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53화 (151/1,050)

152화

“으으! 좋다.”

“언니, 이거 진짜 되게…… 너 무 맛있어요.”

“그러게. 이야! 이거면 소주 쪽 쪽 빨아도 취하지도 않겠다.”

처녀귀신들이 맛있게 육개장을 먹는 것을 보며 강진이 힐끗 입 구를 보았다.

‘늦으시네.’

이태문을 만나러 간 김소희가 늦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문이 열리며 김소희가 안으 로 들어왔다.

화아악!

문을 뚫고 들어오는 것과 함께 단아한 소녀의 모습으로 변하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자리를 가 리켰다.

“앉으시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는 막걸리가 담긴 주전자와 잔이 놓여 있었다.

주전자를 든 강진이 웃으며 말 했다.

“전에 막걸리를 찾으셔서 막걸 리로 준비했습니다.”

“고맙네.”

김소희의 잔에 막걸리를 따라 준 강진이 말했다.

“음식 내오겠습니다.”

“천천히 하게나.”

김소희의 답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주방으로 들어가 육개 장을 덜고, 강한 불로 닭발을 몇 번 볶아서는 그릇에 덜었다.

음식을 들고 식탁에 올린 강진 이 슬며시 말했다.

“그런데 황구는……?”

“가족과 함께 갔네.”

“가족? 아! 이태문 어르신을 따 라갔군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문이가……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바보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주전자 를 잡고는 그를 보았다.

“한잔 받게.”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막걸리를 따라 마실 양은그릇을 가지고 왔 다.

그에 김소희가 그의 잔에 막걸 리를 따라 주자, 강진이 슬쩍 고 개를 돌리며 막걸리를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그가 주전자 를 들어 김소희의 잔에 막걸리를 따라 주었다.

쪼르륵!

잔을 채우는 막걸리를 보며 김 소희가 입을 열었다.

“남겨질 황구가 안쓰러워 나에 게 보낸 것일 터…… 하나 황구 입장에서는 가족이 자신을 두고 떠나는 것인데, 그것이 어찌 그 아이를 위한 것이겠는가?”

“맞네요. 힘들수록 같이 있는 것이 가족이죠.”

말을 한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 다.

“잘 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황 구가 이태문 어르신이 나가신 다 음엔 문만 빤히 보고 있어서 마 음이 좋지 않았는데.”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막걸리를 입에 대고는 음식들을 보았다.

“태문이 음식이군.”

“어르신이 아가씨께서 좋아하시 는 음식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기는 하 지.”

“그런데 제가 만드는 것과는 조 금 다르던데……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셨으면 말씀하시지 그러셨 습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태문이 음식을 좋아하기는 하 지만 복래의 음식도 좋아하네.”

“그렇습니까?”

“양념을 해 볶은 고기나 불에 구운 고기나, 맛은 달라도 맛있 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것도 그렇네요.”

김소희가 닭발을 하나 집어 입 에 넣는 것을 보며 강진이 슬며 시 몸을 돌렸다.

김소희야 늘 혼자 마시니 그녀 가 편히 먹게 자리를 비워 주려 는 것이다.

그런데 막 등을 돌리던 순간 김

소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왜 혼자 다니는 줄 아는 가?”

몸을 돌리던 강진은 김소희의 말에 슬며시 이혜선을 보았다. 전에 김소희가 혼자 다니는 것이 이상하고 안쓰러워 이혜선에게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 외로워서예요.

-외로우면 같이 다녀야지, 왜 혼자 다녀?

-오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

는 귀신들이 하나둘씩 사라져요. 승천을 하든, 소멸을 하든…… 소희 언니는 그걸 너무 많이 봐 서 혼자 다니는 거예요. 더 이상 외롭지 않으려고.

친한 사람, 혹은 귀신들이 죽고 승천을 하는 것을 많이 봤기에 김소희는 아예 정을 주지 않는 것이다.

정을 주고 그 대상이 사라지면 다시 슬프고 외로워지니 말이다.

어쨌든 김소희의 물음에 강진은 슬며시 말했다.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작게 고 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술을 몇 번 같이 먹었지만, 늘 옆 테이블 에서 따로 술잔을 나누는 정도였 지 합석을 승낙하지 않았다.

