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한숨을 쉰 황민성이 티슈를 꺼 내 입가를 닦고는 남성을 일으키 려 했다.
하지만 남성은 그가 도와주겠다 는 소리를 듣기 전에는 일어날 생각이 없는 듯, 강하게 몸에 힘 을 주며 고개를 숙였다.
“살려 주게.”
그런 남성의 모습에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조 사장님, 일단 앉으시죠.”
“자네가 도와주겠다고……
“저에게 무릎을 꿇은 것을 봐서 이야기를 들어 드리려고 한 것이 지, 조 사장님이 무릎을 계속 꿇 고 있는 것을 보기 싫어서 앉으 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황민성의 말에 조 사장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안 앉으시면 저는 나가겠습니 다.”
황민성이 몸을 일으켜 지갑을
꺼내 만 원을 놓고는 나가려 하 자, 조 사장이 급히 일어났다.
“앉겠네.”
조 사장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앉으세요.”
황민성이 앞자리를 가리키자 조 사장이 주춤거리며 자리에 앉았 다.
그런 조 사장을 보며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자금 회수 문제 때문에 오신 것으로 보이는군요.”
“이렇게 갑자기 자금 회수를 하 면 우리 회사는 망해!”
“제가 조 사장님의 회사에 투자 결정을 한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 다. 조 사장님의 사업, 아니 연구 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 습니다.”
“지금도 우리 연구는 투자할 가 치가……
“사업 내용은 저도 알고 있습니
다. 여성 정력제 연구죠?”
“맞네.”
그러고는 조 사장이 빠르게 말 했다.
“자네도 알겠지만 남성 정력제 시장은 국내에서만 700억이네. 세계적으로 생각을 하면 그 수치 계산도 어렵지. 근데 남성에게만 정력제가 필요하겠나? 아니네. 여성도……
황민성이 손을 들어 말을 끊었 다.
“제가 지원한 것은 치매 연구입 니다.”
“알고 있네. 그리고 참 고맙게 생각하네. 자네가 지원해 준 투 자금 덕에 치매 연구가 많이 진 행이 되었어.”
“제가 지원한 것은 치매 연구입 니다.”
황민성이 같은 말을 하는 것에 조 사장이 입맛을 다셨다. 황민 성의 말에 담긴 뜻은 확고했다.
자신은 치매 연구에 투자를 했
을 뿐, 다른 연구에는 투자할 생 각이 없다는 말이었다.
“지금 연구하는 물질은 치매 연 구를 하다 찾아낸 것이니. 이것 을 더 연구하면 치매 연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네.”
뇌를 연구해 치매를 막고 치료 하는 것이 조 사장의 회사가 하 는 일이었다.
그리고 여성 정력제라 알려진 약은 중추신경인 뇌의 호르몬에 작용을 해서, 신경 전달 물질을 조절해 성욕을 중가시키는 것이
었다.
어떻게 보면 치매 연구를 하다 나온 부작용이 바로 이 여성 정 력 제였다.
그러니 여성 정력제를 연구하면 치매에 대한 연구에도 도움이 된 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부작용이란 실패고, 실패를 연 구하면 성공으로 갈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치매 연구는 앞으로 가 야 할 길이 멀고 머네. 하지만
이 여성 정력제는 2년 정도 후에 는 임상 시험이 가능할 정도네. 그럼 치매 연구에 들어가는 자금 을 여성 정력제로 충당할 수 있 지 않겠나?”
조 사장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치매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여러 대학과 제약 회사에서 연구 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완벽한 치료제는 나 오지 않았다. 치매 속도를 늦추 는 수준일 뿐이었다.
그만큼 치매 연구는 어려웠고
지난한 길이었다.
조 사장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컵에 있는 물을 살짝 탁 자에 부었다.
쪼르륵!
갑자기 물을 탁자에 붓는 황민 성의 행동에 조 사장이 의구심 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황민성이 젓 가락으로 물을 찍고는 선을 그었 다.
스르륵!
황민성의 행동에 물이 선을 만 들며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선 아래, 물이 고인 곳에 다시 젓가락을 댔다.
“시작이 같다 해도, 지향하는 곳이 다르면……
스르륵!
젓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처음에 는 가깝게 움직였던 선이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스윽!
젓가락을 떼어낸 황민성이 손가
락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차이가 큰 법입니다.”
황민성의 말대로 시작할 때의 선은 서로 차이가 얼마 없었다. 하지만 끝에 가서는 크게 차이가 나 있었다.
그의 말에 조 사장이 급히 말했 다.
“황 사장! 다르네.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는……
“제가 투자한 것은 치매 치료입 니다. 하지만 지금 조 사장님의
회사는 치매가 아닌 여성 정력제 를 더 살피고 있지요. 그래서 조 사장님의 사업에서 투자금을 회 수하려는 것입니다.”
