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화
강진이 할머니 귀신을 볼 때 오 자명이 이유비와 함께 밖으로 나 갔다. 그것을 보며 강진이 배웅 을 하고는 가게 문을 닫고 들어 왔다.
강진은 빈 테이블을 보다가 도 라지구이와 매운탕을 다른 테이 블로 옮기고는 밥 한 그릇을 퍼 와서는 말했다.
“너도 먹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맞은편에 앉으며 젓가락으로 도라지구이를 집어 먹었다.
“이렇게 먹으니 감질나네.”
제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 혼을 먹는 거라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그건 이따 11시에 먹는 걸로 하고. 아까 하던 이야기 해 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도라지구 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원한령이 뭔지는 알지?”
“전에 나쁜 놈한테 붙어 있던 여자 귀신들.”
“맞아.”
고개를 끄덕인 배용수가 말했 다.
“원한령과 원귀는 비슷하면서 조금 다른 점이 있어. 원한령은 한 대상에게 묶여 있고, 원귀는 그 대상이 조금 더 넓다는 거 야.”
“얼마나 넓은데?”
“보통 자기가 살아 있을 때 미
웠던 대상들이 모두 포함이 되 고, 그 다음에는 사람들 전부를 대상으로 하지.”
“위험하네.”
“근데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 보 면 아직 크게 사고 치지는 않은 모양이야. 사람들에게 큰 해를 끼쳤으면 JS 금융에서 벌써 끌고 갔을 테니까.”
배용수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 다.
“아마 죽은 지 몇 달 안 됐을
거야.”
“어떻게 알아?”
“죽은 지 오래됐으면 벌써 무슨 사고 치고 끌려갔 겠지. 분위기 보니까 그 남자 죽일 듯이 노려 보던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문을 한 번 보고는 말했다.
“죽어서도 원한을 가질 정도라 면 뭔가 해를 당했다는 것 아 냐?”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말했
다.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 에는 일방적인 원한 같아.”
“일방적인 원한?”
“상대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냥 원한에 사무쳐서 쫓아다니 면서 해코지하는 애들 있어.”
“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해코 지를 해?”
의아한 듯 보는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그를 보았다.
“사람 싫은 데에 이유가 있냐?”
“그건…… 아니지.”
사람이 싫으면 이유를 만들어서 라도 싫어하니 말이다. 그런 강 진을 보며 배용수가 말했다.
“그냥 성격이 나쁜 거야. 아마 살았을 때도 조에 대출 좀 많이 당겼을 것 같더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아까 원한이 담긴 중얼 거림을 떠올리니…… 성격이 좋 아 보이지는 않았다.
할머니 귀신들에 대한 좋은 기 억만 있는 강진이 안쓰러운 눈으 로 문을 볼 때 배용수가 말했다.
“그나저나 그 남자 원귀한테 많 이 괴롭힘 당한 것 같던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아?”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자신의 양미간 사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귀신들한테 시달리면 여기
에……
자신의 양미간을 문지르던 배용 수가 말했다.
“귀기라고 해야 하나? 파란 기 운이 흐르거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자신의 양미간을 손으로 문지르다가 핸 드폰을 꺼내 자신의 이마를 비췄 다.
“너는 없지.”
“혹시나 해서 본 거야. 그런데 귀신이 사람을 어떻게 괴롭혀?”
사람이 귀신을 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사람을 괴롭히는지 의아 한 것이다.
강진이 알기로 귀신은 사람을 괴롭히지도, 죽이지도 못한다.
괴롭히고 죽일 수 있었다면 여 자 귀신들이 그 나쁜 놈을 가만 히 두고만 있지 않았을 테고 말 이다.
“괴롭히려고 하면 충분히 괴롭 힐 수 있지. 물론 JS 금융에서 돈은 줄줄 나가겠지만.”
“어떻게?”
“쉬워. 그냥 귀신이 뚫어지게 쳐다보고만 있어도 사람들은 한
기를 느끼고 영혼이 스트레스를 받아. 거기에……
배용수가 강진에게 손을 내밀었 다.
스윽!
툭!
배용수의 손이 강진의 손에 닿 았다. 그렇게 몇 번 터치를 한 배용수가 말했다.
“너는 뚫리지 않지만, 귀신은 사람의 몸을 뚫고 지나갈 수 있 지.”
