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시간이 흘러 강진과 인턴들은 11월 중순을 맞이하고 있었다. 팀원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강진 의 자리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나쁜 놈의 구형이 방송이 되고 있었다. 워낙 사회 이슈가 크고 죄질이 극악한 범죄 라 중계까지 하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인권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 있었지만…… 욕만 바 가지로 먹고 쏙 들어갔다.
어쨌든 모니터에서는 판사가 나 쁜 놈의 죄를 일일이 말하고는 구형을 내렸다.
[사형에 처한다.]
“나이스!”
“잘 됐다.”
짝짝짝!
사형이라는 말에 팀원들이 모두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수 소리가 다른 곳에서도 들려 오는 것을 보면 다른 팀들도 지 금 이 방송을 보고 있는 모양이 었다.
그리고 곧 화면에 나쁜 놈의 모 습이 잡혔다. 나쁜 놈은 다크서 클이 짙게 드리우고 얼굴이 무척 초췌해 보였다.
게다가 입술도 갈라지고 계속 손가락을 깨물고 있는 것을 보니 그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 쁜 놈 옆에 귀신들이 우르르 몰 려서 그를 향해 목을 비틀고 내 장을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모니터에 보이는 귀신들의 모습 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귀신들이 많네.’
화면에 보이는 것만 해도 셀 수 가 없을 정도이니 재판장에 귀신 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최호철의 말에 의하면 전국 각 지에서 귀신들이 몰려와서 나쁜 놈을 괴롭히고 잠을 재우지 않는 다고 했다.
게다가 귀신들이 계속 붙어 있 으니 몸에 음기가 쌓여 몸도 나 빠지고 말이다.
“그나저나 저 자식 변호사도 미 친 거 아냐? 귀신이 보이는 상태 라고 심신미약이라니……
워낙 죄질이 나빠 일반 변호사 들이 안 받으려 해 국선 변호사 가 맡았는데, 그래도 변호사라고
나쁜 놈을 심신미약으로 변호를 했었다.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그 교수님 말씀이 변호사가 머 리 쓴 거라고 하던데요.”
“머리?”
“심신미약으로 할 근거가 있기 도 했지만…… 사실은 심신미약 을 개정시키려고 한 거래요.”
“개정‘?”
“이번에 변호사가 심신미약으로 변호를 해서 여론이 아주 안 좋 아졌잖아요. 그 덕에 국회에서 심신미약 상태라 해도 죄질에 따 라 형을 가감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해야 한다는 법 지금 준비 중이잖아요.”
“아! 일부러 노렸다는 거야?”
“그래서 국선들이 아무도 안 맡 으려고 하는 걸 그 사람이 일부 러 맡았대요. 자기가 심신미약으 로 변호를 하면 국민 여론이 들 고일어날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전에도 심신미약을 주장한 범 죄자들은 많았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니까요.”
“뜻은 좋은데…… 인터넷에 그 변호사 죽일 놈 됐잖아. 그러다 가 변호 못 맡아서 일 못 하면 어떻게 하려고?”
임호진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국선이 잖아요.”
“아……
국선은 나라에서 주는 일감이
있으니 일 끊어질 걱정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욕 바가지로 먹을 텐 데…… 대단하네.”
임호진의 말에 이상섭이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우리나라 사형 구형은 해도 집 행은 안 하잖아요.”
사형이 폐지가 되지는 않았지 만, 사형을 마지막으로 집행한 것이 1997년이었다.
그동안 사형이 구형된 범죄자가
있었지만 그들 모두 집행은 되지 않고 감옥에 있었다.
그러니 사형을 받아도 결국은 무기징역을 받은 것과 같았다.
“에이! 사형을 시켜 버려야 하 는데. 그런 놈한테 내가 낸 세금 으로 밥을 먹인다는 걸 생각하 면…… 내가 이러려고 일을 하나 싶다.”
말을 하던 임호진이 고개를 저 었다.
“생각하면 속만 쓰리고 가슴만
아프니까, 이제 일들 시작하자 고.”
“그러시죠.”
이상섭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자 임호진이 말했다.
“강진, 동해. 숙제 확인하자.”
임호진의 말에 최동해가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는 서류철을 하나 들고 왔다.
인턴들과 거의 석 달을 지내서 그런지 이제 임호진은 최동해와 강진에게 편하게 말을 놓았다.
석 달이면 친해질 때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최동해가 다가오자 임호진이 말 했다.
“아이템 정했어?”
임호진의 말에 최동해가 입을 열었다.
“최루액 분사기가 좋을 것 같습 니다.”
“저는 휴대용 소형 GPS로 정했 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임호진이 말했 다.
“둘 다 방범 아이템이네.”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과장님께서 요즘 시기에 가장 잘 팔릴 만한 물건을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최동해 씨 생 각에 요즘 강력 범죄에 대한 경 각심이 큰 시기이니 방범 아이템 이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강진의 답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큰 사건과 사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슈가 되는 일이 생 기면 그와 관련이 있는 아이템들 이 잘 팔리게 되어 있어.”