“황 사장, 치매 치료도 좋지만 여성 정력제는 돈이……
“돈이 되겠죠.”
확실히 돈이 될 것이다. 남자만 성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 또한 성욕이 존재한다.
그래서 남성 정력제와 같이 여 성을 위한 정력제도 연구되고 약
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그 시장도 커지 고 있었다.
“그렇지. 역시 황 사장이……
“제가 처음 조 사장님을 뵙고 했던 이야기, 기억하십니까?”
황민성의 말에 조 사장은 5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연구비가 없어서 회사 문을 닫 아야 하나 고심하던 그 시기, 투 자를 하겠다고 찾아온 젊은 기업 인 황민성과의 첫 만남.
-저는 치매 연구로 돈을 벌 생 각이 없습니다. 제 목적은 십 년, 아니 이십 년이 걸리더라도 치매라는 병을 완벽히 파헤치고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겁니다. 돈은 제가 벌어 오겠으니 조 사 장님은 연구에만 몰두하십시오.
황민성의 말을 떠올린 조 사장 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황 사장…… 자네 진심이었 나?”
“오 년 동안 제가 투자한 금액 을 회수하지는 않겠습니다.”
“정말인가?”
안도감에 급히 말하는 조 사장 을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대신 치매 연구 자료와 장문상 선임연구원, 그리고 그 팀원들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그게 무슨?”
“아니면 150억을 회수하겠습니 다.”
황민성의 말에 조 사장의 얼굴 이 굳어졌다. 그동안 투자 받은 금액이 150억이다.
대부분 연구비로 사용이 돼서 남은 것이 없다. 150억은 회사를 팔아도 마련할 수 없는 금액이었 다.
잠시 고민하던 조 사장이 입을 열었다.
“황 사장이 직접 치매를 연구하 려는 건가?”
“그것은 아실 필요 없습니다.”
말을 하며 황민성이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하나 꺼내고는 시간 을 보고는 말했다.
“한 시간 이내에 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한 시간?”
그런 결정을 한 시간 이내에 하 라는 말에 조 사장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황민성이 자 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황민성의 모습에 조 사장이 급히 말했다.
“그럼 우리 회사 지분은?”
황민성은 회사에 투자를 하면서 상당한 지분을 가져갔다. 같은
길을 가고 있다면 문제없지만, 다른 길을 가겠다면 지분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조 사장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지분이 아까우십니까?”
“치매 연구 자료와 연구원들을 데려가지 않나.”
“제가 가진 회사 지분이 150억 의 가치가 있습니까?”
황민성의 말에 조 사장이 입을 다물었다.
그만한 가치가 없었다. 150억은 커녕 현재로는 40억의 가치도 없 는 것이 그 지분이었다.
“아니면 150억 돌려주시면 됩니 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하는 경 우가……!”
“갑과 을의 관계에서는 흔한 일 입니다. 그리고 갑은 접니다.”
싸늘하면서도 단호한 황민성의 말에 조 사장이 굳은 얼굴로 그 를 보았다.
“자네…… 변했군.”
변했다는 말에 황민성이 조 사 장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조 사장님은 돈을 왜 벌고 싶 으십니까?”
“그야…… 돈이잖나?”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아는 것이 아닌가?
조 사장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 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
“저는 치매를 없애 버리려고 돈 을 벌고 있습니다. 전에는 조 사 장님이 치매를 없앨 방법이었다 면, 지금은 치매를 없앨 돈을 벌 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몸을 돌리던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투자금이 필요하시면 연락하십 시오.”
“투자는 계속해 주는 건가?”
조 사장이 급히 묻는 말에 황민 성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 했다.
“회사 지분과 약품 특허권에 대 한 일이라면 투자를 해 드리겠습 니다.”
“그건......"
말을 잇지 못하는 조 사장을 보 던 황민성이 만 원을 아크릴 통 에 넣으며 주방에 있는 강진에게 말했다.
“식사 맛있게 하고 갑니다.”
“오천 원 거슬러 드리겠습니 다.”
만 원을 아크릴 통에 넣는 것을 본 강진이 하는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늘은 만 원짜리 먹었다 생각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모습에 강진이 일회용 비닐에 남은 삶은 계란 네 개를 담아서는 홀로 나 왔다.
그러고는 힐끗 조 사장을 한 번 보고는 문을 열고 가게를 나왔 다.
도로에 있는 외제차에 다가가는 황민성을 향해 강진이 말했다.
“저기요!”
황민성이 그를 돌아보자 강진이 봉지를 내밀었다.
“반숙란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서요.”
