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퇴근 시간, 강진은 강남에 위치 해 있는 대형 마트에 들어서고 있었다.
‘마트는 처음이네.’
한끼식당에서 일을 하고 난 후 마트는 처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필요한 식재료들은 신수용이 다 가져다주니 요리에 관해서는 따로 무엇을 사러 올 이유가 없었다.
그런 강진이 마트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수산물 코너가……
마트를 두리번거린 강진은 곧 수산물 코너로 걸음을 옮겼다.
“꼬막이..
강진이 한쪽에 있는 꼬막을 살 필 때, 할머니 귀신이 꼬막이 들 어 있는 망을 보다가 고개를 끄 덕였다.
“상태 좋아 보여요?”
끄덕끄덕!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는 할머니 의 모습에 강진이 꼬막 망태기를 하나 집다가, 다시 하나를 더 집 었다.
“이왕 하는 거, 많이 하자.”
마트에 온 이유는 할머니가 유 성태가 꼬막을 좋아한다고 말을 해서였다.
꼬막을 챙긴 강진이 계산을 하 고는 할머니 귀신과 함께 한끼식 당으로 돌아왔다.
‘꼬막 해감하고 하려면…… 시 간이 좀 모자라려나?’
시간이 부족하단 생각을 하며 강진이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꼬막이 깨끗했 다. 따로 손질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 정도면 해감 안 해도 될 것 같기는 한데.’
깨끗한 꼬막을 보던 강진이 그 래도 불안한 마음에 볼에 소금을 풀어 물을 받았다.
그러고는 꼬막을 담근 강진이 검은 봉지로 위를 덮었다.
조개는 어두운 곳에서 뻘을 토 해내니 최대한 어둡게 맞춰 놓는 것이다.
그리고 강진은 할머니를 보았 다. 그 시선에 할머니가 손짓으 로 뭔가를 가리키자 강진이 주머 니에서 종이를 꺼내 내려놓았다.
종이에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적혀 있었다.
강진이 종이를 놓자 할머니가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손으로 가 리켰다.
〈돼지고기 많이 넣고 김치찌 개〉
할머니가 가리키는 글자를 읽어 낸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뉴는 아까 이야기해 주셨잖 아요. 음식 만들 때 양념 양 조 절해 주세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강진이 냉 장고에서 돼지고기와 김치를 꺼 내서는 같이 냄비에 넣고는 끓이 기 시작했다.
원래 그가 하는 방식은 돼지고 기를 냄비에 먼저 볶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돼지고기가 으『간 냄비 바닥에 눌어붙으면 계속 휘 저어서 더 눌어붙게 만든다.
그렇게 하고 맛술을 조금 넣고,
눌어붙은 것을 녹여 돼지고기의 맛을 끌어올리는 것이 강진의 방 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할머니의 방법대 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맛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 만…… 엄마의 맛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지
상대가 감정적으로 나온다면 강 진 역시 감정적으로 유성태를 설 득할 생각이었다.
촤아악! 촤아악!
김치와 돼지고기를 볶으며 강진 이 쌀뜨물을 부었다.
촤아악!
물이 끓어오르는 것과 함께 강 진이 일단 뚜껑을 덮고는 다른 반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가족들에게 해 줬던 반찬들을 하나씩 준비를 하며 그 가 문득 시간을 보았다.
‘6시 30분…… 설마 안 오는 것 아냐?’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고개
를 저으며 다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안 오면…… 더는 어쩔 수 없 어요.”
강진은 이번까지만 설득을 할 생각이었다. 그리웠던 친할머니 의 정이 생각나서였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계속 질척거릴 생각은 없었다.
그의 말에 할머니의 얼굴에 슬 픔이 어렸다. 그런 할머니를 보
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할아버지 나중에 도시 오시면 제가 가끔 막걸리 대접은 해
말을 하던 강진은 핸드폰이 울 리는 것에 고개를 숙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 것에 강진이 일단 받았다.
“여보세요.”
[저 유성태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기 그 핸드폰 가게에 왔는데 한끼식당이 안 보이네요.]
“아! 제가 앞으로 나가겠습니 다.”
말과 함께 강진이 할머니를 보 았다.
‘할머니 한 분밖에 안 계신 데…… 처음이라 그런가?’
몇 번 와 본 손님들은 가게 안 에 배용수와 허연욱 등 귀신 한 둘이 있어도 알아서 잘 찾아왔 다.
