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25화 (123/1,050)

124화

주조장 앞에 있는 평상에는 임 호진과 노인이 앉아 막걸리를 먹 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턴이야?”

“네.”

두 사람이 답을 하자 노인이 양 은그릇에 막걸리를 따라 주었다.

“못된 상사 만나서 이런 곳까지 다 끌려왔네.”

“오니 좋은데요.”

“좋기는 무슨……

노인의 말에 임호진이 문득 강 진을 보았다.

“아! 반찬 가져와.”

“알겠습니다.”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차 트렁 크에서 쇼핑백을 가지고 왔다.

“뭐야?”

“안주도 없이 술만 드실 것 같 아서, 안주 몇 개 해왔습니다.”

“막걸리는 김치면 족하지 뭘 또 해 와?”

“그거야 젊은 사람들 이야기지, 어르신 나이 되시면 잘 챙겨 드 셔야죠.”

그러고는 임호진이 보자기를 벗 겨내자 그 안에 반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친구가 만든 건데 맛이 좋 올 겁니다.”

임호진이 강진을 가리켰다.

자네가?”

“제가 작은 식당을 해서요.”

“인턴이라며?”

“인턴이니 식당도 하는 겁니다.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노인이 막걸리를 한 모금 먹고는 반찬들을 보았 다.

반찬은 나물과 김치, 거기에 어 묵볶음과 두부조림이며 장조림 등이 있었다. 그리고 볶지 않은 제육도 있었다.

오만 원이나 받았는데 반찬만

챙기기 그래서 미리 재워져 있는 제육도 챙겨온 것이다.

반찬을 보던 노인이 김치를 집 어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몇 번 씹다가 강진을 보았다.

“직접 담갔다고?”

“네.”

“우리 죽은 마누라도 김치 맛있 게 담갔는데…… 자네 김치가 더 맛있고만.”

노인의 말에 강진이 힐끗 고개 를 돌렸다. 그들의 옆에 할머니 귀신이 살짝 눈을 찡그린 채 서 있었다.

‘죽은 마누라가 듣고 있습니다.’

강진의 시선에 할머니 귀신의 얼굴에 의아함이 다시 어렸다. 그러고는 살짝 손을 들어 자신을 가리키며 강진을 보았다.

그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 였다. 그 모습에 할머니 귀신이 정말 놀란 듯 입을 떡 벌렸다.

‘귀신 보는 사람 처음 보시나 보네. 그럼 저승식당에도 안 가 보신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어 보인 강진이 노인에게 말했다.

“할머님 김치가 더 맛있겠죠.”

“마누라 김치가 맛있기는 하 지…… 근데 어쨌든 맛있고만.”

말을 하며 노인이 다른 반찬들 을 보았다. 두부조림과 장조림, 그리고 여러 나물이 담겨 있었 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던 노인이 임호진을 보았다.

“자네가 여기 온 지 십 년쯤 되 나?”

“그쯤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만 와.”

그러고는 노인이 주조장을 보았 다.

“조만간 문 닫을 거야.”

노인의 말에 임호진이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아니, 왜 주조장을 닫으세요?”

“둘째 녀석이 사고를 친 모양이 야.”

“사고라면?”

“그 나이 먹고 칠 사고가 돈밖 에 더 있겠어?”

쓰게 웃으며 노인이 말했다.

“집도 날려서 당장 살 곳도 어 려운 모양이야.”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

“이거 정리해서 그놈 살 집이라

도 알아봐 줘야지.”

“그럼 어르신은요?”

“둘째 집에 들어가야지.”

말을 하던 노인이 피식 웃으며 주조장을 보았다.

“나도 이제 힘들어서 슬슬 놓으 려고도 했고, 혼자 지내는 것도 외롭기도 하고.”

노인의 말에 임호진이 입맛을 다셨다.

“오 대째 내려온 가업을 이렇게

넘기시면……

“뒤를 이어 할 사람도 없어. 늦 든 빠르든 접어야 할 일이었어.”

웃으며 노인이 임호진을 보았 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연락 한 번 하려고 했었는데 잘 됐어.”

“저에게요?”

“줄 건 없고, 막걸리나 좀 가져 가.”

“저야 좋기는 하지만…… 아쉽

네요.”

“전통이니 뭐니 해도 어차피 사 람 먹는 음식을 만드는 건데…… 사람들이 안 먹으면 사라지게 되 는 거지.”

노인이 그릇에 막걸리를 따르고 는 꿀꺽꿀꺽 잔을 비웠다. 그러 고는 강진을 보았다.

“자네는 안 먹고 뭘 그리 멍하 니 보고 있나?”

노인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 개를 저었다.

“저는 운전을 해야 해서요.”

“아! 그래, 음주 운전은 나빠.”

노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며 한쪽을 보았다. 강진의 시선이 닿은 곳에서는 할머니 귀 신이 고개를 연신 저으며 뭔지 모를 손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정확히 무얼 이야기하고 싶은지 는 몰라도, 할머니 귀신의 행동 은 분명히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둘째 아들하고 사는 걸 반대하

는 것 같은데

하시지?’

