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고무장갑을 낀 배용수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냉장고를 잡았다.
덥석!
냉장고 손잡이가 잡히는 것에 배용수가 웃으며 문을 열었다.
덜컥!
냉장고 문올 연 배용수가 다시 문을 닫았다. 뭘 꺼내려고 한 것
이 아니라 실제로 잡히는지 확인 을 해 보려는 것이었다.
“좋네.”
“그럼 시작해 보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장갑을 낀 채 다시마를 꺼냈다. 마른 다 시마를 꺼낸 배용수가 물을 그릇 에 담고는 식초를 살짝 넣고는 저었다.
“그냥 맨 물에 하면 되지 않 아?”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다시마를 불려서 쓸 때는 최대 한 짧게 해 주는 것이 좋아. 시 간이 길면 물에 불릴 때 감칠맛 하고 미네랄 같이 몸에 좋고 맛 있는 성분들도 빠져나가거든. 그 런데 식초를 살짝 넣으면 다시마 가 부드러워지고 물도 빠르게 흡 수할 수 있지. 그럼 몸에 좋고 맛있는 성분이 나가는 걸 최대한 줄일 수 있어.”
“그럼 얼마나 불려야 해?”
“시간이야 대충 눈으로 봐서 적
당히 됐다 싶으면 꺼내면 되지. 나 같은 경우는 다시마가 불기 시작하면 물에서 꺼내.”
“더 안 불리고?”
“물에서 꺼내도 물기가 있으면 알아서 더 불으니까. 그러다가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물 조금 뿌리면 되고.”
그리고 다시마를 물에 담근 배 용수가 비닐을 뜯어 물고기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너 물고기 손질하는 방법은 알
아?”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말했 다.
“ 알아.”
“그래?”
“어선 좀 탔었거든. 그때 회 치 는 방법 정도는 배웠지.”
말을 하며 강진이 광어 한 마리 를 잡아서는 배용수 옆에서 같이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한 대 쳐서 기절을 시키
고 바로 칼을 넣는 강진의 모습 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네.”
“이걸로 저녁에 매운탕이나 끓 일까?”
“메뉴로 내게?”
“있는 재료 버리면 아깝잖아. 1 인분에 5천 원 정도 해서 팔면 되지 않을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맛도 있을 테고.”
말을 하면서도 배용수가 든 칼 은 멈추지 않았다.
드드득!
배용수의 칼이 물고기의 뼈를 따라 움직이며 살점을 크게 잘라 냈다.
타앗!
커다란 살점을 도마 위에 놓으 며 새로운 물고기를 집던 배용수 가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여기 커튼이라도 쳐야 하지 않겠냐?”
“ 커튼?”
무슨 말인가 싶어 강진이 배용 수를 보자 그가 홀을 가리켰다.
“홀에서 주방이 보이잖아. 그럼 사람들 눈에는 고무장갑이 두둥 실 떠서 음식을 하는 게 보일 걸.”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홀을 보 았다. 한끼식당 주방은 오픈형이 라 홀에서 주방이 보이는 형태였
다.
“맞네.”
배용수에게 고무장갑을 사 준 이유는 음식을 같이 만들려는 것 이었다.
그럼 주방이 사람들 눈에 보여 서는 안 되었다.
잠시 홀을 보던 강진이 칼을 내 려놓았다.
“너 혼자 할 수 있지?”
“그럼 이 정도야 순식간이지.”
“나 가서 여기에 달 커튼 좀 사 올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칼을 움직이자, 강진이 손올 씻고는 가게 문을 닫고 나 왔다.
가게 문을 닫고 나온 강진은 대 형 마트로 들어갔다. 마트에 들 어간 강진이 잡화 코너로 가서
커튼을 찾았다.
커튼을 찾으며 주위를 두리번거 리던 강진은 종종 어딘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강진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귀신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귀 신들은 대부분 강진이 아는 얼굴 들이었다.
한끼식당과 가까운 곳에 있는 마트다 보니 단골 귀신들이 종종 보이는 것이다.
그런 귀신들과 눈인사를 하던
강진이 한 귀신에게 말을 걸었 다.
“경하 씨!”
마트 직원 복장을 한, 이십 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귀 신 경하가 강진의 부름에 그를 보았다.
“뭐 필요하세요?”
경하는 한끼식당에 오는 귀신 중 한 명이었는데, 여기 마트에 서 일을 했다고 했었다.
그리고 지박령은 아니었다. 지
박령이면 한끼식당에 오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저 예전 직장이 편해서인지 평소에는 마트에서 돌아다니는 것이다.