그런데 지금 유성태는 가게 안 에 할머니 귀신 한 분만 있는데 도 못 찾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일단 문을 열고 밖 으로 나왔다. 그리고 강진의 눈 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유성태 와 중년의 아주머니, 그리고 자 신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보였 다.
“여깁니다.”
“아! 아?”
강진의 부름에 유성태가 손을
들어 그를 보다가 의아한 듯 한 끼식당을 보았다.
“어?”
방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한끼 식당 간판이 눈에 보이는 것이 다.
그에 황당한 눈으로 강진과 한 끼식당 간판을 번갈아 보았다. 그런 유성태를 보며 강진이 말했 다.
“저희 가게가 이상하게 사람들 눈에 안 띈다더군요.”
강진의 말에 유성태가 한끼식당 과 그 옆에 있는 핸드폰 가게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에 안 띄어도 이렇게 안 띌 수가 있나?’
의아해하는 유성태를 보며 강진 이 아주머니와 청년에게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이강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두 사람의 인사에 강진이 가게 를 가리켰다.
“들어오세요.”
강진이 가게 문을 열고 손님들 을 보자 그들이 먼저 안으로 들 어갔다.
“흠! 냄새가 좋네요.”
요리 냄새에 유성태가 미소를 짓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식당은 손님이 원하는 메 뉴로 음식을 만들어 드립니다.”
“정해진 메뉴가 없습니까?”
“있는 재료 중에 손님이 드시고 싶은 걸로 만들어 드립니다.”
“그렇게 하면 재고 정리 같은 것이 어려울 텐데?”
사업가로서의 마인드가 있다 보 니 강진의 말에 바로 문제점을 안 것이다.
확실히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려면 재료가 들쑥날쑥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음식 장사는 안 쓰는 재료
는 상하게 되니 폐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제가 인턴을 하면 서 하는 장사라 재료를 많이 들 이지 않아 괜찮습니다.”
“그럼…… 가게는 저녁에만 하 는 겁니까?”
“평일에는 퇴근하고 저녁에만 하고, 주말에는 점심 저녁 다 하 고 있습니다.”
“논현에서 이 정도 상가를 임대 하려면 월세가 상당할 텐데? 월
세 감당이 되십니까?”
자신이 장사하는 시간대를 알면 누구나 하는 질문이라 강진이 웃 으며 말했다.
“건물이 제 명의라 월세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아…… 건물주셨군요.”
대단하다는 듯 보는 유성태를 보며 작게 웃은 강진이 말했다.
“지금 요리 중이니 잠시만 기다 려 주십시오.”
“저희 아직 메뉴 안 정했는 데……
“유성태 씨에게는 제가 드리고 싶은 음식이 있어서요. 아! 혹시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하 세요. 그것도 해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유성태가 가족들을 보았다. 그 시선에 아들이 말했 다.
“저는 괜찮아요.”
“먹고 싶은 것 말해. 오랜만에 외식하러 나왔는데, 먹고 싶은
것 먹어야지.”
“ 괜찮아요.”
“그럼 당신은?”
유성태의 물음에 아줌마가 피곤 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냥 아무거나 먹어요.”
“그래도 오랜만에 외식인데.”
“피곤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아줌마 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그러고는 아줌마가 강진을 보았
다.
“사장님이 준비하는 음식도 냄 새가 좋네요. 맛있겠어요.”
“맛있게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말을 한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 가다가 홀을 힐끗 보았다. 할머 니는 안쓰러운 눈으로 며느리를 보고 있었다.
‘며느리와 사이는 좋으셨나 보 네.’
말을 하지는 않아도, 눈빛만 봐 도 며느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였다.
그런 할머니 귀신을 보던 강진 이 주방에 들어가 마저 음식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툭툭툭!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할머니가 김치찌개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 는 것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그에 할머니가 한쪽에 있는 마 늘을 가리켰다.
“더 넣어요?”
끄덕!
할머니의 고갯짓에 강진이 마늘 을 식칼로 팡팡 때리고는 작게 다져 찌개에 넣었다.
‘마늘 너무 많이 넣는 것 같은 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은 할머 니가 하라는 대로 다른 음식들에 도 양념을 추가했다.
자신의 취향도, 한끼식당 스타 일의 레시피도 아니지만…… 맛
이라는 것은 아주 극단적으로 개 인의 취향인 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취향은 대부분 어머 니의 손맛을 따라가게 되어 있었 다.