“으.. ”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렸다. 귀신이 자신의 몸을 뚫 고 지나가는 것을 생각하니 기분 이 좋지 않았다.
그런 강진을 보며 배용수가 말 했다.
“이런 것 몇 번 당하면 기 빨려 서 건강에도 안 좋아.”
“기가 빨려?”
“귀신이라는 것도 일종의 귀기 라고 해야 할 기운인데, 그게 사
람의 몸에 들어가면 기가 부딪힐 것 아냐. 그럼 자각은 못 해도 기가 줄거나 귀신이 나갈 때 생 기도 같이 딸려 나가. 그럼 당연 히 몸에 안 좋겠지.”
그러고는 배용수가 문 쪽을 보 았다. 그런 배용수를 보던 강진 이 문득 그를 보았다.
“혹시 우리 가게에 원귀들도 와?”
“안 와.”
“안 와?”
“원귀들은 우리하고 다르게 귀 신이 돼서도 나쁜 짓 많이 해서 JS 금융에서 보이면 보이는 대로 잡아가. 그래서 JS 금융 피해서 도망 다니는데 저승식당에서 어 떻게 밥을 먹겠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럼…… 밥도 제대로 못 얻어 먹겠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 았다.
“밥 못 먹는다고 불쌍하게 생각 하지 마. 그놈들은 이상한 놈들 이라니까.”
“이상해도 배는 고플 것 아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그놈들은......"”
말을 하던 배용수가 잠시 생각 을 하다가 말했다.
“좀비하고 비슷해.”
“좀비?”
“네가 보기에 우리들이 영화에 서 보는 그런 귀신들하고 비슷해 보여?”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 다르지.”
귀신의 모습일 때야 조금 생긴 것이 무섭고 소름이 돋기는 한 다.
하지만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을 보면 사람하고 차이가 없었 다.
“근데 원귀들은 영화 속에 나오 는 귀신하고 비슷하다 보면 돼.”
“무섭다는 거네.”
“사람 입장에서는 무섭고, 같은 귀신 입장에서는 무섭다기보다는 꺼림칙하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매운탕을 떠서 먹고는 미 소를 지었다.
“양념 잘 했다.”
“그럼 내가 운암정 요리사 아니 냐.”
웃으며 배용수도 매운탕을 떠서 먹으며 말했다.
“밥 더 줄까?”
어느새 밥을 다 먹은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내가 풀게.”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밥그 릇을 들고 주방으로 가던 강진이 뒷문으로 나가서는 선주와 최훈 을 데리고 들어왔다.
“최훈 씨, 설거지 할 줄 알죠.”
“그럼요. 뭐든 시켜 주십시오.”
최훈의 말에 강진이 오자명 일 행이 먹던 그릇들을 주방으로 향 하는 칸에 올려놓았다.
“부려 먹는 것이라 생각하지 마 세요. 돈 벌려고 하시니까 시키 는 겁니다.”
“그럼요. 감사합니다.”
최훈이 웃으며 고무장갑을 끼자 선주가 급히 말했다.
“오빠, 내가 할게.”
“아냐. 괜찮아. 내가 할게.”
“그래도……
“괜찮아. 아! 잠깐만.”
최훈이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리모컨을 쥐고는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너 보고 싶은 채널 마음껏 돌려 볼 수 있겠다.”
그러고는 최훈이 TV를 키고는 채널을 돌렸다. 별것 아닌 것이 지만 최훈은 좋았다.
그동안은 강진이 틀어 놓은 채
널만 하루 종일 봐야 했는데, 이 제는 선주가 보고 싶어 하는 방 송을 돌려서 볼 수 있으니 말이 다.
채널을 돌리던 최훈이 선주를 보았다.
“뭐 틀어줄까?”
최훈이 채널을 돌리자 선주가 그를 보다가 말했다.
“내가 할래.”
“ 괜찮아.”
“괜찮기는. 빨리 장갑 줘.”
선주가 다가와 고무장갑을 벗기 자 최훈은 결국 장갑을 벗어주었 다.
그런 두 사람을 보던 강진이 배 용수를 보았다.
“너도 여자 귀신이나 만나 보지 그래?”
