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59화 (157/1,050)

158화

계란 프라이를 보던 황민성이 말했다.

“내가 혼자 오래 살았거든.”

“그러셨어요?”

“너는 자취한 적 있어?”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다가 말했다.

“오래 했죠.”

“그래?”

“한 십 년 정도 했어요.”

“십 년이면 자취를 무슨…… 고 등학교 때부터 했어?”

“그렇게 됐네요.”

보육원도 자취라고 치면 말이 다.

강진의 웃음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계란 프라이가 담긴 접시 를 집었다.

“형도 자취 오래 했는데…… 계

란 프라이를 이렇게 먹는 건 얼 마 만인지 기억도 안 나네.”

“계란 프라이를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계란 프라이는 정말 쉬운 음식이다.

프라이팬에 계란을 깨서 넣고 소금만 치면 끝이니 말이다. 게 다가 가격도 싸고 말이다.

의아해하는 강진을 보며 황민성 이 계란 프라이를 하나 입에 넣 고는 빨았다.

쪼오옥!

주르륵 흐르는 노른자를 빨아 먹은 황민성이 계란 흰자도 입에 넣고는 말했다.

“계란 프라이가 요리는 아니지 만, 어쨌든 프라이팬을 써야 하 고, 기름을 쓰고 접시에 담아야 하잖아.”

“그렇죠.”

“그래서 안 해 먹는 거지.”

“왜요?”

프라이팬을 쓰기는 하지만 딱히 귀찮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수저로 국물을 한 번 떠먹고는 미소를 지었다.

“자취생이 음식을 제대로 차려 놓고 먹나? 그냥 반찬 하나 놓고 먹는 거지. 그리고 계란 프라이 가 생각보다 귀찮아.”

“왜요? 프라이팬 꺼내고 기름 두르면 끝이잖아요?”

그게 귀찮은 정도라면 대체 인

생은 어떻게 사나 싶은 얼굴의 강진을 보며 황민성이 피식 웃었 다.

“자취하면 그게 귀찮아. 아니, 누구라도 귀찮을걸.”

“왜요?”

“계란 프라이 없다고 밥을 못 먹지는 않잖아?”

“아…… 그건 그렇네요.”

계란 비빔밥을 먹지 않는 이상, 계란 프라이는 선택일 뿐이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밥 먹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

하나 남은 계란 프라이를 보며 황민성이 웃었다.

“내 생각이지만, 계란 프라이는 내가 해 먹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해 주는 음식인 것 같아.”

“남이 해 주는 음식요?”

“내가 해 먹기는 귀찮은데, 남 이 해 주면 좋은 음식 말이야.”

“음식이야 다 남이 해 주면 맛 있고 좋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 었다. 강진의 말이 맞았다. 원래 음식은 내가 한 것보다 남이 해 준 것이 더 맛있는 법이다.

살짝 웃던 황민성이 강진을 보 았다.

“이상하게 네가 한 음식을 먹으 면 엄마 생각이 나.”

“어머니 음식이 더 맛있죠.”

“그렇기는 하지. 근데…… 마음 이 그래. 엄마가 아침에 해 주던 계란 프라이가 생각이 나.”

—계란 프라이라도 먹고 가.

-늦었어.

-계란 프라이라도 먹고 가근}니 까.

-일찍 깨우던가!

-먹고 가라니까.

평범했던 아침…… 하지만 다시 볼 수 없는 그런 아침에 대한 기 억이었다.

아직 취기가 덜 풀렸는지, 짧게

스쳐 간 기억만으로도 눈가가 붉 어지려는 것을 느낀 황민성이 재 빨리 숟가락을 들어 김치찌개를 떠먹었다.

“크악! 칼칼하고 좋네.”

“그렇죠.”

“칼칼하면서 기름진 게, 쓰린 속을 제대로 코팅해 주는 것 같 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도 밥을 한 숟가락 떠먹고는 김치찌개를 먹 었다.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한 황민성 이 가게를 나서며 강진을 보았 다.

“점심 장사 할 거지?”

“해야죠.”

“점심에 밥 먹으러 올 수 있으 면 올게.”

“그렇게 하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가게를 나서다가 그를 보았다.

“그리고 밥값은 형이 여기에 넣 었다.”

“언제 넣으셨어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어깨를 툭 쳤다.

“형이 적당히 넣었어. 어쨌든 형 간다.”

그러고는 가벼운 걸음으로 가게 를 나서던 황민성이 문득 강진을 보았다.

“아! 용수 있잖아.”

배용수를 말하는 것에 강진이 힐끗 옆을 보았다.

사실 배용수는 아까부터 옆에서 웃으며 황민성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제 자신의 이야기가 나 오자,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그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용수는 왜요?”

