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19화 (117/1,050)

118화

강진과 신수호 형제들은 마을 뒤에 위치한 동굴에 김치가 담긴 통들을 옮기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한끼식당에서 사용 하는 김치와 장들을 보관하는 동 굴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김치 통들을 동굴 안으로 끌어 다 넣은 강진이 동굴 안을 보았 다. 동굴 안은 길게 길이 나 있

었는데, 그 길을 따라 통들이 끝 을 알 수 없게 펼쳐져 있었다.

“안 힘들어?”

할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웃 었다.

“산삼 국물을 여러 사발 먹었더 니 괜찮습니다.”

산삼을 넣고 만든 수육을 먹고, 그 육수에 된장을 풀어서 국으로 도 먹었다.

국물 한 방울도 아깝다는 생각 에 최대한 다 먹어 버린 것이다.

거기에 삼십 년 묵은 도라지까 지 먹었다.

허연욱이 돼지고기와 도라지는 궁합이 좋지 않아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를 했지만…… 귀신들이야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고, 강진은 삼십 년 묵은 도 라지는 산삼보다 좋다는 말에 혹 해서 그냥 먹었다.

다행히 허연욱의 우려와는 달리 딱히 부작용이 생기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냥 느낌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몸에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물론 반복적인 일에 허리가 아 파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 이다.

“가끔씩 와.”

“그럼요. 자주 와야죠.”

“그럴 거야?”

“와서 요리도 배우고 맛있는 것 도 먹어야죠.”

“그럼 우리야 좋지.”

환하게 웃는 할머니를 보며 강 진이 말했다.

“그런데 저, 메주 쑤실 줄 아세 요?”

“우리 때는 다 집집마다 장도 담그면서 살았는데, 그걸 모르겠 어?”

“그럼 혹시 다음 주에 저 메주 쑤러 와도 될까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메주 쑤는 건 어렵지 않은

데…… 여기서는 띄우기가 어려 워.”

“왜요?”

“메주는 따뜻해야 하는데, 여기 는 따뜻하지가 않잖아.”

“아……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메주는 여기서 안 만들 었나 보구나.’

원래는 김장할 때 메주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신수용이 메 주는 다음에 쑤라면서 콩을 가져 오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여기서는 메주를 쑤기 어려운 것을 알고 안 가져온 모 양이었다.

그에 잠시 생각을 하는 강진에 게 신수용이 말했다.

“나가시죠.”

“네.”

신수용 형제들과 동굴을 나온 강진은 어느새 환하게 밝아진 하

늘을 볼 수 있었다.

“어?”

하늘을 보는 순간 강진의 얼굴 에 순간 당황이 어렸다. 동굴 안 에 김치 통들을 넣다 보니 어느 새 해가 떠오른 것이다.

그에 강진이 급히 핸드폰을 보 았다.

“허억!”

8시 53분.

시간을 본 강진이 주위를 급히

두리번거리고는 강두치를 찾았 다.

강두치는 양손에 김치 통을 든 채 웃으며 신수호와 이야기를 나 누고 있었다.

“강두치 씨.”

“네?”

강진의 부름에 강두치가 그를 보자 강진이 말했다.

“저 여기서 서울까지 갈 수 있 죠?”

“차가 있는데 못 갈 이유가 없 죠.”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출근 시간에 늦어서요. JS 금융을 통해서 갈 수 있을까 해서요.”

JS 금융을 통하면, 문 하나를 지나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이동 할 수 있다.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급하시면 그렇게 하세요.”

말과 함께 강두치가 신수호를 보았다.

“다음에 또 보자고.”

“그렇게 하지.”

그러고는 강두치가 동굴의 문에 다가갔다.

“가시죠.”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신수호에 게 고개를 돌렸다.

“저 먼저 가겠습니다.”

“김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수호가 차에서 김치 통을 가 리켰다. 김장을 하고 나서 강진 도 김치 통을 미리 하나 따로 챙 겨 놓은 것이다.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이런 것까지 가져다주라고 하기 미안한 강진이 트럭에서 김치 통 을 꺼내 손으로 쥐고는 귀신들을 보았다.

“김장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기는…… 와 줘서 우리가

더 고맙지.”

“아닙니다. 제가 시간이 날 때 마다 자주 찾아오겠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한쪽에 있는 만복을 향해 말했다.

“형! 또 올게요.”

강진의 말에 만복이 잠시 우물 쭈물하다가 뒷짐 지고 있던 손을 꺼내 봉지를 하나 던졌다.

툭!

강진이 봉지를 잡았다.