“됐어. 귀신이 연애는 무슨…… 그리고 언제 올라갈지도 모르는 상황에 정 줘서 뭐하냐?”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밥을 마저 먹기 시작했 다.
그러고는 웃으며 배용수를 보았 다.
“확실히 네가 요리를 잘하기는 해.”
“이제 알았냐.”
다음 날 10시 무렵, 강진은 배
용수가 썰어내는 숙성회를 보고 있었다.
스르륵! 스르륵!
회가 썰어지고 배용수가 그것을 한 점씩 말아서 놓았다. 그의 손 길을 따라 예쁜 회 꽃이 피어났 다.
“이쁘네.”
“음식은 맛도 중요하지만 장식 도 중요하지.”
배용수가 손으로 회를 가리켰 다.
“먹어 봐.”
“건들기 아깝다.”
“먹으라고 만든 건데 안 먹으면 무슨 소용이야. 그리고 맛을 봐 야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젓가락으로 회를 집어 입 에 넣었다.
찰지면서 탱탱한 회의 식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약하지만 씹을 때마다 감칠맛이 입안에서 펑펑하고 터지는 듯했
다.
“ 맛있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으라고 만든 거니까. 하지 만……”
배용수가 회를 보다가 말했다.
“숙성회가 바로 뜬 회보다 더 맛있는 것은 아냐.”
“그래? 맛있는데?”
“처음 먹어 보는 맛이라 그렇
지. 일종의 별식 느낌이라 해야 하나. 예를 들면 삼겹살 좋아하 는 사람도 있고 소고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숙성회든 바 로 뜬 회든 취향 차이일 뿐이 야.”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회를 한 점 더 먹고는 말 했다.
“이거 몇 인분이나 나와?”
“한 25인분 정도 나오겠다. 뭐 많이 먹는 사람이면 조금 줄어들 수도 있고.”
신수용이 가져다준 광어와 우럭 은 모두 튼실한 놈들이라 횟감이 꽤 많이 나왔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회를 씹 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황민성에게 문자를 보 냈다.
〈용수가 형 드시라고 숙성회를 만들었습니다. 혹시 점심에 오실 수 있으면 문자 주세요.〉
황민성에게 문자를 보낸 강진이 회사 사람들에게도 문자를 보냈 다.
〈오늘 점심에는 광어와 우럭 숙 성회를 준비했습니다. 많이는 준 비를 하지 못했고, 25인분만 준 비했으니 혹시 시간 되시는 분은 답문 부탁드리겠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먹어보니 배용수가 만든 숙성회는 맛있었
고, 그 맛있는 회를 동료들에게 도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문자를 보낸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가격은 얼마나 받아야 할까?”
“서비스 만들 거야?”
“서비스?”
“회만 먹고 배부르기는 어렵잖 아.”
“그건 그렇지.”
“서비스 반찬 내면…… 인당 이
만 원 받고, 서비스 안 내면 만 오천 원 정도 받으면 되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렸다.
“서비스까지 하면 일이 커지는 것 아냐?”
횟집 서비스 반찬을 떠올린 강 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횟집에 회만 먹으러 가냐. 서 비스 반찬도 좀 먹는 거지. 그냥 콘치즈 좀 하고 겨울이라 굴 신 선하니까 생굴하고 굴전 정도만
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메뉴를 생각할 때 벨 소리가 들렸다.
띠링! 띠링!
말을 하던 강진이 벨 소리에 핸 드폰을 보았다.
〈점심에 갈게.
-황민성〉
황민성의 문자와 함께 그 뒤로
팀원들의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숙성회라…… 맛있겠네. 와이 프하고 둘이 갈게.
-임호진〉
〈나 숙성회 안 먹어 봤는데. 비 린내 나는 건 아니죠?
혜인이한테 연락해 보고 갈게 요.
- 최미나〉
〈우리 부모님 모시고 갈게.
- 이상섭〉
오겠다는 팀원들의 문자에 강진 이 웃으며 그 수를 계산해 보고 는 고개를 끄덕였다.
‘8명. 테이블은 네 개. 딱 적당 하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배용수 를 보았다.
“굴 사 오면 되나?”
“연어도 있으면 연어도 좀 사
와. 연어 초밥도 좀 만들면 모양 나오니까.”
“ 알았다.”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지갑을 챙겨서는 마트로 서둘러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