임호진은 나쁜 놈 사건이 보도 가 된 후 강진과 최동해에게 지 금 팔 수 있을 만한 아이템을 찾 아보라고 했었다.
물론 나쁜 놈 사건과 관련이 있 다 없다는 말은 빼고 말이다. 임 호진이 원한 것은 사회 이슈와 관련이 된 아이템을 찾을 수 있 느냐 없느냐였다.
“이런 사건 가지고 물건 팔아먹 는 것이 나빠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사건이 또 생기지 않도록 그에 맞는 물건을 파는 것도 우 리들의 일이야. 사람이 물에 빠 져 죽었다는 뉴스가 나면 구명조 끼를 팔고, 미세먼지 심할 때는 마스크를 파는 거지. 그래야 사 람들이 사건 사고에 대비를 할 것 아니겠어.”
맞는 말이다. 비가 올 때는 우 산을 팔아야 하는 것처럼 사건 사고도 그에 맞는 물건을 팔아야
사람들이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강진의 답에 임호진이 최동해를 보았다.
“너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네.”
“회사 다니면 바쁘겠지만, 뉴스 는 잘 챙겨서 보도록 해.”
임호진의 말에 최동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아이템은?”
임호진의 물음에 최동해와 강진 이 자신들이 고른 아이템을 설명 했다.
최동해 것은 물처럼 발사하는 최루액 분사기였다. 물총처럼 쏘 아지는 거라 스프레이보다 바람 의 영향을 덜 받고 많은 양을 상 대에게 맞출 수 있는 장점이 있 었다.
강진의 것은 귀걸이형 소형 GPS로 핸드폰과 연동이 되는 상 품이었다. 위급 시 몸통만 잡아
당기면 정해진 핸드폰 다섯 개에 구조 신호와 위치가 발신되는 장 치였다.
그리고 일 분 동안 핸드폰 조작 이 되지 않으면 112에도 신고가 되고 위치가 발신이 되도록 되어 있었다.
강진은 토요일 점심 장사를 준 비하고 있었다.
‘인턴 남은 기간은 앞으로 한 달 ’
9월부터 12월까지 인턴 기간이 지만, 정확히는 넉 달이 아니라 석 달 반이었다.
12월 10일까지만 인턴 기간이 니 말이다. 그래서 강진은 앞으 로 주말 점심, 저녁 장사와 퇴근 후 저녁 장사는 빼지 않고 잘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인턴이 끝나고 난 후부 터 본격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 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가게에는 배용수 한 명 을 제외하고는 귀신들이 없었다. 귀신이 많으면 손님이 안 들어오 니 말이다.
강진은 아크릴판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메뉴판 고치게?”
“영업시간만 따로 적어 놓으려 고.”
말과 함께 강진이 아크릴판을 들어 보였다.
〈영업시간
토, 일 오전 11시-오후 2시. 오 후 5시—8시.
평일 오후 6시-8시.
드시고 싶은 것을 만들어 드립 니다.〉
아크릴판을 가게 밖에 걸어 놓 은 강진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 다.
“일단 재료 확인부터 할까.”
생각과 함께 강진이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오늘 들어온 재 료들을 확인했다.
늘 확인하고 살피는 것이지만, 신수용이 보내주는 식재료는 언 제나 좋았다.
재료들을 확인하던 강진의 눈에 김치 통이 보였다. 김치 통을 꺼 내 뚜껑을 열자 맛있게 익은 김 치 냄새가 시큼하게 맡아졌다.
하지만 김치 통 안에는 김치가
몇 쪽 있지 않았다.
“아! 김치!”
깜빡했다는 생각을 하며 강진이 한쪽에 있는 김치냉장고를 열었 다.
김치냉장고 안에는 김치가 한 통 남아 있었다. 묵직한 김치 통 을 꺼낸 강진이 뚜껑을 열어 안 을 확인했다.
군침이 도는 상큼하고 시큼한 묵은지 냄새를 맡으며 강진이 다 시 뚜껑을 덮었다.
그러고는 김치 통 위에 팔을 올 리고는 전화를 꺼냈다.
“김치도 주문해 놔야겠네.”
중얼거림과 함께 강진이 신수용 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족한 물건 있으세요?]
“김치가 떨어졌습니다.”
[아! 아!]
아! 소리만 하는 신수용의 목소 리에 뭔가 불안함을 느낀 강진이 말했다.
“저기, 무슨 문제라도?”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 김치와 된장, 간장 같은 장 종류는 어머니가 직접 담그셨 습니다.]
“아!”
강진도 신수용이 했던 아! 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신 수용이 한 말은…….
“김치와 장은 제가 담가야 하나 요?”
[그동안 제가 식재료를 가져다
드렸지만 장 종류는 따로 안 가 져 다드렸잖습니 까.]
“그야 여기 많아서……
[아마 지금쯤이면 장도 많이 떨 어졌을 겁니다.]