그러니 유성태에게는 할머니의 레시피가 정답이었다. 엄마의 손 맛이라는 것은 어떤 요리사도 따 라 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모든 음식을 다 만들고, 마지막 으로 꼬막을 깐 강진은 그것을 그릇에 담았다.
마음 같아서야 꼬막을 다 까고 싶지만, 손님들이 기다리니 일단 먹을 양만큼만 손질을 했다.
꼬막을 뚜껑만 따고 그릇에 놓 은 강진이 양념장을 작은 종지에 담아서는 쟁반에 올렸다.
스윽!
쟁반을 든 강진이 홀로 서빙을 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강진의 말에 유성태가 웃으며 말했다.
“냄새가 좋아서......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지 않았습 니다, 라는 말을 하려던 유성태 의 얼굴에 의아함과 놀람이 어렸 다.
‘이건......"
강진이 내려놓는 반찬들은……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었 다.
삶은 계란, 돼지고기 김치찌개, 가지볶음과 김치볶음까지...... 찌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다 유성태
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당신 좋아하는 반찬들만 있 네.”
웃으며 아내가 젓가락과 수저를 놓아주자 유성태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반찬들을 보다가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어떻 게 아시고……?”
“좋아하시는 반찬이라고 하시니 기분이 좋네요.”
웃으며 강진이 냉장고에서 주전 자와 양은그릇을 가지고 왔다.
“한잔 하시면서 드세요.”
말을 하며 강진이 주전자를 들 자 유성태가 그릇을 들었다.
쪼르륵!
강진이 따라 주는 막걸리를 본 유성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저희 집 막걸리 같은데?”
“맛도 안 보시고 아세요?”
“어릴 때부터 보던 막걸리 라…… 딱 보니 저희 집 막걸리 네요.”
유성태의 말에 강진이 막걸리를 보았다.
‘하긴 다른 막걸리에 비해 조금 은 더 뽀얗기는 하지.’
“그런데 저희 막걸리는 어떻 게?”
“어제 과장님하고 인사드리러 갔을 때 주시더군요.”
“우리 집 막걸리가 맛이 좋죠.”
“저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 다.”
그러고는 강진이 아주머니와 청 년을 보았다.
“두 분도 한잔하시죠.”
“저는 운전을 해야 해서요.”
“맞습니다. 음주 운전은 절대 해서는 안 되죠.”
강진의 말에 유성태가 웃으며 주전자를 받아서는 아들, 유호수 에게 내밀었다.
“아들도 같이 하자.”
“저 운전은……
“강남에서 대리가 안 잡힐까? 대리 부르면 돼. 오랜만에 아빠 하고 한잔하자.”
유성태의 말에 유호수가 잔을 두 손으로 들었다.
쪼르륵! 쪼르륵!
유성태가 유호수의 잔에 막걸리 를 따라주다가 문득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들은 우리 막걸 리 안 먹어 봤지?”
“네.”
“먹어 봐. 할아버지가 만든 막 걸리는 한국 최고니까.”
말을 하며 유성태가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단숨에 막걸리를 다 마신 유성 태가 크게 숨을 토하고는 삶은 계란을 밥 위에 올리고는 반으로 쪼갰다.
그러고는 한쪽에 볶은 김치를 올리고는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김치를 볶기는 했지만, 살짝만 볶아서 아삭한 맛이 남아 있었 다. 기분 좋은 얼굴로 안주를 먹 던 유성태가 유호수를 보았다.
“아들도 먹어 봐.”
유성태의 말에 유호수가 고개를 돌려 막걸리를 마시고는 내려놓 았다.
“어때?”
“고소하고 맛있네요.”
유호수의 말에 유성태가 삶은 계란을 아들의 밥 위에 올렸다.
“먹어 봐.”
유성태의 말에 유호수도 삶은 계란을 반으로 쪼개고는 볶은 김 치를 올려 먹었다.
곧 유호수의 얼굴에 미소가 어 렸다.
“맛있다.”
“그렇지.”
“삶은 계란하고 볶은 김치가 잘 어울려요.”
유호수의 말에 유성태가 웃으며
남은 계란에 볶은 김치를 듬뿍 올려 먹으며 말했다.
“아빠 어릴 때는 계란도 무척 귀했거든. 가끔 엄마가 계란 삶 아서 주면 이렇게 김치 볶음을 올려서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맛……
말을 하던 유성태가 입을 다물 었다. 별다른 것도 아닌, 그냥 삶 은 계란에 볶은 김치를 올린 것 이지만…….
그 별것 아닌 계란과 김치에서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