왜 말씀을 안

할머니 귀신을 보던 강진이 몸 을 일으켰다.

“저, 여기 화장실이……?”

“작은 거면 저기 아무 데나 싸 고, 큰 거면 저기로 들어가면 있 어.”

노인이 양조장을 가리키자 강진 이 화장실이 있다는 곳으로 가며 슬쩍 할머니에게 눈짓을 했다.

그 시선에 할머니가 노인을 지

긋이 보다가 강진의 뒤를 따라왔 다.

그런 할머니 귀신을 데리고 화 장실로 향한 강진이 곧 몸을 돌 려 그녀를 보았다.

“왜 그러세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잔뜩 홍분을 한 얼굴로 이 리저리 손짓을 하는 할머니의 모 습에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설마 말씀을 못 하시나?’

그에 강진이 다시 말했다.

“혹시 말씀을……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강진이 고 개를 갸웃거렸다.

‘귀신도 말을 못 하나?’

살았을 때야 신체적인 불편함으 로 말을 못 할 수 있다지만, 육 체가 없는 귀신도 말을 못 하는 것은 조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앞에 말씀을 못 하는 분 이 계시니…….

그에 강진이 말을 했다.

“할아버지가 둘째 아드님과 사 는 것이 싫으세요?”

끄덕! 끄덕!

“그래도 혼자 사시는 것보다는 아드님과 함께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 둣 막 입을 벌렸 지만 소리는…….

“아아아아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만 이 나올 뿐이었다. 답답한 듯 연 신 가슴을 치는 할머니를 보며 강진이 잠시 그녀를 보다가 말했 다.

“할아버지께서 아들하고 안 사 시면 여길 팔 수가 없잖아요.”

끄덕! 끄덕!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할머니의 모습에 강진이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여기 안 파셨으 면 좋겠어요?”

끄덕끄덕!

“왜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주먹을 쥐고는 서로 부딪혔다.

“싸운다고요?”

끄덕! 끄덕!

그러고는 할머니가 옆에 있는, 막걸리가 담긴 통을 손으로 치고 는 밖을 가리켰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었 다.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에게 막걸리가 소중하 다는 의미인가.’

잠시 할머니를 보던 강진이 입 맛을 다셨다.

“근데 할머니께서 싫어하셔도 이미 다.. ”

이야기가 끝난 것 아니냐는 말 을 하려던 강진의 손을 할머니가 잡았다.

스윽!

할머니가 자신의 손을 잡는 것 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아아아. 아아아.”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할머니의 눈 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할머니의 모습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스윽!

그러고는 양조장 밖, 평상이 있 는 곳을 보았다.

‘이거 참...

평상을 보던 강진이 다시 할머 니, 아니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할머니의 손을 보았다.

쭈글쭈글하고, 노인들 특유의 검은 반점이 있는 손…….

‘할머니……

그 손을 보니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강진도 어렸을 때는 부모 님도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었다.

방학 때 가면 할머니께서 참외

도 깎아 주시고, 냇가에 데리고 가서 물놀이도 시켜 주셨다.

‘할머니…… 보고 싶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 계셨 다면 부모님이 돌아가셨어도 보 육원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어렸을 때엔 맞벌 이를 하는 부모님 대신 할머니가 그를 업어 키우시기도 했으니 말 이다.

‘엄마가 쉬는 날 집에 데리고 가려고 하면, 할머니 손 잡고 막

울었다고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함께 강 진이 할머니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알겠어요.”

“아아아.”

할머니의 목소리에 강진이 미소 를 짓고는 양조장을 나왔다.

평상에서는 노인과 임호진이 막 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최동해는 양조장을 둘 러보며 반찬을 하나씩 집어먹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강진이 최동해의 앞에 있는 잔을 보았다.

“형 살짝 맛만 봐도 되냐?”

“운전하셔야죠.”

“그래서 맛만 보려고.”

강진이 젓가락을 들어 보이자 최동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젓가락으 로 막걸리를 찍어서는 입에 넣었

다.

그러고는 살짝 혀를 돌리며 맛 을 보았다.

‘확실히 고소한 맛이 있네.’

잠시 맛을 보던 강진이 물었다.

“다른 막걸리와 달리 고소한 맛 이 나는데……

“잣을 넣거든.”

“잣요?”

“우리 집이 원래는 홍천에서 막 걸리를 만들었거든. 그때 잣으로

막걸리 만들다가 걸려서 이곳으 로 도망을 온 거지.”

노인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각 을 했다.

‘잣이 든 막걸리, 그리고 고소한 맛.’

잠시 생각을 하던 강진이 노인 을 보았다.

“여기 주방이 어디인가요?”

“왜?”

“음식 좀 만들어 드리려고요.”

“여기도 많은데 뭘 또 만들어?”

노인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최 동해를 툭 쳤다.

“얘가 잘 먹어서요.”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자신이 잘 먹는 것은 맞지만, 살을 빼려고 요즘 많이 먹지 않는다.

지금도 안주를 작게 잘라서 깨 작깨작 먹고 있는데 말이다. 그 에 강진이 작게 윙크를 하고는 노인을 보았다.