그런 김소희가 앉으라 하는 것 을 보면 지금 그녀는…….

‘대화할 상대가 필요하시구나.’

자리에 앉은 강진이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오랜 시간을 이 승에 머무셨습니다. 그동안 정을

주신 이들은 하나둘씩 죽거나 승 천을 하니…… 아가씨께서는 점 점 정을 주기가 힘드셨을 것입니 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네.”

그러고는 막걸리를 마시는 김소 희를 보며 강진이 다시 입을 열 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 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쳐 다보았다. 그런 그녀를 마주 보 며 강진이 말을 이었다.

“정을 떼기 어려워 정을 주지 않는다면 너무 외롭지 않겠습니 까? 아가씨의 지금 생활이 언제 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나중보다는 지금에 충실하면 좋 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에 충실하라……

“예림이하고 가은이와 다니시는 것, 불편하십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힐끗 처 녀귀신들과 음식을 먹고 있는 둘 을 보고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조금……. 하지만 귀여운 아이 들이다.”

김소희로서는 몇백 년 만에 다 른 귀신과 같이 다니는 것이다. 자신이 잘 가는 저승식당 주인의 부탁이라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 았다면 데리고 다니지 않았을 것 이다.

아니, 이혜선에게 맡기고 떠났 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르

친다는 것을 이유로 어쩌다 이혜선 일행과도 함께하고 다.

“아가씨.”

강진의 부름에 김소희가 보았다.

“편하게 지내십시오.”

“내가 불편하게 지내는 것 가?”

“네.”

보니 있었

그를

같은

“내가?”

의아한 듯 쳐다보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막걸리를 그녀의 잔 에 따라 주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잔에도 막걸리 를 따르고는 잔을 들었다.

“건배하시죠.”

강진의 행동에 김소희가 눈을 찡그렸다. 그녀도 귀신으로 살며 사람들의 행동을 보았으니 건배 가 뭔지는 안다.

하지만 잔을 부딪치는 행위는 양반가 규수가 할 행동이 아니었

다.

그에 고개를 저으려 할 때, 강 진이 말했다.

“불편하십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저으며 잔을 들었 다.

“그럴 리가 있겠나.”

김소희가 막걸리 그릇을 들자 강진이 강하게 그릇을 부딪쳤다.

양은그릇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 와 함께 가득 따라진 막걸리가 출렁였다.

출렁! 출렁!

양은그릇에서 막걸리가 흔들리 며 넘쳤다. 자신의 손을 타고 흐 르는 막걸리에 김소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쉬며 김소 희가 입을 열었다.

“불편하군.”

싸늘한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급히 티슈를 꺼내 내밀었다.

“닦으십시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티슈를 받아 손을 닦으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나…… 불편하군.”

“죄송합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힐 끗 보고는 말했다.

“괜찮네. 나를 위해 하는 말일 터이니.”

“그리 생각해 주시면 감사합니 다.”

강진이 김소희에게 말한 ‘편함’ 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편하게 지내라는 것이었다.

조선 시대 양반집 규수로서의 법도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하 고 싶은 대로 편하게 살라는 의 미였다.

강진의 답에 김소희가 그를 보 다가 말했다.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네. 다만……

잠시 말을 멈춘 김소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살아서도 이리 살았고, 죽어서도 이리 살고 있네. 불편 한 옷도 입다 보면 편해지는데 내 사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 아 니겠나?”

김소희의 말을 들으니 맞는 말 이었다. 흔히 하는 말처럼, 전봇 대로 이빨을 쑤시든 귀를 파든 그 사람의 마음일 뿐이었다.

강진이 보기에는 불편해 보이는 김소희의 생활이지만, 조선 시대 양반집 규수인 그녀에게는 그것 이 더 익숙하고 편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걸리를 마시자 강 진도 막걸리를 마셨다.

‘합석을 하게 된 것도 큰 발전 이라 생각하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힐끗 안주를 보았다. 막걸리라 두부를

한 모 내놓았는데…… 막걸리를 벌써 몇 모금, 안주 없이 먹다 보니 시선이 가는 것이다.

‘아가씨께서 드시는 음식에 젓 가락을 대면 많이 불편해하시겠 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같은 그릇에 담긴 음식 에 손을 대는 것은 조금 빠를 것 같았다.

