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화
삶은 계란과 볶은 김치에서 어 머니의 향수를 느낀 유성태가 잠 시 있다가 막걸리를 마시고는 김 치찌개를 떠서 먹었다.
“아! 맛있네요. 칼칼하……
맛있다는 듯 입맛을 다시던 유 성태의 얼굴에 문득 의아함이 어 렸다.
‘어머니 맛과 비슷한데?’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맛이 엄 마가 해 주던 것과 비슷했다.
“어? 이거 어머니 찌개 같아 요.”
놀란 눈을 한 아내의 말에 유성 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머니 찌개 맛과 비슷했다.
그에 유성태가 돼지고기와 김치 를 집어 같이 입에 넣었다.
부드럽게 푹 익은 김치와 돼지 고기의 기름이 입안에 퍼지는 것 이 맛이 좋았다.
딱 어머니의 김치찌개였다.
놀란 눈으로 김치찌개를 먹은 유성태가 강진을 보았다.
“저기 이거, 어떻게 끓이신 것 입니까?”
“맛이 괜찮으십니까?”
“저희 어머니 김치찌개하고 너 무 맛이 비슷합니다.”
유성태의 말에 강진이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기분 좋은 얼 굴로 유성태를 보며 김치찌개를 연신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어서 많이 먹으라는 듯 말이다.
“어떻게 제가 어머님 손맛에 비 할 수가 있겠어요. 하지만 기분 이 좋네요. 어머님 손맛이 떠오 른다는 것은 입에 맞고, 맛있다 는 말씀이시니까요.”
그러고는 강진이 막걸리를 그의 잔에 따라 주었다.
쪼르륵! 쪼르륵!
“그럼 식사하세요.”
편하게 식사할 수 있게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유성태가 막
걸리를 마시고는 반찬들을 집어 먹었다.
그리고 반찬들을 먹을수록 유성 태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움과 그 리움이 떠올랐다.
만족스러움은 맛이 있다는 뜻이 었고, 그리움은…… 음식 하나하 나가 모두 어머니가 해 준 그 맛 이었기 때문이었다.
꿀꺽! 꿀꺽!
막걸리를 단숨에 마시는 유성태 의 모습에 유호수가 주전자를 들
었다.
“아버지.”
“그래, 아들이 따라 주는 것도 한 잔 먹어보자.”
웃으며 그릇을 드는 유성태에게 유호수가 막걸리를 따라 주었다.
강진은 주방에서 홀을 보고 있 었다. 홀에서 단란하게 막걸리 를 마시고 음식을 먹는 유성태와 가족들을 쳐다보던 강진이 할머 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어느새 유호수의 옆자 리에 앉아 손주를 보며 뭔가 손 짓을 하거나 그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를 보던 강진이 꼬 막을 마저 까기 시작했다. 꼬막 뒤에 숟가락을 넣고 비틀어 뚜껑 을 까고, 속살을 하나 입에 넣은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
꼬막을 까며 하나씩 집어먹다 보니 심심하지도 않고 좋았다.
달칵!
깐 꼬막을 하나씩 놓던 강진의 눈에 손이 보였다.
휙휙!
그에 고개를 드니 할머니가 그 를 보며 홀을 가리키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홀을 보니 아직 유 성태 가족은 아직 식사 중이었 다.
“뭐 더 가져다드려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꼬막과 가스레인지를 가리켰다.
아마도 꼬막을 다 먹었다는 것, 그리고 김치찌개를 따뜻하게 다 시 데워 달라는 뜻인 모양이었 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꼬막을 그릇에 담아서는 홀로 나 왔다.
식탁에 꼬막을 놓은 강진이 김 치찌개를 가리켰다.
“따뜻하게 데워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성태의 말에 강진이 김치찌개 를 부엌으로 가져와 다시 끓였 다.
그런 강진을 보며 할머니가 프 라이팬을 가리키고는 계란을 가 리켰다.
“계란 프라이요?”
끄덕! 끄덕!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프라이팬 을 올리고 계란 세 개를 쪼개 넣 었다.
