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15화 (113/1,050)

114화

강진은 일요일 아침 가게 앞에 서 있었다.

부웅!

일 톤 트럭이 가게 앞에 서고, 창문이 열렸다.

“타세요!”

신수용의 말에 강진이 문을 열 고는 배용수를 보았다.

“가운데는 불편한데.”

“사람인 나보다 더 불편하겠 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고는 가운데에 타며 신수용에 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제 한끼식당에 완전히 정착 한 것 같네.”

“월급 받으니까요.”

배용수의 말에 웃은 신수용이 강진을 보았다.

“한 두 시간 정도 걸리니 주무

세요.”

“운전하시는 분도 있는데 어떻 게……

“말 상대할 사람은 용수도 있으 니 괜찮아요.”

말과 함께 신수용의 트럭이 출 발을 했다.

* *  *

“다 왔습니다.”

신수용의 말에 강진이 눈을 떴 다. 어떻게 자냐고 말은 했지만 사실 조수석에 타서 가면 저절로 눈이 감기는 것이 현실이다.

어쨌든 눈을 뜬 강진이 앞을 보 았다. 앞에는 두 대의 트럭과 한 대의 승용차가 있었다.

그리고 차가 있는 곳에는 신수 호 형제가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신수조의 투덜거림에 차에서 내

리던 신수용이 웃었다.

“이 사장 태우고 오느라 좀 늦 었지. 형은 신수가 여전히 좋네 요.”

신수용의 말에 신수호가 말했 다.

“겉은 좋아도 속은 썩지.”

말을 하며 신수호가 신수조를 보자, 그녀가 무슨 소리인지 모 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신수호가 한숨을 쉬 었다. 그러고는 강진을 향해 작

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강진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말했 다.

“도와주러 오시는 줄 몰랐습니 다.”

“우리도 김장은 해야 하니…… 겸사겸사 모인 겁니다.”

말과 함께 신수호가 한쪽을 눈 짓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손수레 에 쌓여 있는 김치 통들이 보였 다.

‘많이도 가져왔네.’

하지만 강진이 뭐라고 할 사항 은 아니었다. 한끼식당 김장이기 는 하지만, 사실 식재료는 신수 용이 무료로 가져다준 것이다.

그러니 신수 형제들이 김장하면 서 돕고, 김치를 가져간다고 해 도 강진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김치 통을 보던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 있는 건 다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들뿐이었 다.

“김장 여기서 하는 건가요?”

“네.”

손수레를 끌고 사람들이 마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기 뒷산 보이시죠.”

신수용이 마을 뒤로 보이는 산 을 가리켰다. 하지만…….

“다 산인데요.”

말 그대로 마을 주위에는 온통 산이었다. 높냐 낮냐의 차이만 있을 뿐 주위에는 온통 산이었 다.

강진의 말에 신수용이 웃으며 말했다.

“한국은 남향으로 집을 지으니 보통 마을 뒤쪽은 북쪽을 의미합 니다. 그러니 여기서 뒷산은 저 기 있는 산입니다.”

신수용이 한 산을 가리키자 강 진이 산을 보았다.

“산이 꽤 높네요.”

“좋은 산입니다.”

산을 보며 마을 안으로 들어가 던 강진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

다.

‘마을이 이상하네.’

온통 부서지고 폐허가 된 집만 있을 뿐,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 이지 않았다.

게다가 집들이 너무 옛날식이었 다.

“여기 사람이 안 사는 곳 같은 데요?”

“사람은 안 삽니다.”

“그럼?”

“귀신이 살죠.”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보는 신 수용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주위를 보았다.

“귀신도 안 보이는데요?”

“우물가에 있을 겁니다.”

“우물가?”

“여기는 상수도가 안 들어오거 든요. 아! 저기 보이네요.”

말과 함께 강진의 눈에 귀신들 이 보였다.

우물가 옆에 귀신들이 있었다. 열 명 정도 되는 귀신들이 비닐 에 덮여 있는 배추와 무를 보며 서 있었다.

귀신들은 아줌마에서 할머니 정 도였고, 열 살 정도 돼 보이는 귀신도 둘이 있었다.

“이모님!”

신수조가 손을 흔들자 귀신들이 이쪽을 보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 었다.

“왔어.”

“자주 오지.”

“어서들 와.”

반갑게 웃으며 다가오는 귀신들 의 말에 신수조가 웃었다.

“먹고살려니 이럴 때 아니면 오 기 힘드네요.”

“그래도 오니 좋네.”

“호는 더 잘생겨졌네.”

“원래 잘생겼습니다.”

많이 친한 듯 귀신들과 인사를 나누는 신수 형제들의 모습에 강

진의 얼굴에 살짝 놀람이 어렸 다.

‘신수호 변호사가 저런 표정을 짓기도 하네.’