‘자리 이동하면 안 되나? 안주 먹고 싶은데.’

방금 전엔 김소희에게 불편하냐 고 물었었는데…… 지금은 김소 희가 아니라 자신이 더 불편했 다.

‘술은 역시 아랫사람하고 먹는 것이 가장 좋구나.’

김소희 앞에서 막걸리를 먹으니 이건 너무 조심스러워서 불편하 기 짝이 없었다.

금요일 아침 강진은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네.’

오늘이 인턴 마지므f 날이었다. 사무실로 들어서며 강진은 자기 보다 먼저 와 있는 최동해를 보 았다.

보통 강진이 가장 먼저 왔는데 오늘은 최동해가 일등이었다.

“일찍 왔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까요.”

“서운해?”

“조금요.”

말을 하며 최동해가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살짝 미소 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살 빼고 다시 들어올 겁니다.”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고시학원 내일 갈 거지?”

“네.”

최동해는 인턴이 끝나면 전에 강진이 말을 한 대로 강원도에 있는 고시학원에 들어가 본격적 으로 살을 뺄 각오를 하고 있었 다.

고시학원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주는 밥만 먹으며 운동을 하면 살을 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고시학원에도 매점은 있 고, 마을까지 차를 타고 가면 먹 고 싶은 것도 먹을 수는 있지만 그건 최동해가 알아서 참아야 할 것이다.

“그럼 형 가게로 내일 아홉 시 까지 와. 형이 태워다 줄게.”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고개를 저었다.

“혼자 갈 수 있어요.”

“갈 수 있겠어?”

“버스편 다 있던데요.”

“가도 일 많이 힘들지 않아. 아 침에 좀 일찍 일어나서 청소 좀 하고, 식사 시간 되면 고시 학생 들하고 밥 먹고, 그 애들이 공부 하러 가면 너도 공부 좀 하다

가……

강진이 고시학원에서 할 일들을 미리 이야기를 해 주었다.

최동해가 다이어트를 하러 고시 학원에 들어가긴 하지만, 돈을 내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고시학원에서 아르바이트처럼 청소도 하고 일도 하면서 숙식하 기로 한 것이다.

“거기 일하는 분들 성격 좋아서 일하면서 막 부려 먹고 그러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일 너무 심하

게 시키면 전화해. 네가 해야 할 일의 양은 어디까지나 한 달 숙 식비용만큼이야. 그거 이상 시키 면 형한테 바로 전화해, 알지?”

“일 많이 하면 살 빠지고 좋 죠.”

웃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 개를 저었다.

“일은 돈 받고 해야 하는 거야. 절대 좋은 건 좋은 거다 하는 식 으로 공짜로 일하지 마. 일하는 양은 돈을 받은 만큼만이야.”

강진이 재차 다짐을 하자 최동 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직원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 오늘 이강진 씨하고 최동 해 씨 마지미t 날이니까. 그동안 못한 이야기들은 오고 가면서 하 고, 조금씩 덕담이라도 해 주세 요.”

팀원들 모두에게 하는 말이라 존대를 한 임호진이 말을 이었

다.

“그리고 두 사람, 혹시 오늘 다 른 인턴들하고 회식하기로 했 나?”

“아닙니다.”

인기 인턴을 뽑을 때 잠깐 친분 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 는 그전처럼 그저 보면 보고 안 보면 안 보는 그런 사이로 지내 친분을 쌓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최동해도 마찬가 지라 따로 인사를 나눌 사이들은

아니었다.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오늘 저녁에 회식 간단하 게 하자고.”

“그럼 저희 가게에서……

“오늘은 너도 술 좀 먹어야 하 는데, 네 가게에서 먹으면 안 되 지. 매상은 앞으로 차근차근 올 려 줄 테니까, 오늘은……

말을 하던 임호진이 이상섭을 보았다. 그 시선에 이상섭이 답

했다.

“저녁때까지 의견 모아서 메뉴 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상섭이는 동해 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알겠습니다.”

이미 이틀 전에 최동해가 하던 일을 모두 인수인계 받고 마무리 를 깔끔하게 했지만, 이상섭은 알았다고 답했다.

임호진도 다 알지만, 마무리를 잘하자는 의미로 말을 하는 것이

니 말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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