신수용의 말에 강진이 한쪽에 있는 장 항아리를 보았다. 주방 에는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간 장이 담겨 있는 항아리가 따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장도 많이 떨어졌 던데.’
“그럼 장과 김치를 제가 담가야 하는 겁니까?”
[일이 년 쓸 장과 김치는 있는 데…… 담그시기는 해야 할 겁니 다. 김치와 장이라는 것은 익어 야 맛이 드는 거니까요. 거기 있 는 김치와 장도 다 삼 년 숙성이 된 음식입니다.]
“아!”
신수용의 말에 강진이 김치 통 에서 팔을 슬며시 치웠다. 맛이 있다 생각을 했지만 삼 년이나 숙성이 된 귀한 금치일 줄은 생
각을 못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이 년 쓸 장과 김치 가 있다는 말씀은?”
[어머니께선 장과 김치를 해마 다 담그셔서 산속 토굴에 보관을 하셨습니다. 거기에 있는 김치와 장이면 앞으로 이 년 동안은 쓸 분량이 되기는 할 겁니다.]
“산? 토굴?”
[강원도에 한끼식당에서 사용하 는 토굴이 있습니다. 언제 시간 되시면 같이 한 번 가시죠.]
“그럼 저야 감사하죠.”
[그럼 김치와 장 가져다드릴까 요?]
“김치와 장 안 담가도 되나요?”
[장사 이 년 만 하실 거면 안 담그셔도 되겠죠.]
조금 장난기 섞인 신수용의 말 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담가야겠네요.”
[혼자 담그는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누구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겁 니까?”
[김장하실 때마다 도와주는 이 모님들이 계세요.]
“그래요?”
[김장하실 날짜 정해지면 제가 이모님께 따로 연락해 드리겠습 니다.]
“그럼 언제 담그면 좋을까요?”
[그거야 이 사장님 편한 날 정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장하는 날짜 같은 것도 있을 텐데…… 제가 잘 몰라서요.”
[그럼…… 다음 주 일요일에 담 그시는 건 어떠세요.]
“다음 주 일요일요?”
[마침 제가 사 놓은 배추밭이 다음 주에 수확을 하는데, 배추 가 좋습니다.]
“그럼…… 얼마나 담가야 하 죠?”
[어머니는 천 포기 정도 담그시 던데.]
천 포기라는 말에 강진이 잠시 멍하니 있었다.
“천 포기요?”
[일 년 장사할 김치인데 그 정 도는 담그셔야죠. 게다가…….]
잠시 말을 멈춘 신수용이 말을 이었다.
[이 사장님은 귀신 말고도 사람 들한테도 장사하실 거죠?]
“네.”
[그럼 더 하셔야 할 것 같습니
다.]
“천 포기에서 더요?”
[어머니는 귀신들을 상대로 장 사를 하셨는데도 천 포기가 필요 하셨어요. 그럼 사람들 양을 더 해야 할 겁니다.]
“그럼…… 얼마나?”
[그거야 이 사장님이 결정해야 죠.]
“그럼…… 이천 포기?”
[편하신 대로 하세요.]
신수용의 목소리에 어린 웃음을 느낀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 했다.
“그럼 삼천…… 포기 할게요.”
[잘 생각하셨어요. 그리고…… 메주를 준비하셔야 할 텐데.]
“메주요?”
[장을 담그려면 메주가 기본인 데, 메주를 보통 11월 말에서 12 월 초에 띄웁니다. 그리고 3월이 나 해서 장을 담급니다.]
복잡한 내용을 한꺼번에 많이
듣자 조금 머리가 아파진 강진이 말했다.
“혹시 메주 띄울 때도 이모님이 도와주시나요?”
[글쎄요. 어머니 계실 때는 그 냥 저희들끼리 모여서 했었습니 다.]
“그럼......"
[어머니가 계실 때죠.]
도와달라고 할 것을 알고 선수 를 치는 신수용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메 주 만드는 식재도 김장할 때 같 이 보내 주세요.”
[아!]
“또…… 아! 라고 하시니 긴장 이 되네요.”
강진의 말에 신수용이 웃었다.
[삼천 포기를 가게에서 담글 수 있겠습니까?]
신수용의 말에 강진이 가게를 돌아보았다. 삼천 포기라는 것이 사실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많은 김치를 가게에 서 담그는 것은 강진이 보기에도 무리 같았다.
“그럼 어디서 담그나요?
[이모님들이 사시는 곳이 있습 니다. 토굴도 그곳에 있으니 거 기서 김장하고 토굴에 김치들 옮 기면 됩니다. 내일 당장 쓰실 김 치와 장 보내드리고, 다음 주 일 요일 아침 6시에 제가 데리러 가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한 숨을 쉬었다.
“김장이라……
잠시 생각을 하던 강진이 요리 연습장을 펼쳤다.
다행히 김장과 메주 띄우는 부 분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 다.
문제는…… 그 분량이 엄청나다 는 것이었다.
‘삼천 포기…… 이걸 언제 다 담그냐.’
재료 준비만 해도 하루를 꼬박 달라붙어 있어야 할 분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