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38화 (136/1,050)

137화

강진의 시선을 느꼈는지 조 사 장이 한숨을 쉬며 일어나려다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

음식점에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음식점 사장이 쳐다보고 있으니 뭐라도 하나 시켜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드는 것이다.

주위를 보다가 보드에 쓰인 글

을 본 조 사장이 의아한 듯 물었 다.

“메뉴가?”

“손님이 원하시는 음식을 만들 어 드립니다.”

“아......"

조 사장이 보드를 볼 때, 강진 이 말을 했다.

“그리고 손님의 음식값은 방금 나가신 분이 계산하고 가셨습니 다.”

“황 사장이?”

놀란 눈을 한 조 사장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하자 강진이 말했다.

“이미 가셨습니다.”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잠시 있 다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 다.

“음식을 뭐로 해 드릴까요?”

강진의 물음에 조 사장이 고개 를 저었다.

“아무거나 잘하는 것으로 주십 시오.”

지금 상황에서 입맛이 돌 수가 없었다.

“제가 또 아무거나를 잘하기는 하는데, 종류를 정해 주시면 또 더 잘합니다.”

농 섞인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김치 넣고 김밥이나 한 줄 말 아 주세요.”

“김치 넣고요?”

고개를 끄덕인 조 사장이 어딘 가에 전화를 걸었다.

“나야. 그래……

조 사장이 통화를 하는 것에 강 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김치 넣은 김밥이라……

딱히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는 음식이다. 그냥 김에 밥 넣고, 김 치 넣고 말은 후 썰으면 되는 것 이니 말이다.

하지만…….

“요리 연습장에서 본 것도 같은

데.”

생각과 함께 강진이 요리 연습 장을 펼쳤다. 간단한 음식이라도 요리 연습장에서 본 것을 하면 숙련도는 차원이 다르니 말이다.

스르륵!

종이를 넘기며 찾자 곧 김치 김 밥이라는 레시피가 쓰여 있었다.

〈김치 김밥

잘 익은 김치를 준비한다. 밥은 그냥 한 밥으로 하면 되고, 따로 간을 하지 않는다.

단 김치를 넣을 때에는 국물을 짜서 넣어야 한다. 그래야 밥이 질어지지 않고 식감이 좋다.

큰 김치를 넣을 때는 결 중심을 따라 반으로 잘라 준다. 그리고 이불을 덮듯이 두 개를 덮어 준 다.

덮을 때에는 서로 반대 모양이 되도록 덮는다. 그렇게 하면 줄 기에 잎이 덮이고, 잎에 줄기가

덮이는 모양이 되어 잎과 줄기를 같이 먹을 수 있다.

김치에 설탕을 툭툭 치듯 약간 넣어주고 들기름을 살짝 발라주 면 좋다.〉

글을 읽는 것과 함께 이번에도 글이 스르륵 사라지는 현상이 생 겼다. 이제는 익숙한 현상이라 개의치 않고 마저 읽자, 사라졌 던 글이 다시 나타났다.

‘됐다.’

김치 김밥 레시피를 읽은 강진 이 냉장고에서 김치 통을 꺼냈 다.

그리고 김치를 꺼낸 다음 손으 로 눌러 국물을 꾹꾹 짜고는 한 쪽 그릇에 올렸다.

김을 깔고 밥도 잘 펴서 깔은 강진이 좀 커다란 김치를 잘라 잘 펼쳐두었다.

그 다음 펼친 김치의 가운데를 자르고, 김치 머리가 서로 반대 모양이 되도록 밥 위에 올렸다.

이렇게 하면 레시피에 있던 설 명대로 어느 쪽을 먹어도 줄기와 잎을 같이 먹을 수 있었다.

그러고는 설탕을 조금 집어서 김치 위에 툭툭 치듯 뿌리고는 들기름도 살짝 발라주었다.

‘됐다.’

그리고 순식간에 김치 김밥을 말고 자르던 강진이 눈을 찡그렸 다.

‘이걸로 오만 원을 받으면, 백 퍼센트 확률로 JS 금융에서 마이

너스가 될 텐데.’

김치 김밥 하나로 오만 원을 받 으면 날강도 소릴 듣기에 딱 좋 다. 그러니 공짜가 없다는 철칙 을 가진 저승에서는 이것도 마이 너스를 할 것이다.

김치 김밥을 보던 강진이 슬쩍 냉장고를 보았다.

김치 김밥에 어울리면서 순식간 에 낼 수 있는 음식을 떠올리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국수도 같이 내자.’

김밥만 먹으면 조금 퍽퍽한 감 이 있으니, 잔치국수와 함께 내 놓으면 먹기 좋을 것이다.

게다가 멸치 육수는 이미 끓여 놓은 것도 있으니…… 면만 삶으 면 되었다.

생각과 함께 강진이 홀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5분만 기다려 주세요.”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전화기 를 귀에 대고는 손을 들었다. 괜 찮다는 조 사장의 표시에 강진이

물을 끓이고는 국수를 넣었다.