신수호가 늘 무표정하거나 딱딱 한 표정으로 있는 것만 봤지, 저 렇게 웃으며 밝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모님, 여기는 저희 식당 운 영하는 이강진 사장입니다.”

신수호가 강진을 가리키자 귀신 들이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강

진이 고개를 숙였다.

“이강진입니다.”

강진의 인사에 귀신들이 웃으며 다가왔다.

“이렇게 봐서 반가워요. 앞으로 자주 와요.”

“네.”

귀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신수호가 들고 온 쇼핑백에서 무 언가를 꺼냈다.

“만복이 형.”

신수호의 부름에 소년 귀신이 그를 보았다.

“ 응?”

“ 선물요.”

말과 함께 신수호가 쇼핑백에서 꺼낸 것을 들어 보였다.

“우와! 강철남자다!”

쇼핑백에서 나온 것은 강철남자 피규어였다.

“형 생각나서 가져왔어요.”

“ 고맙다.”

환하게 웃는 소년 귀신의 옆에 있던 소녀 귀신이 신수호를 보았 다.

“ 나는?”

“누나 것도 당연히 가져왔죠.”

말과 함께 신수호가 쇼핑백에서 상자를 꺼냈다.

“와! 공주 옷이다.”

상자는 겨울 나라 공주 의상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강진이 살

짝 신수용에게 물었다.

“형? 누나요?”

“우리가 어렸을 때도 저 모습이 었으니까요.”

신수용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은 나이를 먹지 않지만,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

“그런데 김장 도와주신다는 이 모님들이 저분들이세요?”

“네.”

“귀신이 어떻게 김장을 도와줘

요?”

“이 바닥이 돈만 있으면 안 되 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돈?”

의아해하는 강진을 보며 신수용 이 신수호를 보았다.

“두치 형 부를까요?”

신수용의 말에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러.”

신수호의 말에 신수용이 핸드폰

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형, 저요. 우리 김장하려고요. 그럼요. 벌써 11월 말인데. 네.”

통화를 끝낸 신수용이 말했다.

“지금 일 처리하고 십 분 후에 오신대요.”

“그럼 준비하자.”

신수호가 앞장서서 배추가 있는 곳으로 가서는 비닐들을 걷기 시 작했다.

촤아악! 촤아악!

우물가 한 쪽에 가득 쌓여 있는 배추와 무, 채소들이 모습을 드 러냈다.

“와……

그 엄청난 양에 놀란 강진이 눈 을 동그랗게 뜰 때, 아줌마 귀신 이 신수조에게 말했다.

“TV가 안 나와.”

“안 나와요?”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 같아.”

아줌마 귀신의 말에 신수조가

한쪽에 조금 멀쩡하게 생긴 집으 로 가서는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붕에는 주위와는 어울리지 않 게 태양열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 다.

패널에 떨어진 낙엽들을 치우던 신수조가 말했다.

“선이 빠졌네요.”

그러고는 신수조가 주머니에서 맥가이버 칼을 꺼내서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귀신들 보라고 TV 를 설치해

놨나 보네.’

한끼식당 귀신들도 할 일 없으 면 TV나 보고 있으니 말이다.

“이강진 씨.”

신수조를 보고 있을 때, 신수호 가 그를 불렀다.

“네?”

“같이…… 안 하십니까?”

“해야죠. 뭐부터 할까요?”

“일단 물부터 긷죠.”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우물로

가서는 물통을 던져 물을 끌어올 렸다.

촤아악! 촤아악!

물을 긷는 동안 신수호가 어디 선가 대야들을 가지고 나왔다. 강진이 물을 긷고 신수호가 그 물로 대야를 닦고 있을 때, 강두 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장하기 좋은 날씨네요!”

환하게 웃으며 오는 강두치는 양손에 뭔가를 바리바리 들고 있 었다.

강진의 시선이 닿자 강두치가 봉지 하나를 들어 보였다.

“돼지고기입니다.”

“돼지고기요?”

“김장할 때는 수육 아니겠습니 까.”

웃으며 강두치가 봉지를 한쪽에 내려놓았다.

“JS 정육점?”

“고기 역시 이승하고는 비교할 수 없죠.”

웃으며 강두치가 귀신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 고객님들도 잘 지내셨습 니까.”

“두치도 잘 있었어?”

“그럼요.”

다른 귀신들과 달리 귀신들은 강두치를 두려워하거나 하지 않 고 반갑게 맞이했다.

귀신들과 인사를 나눈 강두치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그럼 일단 여기 사인 부탁드립 니다.”

강두치가 내미는 종이를 받은 강진이 그것을 보았다.

〈고용 계약서

한끼식당 이강진은 11월 **일 이순혜 외 10귀를 24시간 고용 한다.

