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장독대를 옆에 두고 사람들은 막걸리를 먹고 있었다. 막걸리와 안주들을 장독대 옆으로 가지고 와서 먹고 있는 것이다.
장독대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막 걸리를 마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그럼 주조장은 파시고 둘째 아 드님 집으로 들어가시는 건가 요?”
“그렇지.”
“불편하지 않으시겠어요?”
“불편하겠지.”
기분이 좋은 듯, 불편한 이야기 에도 웃는 할아버지를 보며 강진 이 슬며시 말했다.
“그럼 둘째 아드님께서는 앞으 로 어떤 일을 하려고 하시나요?”
“부동산을 해 보려고 한다던 데?”
“부동산요?”
“친구가 부동산을 하는데, 벌이 가 괜찮다고 같이 하자고 한 모 양이야.”
할아버지의 말에 임호진이 입맛 을 다시며 말했다.
“혹시 같이 일하는 것이 투자해 서 동업하자는 것 아닙니까?”
“같이 사업하는 거니까. 어느 정도 돈을 넣기는 해야겠지.”
할아버지의 말에 임호진이 고개 를 저으며 물었다.
“아드님이 부동산에 대해서는
좀 아십니까?”
“친구 따라 땅을 보러 좀 다니 기는 하는 모양이야.”
할아버지의 말에 임호진이 한숨 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그동안은 몰랐다는 거군 요.”
“그렇겠지.”
“자신이 제일 잘 아는 쪽으로 사업을 해도 성공하기가 힘든 것 이 자영업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백 명이 사업을 해도 일 년 내에
망하는 것이 구십 명입니다.”
말을 하며 임호진이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잘 알지도 못하 는 사업에 친구 말만 듣고 투자 한다? 말리고 싶군요.”
임호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쓰게 웃으며 막걸리를 마셨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강진이 슬쩍 할 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세게 두드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말을 못 하니 감정을 표현하기가 힘들어, 동작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를 보던 강진이 말했다.
“시골에 사시던 분이 도시에 가 면 불편한 것이 많으실 겁니다. 게다가 딱히 친구분들이 계신 게 아니라면…… 더 불편하실 겁니 다.”
“후우!”
한숨을 쉬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할아버지께서 가장 잘 아시는 구나.’
지금 할아버지가 보내는 시그널 은 어쩔 수 없다는 의미였다. 마 음이 내키는 일이었다면 저런 시 그널을 보내지 않을 테니 말이 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차라리 둘째 아드님에게 막걸 리를 가르치시지 그러세요?”
“안 하겠대.”
이미 그에 대해서 아들과 이야 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하긴, 오 대를 내려온 주조장인 데 아들한테 이으라고 해 봤겠 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말했 다.
“그럼 주조장은 팔지 마세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그를 보았다.
“팔지 말라고?”
“저는 고등학교 때 부모님을 사 고로 잃었습니다.”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강진의 모습에 할아버지의 얼굴 에 의아함과 안쓰러움이 떠올랐 다.
“그리고 친척들 손에 보육원으 로 보내졌습니다.”
“이런 찢어 죽일 놈들이 있나. 어떻게 조카를 버려?”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원망을 안 한다면 거짓말이지 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오히 려 힘들게 살아서 그런지, 세상 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알게 됐다 고 해야 할까요.”
“쯧쯧쯧…… 고생 많았겠구나.”
할아버지가 막걸리를 따라 주려 다가 입맛을 다셨다. 강진이 운 전을 해야 하니 말이다.
사람을 설득한다는 것은 돌과 돌이 부딪히는 것과 같다. 상대 도 자신의 생각이 있는데, 그 생 각을 자신의 생각으로 설득을 해
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이 일은 이성적이고 객 관적인 일이라기보다는, 주관적 이고 정이 걸린 문제였다.
누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남 을 돕겠는가? 이건 형제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오로지 부모와 자식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부모라서 가능한 일이 었지, 자식은 반대로 이렇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성적으로가 아니라 감
정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대가 강진 자신에게 안쓰러운 감정을 느끼게 한 것이다.
할아버지를 보며 강진이 말했 다.
“부모 자식 간에 서로 돕는 것 은 맞지만, 그것이 일반적이어서 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방적?”
“저는 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효 도를 하고 싶습니다. 사랑한다
말하고 싶고, 좋은 음식을 해 드 리고 싶고…… 편하게 모시고 싶 습니다.”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할아버 지에게 강진이 말했다.