“감사합니다.”
황민성이 계란을 받자 강진이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저희 가게 명함입니다.”
명함을 받은 황민성이 그것을 보았다.
〈한끼식 당
이강진〉
“뒷면도 좀 봐 주시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명함의 뒤를 보았다.
〈예약과 함께 원하시는 메뉴를 말씀해 주시면 재료를 구해서 좋 은 음식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특이한 식재료가 들어가는 음식 은 미리 말씀을 해 주셔야 재료 를 구해 음식을 만들 수 있습니 다.
단 예약은 선입금을 원칙으로 합니다.〉
명함 뒤에 빼곡하게 있는 글의 마지막에는 계좌가 적혀 있었다.
명함을 본 황민성이 강진을 보 았다.
“예약을 선입금으로 받으시는군 요.”
“노쇼만큼 음식점에 치명적인 손님들이 또 없더군요.”
강진이 아르바이트했던 음식점 들 중에 노쇼 때문에 골치를 썩 지 않는 가게는 없었다.
특히 장사가 잘 되는 집일수록 더 심했다. 예약 손님들 때문에 다른 손님들을 받을 수 없고, 세 팅되어 있는 음식들도 다 버려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강진은 명함을 팔 때 아 예 이렇게 선입금을 받는다는 문 구를 적어 버린 것이다.
“문제기는 하죠. 그런데 선입금 을 하라고 하면 싫어할 텐데요?”
그것은 강진도 예상하고 조금 우려했던 문제였는데…… 배용수 가 답을 주었었다.
-우리 가게도 예약을 하면 선 입금으로 10퍼센트를 받아.
-그럼 손님들이 싫어하잖아.
-싫으면 다른 데 가겠지. 우리 가게는 그런 손님들 없어도 충분 히 잘 되거든.
배용수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강진이 웃었다.
“그럼 다른 가게 가겠죠.”
간단하게 답을 하는 강진의 말 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싫으면 다른 곳 가라…… 배짱 이군요.”
“음식 장사는 맛으로 말하는 거 죠.”
“ 맞군요.”
그러다가 가게를 힐끗 본 황민 성이 지갑을 꺼내 오만 원짜리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안에 계신 분, 식사 못 하셨을
겁니다.”
“오만 원이면 꽤 거한 식사가 되실 텐데……
“거하게 차려 주십시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돈을 받 다가 가게를 보았다.
“사이가 틀어지신 것 같으시던 데……
“들으셨습니까?”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닌 데…… 가까워서 들리더군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가게를 잠시 보다가 말했다.
“처음 뵐 때는 의사셨습니다.”
“의사요?”
“치매의 고통을 알고, 그 약을 만들겠다고 하시던 분이었습니 다. 그래서 회사도 차리시고 힘 들게 운영을 하셨습니다. 저도 치매에는 관심이 많아 손해 볼 것을 알면서 그동안 지원을 했는 데……
잠시 말을 멈춘 황민성이 한숨
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힘들고 끝이 보이지 않는, 치 매라는 괴물에……
그가 뒷말을 삼키고는 강진을 보았다.
“식사 잘 부탁드립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강진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황 민성이 지갑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황민성입니다.”
그가 주는 명함을 강진이 받아 보았다.
대표 황민성〉
“잘 먹고 갑니다.”
말과 함께 황민성이 차에 타고 는 출발을 했다.
부우웅!
부드럽게 움직이는 자동차를 보 던 강진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 다.
가게 안에서는 조 사장이 심각 한 얼굴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거절하면 150억을 줘야 해. 알 지? 우리 회사 팔아도 150억이 안 된다는 걸 내가 모르겠어? 방 법이 없어. 황 사장 성격 알잖 아! 한 시간이라고 했으면 한 시 간이야. 장문상한테 일단 자료 정리해 놓으라고 해. 아니다. 한
시간 동안 자료 정리하려다가는 빠지는 것이 있을 수도 있어. 그 냥 치매 연구 자료 복사해서 다 넘겨. 어차피 장문상이가 그쪽으 로 가면 거기서 정리하겠지. 그 래, 그리고…… 장문상하고 그 팀원들한테……
잠시 말을 멈췄던 조 사장이 말 했다.
“운동장에서 회식할 테니까. 준 비 좀 해. 그래도 같이 고생한 내 새끼들인데…… 밥은 먹이고 보내야지.”
그걸로 통화를 끝낸 조 사장이 한숨을 쉬었다.
그런 조 사장의 모습에 강진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뭔지는 몰라도…… 최소한 나 쁜 사람은 아니네.’
밥은 정이고 사랑이다. 누군가 에게 밥을 챙겨 주는 사람은 최 소한 나쁜 사람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