한끼식당 이강진은 이순혜 외 10귀에게 45만 원을 지급한다.〉

강두치가 내민 계약서를 본 강 진이 물었다.

“그 45만 원이…… 각자죠?”

“물론입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 각을 했다.

‘사십오만 원……

일당 치고는 높은 가격이다. 하 지만…….

스윽!

강진이 한쪽에 쌓여 있는 배추 를 보았다.

‘삼천 포기……

저 배추를 보니 일당이 비싸 보 이지 않았다. 게다가 24시간 고 용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8시간씩 3일 일당이다. 그리고 일 년 동안 먹 을 김치가 아닌가.

고민을 하던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귀신이신데 어떻게 김장을 도와줄 수 있는 거죠?”

“고용 계약을 하시면 이곳에서 만큼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습 니다.”

“이곳이 뭔가 특별한 곳인가 요?”

“사람이 살지 않고 귀신만 사는 곳이라 귀기가 충만하죠. 그래서 다른 곳보다 귀신이 움직이기 편 합니다.”

“그래요?”

“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한쪽에서 배추 와 무들의 상태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강진의 시선이 닿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배추 상태 좋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강두치를 보았다.

“그럼 용수도 계약하면 물리력 을 행사할 수 있습니까?”

“여기서는 가능합니다.”

“그럼 한끼식당에서는 안 되는

겁니까?”

강진의 물음에 강두치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가능합니다.”

“돼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대신…… 한끼식당에서는 더 비

쌉니다.”

얼마나요?”

“한 열 배 정도 더 비싸다고 보

시면 됩니다.”

열 배면 사백오십이다. 그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용수도 오늘만 계약 따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말을 하며 강두치가 계약서에 배용수의 이름을 적고는 돌려주 었다.

계약서를 받아 든 강진이 강두 치의 한 손에 들려 있는 봉지를 보았다.

봉지에는 뭔가 네모난 것이 들 어 있었다.

“그런데 그건 뭐예요?”

“아!”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웃으며 봉지를 열어 안에 있는 것을 꺼 냈다.

강두치가 꺼낸 것은 플라스틱 김치 통이었다.

“김장 김치는 원래 나눠 먹어야 제맛 아니겠습니까?”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하긴 김장 김치는 나눠야죠.”

“강진 씨가 좀 아시네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시방이든, 음식점이 든, 아니면 현장이든 누군가 김 장을 하면 맛이라도 보라고 한 포기씩은 나누는 것이 인심이었 다.

다만…… 강두치가 가져온 통이 좀 큰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말

이다.

‘그동안 신세 진 것도 있고.’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서류에 서명을 했다.

스스슥!

서명이 끝나는 것과 함께 귀신 들의 모습이 짙어졌다.

화아악!

“어?”

자신의 몸이 조금 더 짙어지는 것을 느끼고 놀란 배용수가 눈을

크게 뜰 때, 강진이 그에게 우물 을 길던 통을 내밀었다.

“자! 물 떠.”

“내가?”

“그럼 사장인 내가 이런 일 하 리‘?”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난 귀신…… 어!”

말을 하던 배용수의 얼굴에 놀 람이 어렸다. 강진이 휙 하고 물 통을 던졌는데 그게 손에 잡힌 거다.

“어?”

깜짝 놀라 물통을 보는 배용수 를 보며 강진이 우물을 가리켰 다.

“24시간 동안은 몸을 움직일 수 있대.”

“그래?”

“빨리 하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멍하니 물통을 보다가 웃었다.

“그래.”

그러고는 배용수가 물을 긷기 시작하자 강진이 다른 귀신들을 보았다.

귀신들은 물리력이 사용되는 것 을 알자 바로 김장할 준비를 하 기 시작했다.

“일단 배추부터 다듬고 염장부 터 하자고.”

“그러자고.”

말과 함께 아줌마 귀신들이 배 추를 잡고는 빠르게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한편 신수호와 신수귀 일행은 어디선가 대야를 가져다가 물을 받기 시작했다.

손질한 배추를 염장하려면 일단 물이 필요하니 말이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슬며시 물을 길으려 할 때, 신수호가 말 했다.

“이 사장님은 배추 손질을 같이 하십시오.”

“저도 같이 힘 쓰는 것부터

“앞으로 음식점을 하려면 김치 는 기본으로 하셔야 합니다. 그 러니 김장하는 걸 처음부터 배워 두는 것이 좋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배추 손 질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 귀신들 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 강진에게 는 우물을 긷는 힘쓰는 일보다 김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경험이 더 필요했다.

그에 강진이 배추를 손질하는 아줌마 귀신에게 다가갔다.

“저는 뭘 해야 할까요?”

강진의 말에 아줌마 귀신이 웃 으며 배추 손질하는 방법을 알려 주자 강진이 곧 따라 하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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