“혹시 한 이만한 길이의 커튼 어디로 가야 있을까요?”
“어디다 쓰시게요?”
“홀에서 주방이 안 보이게 칸에 커튼을 좀 치려고요.”
“그거면 잡화 쪽…… 아니, 따 라오세요.”
경하가 앞으로 걸어가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근데 요즘 잘 안 오시던데요?”
“맛있는 건 아껴 먹는 스타일이 거든요.”
그러고는 경하가 웃으며 말했 다.
“라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이 뭔지 아세요?”
“ 라면요?”
“네.”
“글쎄요…… 라면은 워낙 개인 취향이 다양해서.”
강진은 그냥 적당히 라면을 맛 있게 끓여 먹는 스타일이다. 그 리고 황민성 같은 경우는 김치 국물을 넣어 칼칼하면서도 면은 조금 퍼진 걸 잘 먹는다.
그러니 나에게 맛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맛있는 라면이 될 수는 없었다.
물론 라면이 맛이 없기도 힘들 지만 말이다.
강진의 말에 경하가 고개를 끄 덕였다.
“사장님 말이 맞죠. 하지만 저 는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압 니다.”
단호하고 확신하는 경하의 모습 에 강진이 물었다.
“그게 뭔데요?”
강진의 물음에 경하가 웃으며 말했다.
“한 달 정도 라면을 안 먹으면 됩니다.”
“라면을 먹지 말라?”
“한 달 정도 라면을 안 먹다가 먹으면 그게 정말 꿀입니다.”
경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 가 웃었다.
“하긴 한 달 정도 라면을 안 먹 었으면 맛은 있겠네요.”
“사장님도 한 번 그렇게 드셔 보세요. 정말 맛있습니다. 목구멍 에서 손이 나와서 라면을 끌어당 겨 가는 느낌입니다.”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질
리지만, 가끔 먹으면 더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경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표현이 정말 아주 맛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해 봐야겠네요.”
말을 한 강진이 경하를 보았다.
“참았다가 드시려고 자주 안 오 시는군요.”
강진의 물음에 경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가서 먹어도 맛은 있지 만…… 가끔 가서 먹으면 더 맛 이 좋습니다. 그래서 2주에 한 번 정도만 가고 있습니다.”
“미식가이 시네요?”
강진의 말에 경하가 웃으며 고 개를 저었다.
“미식가까지는 아닙니다. 그저 이왕 먹을 것 더 맛있게 먹으면 좋겠다 생각을 할 뿐입니다.”
말을 하며 경하가 한쪽에 있는 곳을 가리켰다.
“커튼은 다 여기에 있는데…… 사장님이 말을 한 사이즈가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경하의 말에 강진이 비닐에 싸 여 있는 커튼을 살폈다.
“길이가 다 2미터 이상이네요.”
“커튼이니까요.”
경하의 말에 잠시 커튼을 살피 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하긴 커튼이면 창문을 가려야 하는데……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홀과 주방을 연결하는 칸을 떠올렸다.
그 칸은 그리 크지도 넓지도 않 다.
잠시 생각을 하던 강진이 고개 를 끄덕이고는 경하를 보았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못 살 것 같네요.”
“그 정도 사이즈는 따로 주문을 하거나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경하가 괜히 미안해하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자주 오세요.”
“자주 가고 있습니다.”
싱긋 웃는 경하를 보며 강진이 신수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이강진입니다.”
[대타 필요하세요?]
“그건 아니고요. 저기, 저희 주 방과 홀을 연결하는 칸 있잖아 요.”
[그런데요?]
“거기에 커튼이나 가림막 같은 것을 했으면 하는데요.”
[주방 가리게요?]
“야간에 영업할 때는 가리지 않 을 건데…… 일반 영업할 때는 가리려고요.”
[음…… 커튼이면 되는 건가 요?]
“혹시 다른 것도 있을까요?”
강진의 말에 잠시 말이 없던 신 수조가 말했다.
[레일 설치해서 좌우로 열고 닫 는 걸로 해서, 좀 고급스럽게 그 림 넣음 어떨까요. 음식 낼 때만 열고 닫는 형태로 하면 지저분하 지 않고 깔끔할 것 같네요.]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오늘 주문 넣고 내일…… 오후 에 설치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경 하를 보았다.
“그런데 경하 씨는 여기서 뭐하
세요?”
“식료품 코너 구경하고 있습니 다.”
“식료품 코너요?”
“제가 식료품 코너 관리를 했었 거든요. 그래서 뭐가 올라왔나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싱긋 웃는 경하를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어서도 일을 하고 싶으신 건 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경하에 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마트를 나왔다.
