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56화 (154/1,050)

155 화

간단하게 양주를 마신 강진 일 행은 열 시쯤에 바에서 나왔다.

“그럼 월요일 점심에 보자고.”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면 미리 전화 주세요.”

“그렇게 하지.”

그러고는 임호진이 최동해를 보

았다.

“동해 너는 살 열심히 빼고. 멋 진 모습으로 내년, 아니지 내후 년에 회사에서 보자.”

“입사 제대로 해서 인사드리겠 습니다.”

최동해의 말에 임호진이 그와 악수를 나누고는 택시를 타고는 갔다.

이상섭도 두 사람과 인사를 나 누고 가자, 강진이 최동해를 보 았다.

“그럼 열심히 해.”

“ 연락할게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어깨를 쳤다.

“잘 가.”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고개를 숙이고는 버스를 타러 걸어갔다. 그런 최동해를 보던 강진이 몸을 돌렸다.

골목을 몇 개 지나면 바로 자신 의 가게라, 강진은 몇 분 되지 않아 식당 앞에 도착할 수 있었

다.

그리고 강진은 가게 앞에 서 있 는 황민성을 볼 수 있었다.

“황민성 씨!”

강진의 부름에 황민성이 그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회식 잘하셨습니까?”

“지금 끝났습니다. 그런데 저 기다리셨어요?”

“조금 출출해서요.”

“전화를 하시지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말했다.

“팀원들하고 회식하시는 것 같 아서 좀 기다렸습니다.”

“날씨 추운데.”

기다렸다는 황민성의 말에 강진 이 서둘러 가게 문을 열었다. 그 러고는 얼른 겉옷을 벗어 카운터 뒤에 놓고 주방에 들어갔다.

주방에 간 강진은 야관문 차를 작은 주전자에 조금 붓고는 불을 올렸다.

그러는 사이 황민성은 켜져 있

는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TV를 켜 놓고 있 으십니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힐끗 한 쪽에 앉아 있는 자동차 지박령들 을 보았다.

그 둘이 있으니 TV를 틀어 놓 고 간 것이다.

“제가 밖에서 일을 하다 보니 혹시 도둑이라도 들까 봐 TV를 켜 놓고 있습니다. TV라도 켜 놔야 사람이 있는 줄 알고 안 들

어오지 않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으면서 손을 비볐다.

그 모습에 강진이 온풍기를 켰 다.

우우웅!

온풍기가 조용한 소리를 내며 켜지는 것에 강진이 불을 끄고 는, 야관문 차를 두 잔 따라 홀 로 나왔다.

“추우실 텐데 이거라도 좀 드세

요.”

“고맙습니다.”

황민성이 잔을 두 손으로 쥐는 것을 보며 강진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 강진을 보며 황민성도 한 모금 마시고는 미소를 지었다.

“따뜻하게 마시니 색다르군요.”

그동안은 차갑게 먹다가 이렇게 따뜻하게 마시니, 한약 냄새 비 슷한 향도 나는 것이 몸에 더 좋 은 느낌이었다.

“제가 가끔 한의원 가서 침을 맞고 하는데, 거기서 은은하게 나는 한약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차분해지고 좋더군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어디 몸이 안 좋으십니까?”

“몸은 건강합니다. 다만 침을 맞고 따뜻하게 찜질하면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개운한 것이 좋더 군요. 그리고 한약 냄새는 맡기 만 해도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라 자주 가는 편입니다.”

웃으며 말을 한 황민성이 강진 을 보았다.

“……오늘 안 좋은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오해를 하실까 봐 들렀 습니다.”

출출해서 왔다는 것은 핑계고, 사실은 강진에게 아까 보인 모습 이 마음에 걸려서 온 모양이었 다.

“서류를 찢으시던 것을 보고 조 금 놀라기는 했는데…… 이유가 있다 들었습니다.”

“이유요? 누구한테?”

“저희 과장님이신데, 그분이 말 씀하시길 황민성 씨가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투자해서 손해를 볼까 봐 일부러 찢어서 경고를 하시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이건 투자하면 안 된다는 의미로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 었다.

“과장님께서 좋게 포장을 해 주 셨군요.”

“그럼 사실은 그냥 찢으시는 겁

니까?”

농담 섞인 강진의 말에 황민성 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제가 투자 계획서를 처음 찢었을 때는 열도 나고 짜증이 나서 그랬습니다.”