꽤 두툼하고 묵직한 것에 강진 이 만복을 보았다.

“좋아하는 것 같더라.”

만복의 말에 강진이 봉지를 열 었다. 봉지 안에는 도라지가 여 럿 들어 있었다. 그것도 무척 크 고 두툼한 것이 말이다.

“형.”

“맛있게 먹고, 지각했다고 뭐라 고 하는 사람 있으면 그거라도 하나 줘.”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와! 산삼 캐 줄 게.”

“꼭 오겠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강진이 신수호의 트럭 앞자리에서 봉지를 두 개 더 꺼냈다.

만복이 먹으라고 챙겨 준 산삼 과 석청 남은 것이었다.

“형, 잘 먹을게요.”

강진의 말에 만복이 그를 보다 가 훌쩍거리며 몸을 돌렸다. 마 치 설날에 친척 형을 만난 동생

이, 헤어질 때 아쉬워서 우는 것 같았다.

“형!”

“가! 그리고 빨리 와.”

만복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보육원 동생들이 떠올랐다. 보 육원 동생들도 가끔 봉사를 하러 온 대학생 형들이나 누나들한테 정을 많이 주고는 했다.

하루밖에 안 되는 봉사 시간에 도 정이 들어서 형과 누나들이

가면 눈물 펑펑 쏟았던 것이다.

그리고 만복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지 오래됐다고 해도 정이 그리운 것은 만복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보육원…… 밥이라도 해 주러 한 번 가봐야겠네.’

“다음에 올 때는 더 맛있는 것 해 줄게요.”

훌쩍!

“그……러든가.”

만복의 말에 웃는 강진에게 강 두치가 말했다.

“56분이에요.”

“아! 그럼 다음에…… 아니 다 음 주에 또 올게요.”

그러고는 강진이 서둘러 강두치 에게 가자, 그가 동굴 문을 열었 다.

강진하고 강두치가 사라지는 것 을 보던 배용수가 놀라 말했다.

“야! 우리는!”

하지만 이미 강진은 문 사이로 사라지고 난 후였다.

덜컥!

문을 열고 나온 강진은 회사 지 하 1층에 있었다. 문을 사이로 두고 강두치가 말했다.

“다음부터도 거기 갈 때는 JS 금융 통해서 가세요.”

“그래도 될까요?”

“시간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많 이 이용합니다. 그럼 김치 잘 먹 을게요.”

강두치가 김치 통을 들어 보이 고는 문을 닫았다.

덜컥!

문이 닫히자 강진이 서둘러 엘 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나저나 이거 혼나겠는데?’

복장은 청바지에 가벼운 남방,

거기에 김치 통과 검은 봉지까지 들고 있으니 말이다.

‘일단 출근 도장 찍고 집에 금 방 다녀오겠다고 해야겠다. 그리 고……

지금껏 어떠한 아르바이트를 하 든 강진은 지각은 절대 하지 않 았다.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것은 신용을 어기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강진과 일을 한 사람들 은 그를 좋게 생각하는 것이었 다. 신용이 좋으니 말이다.

스윽!

강진이 봉지를 보았다.

‘도라지로 뇌물을……

만복도 혼날 것 같으면 도라지 로 뇌물을 주라고 했으니 말이 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둘러 엘리 베이터에 탄 강진은 자신을 이상 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 며 슬며시 벽으로 몸을 붙였다.

“이강진 씨, 복장이 왜 그래 요?”

그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강 진이 고개를 돌리니 해외사업 2 팀 오성실 부장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그러고 출근한 겁니 까?”

의아한 둣 자신을 보는 오성실 부장의 말에 강진이 어색하게 웃 으며 말했다.

“강원도에서 김장을 하고 오느 라……

“그래도 옷은 갈아입고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출근하고 양해 구한 후에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오려고요.”

오성실이 작게 침음을 토하는 것에 강진은 쥐구멍이라도 들어 가고 싶었다.

무역이란 사람을 만나고 비즈니 스를 해야 하는 일이다. 복장부 터가 비즈니스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가게의 첫 손님이라 할 수 있

고,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 는 오성실이 이런 표정을 지을 정도면 복장이 확실히 문제기는 한 모양이었다.

‘지각 안 하는 것만 걱정을 했 는데……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힐끗 봉지를 잡고는 슬며시 도라지 한 뿌리를 빼냈다.

“부장님.”

오성실이 그를 보자 강진이 슬 며시 도라지를 내밀었다.

“팀원분들하고 드십시오.”

“이건 뭡니까?”

