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주방에서 음식을 챙기며 강진이 영수에게 말했다.
“음료수 냉장고에 있으니까, 먹 고 싶은 것 꺼내서 먹어.”
강진의 말에 영수가 일어나 냉 장고에서 음료수를 가지고 왔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강진이 쟁 반에 음식들과 갓 지은 밥을 가 지고 나왔다.
먼저 김소희의 앞에 계란찜과 매운 닭발 그리고 김장 김치와 두부를 놓았다.
“이번에 김장을 했습니다. 맛 좀 보십시오.”
김장 김치를 보며 김소희가 고 개를 끄덕였다.
“고맙군.”
“맛있게 드십시오.”
몸을 돌린 강진이 아이들 식탁 에 음식들을 놓고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가지고 왔다.
“너희도 한잔씩 할래?”
“저희요?”
강진의 말에 영수가 놀란 눈을 뜨자, 강진이 웃었다.
“살았으면 이미 성년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귀신이 술 먹는다고 누 가 뭐라고 하겠어?”
그러고는 강진이 김소희를 살짝 보았다. 그 시선에 애들이 김소 희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소희는 막걸리를 마시며 닭발 을 먹고 있었다.
외모로만 보면 김소희는 중학생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김 소희도 술을 먹는데, 자신들이라 고 먹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아이들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것에 강진이 소주잔을 가져다 애 들 앞에 하나씩 놓고는 술을 따 라 주었다.
쪼르륵! 쪼르륵!
애들의 잔에 소주를 따라 준 강
진이 자신의 잔에도 소주를 따르 고는 잔을 들었다.
“ 자.”
강진의 말에 애들이 슬며시 소 주잔을 들었다. 가볍게 잔을 마 주친 강진이 술을 입에 털어 넣 자 아이들이 서로를 보고는 술을 마셨다.
꿀꺽!
단숨에 소주를 마시는 영수와 달리 이예림과 최가은은 가볍게 입술만 축였다.
그리고 그 둘이 눈을 잔뜩 찡그 렸다.
“으! 써.”
“이런 걸 왜 먹어?”
두 여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영수의 어깨를 쳤다.
“그래도 영수는 잘 마시네.”
“그냥 쓴 것뿐인데요.”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하는 영 수였지만, 얼굴은 어느새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음식들을 가리켰 다.
“밥 먹어.”
강진의 말에 아이들이 음식을 보다가 젓가락과 수저를 들고 밥 을 먹기 시작했다.
각자 자신이 먹고 싶다고 한 음 식들에 손을 대는 아이들을 보던 강진이 닭발을 집어서는 입에 넣 었다.
닭발을 딱히 좋아하는 것은 아 니지만, 여자애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손이 간 것이다.
입에 넣고 닭발을 빨아 먹으며 살을 바르고 내려놓는 강진의 모 습에 이예림이 웃었다.
“아저씨는 닭발 잘 못 먹네.”
“아저씨가 아니고, 오빠.”
“뭐래?”
이예림의 말에 김소희의 목소리 가 들렸다.
“버릇이 없구나.”
김소희의 말에 이예림이 급히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과는 내가 아니라 잘못을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김소희의 말에 이예림이 강진에 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김소희의 말에 꼼짝도 하지 못 하는 이예림의 모습에 강진이 웃 다가 닭발을 보았다.
“잘 먹는 방법도 있어?”
강진의 말에 이예림이 김소희의 눈치를 보고는 닭발을 잡았다.
“닭발은 이렇게 손바닥 아래쪽 으로 엄지를 스윽 넣어요.”
으드득!
그러자 발바닥 부분이 힘줄과 함께 벌어졌다.
“그리고 이걸 입에 넣고 씹어 먹는 거예요.”
이예림이 닭의 발바닥을 입에 넣고 씹더니 그대로 삼켰다. 그 모습에 강진이 놀란 눈으로 말했
다.
“닭발…… 뼈 있잖아?”
“그건 그냥 씹어 먹으면 돼요.”
“이걸 씹어 먹는다고?”
발바닥에 있는 뼈는 연골도 있 지만, 분명 뼈도 있는데 이예림 은 그냥 씹어 먹으면 된다고 하 는 것이다.
“그 작은 걸 언제 발라내요? 그 냥 다 씹어 먹는 거지.”
“그래도…… 되는 거야?”