그리고 멸치 육수도 끓이고는 계란 지단까지 빠르게 만들어냈 다.

이제 국수만 삶아지고 육수에 넣기만 하면 된다. 잔치국수를 거의 다 만든 강진이 냉장고를 보았다.

‘계속 걸리네.’

잔치국수에 김치 김밥만 내놓아 도 여전히 마이너스일 것이다.

‘저승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이

여기서 걸리네. 만 원만 받을걸.’

만 원만 받았으면 김치 김밥에 잔치 국수를 내놓으면 어느 정도 값이 맞을 것 같은데…….

오만 원을 맞추려고 하니 뭔가 또 해야 할 것 같았다.

그에 잠시 있던 강진이 냉장고 를 열어서는 멸치볶음과 깻잎장 아찌를 꺼냈다.

“김치 김밥을 좋아하면…… 이 런 것도 좋아하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강진이 요리

연습장을 펼치며 빠르게 넘겼다.

‘멸치볶음 김밥하고 깻잎 김밥 도 있으려나?’

휘리릭! 휘리릭!

빠르게 종이를 넘기던 강진이 고개를 저으며 덮었다.

‘그냥 넣고 말면 되겠지.’

그냥 김치 김밥 만드는 것에서 멸치와 깻잎만 넣으면 될 것이 다.

없는 레시피기는 하지만, 김치

김밥에서 속 재료만 멸치와 깻잎 만 바꾸면 되는 것이니 못 만들 것도 없었다.

생각과 함께 김에 밥을 올린 강 진이 멸치볶음과 깻잎장아찌도 올리고는 말았다.

스륵!

스륵!

그렇게 멸치 깻잎 김밥과 김치 김밥을 만든 강진이 국수의 면발 을 확인하고는 잔치국수도 만들

었다.

김밥과 잔치국수를 만든 강진이

밑반찬들을 챙겼다.

“식사 나왔습니다.”

홀로 나온 강진이 음식들을 테 이블에 올리며 조 사장을 보았 다. 조 사장은 여전히 어딘가에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투자 설명회 때 브리핑 자료 들…… 응, 응. 그래, 그럼 그렇 게 하고. 그……

말을 하던 조 사장이 강진을 보 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강진이 말했다.

“면이 불으면 맛이 없습니다. 일단 식사 먼저 하시죠.”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손가락 을 들어 잠시 기다리란 시늉을 하자, 강진이 말했다.

“황민성 씨가 조 사장님을 생각 해서 주고 간 돈으로 만든 음식 입니다.”

멈칫!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음식을 보다가 말했다.

“이따 들어가서 이야기하세나.”

그걸로 통화를 끝낸 조 사장이 음식을 보았다.

“여럿 내오셨네요.”

“음식값을 많이 받아서, 김치 김밥만 내기에는 양심이 걸려서 요.”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젓가락으로 김치 김 밥을 집어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김치 김밥을 하나 입에 넣고 씹 던 조 사장의 입꼬리가 올라갔

다.

‘맛있다.’

아삭한 김치의 식감과 함께 들 기름의 고소함이 느껴졌다. 거기 에 씹을 때마다 입안에 감도는 단맛이 신맛을 잘 잡아 주었다.

아삭! 아삭!

김치 김밥을 또 하나 집어 입에 넣은 조 사장이 잔치국수를 보고 는 젓가락으로 면을 크게 집어 입에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국수를 먹고 국물까지 한 모금 마신 조 사장이 강진을 보았다.

“맛이 참 좋습니다.”

“다행이네요. 옆에 멸치볶음 김 밥도 좀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김치 김 밥 옆에 있는 멸치볶음 김밥을 집어먹고는 웃었다.

“정말 맛있습니다.”

“그래요?”

“멸치의 고소함과, 깻잎장아찌

의 짜면서도 개운한 맛이 밥과 잘 어울립니다.’’

웃으며 조 사장이 멸치볶음 김 밥을 하나 더 입에 넣다가 피식 웃었다.

“할아버지가 해 주시던 맛이 떠 오르네요.’’

“할아버지요?”

“이상하십니까?”

“보통 어머니나 할머니가 해 주 시던 맛이라고 하지 않나요?”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나는 할아버지 손에 자랐습니 다. 그 덕에 할아버지 손맛이 할 머니고 어머니였죠.”

말을 하던 조 사장이 피식 웃었 다.

“손맛이라고 해도 시골 노인네 라, 그냥저냥 배고파서 먹을 정 도기는 했지만요.”

“그럼 김치 김밥도 할아버지가 해 주셨나 보네요.”

강진의 물음에 조 사장이 김밥 을 보다가 말했다.

“요즘도 소풍 갈 때 김밥을 쌉 니까?”

“소풍 하면 김밥, 김밥 하면 소 풍인데 변할 것이 있겠어요.”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밥을 입에 넣었다.