약한 불로 은근하게 만드는 계 란 프라이를 좋아하기에 강진이 불을 약하게 해 놓자, 할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손으로 불길이 솟 는 모양을 만들었다.
그에 강진이 불을 강하게 키우 자 할머니가 계란을 손으로 막 휘저었다.
‘스크램블을 만들라는 건가?’
할머니를 본 강진이 나무젓가락 으로 계란을 휘저었다.
휙휙휙!
촤아악! 촤아악!
강진의 젓가락질과 함께 계란이 찢어졌다. 그리고 강진이 소금을 조금 집어넣으려 하자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소금 안 넣어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 진이 그대로 계란을 마저 볶고는 그릇에 담았다.
그런 강진을 보며 할머니가 간 장을 가리키고 계란을 가리켰다.
“간장 넣어요?”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할머니를 보며 강진이 간장을 살짝 계란 스크램블에 둘렀다.
‘취향 확고하시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계란과 김치찌개를 들고는 홀로 가지고 나왔다.
김치찌개를 식탁 가운데에 놓은 강진이 계란 스크램블도 내려놓 았다.
“이건‘?”
“단백질이 해장에 좋을 것 같아
서요.”
강진의 말에 유성태가 계란 스 크램블을 보다가 웃었다.
“이강진 씨 음식을 보면 꼭 우 리 엄마가 해 준 것 같습니다. 우리 엄마도 계란을 찢어서 이렇 게 간장을 뿌려주셨거든요.”
웃으며 계란 스크램블을 숟가락 으로 떠먹은 유성태가 강진을 보 았다.
“맛있습니다.”
계란 스크램블에 간장만 한 바
퀴 돌린 것이지만 유성태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맛있게 드셨다니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오랜만에 맛있는 음 식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으며 유성태가 막걸리 잔을 내밀자 강진이 받았다. 강진이 잔을 받자 유성태가 막걸리를 따 라 주었다.
쪼르륵!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 것 같은 데, 강진 씨도 같이 앉아 드시
죠.”
유성태의 말에 강진이 식탁을 슬쩍 보고는 의자를 하나 끌어 옆 테이블에 앉았다.
“이쪽에 앉으시지.”
아들 옆에 빈자리를 가리키는 유성태를 보며 강진이 웃으며 고 개를 저었다.
‘그곳에는 이미 주인이 있습니 다.’
이미 할머니가 자리에 앉아 손 주를 물고 빨 것처럼 지켜보고
있으니 말이다.
“손님 테이블에 함부로 앉는 주 인은 좋은 주인이 아닙니다.”
“그런가요?”
“가족 같은 마음으로 손님을 대 해야 하지만, 진짜 가족처럼 대 하면 손님은 불편해하는 법이 죠.”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가끔 너무 친하게 구는 음식점을 가면 조금 불편하기도 하더군요.”
유성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점은 어디까지나 음식과 서 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가족을 먹이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접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 해야지, 손님을 가족처럼 편하게 대하면 안 되는 것이다.
강진이 의자에 앉자 유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성태가 막걸리 잔을 들자 마 주 잔을 부딪친 강진이 막걸리를 마셨다.
기분 좋고 맛있게 술을 마신 강 진이 유호수를 보았다.
“막걸리 어때요?”
“맛있습니다.”
유호수의 말에 강진이 유성태를 보았다.
“막걸리는 맛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앞뒤가 없지만 유 성태는 강진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잠시 막걸리 잔을 보던 유성태
가 유호수를 보았다.
“ 호수야.”
“네.”
“할아버지 막걸리 맛있니?”
유성태의 물음에 유호수가 고개 를 끄덕였다.
“맛있어요.”
유호수의 답에 유성태가 잠시 막걸리가 든 잔을 보다가 한 모 금 크게 삼켰다.
꿀꺽!
크게 막걸리를 마신 유성태가 볶은 김치를 먹었다.
아삭! 아삭!
볶은 김치를 천천히, 음미라도 하는 것처럼 씹던 유성태가 아내 를 보았다.
“당신 생각은 어때?”
