맛이 느껴졌 다. 두 사람의 얼굴에 흐뭇한 미 소가 어려 있으니 말이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나오는 미 소는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용수가 음식을 잘하기는 참 잘 하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주방에 있는 배용수를 향해 엄지를 세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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