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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128화 (126/1,050)

127화

강진은 홀을 청소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팀원들이 막걸리에 두부김치로 한잔씩들 하고 돌아 간 것이다.

음식 쓰레기를 버리고 정리를 마친 강진이 목을 비틀었다.

“피곤하네.”

일하고 운전하고, 거기에 장사 까지 하고 나니 피곤했다. 목을 비틀던 강진에게 배용수가 다가

왔다.

“그 애들 오는 것 같은데?”

“그 애들?”

“고삐리들 말이야.”

“고삐리?”

고삐리라는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 영수?”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입구 쪽을 보고는 말했다.

“그때도 느낀 거지만…… 확실

히 처녀와 총각이 짬뽕이 되니 더 무시무시하네.”

작게 중얼거린 배용수가 급히 문을 향해 갔다.

“가게?”

“요즘 고딩들 무섭다.”

물론 고딩이 무서운 것이 아니 라 처녀와 총각귀신이 무서운 것 이겠지만, 어쨌든 농을 던지며 배용수가 가게를 나섰다.

그에 강진이 시간을 보았다.

“열 시 이십 분.. 오늘 귀신

장사는 녀석들 덕에 공치겠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강진은 기분 좋은 얼굴로 가게를 나왔 다.

고생하고 온 애들에게 맛있는 것을 해 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 터 기분이 좋았다.

보통 이 시간에는 귀신들로 문 전성시를 이뤄야 할 테지만, 배 용수가 느낀 것처럼 다른 귀신들 도 고등학생 귀신들을 느끼고는 자리를 피한 것이다.

가게 밖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 던 강진의 눈에, 한쪽에서 사람 들이 파도처럼 갈라지는 것이 보 였다.

‘처녀귀신하고 등장이 비슷하 네.’

처녀귀신들이 올 때도 저렇게 사람들이 파도처럼 갈라지며 나 타나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인파가 갈라지는 것과 동시에, 김소희와 함께 오 는 고등학생 귀신들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다 가 뒤를 따라오는 귀신들을 보았 다.

“인사해야지.”

김소희의 말에 귀신 셋이 바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귀신들의 인사에 강진이 웃었

다. 처음 봤을 땐 사실 영수를 빼고는 이렇진 않았던 것 같은 데, 김소희에게 어떤 교육을 받 았는지 몰라도 지금은 어디 서당 같은 곳에서 예절 교육을 받은 것처럼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귀신들을 보며 강진이 김 소희를 보았다.

“그동안 같이 계셨던 겁니까?”

“처녀와 총각이 같이 다니니 이 아이들을 가르쳐 줄 귀신도 없더 군.”

귀신도 배워야 귀신 노릇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총 각과 처녀귀신이고, 같이 다니기 때문에 이 애들에게 다가가서 뭔 가를 가르쳐 줄 귀신이 없었다.

처녀귀신은 총각귀신을 싫어하 고, 총각귀신은 처녀귀신을 싫어 하니 말이다.

그래서 김소희가 아이들을 가르 친 것이다. 김소희는 이미 그런 급을 넘어섰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자네한테 인사를 받고자 한 것 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수를 보았 다.

영수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바 들바들 떨고 있었다.

처녀귀신들도 김소희의 기운에 두려움을 느끼는데, 그 반대라 할 수 있는 총각귀신인 영수는 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잘 지냈어?”

강진의 말에 영수가 슬쩍 김소 희의 눈치를 보고는 말했다.

“네.”

“집에는 갔다 왔고?”

집이라는 말에 영수와 다른 여 자애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집에 가기는 했나 보구나.”

“네.”

작게 답을 한 영수가 한숨을 쉬 며 말했다.

엄마가 나한테 전화를 해요.”

“너한테? 어떻게?”

“제 핸드폰 안 죽이고 살려놨더 라고요.”

작게 한숨을 쉬며 말을 하던 영 수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생 각을 하니 다시 가슴이 먹먹한 모양이었다.

잠시 그러고 있던 영수가 입을 열었다.

* * *

얼마 전, 집에 도착한 영수는 자신의 방 책상에 앉아 있는 엄 마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책상 에서 컴퓨터의 모니터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영수의 방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때보다 조금 더 깨끗하게 청 소가 되어 있을 뿐, 영수가 쓰던 책과 노트, 컴퓨터와 피규어까지 모두 그 자리 그대로였다.