“나도 아버님 막걸리 맛있고 좋 아해요.”
두 사람의 답에 유성태가 생각 에 잠기자, 강진이 말했다.
“음식 장사는 음식이 맛있으 면…… 망하지 않죠.”
강진의 말에 유성태가 그를 보 았다. 잠시 강진을 보던 유성태 가 막걸리를 마시고는 반찬을 보 다가 말했다.
“설득을 잘하시네요.”
“저는 그저 음식을 만들었을 뿐 이고……
강진이 막걸리가 담긴 주전자를 가리켰다.
“막걸리가 맛있잖습니까.”
유성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숨을 토했다.
“힘들어도 버텨야겠군요.”
그러고는 유성태가 아내를 보았 다.
“나 시골 내려갈게.”
“시골?”
“아버지하고 막걸리 만들 거 야.”
“여보?”
놀란 눈을 하는 아내를 보며 유
성태가 유호수를 보았다.
“ 호수야.”
“네.”
“아빠 내일 시골 간다.”
“내일요?”
유호수의 물음에 유성태가 막걸 리 잔을 손가락으로 잠시 쓰다듬 다가 말했다.
“최소한 막걸리를 만들면 망하 지는 않잖니.’’
유성태의 말에 아내가 말했다.
“정말 마음 잡은 거야?”
“이강진 씨 말대로 음식점은 음 식이 맛있으면 안 망하고, 막걸 리는 막걸리를 맛있게 만들면 안 망하는 법이야.”
“하지만…… 아버님하고 같이 일하는 것, 괜찮겠어요?”
걱정스러워하는 아내의 말에 유 성태가 웃었다.
“아버지는 자식 위해서 평생 해 온 주조장 파실 생각까지 했는 데…… 욕 좀 먹는 거야 참고 들
어야지. 그리고 아버지가 날 싫 어해서 그러시는 것은 아니잖 아.”
“그건…… 그렇죠. 그럼 정말 내일 내려가실 거예요?”
“마음먹었을 때 가야지.”
“창섭 씨한테 말은 해야죠?”
아내가 부동산 사업 제안을 한 친구 오창섭의 이름을 거론하자 유성태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아무래도 중간에 빠지는 모양새 라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곧 유
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러고는 유성태가 유호수를 보 았다.
“아빠 없는 동안 사고 치지 말 고 엄마하고 잘 있고. 일 있으면 전화하고.”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할아버지 모시고 일하는 건데, 괜찮고 아니고가 어디에 있어. 그리고 아빠는 가장이잖아.”
웃으며 유호수에게 잔을 내미는 유성태의 모습에 강진이 할머니 를 보았다.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유성태를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아들하고 같이 사 는 것을 걱정하신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 는 것이 싫으셨던 건가?’
유성태와 할아버지가 같이 살면 싸운다며 걱정하던 것과 달리, 유성태가 시골로 내려가 할아버 지의 일을 같이 한다고 하니 좋
아하시는 것이다.
‘하긴 자식도 소중하지만, 남편 도 소중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강진에게 유 성태가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가시게요?”
“내일 시골 가기로 했으니 여기 까지만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유성태가 자리에 일어 나며 지갑을 꺼냈다.
“얼마입니까?”
“삼만 원 받으면 될 것 같습니 다.”
“이렇게 먹었는데 너무 적게 받 으시는 것 아닙니까?”
“막걸리야 유 사장님 댁에서 받 아 온 건데. 막걸리 가격까지 받 으면 제가 양아치죠.”
“그래도……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남는 것 은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강진의 말에 유성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먹었습니다.”
유성태가 돈을 꺼내 내밀자 강 진이 돈을 받았다.
“다음에 또 이용해 주십시오.”
“가격 싸고 맛있으니 다음에 또 와야죠.”
웃으며 유성태가 가족들을 데리 고 나가다가 강진을 보았다.
“대리운전 번호 아십니까?”
“1588 에……
강진이 대리운전 번호를 알려주 자 유성태가 그 번호에 전화를 걸며 말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웃으면서 유성태가 나가는 것을 보며 강진이 배웅을 해 주었다.
