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자신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최 호철의 모습에 강진이 다시 이름 을 몇 번 더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최호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 와?”
최호철의 이름을 계속 부르는 모습에 배용수가 의자에서 상체 를 돌려 묻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안 오네?”
“일 있나 보지.”
“귀신이 무슨 일이 있어?”
“왜 없어. 어떻게 보면 가장 바 쁜 것이 귀신인데.”
“뭐 하느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사람 구경하느라?”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네.”
“아니면 승천했을 수도 있지.”
“승천? 일주일 만에?”
저번 주에 본 최호철이 벌써 승 천을 했나 싶어 놀라는 강진을 보며 배용수가 말했다.
“너, 귀신 승천하는 것 봤었잖 아.”
“그렇지.”
“그게 시간하고 상관이 있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이나 오순영, 그리 고 왕강준은 시간과 상관이 없이 갑자기 승천을 했었다.
미련을 버리면 바로 되는 것이 승천이고, 미련을 못 버리면 수 십 년이 지나도 안 되는 것이 또 승천인 것이다.
“했으면 좋겠는데……
“내일 다시 불러 보고, 안 되 면…… JS 금융에 물어봐.”
“JS 금융?”
“빚 진 귀신들 행방이야 돈 받
을 것 있는 JS 금융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니까.”
“아…… 그것도 그렇네.”
받아야 될 돈이 있는 귀신의 행 방이라면 JS 금융에서 잘 알 것 이다.
잠시 생각하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한테 일이 있어 봐야 무슨 일이 있겠어?’
최악의 경우인 죽음을 이미 겪 은 존재이니 말이다.
다음 날 강진은 임호진과 이야 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만나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래요? 휴! 난 어제 연락이 없어서 안 되겠구나 했는데…… 다행이네요.”
안도의 한숨을 쉬는 임호진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왕 선생님께 너무 무리한 부탁 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그를 보았다.
“아!”
그러고는 임호진이 말을 했다.
“콴시라는 것을 강진 씨가 오해 를 했군요.”
“제가 오해를 했습니까?”
“콴시…… 음……
말을 하다가 잠시 멈춘 임호진 이 입을 열었다.
“콴시…… 관계라는 것은 상호 적입니다. 일방적인 관계라는 것 은 부모 자식밖에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라고 해도 일 방적으로 주고받을 수는 없습니 다.”
“그렇지요.”
“게다가 콴시를 맺었다고 해서 다 들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중 국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인사 한 번 했다고 부탁을 다 들
어주겠습니까?”
“그건 아니죠.”
강진의 답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 다. 아니 오히려 사업적으로는 무척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습 니다.”
강진을 보며 임호진이 말을 이 었다.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가 콴시 입니다. 관계란 것에 일방적인
것은 없습니다.”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미소를 지었다.
‘왕강신 어른께 과장님을 소개 시켜 준 것으로 최소한 욕은 안 먹겠구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전 화가 울렸다. 그에 전화를 본 강 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어?”
“왜 그러십니까?”
“왕 선생님이신데요?”
“왕 대인? 어서 받으세요.”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강진이 일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제는 잘 먹었네.]
“잘 드셨다니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제 소 개해 준다는 사람, 지금 볼 수 있나?]
“지금요?”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놀랐다. 지금은 아침 9시 20분쯤 됐다.
어제 조금 자제하면서 마신 김 봉남과 달리 왕강신은 빠르게 많 이 마셨다.
그런데 벌써 일어나 있는 것이 다. 게다가 지금 시간은 누구를 만나기보다는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인데…….
“어제 많이 드셨는데 안 피곤하 세요?”
[그 정도 먹었다고 피곤하면 관
에 들어가야지. 그래서 시간 되 겠나?]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잠시 기 다려 달라 하고는 임호진을 보았 다.
“지금 만나 보고 싶으시다고, 시간 되시냐는데요?”
“당연히 됩니다.”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임호진을 보며 강진이 전화에 대고 말했 다.
“괜찮습니다.”
[잘 됐군. 그럼 10분 후에 자네 가게에서 보기로 하지.]
“제 가게요?”
[아직 아침을 안 먹었거든.]
“호텔에서 머무실 텐데?”
[계란하고 소시지나 먹으려고 내가 한국에 온 것은 아니지. 지 금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 10분 후쯤에 보기로 하지.]
“제가 없으면 어떻게 하시려고 벌써 출발을 하셨어요?”