“짜증요?”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이놈들 이 나를 뭐로 보고 이따위 계획 서를 들이미나 싶어서 화가 나더 군요.”

“이상한 사업이었습니까?”

“겉으로는 사업성도 좋고 어쩌 고 했지만 딱 보니…… 말도 안 되는 내용만 바글바글하더군요.”

말을 하던 황민성이 피식 웃었 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군요. 히 말라야에 엄지만 한 벌이 있는 데, 그 벌이 채취한 꿀을 한국에 서 판다는 겁니다. 그런데 더 웃 긴 건 그 벌이 일 년에 채취하는 꿀의 양이 아주 조금밖에 안 돼 서 엄청 귀하다는 건데……

웃으며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

다.

“그렇게 조금밖에 채취가 안 되 는 꿀을 대규모로 파는 사업에 투자를 하라는데, 이게 말이 되 겠습니까?”

“차라리 채취하는 꿀 양이 많다 고나 하지.”

“그러게 말입니다. 히말라야에 서도 조금밖에 채취 안 되는 꿀 을 한국에 가져와서 팔겠다 니……

고개를 젓는 황민성을 보며 말

했다.

“그래서 찢으셨습니까?”

“일종의 경고였습니다. 이런 쓰 레기를 가져오면 이렇게 찢어 버 린다는……

“그럼 경고인 건 맞는 거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그렇군요. 다만 다른 사람들이 손해를 볼지도 모 른다고 경고를 하는 것이 아니 라, 이런 쓸데없는 것을 가져와

내 뒤통수를 치려는 자들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잔을 만지던 황민성이 피식 웃 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것이 다른 투자자들에 대한 경고로 소문이 났더군요.”

황민성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찢은 투자는 망한다고 하 더군요.”

“의도가 어떻든, 황민성 씨 덕

에 선량한 투자자들이 피해를 안 보겠네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고는 황민성이 가게를 보며 말했다.

“그럼 내일부터 가게를 정식으 로 여시는 겁니까?”

“내일부터 점심 장사는 빠지지 않고 할 생각이니 편하게 이용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황민성이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 다.

“제가 술을 먹다 말아서 조금 아쉽군요.”

“그럼 뭐 좀 드셔야죠. 뭐 만들 어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말했다.

“혹시 비엔나소시지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럼 소시지에 칼집 내서 뜨거 운 물에 좀 끓여서 주시겠습니

까?”

“쏘야로 해 드릴까요?”

“아닙니다. 그냥 뜨거운 물에 1 분 정도만 삶아서 주세요. 아! 그리고 비엔나소시지 조리하지 말고 생으로도 좀 주세요.”

“생으로요?”

“비엔나는 그냥 생으로 먹는 것 도 맛이 있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말을 하며 강진이 주방으로 가 서는 소시지를 꺼냈다.

그때 황민성의 목소리가 들렸 다.

“냉장고에서 술 꺼내도 되겠습 니까?”

“그럼요. 편하게 하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냉장고에 서 소주와 맥주를 꺼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맥주를 따라 한 모금 마 실 때, 강진이 냉장고에서 밑반 찬 몇 개와 조리하지 않은 비엔 나를 접시에 가지고 왔다.

“혹시 포크 있나요?”

“ 있죠.”

강진이 포크를 가져다주자 황민 성이 비엔나를 찍었다.

“비엔나는 포크로 찍어 먹어야 제맛입니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비엔나를 조 금 깨물어 먹었다.

한 사 분의 일 정도 베어 먹은 황민성이 그것을 천천히 씹으며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비엔나는 맛있어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엔나를 역시 조금 더 베어 물었다.

그렇게 비엔나를 네 번에 걸쳐 베어 먹는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 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렸을 때 가난했나?’

비엔나를 먹는 모습을 보니 아 껴 먹는 스타일 같았다. 하지만 음식을 먹는 스타일이야 말 그대 로 ‘개취’, 즉 개인의 취향이 니…….

주방으로 들어온 강진이 비엔나 에 칼집을 내고는 끓고 있는 물 에 넣었다.

뜨거운 물에 담긴 비엔나의 몸 통이 칼집을 따라 벌어지기 시작 했다. 그런 비엔나를 숟가락으로 휘저은 강진은 됐다 싶은 순간 그것을 접시에 덜었다.

