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55화 (153/1,050)

154화

강진이 일할 사람을 어떻게 해 야 하나 생각을 할 때, 이상섭이 말했다.

“직원을 좀 둬야 하지 않겠어? 너 혼자 음식 만들고 서빙하고 설거지하면 정신 못 차릴 거야.”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투자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거야.”

이상섭의 조언은 맞는 말이었 다. 하지만…….

‘귀신을 봐도 상관없다고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있을지 모르겠네 요.’

문제는 이것이었다. 저승식당에 서 일을 하면 귀기가 쌓여서 귀 신을 보게 된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구할 엄두 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일단 해 보고 어려우면 그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직 정식 영업도 안 했는데 직원부터 뽑기 도 그렇네요.”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직 손님이 얼마나 올지 모르는데, 직원부터 뽑는 것도 과하기는 하네.”

그리고 이상섭이 강진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잔을 들어 술을 마 신 강진이 초콜릿을 하나 입에 넣었다.

그런 강진을 보던 이상섭이 문 득 말했다.

“아니면 점심 메뉴를 단일화하 지 그래?”

“점심요?”

“백반 같은 것 있잖아.”

“하나만 만들어서 손님이 오면 바로바로 내놓으라는 거군요.”

처음에 강진이 했던 방식이었 다. 처음에 강진도 제육 하나로 만 메뉴를 단일화했었으니 말이 다.

“그렇지. 우리야 먹고 싶은 것 해 달라고 해서 먹으면 좋기는 하지만…… 여러 메뉴 한 번에 빼려면 힘들잖아.”

“그건 그렇죠.”

“백반집처럼 매일매일 정해진 메뉴를 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월요일은 제육, 화요일은 김치찌개, 수요일은 무엇, 이런 식으로 요일마다 변화를 주면 서.”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 각을 해보니 일리가 있기는 했

다.

“그런데 백반이면 다른 가게와 다른 특색이 없잖아요.”

“너 여자 손님 걱정하는구나?”

이상섭이 강진의 생각을 짐작한 듯 하는 말에 강진이 작게 웃으 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반은 딱히 여자 손님들이 좋 아할 메뉴는 아니죠.”

“그거야 일반인, 그리고 친구들 하고 놀러 나왔을 때의 이야기 고.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치열

하게 싸우는 중에는 그런 것 잘 안 따져. 그리고 자취하는 여성 들 봐도 맛있으면 백반이든 뭐든 다 잘 먹어.”

잠시 말을 멈춘 이상섭이 말을 이었다.

“우리 점심에 밥 먹으러 가는 곳 가도, 여자 직장인들 많은 곳 많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아니면  메뉴를 세 개 정도 로 정해서 그것만 내는 것도 괜

찮지 않아?”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제 방식대로 음식을 하면 가게 가 망할까 봐 걱정되시나 봐요.”

“손님이 해 달라는 대로 요리해 주는 것도 좋지. 네 가게의 특색 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딱히 좋은 아이 템은 아니지. 시간도 많이 걸리 고, 재료도 어떻게 소모될지 감 을 잡을 수 없으니까.”

이상섭의 조언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가게에 오는 사 람들 중 사업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있는 사람들은 다 강진의 장사 방식에 우려를 표했다.

음식 장사에서는 재료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재료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질이 떨어지고 상 품성이 떨어지니 말이다.

그런데 한끼식당은 손님이 원하 는 음식을 만드니 어떠한 재료가 어떻게 소진될지 모르고, 그럼 재료를 낭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다.

물론…… 사실 재료는 그날그날 신수용이 알아서 빼고 채워주고 있어서 강진은 그다지 신경 쓸 것이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상섭의 조언을 들으며 강진은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백반으로 하고…… 김치찌개에 제육, 거기에 직장 여성들이 특 히 더 좋아할 만한 메뉴를 하나 짜서 점심 장사를 해야겠다.’

이렇게 하면 음식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 것 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저쪽으로 가면 있어.”

이상섭이 한쪽을 가리키자 강진 이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치고 나와서는 바로 걸어 가다가 한쪽 테이블에 시선이 닿 았다.

‘황민성?’

아까까지만 해도 비어 있던 자 리에 남자 넷이 앉아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황민성이었다.

황민성은 서류를 보고 있어 강 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강진도 아는 척을 하지 않고 자 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자리로 가던 강진의 눈 에 귀신은 아니지만 이상한 것이 보였다.

가게 안의 모든 사람들이 황민

성 쪽을 힐끗거리며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상섭과 임호진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러고들 있으세요?”

“저 사람 보이지?”

이상섭이 살짝 턱짓으로 황민성 쪽을 가리켰다.