* * *
“아가씨 술 한 잔 받아!”
“ 괜찮아요.”
“같이 한잔……
여자 귀신들에게 술을 권하는 젊은 귀신의 모습에 최호철이 눈 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켰다.
“밥 먹으러 왔으면 조용히 밥이 나 드시죠.”
전직 강력계 형사가 잔뜩 얼굴 을 굳히며 하는 말에 상대가 슬 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냥…… 뭐 같이 한잔……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귀신 에게 말했다.
“여기가 헌팅하는 곳은 아니 죠.”
“험! 그냥 외로운 귀신들끼 리……
“헌팅하고 싶으면 저희 가게 말 고, 다른 헌팅 포차 같은 곳을 가시죠.”
강진의 말에 귀신이 입맛을 다 셨다.
저승식당에서나 밥을 먹고 현신
을 할 수 있지, 다른 식당이나 술집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이야 기다.
“미안해요.”
귀신이 여자 귀신들에게 슬쩍 고개를 숙이며 원래 자리로 갔 다.
그런 귀신을 보던 강진이 여자 귀신들에게 말했다.
“방법이 나쁘기는 하지만……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너 무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강진의 말에 여자 귀신이 힐끗 자신들에게 술을 먹자고 한 귀신 을 보았다.
귀신은 같이 자리한 귀신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 다. 물론 귀신들이 하는 이야기 는 중구난방이라, 그저 각자 자 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 기는 했지만 말이다.
“오늘은 어디 다녀오셨어요?”
강진이 화제를 돌리려는 듯 말 을 걸자, 최호철이 말했다.
“유람선 탔어.”
“좋았겠네요.”
“그냥 강바람 쐰 거지.”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저는 서울 살면서 유람선은 한 번도 못 타 봤네요.”
“배 안 타 봤어?”
“어선은 타 봤는데, 유람선하고 는 다르잖아요.”
“어선도 타 봤어?”
“이것저것 안 해 본 것이 없 죠.”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시간을 보았다. 12시 40분이니 곧 영업 마감이 다.
‘만복 형이 좋아하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카운터 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만복에게 줄 로봇 장난감과 소녀 귀신에게 줄 장난감이 있었다.
만복과 한 약속대로 오늘 강진 은 그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JS 금융 문을 통해 가면 금방 가니까, 거리가 멀어도 부담도 없으니 말이다.
디링!
그때 들려온 풍경 소리에 강진 이 문을 보았다. 한 삼십 대 초 반 정도로 보이는, 깔끔한 인상 에 슈트를 입은 남자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살짝 술에 취한 듯 얼굴이 달아 오른 남자가 가게 안을 보다가 한쪽에 있는 빈자리로 가서는 앉 았다.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처음 뵙는 분이네요.”
“처음입니다.”
“뭐 드릴까요?”
“밖에 먹고 싶은 음식 만들어 준다고 쓰여 있던데.”
“맞습니다.”
“매운 라면에 고추 넣고 김치 국물 넣고, 계란은 풀지 않고 수 란처럼 만들어서 주실 수 있습니
까?”
“ 가능하죠.”
“그렇게 주십시오.”
남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주방으로 들어왔다.
‘시간 부족하니 빨리 끓여야겠 네.’
라면이 간단하다고 해도 끓이고 먹는데 이십 분이면 시간이 빠듯 하다.
1시까지는 먹고 가야 하니 말이
다.
그에 강진이 물을 올릴 때, 배 용수가 슬며시 다가왔다.
“대단하네.”
“뭐가?”
“저 사람 말이야. 여기 어떻게 들어왔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무슨 말 이냐는 듯 그를 보았다. 그 시선 에 배용수가 고갯짓으로 방금 들 어온 남자를 가리켰다.
“쟤 사람이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남자를 보았다.
‘사람이 이 시간에 어떻게 들어 왔지?’
지금은 귀신들의 시간이다. 사 람이라면 지금 가게 입구도, 간 판도 보지 못할 시간인데…… 저 남자는 가게에 들어오고 주문까 지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