-집도 좁은데…… 다 갖다 버 리지 그랬어.

하지만 영수의 투정을 엄마는 듣지 못했다. 엄마는 모니터에 뜬 화면을 보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영수가 하던 게임과 학교 숙제, 그리고 동영상 파일 들이 아이콘으로 늘어서 있었다.

달칵! 달칵!

마우스를 움직여 폴더들을 하나 씩 열어 보는 엄마의 모습에 영 수는 당황했다.

-엄마, 나가자. 그러지 말 고…… 응?

처음에는 자신의 물건이 그대로 있고, 그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컴퓨터의 폴더를 마음대 로 열기 시작하니 당황스러워진 것이다.

-왜 내 컴퓨터 만져!

자기도 모르게 버릇처럼 버럭 소리를 치던 영수는 곧 안도의 한숨을 토했다. 엄마가 컴퓨터를

끈 것이다.

그러더니 엄마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나〜 그건…… 너에 대한…….]

순간 들려온 익숙한 음악 소리 에 영수가 소리가 난 곳을 보았 다.

-이건…… 내 핸드폰 소리인 데?

자신의 벨 소리에 영수가 의아 해할 때, 엄마가 소리가 나는 곳

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 내 핸드폰이네?

영수가 의아해할 때 엄마가 웃 으며 핸드폰을 보았다.

〈사랑하는 엄마〉

핸드폰 액정에는 발신자 이름과 함께 엄마의 사진이 떠 있었다.

액정에 뜬 자신의 얼굴을 손가 락으로 쓰다듬은 엄마가 통화를

눌렀다.

영수의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 은 엄마가 자신의 핸드폰을 귀에 대고는 입을 열었다.

-아들, 이제 겨울이라 점점 날 씨가 쌀쌀해지네. 거기는 어때? 날씨 괜찮아? 옷 잘 챙겨 입고, 추우면 거기 있는 사람들한테 도 와달라고 해…….

엄마의 이야기는 꽤 길었다. 오 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아빠 에 대한 이야기 등등, 사소한 것 들을 하나씩 이야기를 했다.

영수가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 면서도, 엄마는 아들과 통화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해 나갔 다.

답이 없는…… 아들의 핸드폰에 말이다.

—엄마…….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영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들, 엄마는 널 당장이라도 보고 싶지만…… 내가 너무 일찍 만나러 가면 우리 아들이 안 좋

아할 거니까. 엄마는 아주 오래 오래 잘 있다가 우리 아들 보러 갈게. 그러니까 아들도…… 엄마 보고 싶어도 울지 말고 잘 있어. 아들…… 사랑해.

사랑해, 라고 말하며 눈물을 주 르륵 흘리는 엄마의 모습에 영수 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영수의 핸드폰에 전화를

한다는 이야기에 강진은 속이 먹 먹해지고 눈가가 달아올랐다.

“후우!”

길게 숨을 토한 강진이 영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말 대신 전해진 강진의 손짓에 영수가 눈가를 손으로 문질렀다. 그런 영수를 보던 강진이 최가은 을 보았다.

“잘 왔다.”

“고맙습니다.”

이예림과도 눈을 마주친 강진이 말했다.

“그래, 뭐 먹을래?”

“11시에 영업한다고 들었는데 요.”

“11시부터 먹을 수 있는 거고, 주문은 지금부터 받아도 돼.”

강진의 말에 이예림과 최가은이 서로를 보고는 말했다.

“떡볶이하고 매운 닭발요.”

“전 계란말이하고 잡채요.”

두 사람의 말에 강진이 영수를 보았다.

“너는 뭐 먹을래?”

“별로 생각 없는데……

“음식을 생각으로 먹냐? 그리고 여기서 먹는 건, 전에 수련원에 서 내가 해 준 것보다 더 맛있 어.”

강진의 말에 영수가 입맛을 다 셨다. 확실히 수련원에서 먹었던 음식은 맛있었다.

그리고 이예림도 강진의 식당에 서 먹은 음식이 맛있다고 했었고 말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도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한 영수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음식 중 에 뭐가 먹고 싶어?”

“엄마 음식요?”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음식엔 못 미치겠지만, 내가 해 줄게.”

강진의 말에 영수가 그를 보다 가 말했다.

“계란찜요.”

“계란찜? 뭐 넣고?”

“파 채 썰어서요.”

영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 진이 김소희를 보았다.

