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숟가락으로 김소희를 건들고 있 는 강진을 옆으로 밀어낸 황민성 이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가씨, 방금 뭐라고 한 거예 요.”
황민성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김소희가 그에게 가장 슬프고 아 픈 곳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그가 김소희를 부르며 건들려 할 때, 강진이 급히 그 손을 잡
았다.
덥석!
“왜?”
“아가씨가 성격이 특이하셔서 누가 자신을 터치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세요.”
“그래도……
“쿨! 흠…… 나 어린애 아니 야!”
말을 하던 황민성이 김소희를 보았다. 탁자에 머리를 박고 있
는 김소희가 작은 숨소리를 내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뭐야, 자는 거야?”
사람 염장을 질러 놓고 자는 김 소희의 모습에 황민성이 황당함 에 한숨을 쉬자, 강진이 슬쩍 그 를 보고는 말했다.
“술 취한 사람하고 무슨 이야길 하겠어요. 아! 라면! 형 잠시만 요.”
“황구야…… 태문아……
주방으로 들어가던 강진이 힐끗
김소희를 보았다. 김소희의 눈가 에서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리는 것을 본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이건…… 못 본 걸로 해 드릴 게요.’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가 라면과 음식들 을 가져왔다.
“다행히 면이 적당히 잘 익었네 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김소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말했다.
“저 여자 왜 저래?”
“술 드셨잖아요. 자, 드세요.”
화제를 돌리기 위해 강진이 맥 주를 따라주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며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 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김소희를 신경질적으로 보다가 한숨을 쉬 고는 젓가락으로 라면을 크게 한 입 집어 먹었다.
후루룩! 후루룩!
라면을 먹던 황민성이 다시 눈
을 찡그리며 김소희를 보았다.
“쟤 뭐야?”
김소희가 한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저희 가게 오시는 단골손님이 시죠.”
“이상해.”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잔에 맥주를 다시 따라 주었다.
“그냥 술 좀 드셔서 그래요. 혼 자 네 병이나 마셨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놀란 눈 으로 탁자를 보았다. 강진의 말 대로 빈 소주병 네 병이 있었다.
“무슨 소주를 네 병이나?”
“평소에는 하나에서 두 병 정도 만 드시는데…… 오래 알고 지낸 친구 장례식이 끝났거든요. 그래 서 좀 많이 드신 모양입니다.”
“그래?”
잠시 말을 멈춘 황민성이 입맛 을 다시며 맥주잔을 만지다가 말 했다.
“저 여자가 하는 말 들었어?”
“무슨 이야기요?”
강진이 짐짓 모른 척을 하자 황 민성이 그를 보다가 맥주를 마셨 다.
“나보고 죄인이래.”
“죄인요?”
황민성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이자 강진이 잔에 술을 따 라 주었다.
쪼르륵! 화아악!
맥주잔에 거품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 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나 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그냥 술 취한 사람이 하는 헛 소리라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마음이 아프다.”
황민성이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 었다가 한숨을 쉬었다.
“틀린 말이 없어.”
그리고는 황민성이 입술을 깨물 고는 김소희를 보았다.
누워도 편하지 않고, 먹어도 배 가 부르지 않고, 짝을 만나나 그 짝은 너의 것이 아니다.
맞는 말이었다. 누워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밥을 먹 어도 늘 허전했다.
그리고 짝…… 아내 역시 마음 을 주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아 내가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가지 않을 뿐
이었다. 아내에게는 사랑이 아닌 그저 미안함만 있을 뿐이었다.
잠시 김소희를 보던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토한 황민성이 비 엔나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평소라면 작게 씹어 먹을 텐데 황민성은 하나를 그대로 씹었다.
“그리고…… 그 말이 틀리지 않 았으면 한다.”
“왜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입술을 깨물며 라면을 보았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 라면은 퉁퉁 불어 있 었다.
‘나 때문에 홀린 어머니 눈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다 면……
속으로 중얼거린 황민성이 그대 로 라면을 크게 집어서는 입에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면발 다 불었는데…… 다시 끓
여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다.
“아니야. 맛있어.”
그렇게 말한 황민성은 면을 다 시 크게 집어 먹으며 맥주를 들 이켜기 시작했다.
