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36화 (134/1,050)

135 화

강진은 칡뿌리와, 만복과 같이 캔 도라지가 담긴 봉투를 들고 김치 저장소 앞에 서 있었다.

“또 놀러 와.”

“자주 올게요.”

말을 하던 강진이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저 혹시 돼랑이 좀 불러 줄 수 있어요?”

“돼랑이?”

“네.”

강진의 말에 만복이 소리쳤다.

“돼랑아! 돼랑아!”

만복이 몇 번 부르자 숲 한쪽에 서 소리가 들리더니 돼랑이가 모 습을 드러냈다.

푸르륵! 푸르륵!

말처럼 머리를 흔들며 소리를 내는 돼랑이를 보던 만복이 강진 을 보았다.

“돼랑이는 왜?”

“사료 좀 사 오려고요.”

“사료?”

“새끼도 있는데 먹을 것이 없다 면서요.”

어제 처음 본 멧돼지기는 했지 만, 은혜 갚겠다고 칡도 캐온 것 이 가상하기도 하고…… 또 사]끼 도 있다는데 그게 걸렸다.

자식들 입에 음식을 못 넣어주 면 가슴이 아픈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똑같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지.”

“JS 금융 통해서 갔다 오면 금 방 오니까 잠시 여기서 기다리세 요.”

“그럼 그럴래?”

만복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 진이 짐을 일단 내려놓고는 김치 저장소 문에 명함을 대고는 들어 갔다.

JS 금융 내에 위치한 편의점에 들어간 강진은 조금 난감한 상황

에 처했다.

“돼지 사료가 없어요?”

강진의 말에 직원이 고개를 끄 덕였다.

“축생계 편의점에는 사료를 파 는데, 인간계 편의점에는 따로 사료를 팔지 않습니다.”

‘하긴 당연한 건가?’

생각을 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 다. 이승 편의점에서도 애완동물 사료를 조금씩은 팔기는 하지만 돼지 사료는 팔지 않는다.

게다가 여기는 JS 금융 내에 위 치한 편의점이니 인간 귀신들이 먹을 것 외에는 들여놓지를 않는 것이다.

‘그나저나 축생계? 동물들도 인 간처럼 저승이 따로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편의 점 한쪽에 있는 도시락을 보았 다.

‘돼지 먹이자고 도시락을 사다 주기도 그렇잖아?’

사람이라면 도시락 하나 먹으면

배가 부르겠지만, 그렇게 큰 돼 지한테는 간에 기별도 안 갈 것 이다.

“그럼 혹시 사료를 살 만한 곳 이 없을까요?”

“오에 가면 사료를 전문으로 파 는 곳이 있기는 합니다.”

“오면…… 저승요?”

“네.”

“그…… 산 사람은 갈 수 없지

않나요?”

“가시는 분들이 있기는 한 데…… 손님은 죽기 전에는 못 가실 것 같네요.”

직원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 시고는 말했다.

“그럼 혹시 축생계 편의점에서 파는 사료를 주문해서 여기서 받 을 수 있을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말을 한 직원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어떻게, 구해 드릴까요?”

“돼지가 먹는 걸로 10킬로 한 포대가 얼마나 하나요?”

“십만 원입니다.”

십만 원이라는 말에 강진의 얼 굴이 살짝 굳어졌다. 생각보다 비싼 것이다.

“비싼 것 같은데?”

“저승에서는 영물이 먹는 거라 가격대가 좀 있습니다.”

직원의 말에 강진이 잠시 망설 였다. 그런 강진의 모습에 직원 이 말했다.

“이승 돼지 사료 가격하고 비교 해 드릴까요?”

“그런 것도 되나요?”

“컴퓨터 몇 번 두들기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고는 직원이 자판을 몇 번 두들기자 말했다.

“이승에서는 25킬로그램에 이만 원 정도 하네요.”

“이만 원요?”

“네.”

직원의 말에 강진이 선택할 것 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승에서 사야겠네 요.”

“그렇게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괜히 이것저것 물어보기만 하 고…… 죄송합니다.”

강진의 말에 직원이 고개를 저 었다.

“한끼식당 주인이라면 이 정도 편의는 봐 드리는 것이 당연합니

다.”

“한끼식당 주인이라 봐 주시는 건가요?”

“저도 귀신이었던 시절이 있었 습니다.”

“아…… 저희 식당에 와 보신 적 있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한끼식당은 아니고 부산 쪽에 있는 저승식당이었습니다.”

직원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강 진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매대를 보았다. 한쪽에는 쌀이 소매 포장이 되어 있었다.

“쌀은 얼마나 해요?”

“1킬로그램짜리는 5천 원, 5킬 로그램짜리는 1만 8천 원입니 다.”

‘돼지는 잡식이니까. 쌀도 먹겠 지?’