“용수는 뭐 해?”

“직업요?”

“말하는 것 보니까 어디 요리사 인 것 같은데, 용수네 가게도 한 번 가 보려고.”

“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요리사였는데, 지금은 쉬고 있 어요.”

“쉬어? 왜?”

“조금 쉬고 싶은 모양이더라고 요.”

“한창 일할 나이인데 무슨…… 용수 또 언제 와?”

“저녁 11시에 일 도와주러 와 요.”

“그래?”

강진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황민성이 몸을 돌렸다.

“그럼 아침 잘 먹고 간다.”

밝게 웃으며 가게를 나서는 황 민성을 배웅한 강진이 문을 닫았 다.

문을 닫는 그를 보며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형이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하루 술 먹었다고 벌써 피를 나눈 거냐?”

“시간이 짧아도 마음이 맞으면 친해지는 거지. 미운 놈 오래 본 다고 친해지디?”

“그것도 맞기는 하네.”

그러고는 강진이 시간을 보았

다.

“열 시 반……

11시에 가게를 열려면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에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 고에서 재료들을 보다가 문득 배 용수를 보았다.

“오늘 신수용 씨 왔다 갔지?”

“신수용 씨야 아침 여섯 시만 되면 딱 와서 재료 놓고 가시 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렸다.

“그럼 가게 꼴도 보셨겠네?”

“아…… 뭐, 기분이 살짝 상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는데 별다른 말은 안 하셨어.”

배용수의 답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꼴인가?’

신수 형제들에게 한끼식당은 ‘집’이다. 물론 이제는 명의도 강 진의 것이고 사는 것도 강진이지

만, 그들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크고 자란 시골 고향집 같은 곳 이다.

간밤에 술을 먹고 퍼지는 바람 에 치우지 못한 가게 꼴을 신수 용이 봤으니 그 속이 안 좋았을 것이다.

그에 강진이 핸드폰을 꺼내 신 수용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강진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조금은 쌀쌀맞은 신수용의 목소 리에 강진이 머리를 긁었다. 신 수호와 달리 성격이 따뜻하고 쾌 활한 사람인데, 목소리를 들으니 화가 나기는 한 모양이었다.

“오늘 오셨다가 가게 보시고 화 가 나섰을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후!]

강진의 말에 작게 한숨을 토한 신수용이 말했다.

[아침에는 사실 좀 그랬는데,

이 사장님이 먼저 전화해 주시니 좀 풀리네요. 그런데 어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평소에는 깨끗 하게 지내시던데…….]

“제가 어제 인턴이 끝났습니 다.”

[태광무역요?]

“네. 그래서 손님들하고 술을 좀 먹었는데…… 긴장이 풀려서 인지 과음을 좀 한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한끼식당 주인도 사 람인데 가끔 실수도 하고 취할

수도 있죠. 알겠습니다. 아! 혹시 저 화났을까 걱정해서 연락 주신 거라면 이제 풀렸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 소리 들으니 이제 좀 안심 이 되네요. 그럼 다음에……”

말을 하던 강진에게 배용수가 빠르게 말했다.

“야, 광어하고 우럭 주문 좀 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핸드폰의 마이크 부분을 손으로 잡고는 말

했다.

“왜?”

“민성이 형 숙성 회 좀 만들어 주게.”

“몇 마리나?”

“이왕 하는 것 여럿이 먹게, 좀 많이 달라고 해. 어차피 숙성하 면 하루 이틀 내 상하지는 않으 니까.”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말했다.

“저기, 횟감으로 할 광어하고 우럭 좀 주문해도 될까요?”

[그러세요. 오늘 쓰실 건가요?]

“편하실 때 보내 주세요.”

[그럼 양은?]

강진이 배용수를 보자 그가 말 했다.

“한 다섯 마리씩만 해 보자.”

“다섯 마리씩요.”

[알겠습니다.]

그걸로 전화를 끊은 강진이 배 용수를 보았다.

“그럼 오늘은 뭐 할까?”

“그거야 손님들이 정해야지. 아 니면 오늘 김치찌개 맛있어 보이 던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러고는 냉장고 앞으로 간 강 진이 김치찌개용 재료들, 그리고 어묵과 계란을 꺼냈다.

어묵볶음과 계란말이를 메인 반 찬으로 하고, ‘오늘의 추천 메뉴’ 로 김치찌개를 할 생각이었다.

재료들을 일단 꺼낸 강진이 화 이트보드에 오늘의 메뉴로 김치 찌개를 써서는 세워 두었다.

그런 강진을 보며 배용수가 말 했다.

“그럼 나 나간다.”