라면을 먹는 황민성의 앞에서 강진은 삶은 계란을 까고 있었 다.
깐 계란을 하나 황민성 앞에 놓 자 그가 계란을 입에 넣으며 말 했다.
“어렸을 때 엄마가 계란을 자주 깠어.”
“그래요?”
“내가 엄마가 분식집 했다는 이 야기 했지?”
“네.”
“쫄면이나 비빔국수, 그리고 냉 면에 삶은 계란이 들어가잖아. 그래서 엄마가 아침에 계란을 삶 으면 그걸 하나씩 먹고 학교 갔 어.”
“그렇군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남은 계 란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치매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짐작한 사실이었 다.
“강원도 요양원에 계셔.”
이건 짐작하지 못했다.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하지만 생각올 해 보니 황민성 의 나이가 서른아홉이다. 사고만
아니라면 부모님이 살아 계신 것 이 당연한 나이였다.
“어렸을 때 형이 사고를 많이 쳤다.”
“어렸을 때는 사고도 치고 쌈질 도 하고 크는 거죠.”
“그게…… 좀 심했지. 가출도 좀 하고…… 형 학교도 잘렸었 어.”
“ 아......"
강진의 탄식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 학교 잘린 것이 잘 된 것 같아. 내가 학교 에서 나쁜 놈이었거든. 계속 학 교 다녔으면 애들이나 더 괴롭히 고 그랬을 거야.”
강진이 말없이 맥주를 따라 주 자 황민성이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학교 잘리고 가출을 했거든.”
“아......"
“개차반처럼 살다가 감옥도 가 고…… 감옥에 있을 때 어머니가
치매가 온 거야.”
“아......"
“어머니가 면회는 왜 이리 자주 오는지.”
“아들이 고생하니…… 자주 오 신 거죠?”
“오지 말라고 또 오면 안 본다 고…… 그랬는데 말이야.”
잠시 입맛을 다신 황민성이 입 술을 깨물었다.
“감옥 나오는 날…… 엄마가 앞
에서 기다리고 있더라.”
황민성의 목소리가 달아오르는 것에 강진이 가만히 그를 보다가 맥주를 따라 주었다.
차오르는 맥주잔을 보던 황민성 이 한숨을 쉬었다.
“그때 어머니가 나 준다고 도시 락을 싸왔는데…… 하!”
작게 실소를 토한 황민성의 입 꼬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비어 있더라.”
“비어 있어요?”
“나 준다고 빈 도시락을 애지중 지 가져오셨더라고. 하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떤 느낌인지 감이 왔다.
“빈 도시락……
강진이 작게 중얼거리자 황민성 이 슬쩍 눈가를 손으로 눌렀다.
“그날…… 태어나서 처음 울었 다. 아주 그냥 펑펑 울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그의 앞에 놓인 잔을 들어 마셨다.
꿀꺽! 꿀꺽!
단숨에 한 잔을 마신 강진이 맥 주를 따르려 하자, 황민성이 고 개를 저었다.
“소주로 바꾸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소주와 잔을 더 가져오자, 황민성이 글 라스에 소주를 따르다가 강진을 보았다.
“너…… 영업 괜찮겠어?”
“지금 시간에 누가 오겠어요. 같이 드시죠.”
강진의 말에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 준 황민성이 말했다.
“그날 손 씻었다.”
“잘 하셨네요.”
“근데…… 너무 늦었지. 좀 더 일찍... 했어야 했는데.”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지금은 잘 사시잖아 요.”
“잘 산다라……
웃으며 고개를 저은 황민성이 말했다.
“나는…… 잘 못 살아.”
쓰게 웃으며 황민성이 맥주를 마실 때 옆에서 소리가 들렸다.
덜컥!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김소희가 벌떡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멍하니 서 있다가 주섬 주섬 한복 옷고름을 다듬더니 비 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가시게요?”
강진의 부름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아프네.”
“냉수라도 한 잔 드시겠어요?”
“되었네.”
그러고 김소희가 가게를 나서려
할 때, 황민성이 다가왔다.
“아가씨.”
황민성의 부름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나를 부름인가?”
