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온다!”
물건을 정리하던 강진은 배용수 의 외침에 급히 도시락 코너에 있는 도시락들을 치우기 시작했 다.
서둘러 도시락들을 창고로 치운 강진이 카운터에서 나쁜 놈을 맞 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발설지옥 도시락 하나를 도시락 코너에 놓고 그 옆에 JS 편의점
에서 사온 생수와 컵라면, 사과 를 놓았다.
〈신상품 세트 할인
도시락+생수 + 컵라면十사과가 4 천 원입니다.〉
물건을 하나씩 진열한 다음, 남 은 발설지옥 도시락 하나를 전자 레인지에 넣은 강진이 버튼을 눌 렀다. 그리고 열화탕면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내 얼굴을 기억하려나?’
지하철에서 작은 일이 생겼을 때에도 자신에게 시선을 주었던 나쁜 놈이다.
최호철이 주의를 주어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지만 혹시 자신의 얼굴을 봤으면 어쩌나 싶었다.
다행이라면 지금은 편의점 직원 복장을 하고 있어 옷은 다르다는 것이지만…….
‘용의주도한 놈이니 알아볼 수 도 있어.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할까? 아니야…… 그게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어.’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힐끗 가게 밖을 보았다. 저쪽에서 나 쁜 놈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에 강진이 전자레인지에 있는 도시락을 카운터로 가져다 놓고 는 뚜껑을 열었다.
스윽! 화아악!
뚜껑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모 락모락 피어났다. 맛있어 보이는 도시락의 모습에 강진이 발설지
옥 도시락의 포장지를 보았다.
〈발설지옥에서 재배한 싱싱한 채소와 축생계 육류로 영양과 맛 을 가득 채운 지옥 정식입니다.〉
발설지옥 도시락에 적혀 있는 문구를 보자, 강진은 상황에 어 울리지 않게 미소가 떠올랐다.
‘퀄리티 죽이네.’
밥은 보기만 해도 윤기가 흘렀
고, 돼지고기와 소고기로 만든 두 가지 메인 반찬은 어서 먹어 달라는 듯 기름졌다.
거기에 계란 옷을 입은 소시지 와 김치, 새콤하게 무쳐진 도라 지무침까지 모두 이승에서는 볼 수 없는 퀄리티였다.
‘이러고도 사천 원이라니……
이승에서 팔면 대박이 나겠다는 잡생각도 잠시, 강진이 발설지옥 도시락 뚜껑으로 부채질을 했다.
휙휙!
냄새가 퍼지도록 말이다.
그러면서 강진은 밥과 반찬을 먹으며 사과를 반으로 쪼갰다.
쩌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반으로 쪼 개진 사과의 속살이 모습을 보였 다.
뽀얀 사과 속살 안에 꿀이라 불 리는 영역이 모습을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맛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사과를 잘 보이게 놓은 강진이 밥을 먹기 시작했
다.
‘확실히 맛은 있네.’
발설지옥에서 재배한 사과처럼, 발설지옥에서 재배한 쌀과 재료 로 만든 도시락도 인세의 맛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입구 를 보았다. 입구 유리문을 통해 다가오는 나쁜 놈이 보였다.
그리고 나쁜 놈의 뒤를 따르는 여자 귀신들의 모습도…….
목이 반은 잘린 채 덜렁거리는
여자부터, 머리 한쪽이 함몰되어 있는 여자까지…….
모두 꿈에서 보기 무서운 모습 들이었다.
으득!
‘개자식…… 곧 지옥을 보여주 마.’
이를 갈아붙인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과 함께 나쁜 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딸랑!
문에 달린 종소리와 함께 나쁜 놈이 들어오자 강진이 힐끗 그를 보고는 다시 라면을 먹었다.
‘친절할 필요 없다. 그냥 일반적 인 편의점 직원으로만 보이자.’
강진의 시선에 나쁜 놈이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도시락 코너를 향하다가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쁜 놈이 고개를 돌린 것은 맛 있는 냄새 때문이었다. 맛있는 냄새와 함께 강진이 도시락을 든 채 열심히 먹는 것을 본 녀석이
침을 삼켰다.
꿀꺽!
녀석이 침을 삼키는 것과 함께 강진이 이번에는 열화탕면을 들 었다.
냄새만 맡아도 화끈한 향이 올 라오는 것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보기만 해도 맵네.’
JS 편의점에는 여러 컵라면이 있었다. 하지만 강진은 그중 가 장 매울 것 같은 라면을 골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 사람은 하얀 국물보다 빨간색 국물을 봤 을 때 더 식욕을 느끼니 말이다.
“후우!”
길게 숨을 불어낸 강진이 라면 을 입에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맵기는 했지만, 깔끔하게 매운 것이 입에 딱 맞고 맛있었다.
‘어때? 맛있어 보이지?’
“후우! 후우!”