“물론 아드님께서도 아버님을 편안히 모시려 할 것입니다.”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이 착하기는 해.”
“그럼 아드님이 아버님을 편하 게 모실 기회를 주세요.”
“막걸리 만드는 걸 가르쳐서 말 인가?”
“어르신께서는 저를 오늘 처음 보시지만, 과장님은 오래 보셨지 요?”
“그렇지.”
할아버지가 임호진을 보자, 그 가 웃으며 말했다.
“십 년 전에 내가 처음 인사드 리러 왔을 때, 막걸리를 내 얼굴 에 뿌리셨지.”
“쓸데없는 소리를 하니 그렇
지.”
그런 둘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과장님 생각에 그 부동산 사업 은 어떨 것 같습니까?”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할아버지 를 보았다. 그 시선에 할아버지 도 그를 보며 말했다.
“나야 막걸리만 알지, 다른 건 잘 모르지. 자네 생각은 어떤 가?”
조언을 구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임호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
다.
“일단 아까 말씀드린 대로 말리 고 싶습니다.”
“역시…… 안 될 것 같은가?”
“부동산에도 종류가 여럿이지 만, 아드님이 땅을 보러 간다고 하는 것을 보면…… 투기 지역 쪽을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투기 지역?”
“어디에 뭐가 들어선다, 뭐가 생긴다 하는 지역입니다.’’
“그럼…… 뭐가 들어서고 그러 면 땅값이 오르는 것 아닌가?”
할아버지의 말에 임호진이 작게 웃었다.
“물론 땅값이 오릅니다. 열 배 도 오르고 스무 배도 오르니까 요. 하지만…… 그런 투기 지역 을 아무나 알면 한국에 부자 아 닌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찾기가 어렵다는 건가?”
“뭐가 들어설지 아는 것은 뭐를 만들지 아는 사람들뿐입니다. 그
럼 그들을 통해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그들이 쉽게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법적으로도 문제 가 생길 수도 있고…… 무엇보다 도 자기만 알면 그 이익을 자신 이 얻을 수 있는데, 왜 남에게 알려주겠습니까?”
임호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었 다.
“그 런가?”
할아버지의 웃음은 씁쓸했다. 그런 그를 보며 임호진이 계속 말했다.
“아드님과 동업하자고 한 친구 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면 저는 그냥 저 혼자 먹을 것 같습니다.”
“그럼 사기라는 건가?”
“그건 제가 그 친구라는 사람을 모르니 뭐라 말을 할 수 없습니 다. 하지만 위험한 사업인 건 확 실할 것 같습니다.”
"음......"
“강진이의 말대로 여기에 들어
와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일한 만큼 벌 고 돈을 까먹지는 않을 테니까 요.”
“나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싫 다고 하니…… 그리고 지금 파는 걸로는 나 혼자 먹고살 만하지, 아들 내외하고 자식들까지 먹고 살 만하지가 않아.”
아내가 죽고 난 후에 할아버지 는 주조장 규모를 줄였다. 그냥 단골 거래처에만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명맥을 이을 정 도로만 하는 사업이었다.
할아버지의 말에 임호진이 말했 다.
“그건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 습니다.”
“자네가?”
“저는 아직 막걸리 수출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십 년 전에는 한류 열풍에 편 승한 유행 같은 거였지만, 지금 은 일본에서도 한국 막걸리에 대 한 수요가 꾸준히 있습니다. 그 리고……
임호진이 막걸리를 마시고는 입 을 열었다.
“이 정도 맛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그런가?”
“둘째 아드님도 어르신 막걸리 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니, 십 년
전에 저를 찾아왔던 것이 아니겠 습니까?”
임호진의 말에 할아버지의 얼굴 에 망설임이 어렸다.
“하지만…… 팔고 싶다고 쉽게 팔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 나?”
“물론입니다. 주류 수출 면허도 받으셔야 하고 일본 식약청에서 허가도 받아야 합니다.”
“말만 들어도 복잡한데.”
“그건 저희가 생각할 일이니 걱
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와 계약을 하시면 어르신은 막걸리 만 잘 만드시면 됩니다.”
“그럼…… 괜찮을까?”
할아버지가 흔들리는 것 같자 강진이 말했다.
“그리고 저희 가게에서도 막걸 리 팔아 드릴게요.”
“자네 가게에서?”