“네.”

“저 사람이 강남 버핏이라고 불 리는 황민성이야.”

“강남 버핏요?”

“그 있잖아. 미국의 워런 버핏.”

“아! 그 돈 잘 버는 분요?”

“그렇지.”

그러고는 이상섭이 말했다.

“저 사람이 손을 댄 사업 중에 실패한 것이 없다고 하더라. 돈 버는 데는 워런 버핏 급이라고 해서 강남 버핏이라고 하는 거 야.”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많아 보이더군요.”

“웅? 너 알아?”

“저희 가게에 가끔씩 오시는 손 님이세요.”

“ 진짜?”

“네.”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대단하다 는 듯 그를 보았다.

“이야…… 황민성이 너희 가게 손님이라니 대단하네.”

“그냥 와서 밥 먹고 가는 건데,

대단할 것이 있나요.”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너한테는 밥집 손님 중 하나일 뿐이네.”

이상섭의 말에 마주 고개를 끄 덕이던 강진의 얼굴에 순간 놀람 이 어렸다.

황민성이 보고 있던 서류를 그 대로 찢어 버린 것이다.

쫘아악! 쫘아악!

“이게 무슨!”

앞에 있는 남자가 놀란 눈으로 소리치는 것을 보며 황민성이 자 리에서 일어났다.

“저와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 다.”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면 되 지, 왜 투자 계획서를 찢습니 까!”

버럭 고함을 지르는 남자는 화 가 잔뜩 난 것 같았다. 그에 황 민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변명이나 설명도 없이 그대로 몸을 돌리자, 같이 있던 다른 사내가 재빠르게 일어나 그 를 따라붙었다.

“야! 황민성!”

남겨진 채 고함을 지르는 남자 의 목소리를 귓등으로 홀리며 황 민성이 바텐더에게 말했다.

“계산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바텐더가 바를 나와 계산대에 서며 말했다.

“키핑해 놓을까요?”

상황을 보니 주문해 놓은 술은 다 마시지도 않을 것 같으니 말 이다.

바텐더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젓다가 강진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다음 순간, 황민성은 살 짝 당황한 듯 그를 보다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강진도 마주 고개를 숙이 자 황민성이 바텐더에게 카드를 주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인가를 작게 나눈 황민성이 바를 벗어났다.

황민성이 나가는 것을 보자, 그 와 있던 사람들이 신경질적으로 욕을 했다.

“저 개놈의 자식!”

“어린놈의 자식이 돈 좀 있다고 아주…… 싸가지 없는 놈!”

욕을 하며 신경질을 부리는 두 사람에게 바텐더가 다가갔다.

“손님.”

바텐더의 말에 두 사람이 그를 보았다.

“나가 주시겠습니까?”

“뭐?”

“죄송하지만 나가 주시기 바랍 니다.”

“너 이 자식! 지금 뭐라고 했 어? 어?”

욕을 하며 남자가 바텐더의 어 깨를 손으로 밀었다. 그런데 바 텐더의 어깨는 꿈쩍도 하지 않았 다.

오히려 남자가 손에 느껴지는 바텐더의 단단한 몸에 당황한 듯 상대를 보았다.

그런 남자를 마주 쳐다보며 바 텐더가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나가 주시기 바랍 니다.”

“너 이 자식, 내가 누군 줄 알 아!”

말을 하던 남자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바텐더가 슬쩍 한 발 을 내밀어 그의 옆에 얼굴을 대

고는 무어라고 중얼거린 것이다.

뭐라고 하는지는 작아서 들리지 않았지만, 그 말에 남자의 얼굴 은 완전히 굳어졌다. 그러고는 급히 동료에게 눈짓을 하더니 서 둘러 밖으로 나갔다.

그런 남자를 보며 바텐더가 다 른 손님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스트레이트 잔을 여럿 꺼내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건가 싶어 다들 바텐더

를 볼 때, 바텐더 역시 손님들을 주욱 보다가 양주들을 꺼내서는 한 잔씩 따르기 시작했다.

여러 잔에 각각 종류도 다르게 술을 따른 바텐더의 옆에 다른 바텐더들이 오더니, 작은 쟁반에 잔들을 올려서는 손님들에게 한 잔씩 가져다주었다.

“소란을 끼쳐 죄송합니다. 서비 스입니다.”

사과와 함께 서비스로 돌리는 양주에 손님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받았다.

조용한 가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바 텐더들의 재빠른 대응에 손님들 은 만족한 듯했다.

자리로 온 바텐더가 강진 일행 에게도 잔들을 내밀었다. 임호진 이 자신에게 온 스트레이트 잔을 보며 웃었다.