“우리 아빠는 그렇게……
말을 하던 이예림이 입을 다물 었다. 뒷말을 하지 않아도 강진 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던 건 지 알 수 있었다.
‘아버님이 그렇게 드셨나 보군.’
그리고 아버지가 그렇게 먹으니 이예림도 그렇게 먹는 것이다. 그에 강진은 말없이 닭발을 하나 집어서는 엄지를 집어넣었다.
으드득!
발바닥이 벌어지자 강진이 그걸
입에 넣고는 씹었다. 연골과 힘 줄이 씹히는 것과 함께 뼈도 조 금 씹혔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 니었다.
으드득! 으드득!
“맛있다.”
강진의 말에 이예림이 잠시 있 다가 잔을 들어서는 소주를 마셨 다.
“콜록! 콜록!”
소주를 원 샷하고 연신 기침을 하던 이예림이 물을 마시고는 닭
발을 입에 넣고 씹으며 말했다.
“제 방도 그대로였어요.”
“그래?”
강진의 물음에 이예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닭발을 씹다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우리 아빠 황당한 거 있죠.”
“황당? 왜?”
“집에 갔는데 아빠가 내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더라고요.”
“네 방에서?”
“내 게임 아이디하고 비번을 어 떻게 알았는지, 내 캐릭터로 게 임을 하고 있더라고요.”
잠시 말을 멈춘 이예림이 닭발 을 씹으며 말했다.
“이것저것 게임 옷 사서 입히 고, 길드원들하고 같이 사냥하러 다니고…… 정말……
잠시 말을 멈춘 이예림이 한숨 을 쉬었다.
“왜 그러는 거야, 짜증나게.”
이예림의 말에 강진이 슬쩍 김 소희를 보았다. 좋은 말이 아니 니 김소희가 뭐라고 할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김소희도 이런 상황에 뭐라고 할 정도로 고지식하지는 않은지, 말없이 막걸리를 따라 입에 대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안도의 한숨을 쉬 고는 이예림을 보았다.
짜증이 난다는 말과는 달리 이 예림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있 었다.
물론 아버지가 정말 게임을 하 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이예림이 키우던 캐릭터를 통해 그녀를 기억하고 떠올리기 위함 일 터였다.
‘영수 어머니는 핸드폰, 예림이 아버지는 그녀가 키우던 캐릭터 로 슬픔을 달래고 있는 건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이예림 의 빈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쪼르륵!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 야? 다시 집으로 갈 거야?”
강진의 물음에 이예림이 김소희 를 보았다.
“아가씨께서 귀신으로서 살아가 는 방법을 알 때까지 따라다니라 고 하셨어요.”
“집은?”
“계속 있고 싶었는데…… 아가 씨 말씀이 귀신이 산 사람 옆에 너무 오래 붙어 있으면 좋지 않 다고 하셔서요. 가끔씩만 가서
보려고요.”
이예림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여기에 좋은 처녀귀신 언니들 많거든? 그 언니들하고 친하게 지내.”
“처녀귀신요?”
이예림이 아닌 영수가 놀란 눈 으로 묻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다른 처녀귀신들은 무섭나?”
“얘네들은 안 무서운데……
슬며시 영수가 김소희 눈치를 보고는 말했다.
“좀 무섭네요.”
자신의 눈치를 보며 무섭다는 말에 김소희의 눈썹이 살짝 찡그 려졌다가 내려갔다.
“내가 무섭게 생긴 것이 아니 라, 너와 우리는 기운이 달라서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무래도 무섭다는 말이 무섭게 생겼다는 말로 들려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김소희의 말에 영수가 급히 말 했다.
“죄송합니다.”
영수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다가 말했다.
“총각귀신과 처녀귀신은 서로 정반대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 데……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어떤 말씀인지?”
“너와 저 아이들은 같이 죽었기 에, 기운이 반한다 해도 서로 밀 어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귀신들은 다르다.”
그러고는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 다.
“주인장이 말을 한 대로 처녀귀 신 중에 착하고 좋은 애들은 많 이 있다. 하지만 네가 있으면 그 아이들은 예림이와 가은이에게 다가올 수 없다.”
“그럼 저 때문에 얘네들이 다른 귀신들을 사귈 수 없는 건가요?”
“여기 오는 동안 나 말고 너희 들에게 다가오는 귀신들이 있더 냐?”