가게로 돌아온 강진은 홀에서 주방을 보고 있었다. 주방이 오 픈이기는 하지만, 잘만 가리면 배용수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 가릴 필요 없이 용 수가 일을 하는 공간 쪽만 가리 고, 이쪽을 놔두면 음식 내는 데 도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아.’
배용수의 몸이 안 나오게, 음식 만 그곳에 두면 강진이 서빙을 하면 되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배용 수를 보았다.
“안쪽에서 좀 해 봐.”
“어떻게든 부려 먹으려고 하 냐?”
“부려 먹는 게 아니라, 너 돈 벌라고 하는 거지. 왜 내 마음을 몰라 주냐?”
“그게 아니라 난 네 마음을 너
무 잘 아는 것 같은데.”
“돈 벌기 싫어?”
“농담이다.”
그러고는 배용수가 주방 쪽을 보다가 말했다.
“천이라도 하나 사다가 대충 가 리면 되지 않아?”
“지저분하잖아.”
“그런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주방에 들어갔다. 주방에
는 배용수가 깨끗하게 손질을 한 우럭과 광어가 냄비에 담겨 있었 다.
모두 1인분씩 손질이 되어 있고 그 안에는 양념과 야채들도 담겨 있었다.
거기에 다른 한쪽에서는 뭔가가 팔팔 끓고 있었는데, 육수인 모 양이었다.
“다 해 놨네?”
“할 것도 없고, 그래서 다 해 놨지.”
“ 횟감은?”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김치냉 장고를 열더니 통을 하나 꺼내 뚜껑을 열었다.
“회를 숙성시킬 땐, 김치냉장고 처럼 저온 숙성되는 곳을 이용해 야 해.”
“ 냉장고는?”
“냉장고는 열고 닫을 때마다 온 도가 변화하니까 좋지 않지. 일 정한 온도로 해 줘야 좋아.”
뚜껑 안에는 다시마와 횟감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렇게 하면 돼?”
“원래는 진공포장을 해야 하는 데,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거 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내용물을 보다가 말했다.
“그럼 언제 먹을 수 있어?”
“이게 시간이 좀 애매하네.”
“왜?”
“내일 점심부터 저녁 장사까지
는 맛있을 거야.”
“그럼 내일 점심에 민성이 형 오시라고 하면 되겠네.”
“그게 가장 좋기는 한데…… 점 심때 소주 먹기는 좀 그렇잖아.”
“소주라…… 하긴 회를 소주 없 이 먹으라고 하면 그것도 고문이 기는 하네.”
“저녁에 오시라고 해.”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회를 보다가 입맛을 다셨 다.
“오늘은 못 먹어?”
“뭐 못 먹을 것은 없지. 회야 썰고 바로 먹어도 되니까. 근데 숙성은 아니지. 왜, 먹고 싶어?”
“보니까 당기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서랍을 열고는 일회용 장갑을 꺼냈다. 그 일회용 장갑도 JS 편의점 물 건이었다.
고무장갑을 벗고 일회용 장갑을 낀 배용수가 다시마를 슬쩍 걷어 내고는 우럭과 광어회를 꺼내서
는 몇 점을 잘랐다.
그러고는 간장을 조금 덜어서는 강진을 보았다.
“먹어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젓가락으로 회를 집어 간 장에 찍고는 입에 넣었다.
회를 먹은 강진이 고개를 끄덕 였다. 아직 숙성이 되지 않아서 일반 회와 비슷했지만, 다시마의 향과 맛이 느껴졌다.
“맛있네.”
그러고는 강진이 회가 담긴 통 을 보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 다.
“이건 숙성되면 먹어.”
배용수가 뚜껑을 닫고는 김치냉 장고에 통을 집어넣었다.
“이제 저녁 장사 준비하자.”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접시에 남은 회를 집어먹 고는 그를 보았다.
“밖에서 볼 테니까, 안에서 움 직여 봐. 보이면 내가 말해 줄
게.”
홀로 나온 강진이 여러 각도로 주방을 보며 배용수가 보이는지 확인을 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었다. 한쪽 구석으로 가면 보이지는 않았지 만 그래도 혹시라는 것이 있다.
‘손님 많으면 안 보이게 앉아서 재료 손질이라도 하게 하고, 아 니면 내가 하는 것이 낫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배용 수를 보았다.
“저녁 장사 준비하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일회용 비닐을 손에 낀 채 냉장고를 열 어 재료들을 꺼내고는 음식 준비 를 하기 시작했다.
일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그 만큼 JS 금융에 있는 빚이 줄어 드니, 그로서도 일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