“데낄라네요?”

“전에 데낄라를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아 준비했습니다.”

그러고는 바텐더가 강진과 최동

해에게는 와인잔을 내밀었다.

“독한 술을 안 좋아하시는 것 같아 빌라엠 로쏘 와인으로 준비 했습니다. 도수가 낮고 달콤한 맛이 좋아서 술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편히 드실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바텐더가 이상섭을 보았다.

“손님께서는 독한 술을 좋아하 시는 것 같아 바카디 151로 준 비했습니다.”

“이야…… 이거 먹으면 속 뒤집

어지는 그거 맞죠?”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양주 증 에서는 가장 도수가 높은 술입니 다.”

바텐더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손님들 취향을 다 아시나 보네 요?”

“손님들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 이 저희의 일이니까요.”

웃으며 바텐더가 말했다.

“그리고 황민성 씨가 여기 술값 을 다 계산하고 가셨습니다.”

바텐더의 말에 강진이 황민성이 나간 곳을 힐끗 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키핑해 놓은 술이면 무 료 아닌가요?”

먹다 남긴 술을 먹는 것이니 술 값이 왜 나오나 싶은 것이다.

강진의 말에 바텐더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키핑된 술은 무료지 만…… 저희 서비스료와 안주 값

은 조금 받고 있습니다.”

“아!”

이해가 됐다는 듯 강진이 고개 를 끄덕였다. 바텐더 말대로 키 핑된 술은 무료라도 자리 값과 안주 값 정도는 내야 하는 것이 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이상 섭이 말했다.

“그나저나 황민성이가 진짜로 투자 계획서를 찢는군요.”

이상섭의 말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소문만 들었는데 진짜로 보는 건 처음이네.”

“그런데 황민성도 참 개…… 흠!”

말을 하던 이상섭이 강진의 눈 치를 한 번 보고는 말했다.

“예의가 없네요. 그냥 안 할 거 면 안 하지, 눈앞에서 찢어 버리 는 건 무슨 싸가지야?”

이상섭의 말에 최동해와 임호진 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 계획서라는 건 사업 계획 서와 비슷했다.

사업 계획서를 만드는 것은 쉽 지 않다. 여러 자료를 조사해서 수익도 따져야 한다.

거기에 숫자며 내용이 너무 많 아도 안 좋다. 보는 사람이 지루 하지 않게, 간단하게 핵심만 잘 넣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간단하면 자료가 부실할 수 있고, 반대로 자료를 너무 많이 넣으면 논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중간에서 중심을 잘 잡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필요 한 자료는 넣으면서 보는 사람이 지루하거나 답답해하지 않는 선 을 찾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여러 날 야근을 해야 하는 힘든 작업이라는 말인 데…… 그런 것을 당사자 앞에서 찢어 버리다니.

실무자의 입장인 이상섭으로서 는 감정 이입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상섭의 말에 임호진이 말했

다.

“소문에는 일종의 경고라고 하 던데.”

“경고요?”

무슨 말이냐는 듯 보는 이상섭 을 보며 임호진이 말했다.

“황민성이 투자 실력이 워낙 좋 다 보니 그 사람이 하는 투자가 뭔지 관심들이 많잖아.”

“그렇죠.”

“그래서 그가 어디에 투자를 했

다고 하면 사람들이 뒤따라 투자 하기도 한대.”

“하긴, 일리가 있네요.”

황민성의 투자 실력이 워낙 좋 으니 그가 하는 투자에 다른 사 람들도 따라 투자하는 것이다.

“그래서 황민성이 어떤 투자 계 획서를 받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

“그렇겠네요. 저 같아도 황민성 이 투자한다고 하면 있는 돈 좀 넣어 보겠어요.”

“그렇지. 그리고 그걸 황민성도 아는 거야. 자신의 움직임에 사 람들의 돈이 움직인다는 걸

잠시 말을 멈춘 임호진이 황민 성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그래서 가끔 정말 마음에 안 드는 투자 계획서를 받으면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린다고 하더 라.”

“아…… 사람들이 그거 보고 투 자하지 못하게요?”

이상섭의 말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민성이 찢어 버린 계획에 누 가 투자를 하겠어.”

“그건 그런데…… 투자 받으려 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날벼락이 네요.”

“아마 이미 받아 놓은 투자들도 내일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갈 걸.”

임호진의 말에 이상섭이 입맛을 다셨다.

“말 들어 보니 투자 받으러 온 사람들이 불쌍하네요.”

“사업에 불쌍한 게 어딨어?”

“그건 그렇지만……

“그나저나 궁금하네. 어떤 투자 계획서였기에 황민성이 찢어 버 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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