강진의 말에 노인이 최동해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양조장 들어가면 있어. 근데 냉장고에 딱히 뭐 없는데?”

“있는 걸로 만들어 보겠습니 다.”

“그럼 있는 걸로 해 봐.”

노인의 허락에 강진이 몸을 일 으켰다.

그러고는 양조장으로 향하자 할 머니가 따라왔다. 그러고는 노인 을 가리키며 손짓을 했다.

“저하고 친분도 없는데, 바로 팔지도 마시고 아들 집에 들어가 지 마시라고 하면…… 제 말을 듣지 않으실 겁니다.”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잠시 밖 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런 할머니를 보며 강진이 말했 다.

“할아버지께 음식이라도 만들어 드리고 살며시 말을 할게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그를 보 다가 문득 양조장으로 빠르게 걸 음을 옮기며 손짓을 했다.

따라오라는 손짓이었다.

강진이 뒤를 따라가자 그녀가 양조장 뒤에 있는 작은 문을 향 하며, 한쪽에 있는 대야를 손으 로 가리켰다.

“이거요?”

끄덕!

그에 강진이 대야를 잡자 할머 니가 다른 곳을 또 가리켰다. 거 기에는 숟가락들이 있었다.

대야에 숟가락을 넣자 할머니가 밖으로 나갔다.

스륵!

문을 뚫고 나가는 할머니의 뒤 를 따라 강진이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가 한쪽에 있는 커다란 나무로 가서는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을 보니 짚으로 만든 거적 이 있었다. 여기저기 해지고 문 드러진 것이 아주 오래 방치가 된 것 같았다.

할머니가 한쪽에서 거적을 들추 는 시늉을 하자, 강진이 그것을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 밑에는 짚들이 있었다. 할머 니가 짚을 치우라는 듯 손을 움 직이자 강진이 그것도 치웠다.

그러자 장독대들이 모습을 드러 냈다.

“응?”

장독대를 본 강진이 의아한 듯 그것을 볼 때 할머니가 웃으며 가리켰다.

“열라고 하시는 거겠죠?”

말을 하며 장독대를 연 강진의 입에 순간 침이 고였다. 장독대

를 여는 순간 잘 숙성이 된 김치 의 시큼한 향이 확 터진 것이다.

‘우와……

입맛이 절로 돋는 향에 강진이 입을 손으로 닦았다. 김치를 본 강진이 입맛을 다실 때, 할머니 가 대야를 가리켰다.

그에 강진이 김치를 대야에 조 심스럽게 한 포기 담았다. 그것 을 흐뭇한 얼굴로 보던 할머니가 다른 항아리들도 가리켰다.

강진이 다른 항아리들도 열었

다. 항아리에는 장아찌와 간장과 된장이 담겨 있었다.

‘숙성이 잘 됐네.’

할머니가 고추장과 고추 장아찌 를 가리키자 강진이 숟가락으로 고추장을 떠서 대야에 담고, 고 추 장아찌도 손으로 집어 담았 다.

그 모습에 할머니가 웃으며 짚 들을 가리키자, 강진이 짚들을 원래대로 놓고는 거적으로 덮었 다.

앞장서는 할머니를 따라 주방으 로 들어간 강진은 주위를 둘러보 았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거리가 가득 쌓여 있었다.

“양조장은 깨끗하던데……

강진의 중얼거림에 할머니가 창 피한 듯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귀신이 설거지를 할 수는 없었 다.

그에 강진이 소매를 걷어서는 설거지를 하려고 그릇을 잡자,

할머니가 고개를 젓고는 밥솥을 가리켰다.

‘밥부터 하라는 건가?’

그에 강진이 밥솥을 열었다. 밥 솥에는 색깔이 변색이 되다 못해 모양마저 이상하게 되어 버 린…… 무언가가 있었다.

“하아!”

한숨을 쉬는 할머니를 본 강진 이 슬며시 솥을 꺼내서는 깨끗이 설거지를 했다. 그러고는 할머니 의 지시대로 쌀을 찾아 씻고서

물을 맞췄다.

그때 할머니가 고개를 젓고는 물을 더 붓는 시늉을 했다.

“여기서 물을 더 넣으면 밥이 질어져요.”

끄덕!

밥이 질 것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할머니의 모습에 강진 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물을 조 금 더 부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조금 더 부으 라는 시늉을 했다.

“여기서 더 부으면 죽이 될 텐 데.”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밖을 가리켰다.

“할아버지가 죽처럼 진밥을 좋 아하시나요?”

끄덕! 끄덕!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더는 말 을 하지 않고 그녀가 하라는 대 로 물을 부었다.

그렇게 물을 많이 넣은 쌀을 솥 에 안친 강진이 설거지를 하고는

다시 할머니를 보았다.

“그럼 이제 음식은 어떻게 할까 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찬장을 가리켰다. 그에 강진이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열 어 양념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원래는 하려고 생각해 놓았던 요리들이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해 보면 할아버지에게 가 장 맛있는 음식은 할머니의 음식 일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레시피대로 요 리를 하려는 것이다. 이윽고 강 진은 할머니가 하라는 대로 음식 을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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