한국인들이 또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라면이다. 누가 라면을 먹는 것을 보면 한 젓가락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 한 국 사람이다.
강진이 맛있게 라면과 도시락을 먹는 것을 본 나쁜 놈이 도시락 코너로 움직였다.
그렇지 않아도 도시락을 먹으면 서 타깃을 찾으려고 한 건데, 알 바생의 모습을 보니 더 먹고 싶 어진 것이었다.
도시락 코너로 가는 놈의 기척
에도 강진은 고개를 들지 않았 다.
용의주도한 놈이니 괜히 눈을 마주칠 필요가 없었다.
후루룩!
라면을 먹을 때 앞에 물건들이 놓였다.
‘나이스.’
세트메뉴를 그대로 들고 온 나 쁜 놈의 모습에 강진이 입가를 닦았다.
“사천 원입니다.”
강진의 말에 나쁜 놈이 바코드 기를 보았다.
“안 찍습니까?”
“이거 신상이라 아직 바코드 입 력이 안 됐습니다.”
이 정도는 이미 예상한 질문이 다. 강진의 말에 나쁜 놈이 고개 를 끄덕이고는 지갑을 꺼내 오천 원을 꺼냈다.
“지금 드시는 게 이거죠?”
나쁜 놈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품 이름이 재밌죠?”
강진의 말에 나쁜 놈이 도시락 과 라면의 상표를 보았다.
“그렇네요. 발설지옥, 열화지 옥...
“요즘은 확 튀는 상품명이 눈에 잘 들어오니까요.”
말을 하며 강진이 계산을 해 주 었다.
“여기 잔돈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사천 원이 라…… 세트 할인 좋네요.”
“앞으로도 많이 이용해 주세 요.”
강진이 천 원을 내밀자 나쁜 놈 이 잔돈을 받아서는 음식들을 들 고는 창가로 걸어갔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자리에 앉아 서는 라면 국물을 마셨다.
꿀꺽! 꿀꺽!
국물을 마시며 강진의 시선은 나쁜 놈의 등을 향했다.
‘다행히 나를 알아보지는 못한 건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은 더 이상 나쁜 놈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가져갔으니 먹을 것이고, 먹으 면…… 귀신들이 보이게 될 것이 다.
스윽!
나쁜 놈 뒤에 서 있는 귀신들을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조금만 기다려요. 당신들의 한…… 당신들이 직접 풀 수 있 습니다.’
생각을 하며 강진이 어느새 다 먹은 도시락과 라면을 치웠다. 그러고는 사과를 씹으며 나쁜 놈 을 보았다.
나쁜 놈은 도시락 맛을 한 번 보고는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정신없겠지…… 너무 맛있으 니.’
강진은 속으로 웃으며 나쁜 놈 을 보았다. 순식간에 라면과 도 시락, 그리고 생수를 다 먹은 녀 석은 한숨을 쉬고는 입가심으로 사과를 먹고 있었다.
“맛있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나쁜 놈을 보며 강진이 미소를 지었 다.
‘맛있게 먹어라.’
아삭! 아삭!
사과까지 다 먹은 나쁜 놈이 옆
에 그릇을 치우고는 핸드폰을 꺼 내들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약발이 언제 도는 거 지?’
그런 생각을 할 때 나쁜 놈이 갑자기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뭐지?”
눈을 비비던 나쁜 놈이 다시 창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 로 뒤로 넘어갔다.
“헉!”
쿵!
의자에서 그대로 뒤로 넘어가는 놈의 모습에 강진이 힐끗 창밖을 보았다.
창밖에서 최호철이 나쁜 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귀신이 된 최호철은 양팔이 으 깨져 생살이 터지고 그 안으로는 허연 뼈가 보인다. 거기에 얼굴 과 온몸에서도 피가 줄줄 흐르는 모습이다.
그런 최호철을 봤으니 놀라 그 대로 자빠진 것이다.
최호철을 본 강진이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쓰러진 나쁜 놈을 내려다보았다.
나쁜 놈은 정신을 잃은 듯 얼굴 이 하얗게 변한 채 눈을 감고 있 었다.
‘죽었나?’
힐끗 코에 손을 대어 보니 숨은 쉬고 있었다. 강진은 그를 일으 켜 의자에 앉히고는 간이 식탁에
엎드리게 했다.
그러고는 여자 귀신들을 보았 다. 여자 귀신들은 무표정한 얼 굴로 나쁜 놈을 멍하니 보고 있 었다.
“저기……
강진의 부름에 여자 귀신들은 그를 보지 않았다. 자신에게 말 을 거는 것인지 모를 수도 있고, 남의 말을 들을 정신이 없는 것 일 수도 있었다.
그런 귀신들을 보며 강진이 말
을 했다.
“저기…… 사과 드실래요?”
강진의 말에 그제야 여자 귀신 중 한 명이 그를 보았다.
“지금…… 저희한테 말을 한 건 가요?”