처녀귀신에게 다가가는 것은 처 녀귀신밖에 없고, 총각귀신에게 다가가는 것은 총각귀신밖에 없 다.
조선 시대 귀신에 무신의 반열 까지 오른 김소희나 되니 같이 있는 것이지, 아니면 다가올 수 있는 귀신이 없었다.
김소희의 말에 이예림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저희는 영수하고 떨어질 생각 이 없습니다.”
이예림의 말에 최가은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같이 다닐 거예요.”
그런 둘의 모습에 김소희가 막 걸리를 입에 가져가며 말했다.
“친구와 함께 있는 것도 좋겠 지.”
그리고 막걸리를 마시는 김소희 의 모습에 아이들이 살며시 서로 를 보고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 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강진이 소 주와 음식들을 챙겨주었다.
12시가 넘어갈 때쯤 김소희가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아이들을 보았다.
“많이 먹었느냐?”
“네.”
이예림의 답에 김소희가 아이들
을 보며 말했다.
“주인장이 운영하는 저승식당은 우리 말고도 여러 귀신들이 온 다. 하지만 너희와 나처럼 처녀 와 총각귀신들이 있으면 일반 귀 신들은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니 앞으로 저승식당에 가게 되면 너 무 오래 머물지 말고, 적당히 먹 었으면 자리를 비워 주거라.”
“알겠습니다.”
아이들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김소희가 몸을 일으켰다.
“ 가자꾸나.”
김소희의 말에 아이들이 먹던 음식들을 서둘러 입에 넣고는 일 어났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강진이 김 소희를 보았다.
“아가씨!”
강진의 부름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왜 그러는가?”
“애들 데리고 자주 와 주세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스윽!
그러고는 김소희가 가게를 나서 자, 고등학생 귀신들이 강진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그 뒤를 서둘러 따라 나갔다.
강진은 임호진과 함께 회사 1층 에 위치한 커피숍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유성태 씨는 어떤 사람입니 까?”
강진의 물음에 임호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사람이 착해.”
“착한 사람이라……
임호진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 던 강진이 물었다.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둘 다 있다 봐도 되겠습니까?”
“맞아. 사람이 멍청한 것은 아 닌데, 사람이 너무 착해서 그런 지 손해를 자주 보는 모양이야.”
“착하기만 한 것은 사업하는 사 람한테 좋을 것이 없죠.”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사람이 하는 기 업…… 물론 좋다.
하지만 사업이란 어디까지나 남 의 돈을 끌어들여 몸을 부풀리는
것이다.
그러니 착하기만 해서는 사업적 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성태 씨가 둘째라고 들었는데 첫째는?”
“이민 갔어.”
“어디로요?”
“그건 말씀 안 해 주셔서 나도 모르겠네.”
이야기를 나누던 임호진이 손을 들었다.
“여깁니다!”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그가 보 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 에는 중년의 남자가 웃으며 다가 오고 있었다.
‘착한 사람이라고 하더니…… 인상은 확실히 좋네.’
유성태의 인상은 확실히 좋았 다.
웃으며 다가온 유성태가 임호진 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지내셨어요?”
유성태의 말에 임호진이 일어나 악수를 하며 말했다.
“갑자기 연락을 드렸는데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 근처에 볼일이 있던 차라 괜찮습니다.”
“음료 뭐 드시겠습니까?”
임호진이 자리를 가리키며 하는 말에 유성태가 자리에 앉으며 서 류 가방에서 물통을 꺼냈다.
“저는 이걸로 마시겠습니다.”
“그건 뭡니까?”
“요즘 아내가 저 힘들어 보인다 고, 홍삼 달인 물을 이렇게 챙겨 줍니다. 한잔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웃으며 사양을 하는 임호진을 보며 유성태가 물통 뚜껑에 홍삼 차를 따르고는 말했다.
“저희 아버지 보고 오신 거죠?”
“아셨습니까?”
12월에 아버지께 인사드리고
오시는 건 저도 알고 있으니까 요.”
“그럼 아버님과 통화도 하셨습 니까?”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을지 대 충 짐작이 가서 굳이 연락은 하 지 않았습니다.”
연락을 한 이유를 대충 짐작하 는 듯한 유성태를 보며 임호진은 말을 돌리지 않았다.
“십 년 전에 저를 찾아와 제안 하셨던 사업.. 지금이라도 하
지 않으시겠습니까?”
임호진의 말에 유성태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