뜨거운 물에 살짝 삶은 비엔나 를 강진이 홀로 가지고 나왔다.

그 사이 황민성은 맥주와 소주 를 섞어 비엔나와 밑반찬을 안주 로 먹고 있었다.

“멸치볶음이 진짜 맛있네요.”

멸치볶음을 먹으며 웃는 황민성 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이따 가실 때 조금 싸 드리겠 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저야 또 만들면 됩니다. 그리 고 삶은 비엔나 나왔습니다.”

강진이 식탁에 비엔나를 놓자 황민성이 포크로 그것을 찍어 입 에 넣었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습니다.”

“제대로 된 음식을 내어 드려야 하는데…… 이걸로 될지 모르겠 네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제일 맛

있는 음식이죠.”

웃으며 황민성이 맥주잔에 맥주 를 따르다가 강진을 보았다.

“사장님도 한 잔 드시겠습니 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강진이 맥주잔을 가져오자 황민 성이 그의 잔에 맥주를 따라 주 고는 소주를 들었다.

“섞어 드릴까요?”

“저는 일해야 하니 맥주만 먹겠 습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맥주가 따라진 자신 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그러고는 숟가락을 들어서는 잔 의 가운데를 팍 찍었다.

촤아악!

잔에서 기포가 솟구치는 것에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폭탄주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좋아합니다.”

“진작에 말씀하시지.”

말과 함께 강진이 자리에서 일 어나더니 소주와 맥주를 한 병씩 더 가지고 나왔다.

이어서 글라스 세 개도 꺼낸 강 진이 그것을 식탁에 놓고는 먼저 맥주를 따서는 한 잔을 채웠다.

그런 강진을 호기심 어린 눈으 로 보며, 황민성은 자신이 만든 폭탄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삶은

소시지를 입에 넣었다.

역시나 작게 베어 먹는 그를 보 며 강진이 소주 뚜껑을 열고는 그대로 맥주병 위로 박았다.

꿀렁! 꿀렁!

소주가 맥주병 안으로 쏟아지며 거품이 솟구쳤다. 그것을 잘 막 은 채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그는 이런 식으로 폭탄주를 제 조하는 모습을 처음 본 듯, 얼굴 에 감탄이 어려 있었다.

“대단하시네요.”

“기대하세요.”

웃으며 강진이 소주병을 떼어내 고는 엄지로 빠르게 맥주병 입구 를 막았다.

전에 선지 해장국 장사를 할 때 손님들에게 해 준 이후, 강진도 오랜만에 만드는 폭탄주였다.

하지만 손은 그 기술을 기억하 는 듯 홀리는 것도 없이 잘 만들 어졌다.

그리고…….

폭탄주를 만드니 승천을 한 오

순영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잘 지내시겠지? 하긴 천만 원짜리 수표를 끊어 주셨는 데, 잘 지내시겠지.’

저승에서 돈이 최고다. 그런 곳 에서 천만 원 수표를 끊어 보내 주실 정도의 재력이면 이승보다 더 편하게 지내실 것이다.

그때 오순영을 떠올리느라 잠시 멍하니 있는 강진을 보며 황민성 이 말을 걸었다.

“사장님?”

그의 말에 강진이 아차 싶어서 는 급히 병을 몇 번 혼들었다.

치이 익 !

압력으로 거품이 엄지를 비집고 나오자 강진이 그대로 잔에 대고 는 손가락을 살짝 비틀었다.

촤아악! 촤아악!

마치 분수처럼 강진의 손에서 폭탄주가 뿜어져 나갔다.

두 개의 컵에 번갈아 가며 폭탄 주를 뿜어낸 그가 맥주병을 세웠 다.

그러고는 폭탄주를 황민성에게 내밀었다.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폭탄주를 보았다. 황금빛의 폭탄주와 그 위에 몽글몽글 솟아 있는 하얀 거품은…… 마치 CF 속에서 나 나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맥주 광고에 나올 것 같은 모 습이네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한 번 주욱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을 들어 입에 가져 갔다.

꿀꺽! 꿀꺽!

단숨에 폭탄주를 마신 그가 시 원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크악! 좋다!”

입에 맥주 거품을 동그랗게 묻 힌 채 기분 좋게 웃는 황민성을 보던 강진이 웃으며 잔을 들었 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대체 무슨 죄인일까?’

황민성을 보고 있으니 김소희가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