강진이 5킬로그램짜리 한 봉지 를 들고는 계산대에 올렸다.

“1만 8천 원입니다.”

계산을 한 강진이 서둘러 편의 점을 나와서는 문을 통해 김치 저장고 앞으로 나왔다.

강진이 나오자 만복이 말했다.

“쌀 사 왔네?”

“사료는 이승 가서 사 와야 할 것 같아서 일단 쌀로 사 왔습니 다. 돼지니까 쌀도 먹죠?”

“얘들은 입에 넣고 씹을 수 있 으면 다 먹어.”

만복의 말에 강진이 쌀 봉지를 돼랑이 앞에 내려놓았다.

“다음에는 너희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가져올게.”

강진의 말에 돼랑이가 봉지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고는 봉지를 조심히 입에 문 돼랑이가 강진을 한 번 보고는 숲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거 JS 편의점에서 사 온 거 라 형이 손을 댈 수 있을 겁니 다. 봉지까지 먹지 않게 뜯어주 세요.”

“알았어. 그럼 또 와.”

“오늘이나 내일 안에 사료 가지 고 올게요.”

“그래.”

만복이 아쉬워하는 것을 보며 강진이 손을 흔들었다.

“또 올게요!”

만복이 손을 들어 보이자 강진 이 몸을 돌려 김치 저장소 문을 열었다.

덜컥!

“다음에 또 오세요.”

강진이 환하게 웃으며 하는 인 사에 점심 손님들이 웃으며 가게 를 나섰다.

평일 시간대에는 손님이 드물지 만, 주말에는 강진이 어지간하면 장사를 접거나 쉬는 경우가 없어 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꽤 있었 다.

물론 꽤라는 것도 그리 많지는 않다. 점심에 네 테이블 정도 차 니 말이다.

하지만 강진은 네 테이블이 마 음에 들었다. 손님들이 더 들어 오면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는 것 까지 혼자서는 벅차지고, 손님은 기다려야 한다.

딱 네 테이블이 강진 혼자서 영 업하기 적당한 인원이었다.

어쨌든 손님들을 내보낸 강진이 홀을 치우기 시작했다.

‘점심 장사로 11만 원…… 좋 네.’

저녁도 이만큼 팔면 하루에 20 만 원 이상 버는 것이니 강진으 로서는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인턴 끝나면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도 할 테고 말이다.

“인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한 명 구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 데……

강진은 한끼식당에서 성공할 자 신이 있었다.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해 본 강 진은 성공에 대한 비결을 알고 있었다.

첫째,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

둘째, 저렴하면서 맛있어야 한 다.

셋째, 손님이 찾아올 정도의 특 색이 있는 맛있는 음식이어야 한 다.

그리고 한끼식당은 그 세 가지 를 모두 충족한다.

일단 음식이 맛있고, 가격도 저

렴하다. 물론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이 무엇이냐에 따라 가격대 가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식재의 가격대 때문에 그런 것이 지 비싸게 받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가게 특색?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손님이 원하는 음식 을 만들어 준다…… 이것만큼 특 색이 있는 것도 없다.

게다가 손님이 원하는 음식은 다 맛있게 내놓을 자신도 있었 다.

요리 연습장에 있는 레시피대로

만 하면 맛은 보장이 되니 말이 다.

즉…… 강진은 음식 장사로는 절대 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 다.

다만 몸은 힘들 것이다.

점심, 저녁, 거기에 귀신들을 상 대로 하는 장사까지 하루에 세 탕을 뛰어야 하니 말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나 구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인턴이 끝나고 정식으로 영업을

하고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면 강진 혼자서 손님을 받는 것은 무리다.

아무래도 음식도 만들고 서빙하 고 설거지까지 하는 것은, 아무 리 아르바이트로 다져진 강진이 라고 해도 무리였다.

일단 손님들부터가 음식이 딜레 이가 되면 불만이 쌓일 테니 말 이다.

“근데 여기서 일을 하게 되면 귀신을 보게 될 텐데……

저승식당에서 일하다 보면 귀기 가 쌓여서 귀신을 보게 될 수 있 었다.

아니, 그뿐이 아니더라도 귀기 가 쌓이게 되면 몸에 안 좋을 수 도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하던 강진이 한숨을 쉬 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혼자 해야겠네.”

돈 버는 것도 좋고,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좋지만 아르바이트생

의 건강까지 해치면서 음식을 팔 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홀을 다 정리한 강진이 설거지 를 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 리가 들렸다.

디링!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내 민 강진의 눈에 어제저녁에 왔었 던 남자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 다.

“어서 오세요.”

강진의 인사에 남자, 황민성이

가게를 둘러보며 말했다.

“브레이크 타임입니까?”