도라지를 본 오성실이 의아한 듯 보자, 강진이 말했다.

“도라지 입니다.”

“도라지?”

도라지라는 말에 오성실이 고개 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도라지를 주다니?

그것도 포장을 한 것도 아니고, 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채로

말이다.

“김장하는 곳에서 몇 뿌리 캤습 니다. 그리고…… 삼십 년 된 겁 니다.”

강진이 슬며시 뒷말을 붙이자 오성실이 그를 보았다.

“도라지도 삼십 년 된 것이 있 습니까?”

처음 들어 본다는 듯 의아해하 는 오성실의 말에 강진이 뭐라 말을 하려 할 때, 한쪽에 있던 남자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삼십 년 된 도라지?”

놀람에 찬 말에 오성실이 고개 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 부장님.”

“오 부장.”

고 부장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 고는 사람들을 밀치며 다가왔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길을 비켜 주었다.

임원 바로 밑이 부장이다. 즉 일반 사원 중 가장 높은 직급이

니 좁아도 길을 터주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와 오성실의 손에 들린 도라지를 보자 고 부장의 눈에 놀람이 어렸다.

“엄청 크군.”

“큰 겁니까?”

“자네는 도라지도 안 먹어 봤 나?”

“먹어 보기는 했지만 반찬으로 나 먹었지. 이런 날것은 처음입 니다.”

“이거 참…… 산삼을 눈앞에 두 고도 모르면 못 캔다고 하더 니……

말을 하던 고 부장이 강진을 보 았다.

“자네가 캔 건가?”

“네.”

“그…… 우리 잠시만 내리세.”

그러고는 고 부장이 내리는 사 람들 틈에 끼어 먼저 내리자 강 진이 급히 말했다.

“저 출근해야 하는데요.”

강진의 말에 고 부장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디 부서지?”

“수출 대행 2팀입니다.”

“그럼 내가 말해 줄 테니까. 잠 시만 이야기하자고.”

고 부장의 말에 오성실 부장이 강진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잠깐이면 될 거야.”

오성실도 조금 어려워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 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고 부장이 손수건을 꺼내고는 말했다.

“그…… 조금만 보세.”

“그러십시오.”

오성실이 도라지를 내밀자 고 부장이 조심스럽게 손수건 위에 그것을 올리려 했다.

“손수건이 더러워지실 텐데요?”

“자네 손에 도라지가 더럽혀지 고 있네.”

고 부장이 조심히 손수건 위에 도라지를 올리는 것을 보며 오성 실이 물었다.

“도라지가 귀한 겁니까?”

“이렇게 큰 도라지는 귀하지.”

그러고는 고 부장이 도라지를 스윽 보다가 머리 쪽을 보았다.

“둘, 넷, 여섯, 여덟…… 서 른…… 서른셋? 삼십삼 년……

꿀꺽!

침을 삼키는 고 부장의 모습에 오성실이 말했다.

“좋은 겁니까?”

“이건 산도라지야. 그것도 33년 이 된 거지.”

“일반 도라지와는 다릅니까?”

“일반 도라지가 소형 경차라고 하면 산도라지는 스포츠카라고 할 수 있지.”

그러고는 고 부장이 오성실을

보았다.

“게다가 이건 33년산이야.”

“오래됐네요.”

“이 정도면 그냥 산삼이라고 봐 도 무방하지.”

오래 묵은 도라지가 얼마나 대 단한지는 몰라도, 산삼이라는 말 에는 오성실이 놀란 듯했다.

“산삼?”

“자네는 이런 쪽에는 잘 모르는 군.”

“고 부장님이 잘 아시는 거죠.”

“내가 산을 좋아하기는 하지.”

두 사람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저…… 저희 과장님한테 전화 라도 한 통 해 주십시오.”

강진의 말에 오성실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임 과장, 다른 것이 아니라 이 강진 씨 잠깐 나하고 어디 좀 갔 다 올 데가 있어. 응, 미안해. 내 가 잠깐 뭐 좀 시키고 30분까지 보낼게. 고마워.”

그걸로 통화를 끝낸 오성실이 강진을 보았다.

“30분이면 집에서 옷 갈아입고 오기 충분하겠죠?’’

오성실의 배려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 안 고 부장은 연신 도라지를 보 고 있었다.

“좋군. 좋아……

고 부장이 웃으며 도라지를 보 다가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슬쩍 강진이 들고 있는 봉지를 보았다.

“더 있나?”

“있기는 한데요……

“팔 생각 없나?”

고 부장의 눈에는 갖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 차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