“아가씨는 어떤 음식으로 해 드 릴까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아이들 을 보고는 말했다.

“매운 닭발에 계란찜을 먹도록 하지.”

새 메뉴가 아니라 그냥 아이들 이 먹는 것에서 고른 모양이었 다.

‘매운 닭발을 좋아하시기도 하 니까.’

김소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주방에 들어선 강진은 곧 재료 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당면과 떡을 미지근한 물에 담그고 어묵

은 따뜻한 물에 샤워를 시켰다.

어묵의 기름기를 따뜻한 물로 씻어 내는 것이다.

닭발은 살짝 삶고 찬물로 마사 지를 해 준 후 양념을 넣고 볶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서는 잡채에 들어갈 채소들을 다듬고 고기를 볶았다.

촤아악! 촤아악!

닭발의 매운 양념이 타들어가며 매운 향을 뿜어냈다. 그 냄새를 맡으며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

다.

영수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떠 오른 것이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는 말…… 완전 개소리네.”

아들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고 통화를 하는 엄마의 모습…… 영 수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지 생 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강진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매운 고추 향 때문인지, 아니면

영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촤아악!

강진의 손에서 매운 닭발이 빠 르게 볶아지기 시작했다.

강진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김소희와 고등 학생 귀신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온 영수와 최가은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보 고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둘의 몸 이 현신을 하니 놀란 것이다.

“영수야 너 몸이……

“가은아……

두 사람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며 놀라는 것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예림이가 이야기 안 해 줬어?”

강진의 말에 두 사람이 이예림 을 보았다. 그들의 시선에 이예 림이 웃었다.

“놀라게 해 주려고 말 안 해 줬

는데…… 여기에서는 살아 있을

때처럼 이렇게 몸이 생겨. 신기

하지?”

“예림아, 너 몸이••… • 멀쩡 해.”

영수가 놀람과 다행스러움, 그 리고 안도감이 어린 얼굴로 다가 오는 것에 이예림이 피식 웃었 다.

“너도 마찬가지야.”

이예림의 말에 영수가 자신의 몸을 다시금 내려다보았다.

“이건..

몸이 멀쩡했다. 살아 있을 때의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 영수를 강진이 보며 웃었 다.

‘이렇게 보니 남자답게 잘생겼 네.’

질질 홀리던 피가 없어지고 사 람처럼 변하니, 영수는 남자다운 얼굴과 체격을 가진 그냥 학생이 었다.

“서 있지 말고 앉거라.”

어느새 자리에 앉은 김소희의 말에 영수와 아이들이 바로 자리 에 앉았다.

‘많이 혼났었나?’

그런 생각을 할 때 김소희가 입 을 열었다.

“소주 주게나.”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혹시 막걸리 좋아하세요?”

“곡주 말인가?”

“곡주? 아! 네.”

강진의 말에 김소희의 눈가에 아련함이 떠올랐다.

“성벽에서 몇 번 마셔 봤지.”

“성벽요?”

“겨울에 보초를 서는데 복실이 가 어디서 구해 왔더군.”

“보초를 서면서 술을 마시는 건 군법 위반 아닙니까?”

“얼어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 나?”

“그건…… 그렇네요. 그런데 보 초면 임진왜란 때인 것 같은 데…… 전쟁터에서 술을 용케 구 하셨네요.”

자세히는 몰라도 전쟁터, 그것 도 식량 사정도 안 좋은 조선 시 대에서 막걸리를 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먹을 곡식도 없는데 그걸로 술 을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복실이가 그런 재주가 좋았어. 내가 뭐 필요하다고 하면 어떻게 든 구해서 가져왔으니까.”

“복실이가 누군가요?”

“내……

뭔가 말을 하려던 김소희가 고 개를 저으며 말했다.

“언니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몸종이었나?’

언니라고 하지만 진짜 언니는 아닐 것이다. 양반가에서 예의를 배운 김소희가 윗사람을 복실이

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 다.

게다가 양반가에서 복실이라는 이름을 짓지도 않을 테고 말이 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냉장 고에서 막걸리가 담긴 주전자를 꺼냈다.

쪼르르륵!

양은그릇에 막걸리를 따라주자 김소희가 그것을 받아 마셨다.

꿀꺽! 꿀꺽!

두 모금 정도를 마신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맛이 좋군.”

“마음에 드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럼 음식 가져오겠습니다.”

말과 함께 강진이 몸을 돌려 주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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