“괜찮습니다. 앉으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비어 있 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 황민성 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급하지 않으시면 제가 하던 설 거지가 있어서요.”

“그렇게 하세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하던 설 거지를 마저 하고는 홀로 나왔

다.

“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하시는군요.”

“한 번 오신 손님이라면 기억 못 하겠지만, 다시 찾아오신 손 님이면 어떻게든 기억해야지요.”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음식은 어떻게 해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한쪽에 있는 화이트보드를 보고는 말했

다.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 겁니까?”

“있는 식재료로 할 수 있는 요 리는 만들어 드립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안내문을 보다가 말했다.

“떡볶이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아! 혹시 원하는

취향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라면 면은 어제처럼 조금 퍼지 게 해 주시고, 어묵은 많이 넣어 주시고 떡은 두 개 정도만 넣어 주세요. 그리고 삶은 계란은 노 른자가 살짝 익는 정도로 해 주 세요.”

‘떡볶이가 아니라 라볶이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말했 다.

“그 일본 라멘에 들어가는 계란 처럼 반숙으로 해 드리면 되겠습

니까?”

“그것보다는 조금 덜해서, 가르 면 노른자가 좀 홀러내리는 식이 었으면 합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떡을 왜 두 개만 넣으 세요?”

“제가 떡을 안 좋아합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그럼 떡을 빼 드릴까요?”

“떡볶이에는 떡이 있어야죠.”

그의 답에 강진의 얼굴에 황당 함이 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 시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 다.

“알겠습니다.”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하며 강 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떡을 안 좋아하는데 왜 떡볶이 를 주문했지? 거기에 떡을 안 좋 아하면 떡을 넣지를 말■지, 왜 딱

두 개야?’

속으로 중얼거리던 강진이 고개 를 저었다.

‘개인의 취향은 존중해 줘야지.’

한국 사람이라면 다 먹는다는 김치도 안 먹는 사람이 있다. 그 러니 떡을 싫어해도 떡볶이를 좋 아할 수도 있었다.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말이 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일단 계 란부터 삶았다. 소금과 식초를

조금 넣고 계란 다섯 개를 넣었 다.

하나 삶으나 다섯 개를 삶으나 물을 끓이는 것은 같으니 몇 개 더 삶는 것이다.

그리고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린 강진이 떡볶이를 만들기 시 작했다.

다 만들어진 떡볶이를 그릇에 담은 강진이 황민성에게 가져다 주었다.

“여기 떡볶이 나왔습니다.”

강진이 가져다준 떡볶이를 받은 황민성이 젓가락을 들고는 계란 을 살짝 눌렀다.

스르륵!

계란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젓가 락의 감촉과 함께, 계란이 반으 로 쪼개지며 눅진한 노른자가 주 르륵 흘러나왔다.

완벽한 반숙의 모습에 미소를 지은 황민성이 소스에 젖은 면발 을 입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

다.

‘맛있군.’

미소를 지으며 황민성은 라면 사리와 어묵을 함께 집어 먹었 다.

맛있게 떡볶이를 먹는 황민성을 본 강진이 주방에 들어갔다. 그 러고는 계란 하나를 깨고 파를 조금 썰어 간단하게 계란국을 만 들었다.

계란국을 작은 국그릇에 담은 강진이 그것을 황민성에게 가져

다주었다.

“국물하고 같이 드세요.”

“감사합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계란국을 한 숟가락 떠서 먹고는 미소를 지었다.

“후추하고 파 향이 좋네요.”

“간단하면서도 입맛을 돋우는, 좋은 맛이죠.”

강진의 말에 그를 보던 황민성 이 입을 열었다.

“좋네요.”

황민성이 다시 음식을 먹기 시 작하자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갔 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만복에게 받아 온 도라지와 칡을 손질했 다.

도라지는 전에 캐온 것과 비교 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크고 좋았다.

-이건 팔아서 너 용돈이나 해.

만복이 도라지를 캘 때 하던 말

을 떠올리며 강진이 웃었다.

“용돈 잘 쓸게요.”

두 뿌리 캐어 왔으니 잘 팔면 오륙백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거 팔아서 돼랑이 사료도 사 고, 형 장난감이랑 간식도 사면 되겠네.’

그리고 남는 건 말 그대로 용돈 으로 쓰면 될 테고 말이다.

“부자 형 있으니 좋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의 귀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디링!

풍경 소리에 고개를 내민 강진 의 눈에, 중년의 남성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서 오세……

말을 하던 강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남성이 그대로 황민성 의 앞에 무릎을 꿇어 버리는 것 이다.

“황 사장! 한 번만 살려줘!”

남성이 머리를 땅에 대고 사정 을 하는 것에 황민성이 떡볶이를 먹다가 한숨을 쉬고는 입맛을 다 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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