“네.”
강진의 말에 여자 귀신이 놀라 그를 보았다.
“저희가 보이세요?”
여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카운
터 밑에서 봉지를 꺼내서는 사과 를 꺼내 여자 귀신들에게 내밀었 다.
“사과 드세요. 맛있습니다.”
“하지만……
“잡아 보세요.”
강진이 사과를 주자 여자 귀신 이 슬며시 손을 내밀어 사과를 집다가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사과가 쥐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저승에서 가져온 거라서 그렇 습니다.”
“저승?”
의아해하는 여자 귀신을 보며 강진이 사과를 간이 식탁에 더 올려놓았다.
사과를 손에 쥔 여자 귀신이 다 른 여자 귀신들에게 사과를 주었 다.
하지만 사과를 받는 귀신은 셋 뿐이었다. 그에 강진이 여자 귀 신 셋을 보자, 처음 사과를 받은
여자 귀신이 고개를 저었다.
“정신이 없어요.”
“큰일을 겪으셨으니……
“그런데 어떻게 저희가 보이세 요?”
“저는 귀신들을 상대하는 식당 올 합니다.”
“귀신을 상대……?”
“들으신 적 없나요?”
“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승천하지
못한 귀신분들에게 식사를 제공 하는 곳입니다.”
“그걸…… 당신이?”
“네.”
그러고는 강진이 나쁜 놈을 보 았다.
“그리고 앞으로 이놈이 여러분 들을 보게 될 겁니다.”
“저희를요? 저희는…… 귀신인 데?”
“놈이 먹은 건 저승 음식입니
다. 저승 음식을 먹으면 귀신이 보이게 됩니다.”
“아......" 아!”
강진의 말에 순간 여자 귀신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 놈이 우리를 본다고 요?”
여자 귀신의 표정과 목소리에 강진이 아차 싶었다.
‘이런…… 귀신이 저놈을 무서 워하는구나.’
사람이 귀신을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은 여자 귀신이 나쁜 놈을 무서 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강진의 실수였다. 여자 귀신들이 나쁜 놈을 괴롭히 게 해 주려 했는데... 여자 귀
신들에게 나쁜 놈은 자신을 성폭 행하고 죽인 무서운 놈이었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어쩌지?’
이래서는 문제다. 무서운 귀신
이 겁을 주고 두렵게 만들어야 지, 반대로 사람을 무서워한다 면…….
강진이 당황스러워할 때 말이 없던 귀신이 그를 보았다.
“잠깐…… 이놈이 우리를 볼 수 있다고요?”
이때까지 말이 없던 다른 여자 귀신의 물음에 강진이 그녀를 보 았다. 그리고 강진은 슬며시 고 개를 숙였다.
여자 귀신은 무척이나 두려운
모습이었다. 목은 덜렁거리고 얼 굴은 함몰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한쪽 눈은 터져나간 듯 검은 구멍까지 있었다. 그런 여 자 귀신을 보던 강진이 입을 열 었다.
“네.”
강진의 말에 여자 귀신이 미소 를 지었다.
흠칫!
그리고 그 미소에 강진은 등줄 기가 서늘해졌다. 그 미소가 너
무 차갑고 오싹하게 느껴진 탓이 었다.
“나를 볼 수 있다는 거지……
싸늘한 얼굴을 한 여자 귀신의 모습에 강진이 침을 삼켰다.
꿀꺽!
그런 강진의 모습에 여자 귀신 이 웃었다.
“좋네.”
스윽!
그러고는 여자 귀신이 다른 여
자 귀신들을 보았다.
“너희들, 이 자식 무서워할 필 요 없어. 우리는 귀신이고, 이 자 식은 사람이야. 우리를 볼 수는 있어도…… 또 죽일 수는 없어.”
“그건…… 그렇지만……
겁을 먹은 듯한 다른 귀신의 말 에 여자 귀신이 단호하게 말했 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여자 귀신이 다 른 이들을 보며 말했다.
“이놈이 겁먹은 여자한테 어떻 게 하는 줄 알지?”
꿀꺽!
여자 귀신의 말에 다른 귀신들 이 침을 삼키자 여자 귀신이 말 했다.
“너희들이 겁먹은 것 알면 이 자식은 귀신한테도 몹쓸 짓을 할 놈이야.”
“그럼 어떻게 해요?”
한 여자 귀신의 말에 여자가 입 을 열었다.
“어떻게 하기는. 우리가 아닌 저놈이 겁을 먹게 해야지.”
말을 하며 여자 귀신이 자신의 목을 옆으로 비틀었다.
우두둑!
분명 뼈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 만, 강진은 귀에 뼈마디 부러지 는 듯한 소리가 들린 듯했다.
여자 귀신이 자신의 덜렁거리는 목을 옆으로 비틀어 목뼈를 드러 냈으니 말이다.
‘오늘…… 잠은 다 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