강진이 화이트보드를 세운 것은 영업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니 나 가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식 재료들을 다듬기 시작했다.

“소주 하나 주세요.”

손님 한 명의 말에 강진이 소주 를 가져다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강진이 주는 소주를 받은 노인 이 웃었다.

“사장님 취향이 아주 나쁘시 네.”

노인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제가요?”

“점심부터 이렇게 술이 당기는 음식을 하시니 말입니다. 하하 하!”

노인의 농에 강진이 웃었다.

“말을 들으니 그렇네요. 그래도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세요.”

“이 정도야 반주지. 아주 맛있 습니다.”

마지막으로 맛있다고 호의 어린 말을 하는 노인에게 고개를 숙인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홀을 보았다. 홀에는 네 테이블 정도의 사람들이 들어 와 있었다.

다행히 첫 번째로 온 테이블이 김치찌개를 시켰고, 그 냄새에 다른 손님들도 같은 메뉴를 주문 해서 음식을 만드는 데에 불편함 은 없었다.

손님들을 보던 강진이 프라이팬 세 개를 불에 올리고는 기름을 두른 후 계란 프라이를 만들었 다.

황민성이 아침에 계란 프라이를 먹으며 좋아하던 것이 떠올라, 다른 손님들에게도 그런 좋은 기 분을 나눠주고 싶어졌다.

촤아악! 촤아악!

프라이를 만들던 강진이 살짝 소금을 쳤다. 그리고 약한 불로 은근하게 계란을 익히다가 마지 막에 물을 손으로 찍어서 가볍게

튕겼다.

촤아악! 촤아악!

물이 프라이팬에 떨어지며 소리 를 내자, 강진이 뚜껑을 덮었다.

이렇게 하면 손가락으로 튕긴 물방울이 수분이 돼서 노른자를 살짝 익히며 촉촉하게 만들어 준 다.

그렇게 계란 프라이를 한 강진 이 그것을 접시에 담아서는 손님 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서비스입니다.”

“계란 프라이네.”

“맛있게 드세요.”

강진의 말에 노인이 웃었다.

“우리 마누라도 귀찮다고 잘 안 해 주는데, 식당에서 계란 프라 이를 다 받네요.”

노인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다 른 테이블에도 계란 프라이를 서 비스해 주었다.

그러고는 주방으로 가다가 문득 노인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응?”

노인이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 했다.

“아까 할머니가 계란 프라이 안 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우리 마누라도 나이 먹었다고 이제 안 해 주더군요. 손주들이 나 와야 애들 것 해 주면서 하나 얻어먹는다니 까요.”

웃으며 말하는 노인의 말에 강 진이 말했다.

“그럼 집에 가시면 사모님께 계 란 프라이 한 번 해 드려 보세 요.”

“내가 계란 프라이를?”

“어르신, 혹시 계란 프라이 해 서 드셔 보신 적 있으세요?”

“글쎄요. 제가 요리는 안 하지 만 계란 프라이 정도는…… 응?”

말을 하며 생각을 하던 노인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없는 것 같군요.”

노인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 었다.

‘민성이 형 말이 틀린 건 아니 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노인에 게 말했다.

“오늘 제가 아는 형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계란 프 라이는 내가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해 주는 거라 고요.”

“남을 위해 해 주는 음식?”

“사모님께서 계란 프라이를 하 시면, 본인이 드시려고 하시는 걸까요?”

“여러 개 해서 같이 먹지요.”

“하지만 하나만 해서 혼자만 드 시지는 않잖아요?”

“그건…… 식구들이 있으니.”

말을 하던 노인이 웃었다. 강진 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 것이다.

“그래서 계란 프라이가 남을 위 해 하는 음식이라는 말이군요.”

“사모님한테 계란 프라이를 해 드리면 내일 밥상이 좋아지실 것 같네요.”

강진의 말에 노인이 피식 웃었 다.

“할망구가 노망들었냐고 걱정이 나 안 하면 다행이겠습니다.”

웃으며 노인이 강진을 보았다.

“그래도 사장님 말 들으니 나도 할망구한테 계란 프라이 하나 정 도는 해 줘야겠군요.”

소탈하게 웃는 노인을 보며 강

진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노인이 웃으면서 계란 프라이를 숟가락 으로 떠 입에 넣었다.

“촉촉하고 맛있구만.”

맛있게 계란 프라이를 먹는 노 인의 모습에 앞에 앉아 있던 중 년인이 미소를 지었다.

“의원님, 기분이 좋으신 것 같 습니다.”

중년인의 말에 노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은 맛있고, 젊은 사장은

친절하니…… 기분이 좋을 수밖 에.”

기분 좋은 얼굴로 노인이 소주 를 따라 입에 털어 넣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