[자네가 없으면 강남이나 구경 하려고 했지.]
“ 강남을요?”
[한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 는 곳이 강남이니 어떤 곳인지 보려고 말이야.]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부동산 사업을 하시는 분 이니 땅값 높은 도시를 보는 곳 도 좋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말했
다.
“그럼 아침은 무엇으로 준비를 해 드릴까요?”
[보통 한국 사람들이 술 먹고 난 다음 날에 먹는 거면 좋겠군. 그리고 간편한 걸로 해 주게. 나 도 밥 먹고 가야 할 곳이 있으니 까.]
“알겠습니다.”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임 호진을 보았다.
10분 후 제 가게에서 보자시는
데요.”
“그럼 식사를 하시겠다는 것 같 은데?”
“네.”
“그럼 더 좋은 곳을…… 아! 강 진 씨 가게가 나쁘다는 것은 아 니고.”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 금 이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데요.”
“아!”
임호진이 이상섭에게 고개를 돌 렸다.
“강진 씨하고 나 외근 다녀올 게.”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임호진이 강진을 보았 다.
“갑시다.”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그를 따 라 사무실을 나섰다.
가게에 들어서며 강진은 귀신들 을 모두 내보냈다. 배용수도 마 저 다 내보낸 강진이 물을 올리 고는 오징어를 썰기 시작했다.
“뭘 만들려고 하는 겁니까?”
“해물 라면요.”
“해물 라면?”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그래도 귀한 손님인데 좀 좋은
걸로……
“한국 사람들이 해장으로 자주 먹는 걸 드시고 싶으시대요.”
“해장으로 라면을 자주 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왕 대인에 게.”
중국인에게 접대가 얼마나 중요 한지 아는 임호진이다 보니 라면 으로 첫 식사를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왕 대인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 지 마세요. 그냥 같이 해장 라면
한 그릇 하시면 되는 겁니다.”
강진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 이던 임호진이 그를 보았다.
“많이 친해진 것 같습니다.”
“이틀 연속 같이 술잔을 나눴으 니…… 조금은요.”
그러고는 강진이 웍에 기름을 두르고는 고추를 넣고 볶기 시작 했다.
고추를 볶자 바로 매운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콜록!”
기침을 하는 임호진을 힐끗 본 강진이 물었다.
“매운 것 못 드세요?”
“먹기는 하는데…… 왜요?”
“왕 선생이 사천 사람이라 매운 것을 즐깁니다. 그래서 이 해물 라면도 좀 매울 거예요.”
“매워도 먹어야죠.”
고개를 끄덕이는 임호진을 볼 때, 문이 열렸다.
띠링! 띠링!
맑고 고운 풍경 소리와 함께 왕 강신이 아들과 함께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왕강신이 온 것에 강진이 일단 가스 불을 끄고는 밖으로 나왔 다.
“매운 냄새가 나는군.”
“해장에는 맵고 기름진 것이 좋 죠.”
건강에는 나쁠지 몰라도, 확실
히 해장으로는 맵고 기름진 것이 맛있기는 했다.
그러고는 강진이 임호진을 가리 켰다.
“어제 제가 말을 한 임호진 과 장입니다.”
강진의 소개에 왕강신이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왕강신입 니다.”
“태광무역 임호진입니다.”
임호진이 이미 준비를 해 놓은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한문 으로 그의 직함과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임호진이 주는 명함을 받은 왕 강신이 그것을 아들에게 내밀었 다.
아들이 명함을 보고는 지갑에 넣는 것을 보던 임호진이 다시 왕강신을 쳐다보았다.
자신도 명함을 받으려는 것이 다. 그런데 왕강신은 명함을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웃으며 자리를 가리킬 뿐이었 다.
“일단 앉지요.”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 저는 요리하다 나와서, 마저 하겠습니 다.”
“그러지.”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임호 진이 힐끗 그를 한 번 보고는 자 리에 앉았다.
“한 번 뵙고 인사를 드려야지 했는데, 기회가 없어 지금에야 인사드립니다. 다시 인사드리겠 습니다. 임호진입니다.”
정중하게 다시 인사하는 임호진 의 목소리에 강진이 힐끗 홀을 보고는 다시 만들던 음식을 준비 하기 시작했다.
다시 불을 켜고 고추를 볶던 강 진이 그 위에 고추기름을 살짝 부었다.
촤아악!
매운 냄새가 강해지는 것과 함 께 강진이 웍을 기울였다. 그것 으로 기름과 양념들을 한쪽으로 몰은 강진이 간장을 웍 벽에 대 고는 살짝 부었다.