“아까 저에게 한 이야기, 어떤 의미입니까?”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안아주고, 사랑한다 하거라.”
“네?”
“네 어미가 원하는 것이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압니 까?”
황민성의 물음에 김소희가 초점 이 잘 잡히지 않는 눈으로 그를 보다가 말했다.
“세상에 어미는 많으나 그 마음 은 하나일 뿐이다. 자식이 행복 하기를 바라고, 자식이 안아주고 사랑한다는 말에 미소를 짓는 다.”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를 보았다. 그 런 황민성을 보며 김소희가 걸음 을 옮겼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자네와 내 연이 이어지니 훗날 알게 되겠지. 허나...... 지금 이 순간은 아닌 듯하군.”
스윽!
황민성이 이게 무슨 말인가 싶 어 볼 때, 김소희는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나갔다.
“저기요!”
그런 김소희의 뒤를 급히 따근} 나선 황민성의 얼굴에 당혹스러 움이 떠올랐다.
방금 나간 김소희가 어느새 사 라지고 안 보이는 것이다. 그에 황민성이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강진이 말했다.
“날씨 추워요.”
황민성이 주위를 보다가 강진을 보았다.
“야…… 사라졌어.”
당연히 사라졌다 생각할 것이
다. 가게를 나서는 순간 김소희 는 귀신으로 변해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김소희는 어느새 멀쩡한 얼굴로 검을 쥔 채 물끄러미 황 민성을 보고 있었다.
그런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황 민성에게 말했다.
“에이…… 그냥 빨리 가셨겠 죠.”
“방금까지 취해서 비틀거리던 사람이 이렇게 빨리 간다고?”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 손을 잡아 가게 안으로 들어 오게 했다.
“형 저 잠시만요.”
황민성을 가게 안으로 들인 강 진이 김소희를 보았다.
“아가씨.”
스윽!
김소희가 자신을 보는 것에 강 진이 물었다.
“형하고 연이 닿아 있다는 건
무슨 말씀이신가요?”
“흐음……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하였구나.”
작게 입맛을 다신 김소희가 고 개를 저었다.
“저 아이의 전생 중 하나가 나 와 관련이 있음이다.”
“전생요?”
“악연이었으나…… 그것이야 시 대의 흐름이었으니.”
스윽!
김소희가 문득 자신의 검을 쓰 다듬었다.
우우우웅! 우웅!
순간 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기 시작했다. 그런 검을 손으로 쓰다듬은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 다.
“앞으로는 술을 좀 적게 주거 라.”
“화만 안 내시면야……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 소희가 가게를 보다가 말했다.
“들어가 보게나.”
스륵!
몸을 돌려 걸어가는 김소희를 강진이 보았다.
‘전생의 인연? 조선시대 때 알 던 사람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황민성은 문을 보며 멍하니 혼 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러다가 강진이 들어오자 말했다.
“그 사람 대체 뭐야?”
“좀 특이하신 분이에요.”
“특이해도…… 너무 특이한데?”
말을 하던 황민성이 문득 강진 을 보았다.
“혹시......"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침을 삼 키며 그를 보았다.
“혹시?”
강진의 시선에 황민성이 문 쪽 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무당 아닐까?”
“무당요?”
“그래. 복장도 그렇고…… 아까 하던 말 들었지?”
“그…… 들었죠.”
“어떤 미친 사람이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을 그렇게 하냐?”
“그건......"
말을 하며 강진이 힐끗 문을 보 았다.
‘소희 아가씨 칼 들고 다녀요.’
속으로 중얼거릴 때, 황민성이 다시 문을 보며 말했다.
“너희 가게 단골인데 아는 것 없어?”
“그냥 손님이라…… 그냥 한복 좋아하시는 분인가 보죠.”
“아니야…… 아까 말하는 것이 나 표정이…… 범상치가 않았 어.”
말을 하던 황민성이 강진을 보 았다.
“다음에 그분 오면 전화 한 통
해 줘.”
“또 이상한 말 들으실 텐데?”
“그…… 이상한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봐야겠어.”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 다.
“형 좀 취하고 싶은데 오늘 여
기서 자고 가도 되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