“나는 소풍 때 할아버지가 김밥 을 싸주지를 않았어요.”

“할아버님이시니 싸기 어려우셨 겠지요.”

“그렇죠. 근데 그때는 그게 싫 었어요. 나도 다른 애들처럼 김 밥을 가져가고 싶었어요.”

“다른 애들이 하는 건 나도 하 고 싶은 것이 애들 마음이죠.”

“ 맞아요.”

말을 하며 조 사장이 김밥을 들 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보다가 말했다.

“김밥 싸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 를 쳤습니다. 그리고 소풍을 가 서 도시락을 열었는데 이런 김밥

이 들어 있더군요.”

“김치 김밥이요?”

조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치도 들어 있고…… 이렇게 멸치볶음도 들어 있었어요. 내가 싸 달라고 하니 김에다 밥을 넣 고, 집에 있는 반찬들로 속을 채 운 겁니다.”

말을 하는 조 사장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와 그리움이 담겨 있 었다.

그리고 김밥을 먹은 조 사장이

피식 웃었다.

“그때는 그것도 창피했는데

웃으며 조 사장이 김밥을 먹고 는 국수를 다시 크게 집어먹고 국물도 마시기 시작했다.

“맛있게 드십시오.”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그를 보 았다.

“괜찮으면 잠시 이야길 좀 더 하고 싶습니다.”

“그러시죠.”

강진이 의자를 가져다가 옆에 놓자 조 사장이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

“그런데 가게 분위기가 좋습니 다.”

“그런가요?”

“음식점이라기보다는…… 집에 서 밥을 먹는 편한 느낌입니다.”

말을 하며 가게를 둘러 본 조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황 사장도 그래서 여기를 오는 모양입니다.”

“최고의 칭찬이네요.”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음식을 먹다가 말했다.

“나와 황 사장이 한 이야기, 들 었습니까?”

“주방하고 홀이 가까워서요.”

“치매가 어떤 병인 줄 아십니 까?”

“노인들에게 생기는 병으로 알

고 있습니다.”

“노인에게 생기는 병이라……

강진의 답에 조 사장이 음식을 보다가 말했다.

“치매는…… 가족에게 생기는 병입니다.”

“ 가족요?”

“치매가 걸리면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게 됩니다. 가족도 기억이 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도 기 억하지 못합니다.”

잠시 말을 멈춘 조 사장이 강진 을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알아보 지 못하고, 내가 하는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것…… 치매를 앓는 것은 한 사람이지만 그 병으로 슬프고 괴로운 것은 가족 전부입 니다.”

조 사장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그…… 흠!”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무

는 강진의 모습에 조 사장이 고 개를 끄덕였다.

“저희 할아버지가 치매로 돌아 가셨습니다.”

“죄송합니다.”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작게 고 개를 저었다.

“다행히 제가 의사가 되고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할 때 치매에 걸 리셔서, 보살피는 데는 부족함이 없게 해 드렸는데…… 어느 날 요양원에서 급히 저를 찾더군

요.”

“요양원요?”

“할아버지가 주방에서 안 나가 고 버티고 계시다고, 급히 와 달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가 봤는 데…… 할아버지가 요양원 주방 에서 김밥을 싸고 계시더군요.”

조 사장의 말에 강진이 이제 몇 개 안 남은 김밥을 보았다.

“할아버지의 그날은 손주의 소 풍 전날이셨나 보군요.”

“그때 알았죠. 내가 창피하게

생각을 한 김밥이…… 손주를 생 각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었다는 것을요.”

김밥을 하나 집어든 조 사장이 웃었다.

“그런데 말이죠.”

강진이 보자 조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제가 그때는 몰 랐다고,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 했는데…… 할아버지는 그저 김 밥만 싸셨습니다.”

“아......"

강진이 작게 탄식을 토하자 조 사장이 말했다.

“치매는 그래서 슬프고 고통스 러운 것입니다.”

조 사장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그럼 혹시 황민성 씨도……T

황민성도 그와 같은 아픔이 있 냐는 것이다. 그에 조 사장이 고 개를 저었다.

“남의 슬픔을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결론은 같은 아픔이 있다는 것 일 것이다.

“그럼 이제 치매 연구는 안 하 시는 것입니까?”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황 사장과는 의견이 틀어지기 는 했지만 저 역시 치매 치료에 일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여성 정력제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 일지 모르지만, 여성 정력제는

치매 연구에서 나온 산물입니다. 연구하다 보면 치매 치료에 대한 단서를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구 자금 역시 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조 사장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비아그라도 심장 질환 치 료 목적으로 나왔다가, 부작용 때문에 남성 정력제로 더 알려지 기는 했지.’

그리고 말을 듣고 보니 조 사장 이 돈에 눈이 먼 사람처럼 보이

지도 않았다.

조 사장의 말대로 황민성과는 의견 차이일 뿐…… 두 사람 다 치매를 치료하고자 하는 목적은 같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