촤아악! 촤아악!
뜨거운 웍 면을 타고 간장이 타 들어갔다.
‘신기하단 말야.’
간장을 직접 넣는 것보다, 이렇 게 태우듯이 넣으면 맛이 좋아진 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
이다.
어쨌든 양념이 완성이 되자 강 진이 물을 부었다.
촤아악! 촤아악!
그 다음부터는 그냥 라면 끓이 는 방법과 동일했다. 파도 넣고, 스프는 반절만 넣는다.
거기에 오징어와 홍합, 조개를 넣었다. 그리고 국물이 끓을 때 면을 넣는다. 얼마 후 면이 다 익자, 강진은 웍을 통째로 들고 는 홀로 나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묵직한 웍을 내려놓자 임호진이 말했다.
“그릇에 제대로 내오시지.”
자신은 상관없지만, 왕강신도 있으니 말이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왕강신을 보았다.
“편하게 드시러 온 것이라 저도 편하게 냈습니다.”
“나도 이렇게 먹는 것 좋아하
네.”
왕강신이 웃자 강진이 대접을 그의 앞에 놓았다.
“먼저 뜨십시오.”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켜 면과 국 물을 크게 떠서 놓았다.
그에 왕강신의 아들도 면과 국 물을 뜨자, 강진이 임호진을 보 았다. 그 시선에 임호진도 라면 을 떴다.
임호진이나 강진은 아침을 먹었
지만,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편할 테니 말이다.
후루룩!
“음! 좋다!”
기분 좋게 라면을 먹는 왕강신 을 보며 임호진과 강진도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임호진의 얼굴이 붉어졌 다. 매운 것이다. 그리고 그건 강 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만들기는 했지만 맵기는 정말 맵네.’
하지만…… 맛은 있었다. 매워 도 입맛이 돌게 하는 맛이랄까?
맛있게 라면을 먹은 왕강신은 강진이 준 차를 마시며 임호진을 보았다.
“그래, 나를 보고 싶어 한 이유 가 뭔가?”
그 말에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던 임호진이 손을 내렸다.
“말씀드린 대로 한 번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게 다인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보는 왕강신 을 보며 임호진이 말했다.
“콴시를 맺고 싶습니다.”
“콴시......"
임호진의 말에 그를 보던 왕강 신이 말했다.
“콴시라는 건 자네에게 도움도 되겠지만, 해도 될 수 있다는 건 아나?”
임호진이 왕강신에게 부탁을 할
수 있다면, 반대로 왕강신도 임 호진에게 부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부탁을 거절하면 임 호진이 왕강신을 통해 쌓은 콴시 들이 모두 적이 될 수도 있었다.
왕강신의 물음에 임호진이 고개 를 끄덕였다.
“제가 알기로, 왕 대인께서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콴시를 중 히 생각하신다 들었습니다. 제가 왕 대인께 도움을 받는 만큼 저 역시 왕 대인께 도움이 되는 관 계를 만들려 합니다.”
임호진의 말에 왕강신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그것이야 알고 지내다 보 면…… 알게 되겠지.”
그러고는 왕강신이 지갑에서 명 함을 꺼내 내밀었다.
“앞으로 잘 지내보세.”
왕강신의 말에 임호진이 명함을 공손히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왕강신이 강진을 보았
다.
“아무래도 오늘이 한국에서 자 네를 보는 마지막 날 같네.”
“네? 제가 뭐 서운하게 해 드린 것이라도……?”
“그럴 리가 있나. 한국에 와서 자네와 형님을 만난 것이 가장 좋은 일인데.”
“그런데 왜 오늘이 마지막이시 라는 건가요?”
“원래는 며칠 더 있다 가려고 했는데, 오후에 중국으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아! 아쉽습니다.”
“나도 아쉽군. 낮에 형님 가게
가서 점심 먹고 바로 가야 할 것
같아.”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아쉽다는
둣 그를 보다가 포권을 했다.
“다음에 또 찾아 주십시오.”
강진의 포권에 왕강신이 웃으며 마주 포권을 했다.
“다음에는 중국에서 보세.”
“알겠습니다.”
왕강신이 몸을 돌려 가게를 나 가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다음에 또 언제 뵐지 모르겠네 요.’
앞으로 오 년 동안 한끼식당을 운영해야 하는 강진이다 보니, 중국에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 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