“저희 가게에 술 좋아하는 손님 들이 많거든요. 그럼 어차피 술 은 팔아야 하니까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막걸리는 많이 안 좋아할 텐데?”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팔면 되 니 괜찮습니다.”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회사 사람들도 어르신이 만든 막걸리 맛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가?”
“어르신이 주시는 막걸리를 저 혼자 먹기에는 양도 많아서, 나
눠주다 보니 평이 좋았습니다.”
그러고는 임호진이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일본에 술을 수출하는 건 지금 부터 준비를 해도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그것이 아니더라 도 제가 아는 분들 중에서 막걸 리를 판매할 만한 곳을 찾으면 매출에 도움은 되실 겁니다.”
임호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그런데…… 나 혼자 하는 거라
물량을 많이 늘리는 건 쉽지가 않은데……
“십 년 전에도 그걸로 거절을 하셨었죠.”
“그때나 지금이나 막걸리를 만 드는 것은 나와 마누라 둘…… 아니……
할아버지가 항아리를 손으로 쓰 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나 혼자군.”
“아드님이 같이 하시면 물량은 늘어날 겁니다.”
“그 녀석이 하려고 할지……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 일을 고른다? 아직 절박하지 않은 모 양이군요.”
임호진의 일침에 할아버지가 입 맛을 다셨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임호진이 말했다.
“유성태 씨가 어르신을 믿고, 일을 골라서 하고 싶은 것만 하 려는 모양인데…… 어르신.”
“응?”
“잘 생각하십시오.”
“뭘 말인가?”
“유성태 씨에게 기댈 곳은 어르 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어르신이 가지고 있는 주조장과 저 산이 전부입니다.”
임호진이 손을 들어 한쪽에 있 는 산을 가리켰다. 할아버지가 가진 것은 주조장만이 아니었다.
선산이기는 해도 산도 하나 가 지고 있으니 말이다.
“크흠!”
심기가 불편한지 헛기침을 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잘 되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그 부동산이 잘 안 되면 유성태 씨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 니다.”
임호진의 말에 할아버지는 잠시 고민이 되는 듯 말이 없었다. 그 런 할아버지를 보며 임호진이 말 했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할아버지가 임호진을 보자 그가 말했다.
“제가 유성태 씨를 만나 보겠습 니다.”
“자네가 성태를?”
“안면이 없는 것도 아니니, 제 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 니다.”
십 년 전에 임호진을 찾아온 것 도 할아버지의 아들 유성태였고, 그 후에도 막걸리 수출 문제로 몇 번 더 만났었다.
“설득할 수 있겠나?”
“유성태 씨가 사업에 몇 번 실
패하긴 했어도, 사업적 안목이 아주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 다. 그러니 저희에게 막걸리 사 업도 제안했던 것이 아니겠습니 까?”
“그건…… 그렇지.”
“제가 한 번 잘 이야기해 보겠 습니다. 혹시라도 설득이 되지 않는다면 그 부동산 사업이라도 검토를 해 보자고 말을 하겠습니 다.”
“그렇게 해 줄 건가?”
“제가 부동산 쪽은 잘 모르지 만,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부 동산 관련 일을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쪽을 통해서라도 알 아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임호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고맙고…… 미안하고만.”
할아버지의 말에 임호진이 웃었 다.
“저와 어르신이 알고 지낸 것이 십 년이고, 그동안 어르신한테
받아 간 막걸리만 해도 드럼통으 로다가 몇 개는 될 텐데 미안해 하지 마십시오. 자! 드시죠.”
임호진이 기분 좋게 막걸리를 따라주자 할아버지가 웃으며 잔 을 들었다.
기분 좋은 술자리는 다섯 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할아버지는 20리터짜리 통 두 개에 막걸리를 담아 주었 다.
하나면 될 것 같기도 했지만, 챙겨가라고 넣어주니 감사히 받 을 뿐이었다.
차 문을 열던 강진이 할아버지 를 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할아 버지 옆에 있는 할머니를 보았 다.
할머니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진짜…… 우리 할머니 같네.’
명절날 시골집에서 집으로 돌아 갈 때면, 강진의 할머니도 저렇 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었 다.
그것을 떠올리며 강진이 같이 손을 흔들었다.
“또 올게요.”
“그렇게 해.”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할 아버지가 웃으며 손을 흔들자, 강진이 할머니에게 가볍게 고개 를 숙이고는 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