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고깃집 가게 이름과 장소를 적 은 강진은 명함에 적힌 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이강혜 씨에게 명함을 받았습 니다.”
[아! 연락 받았습니다. 일을 할 사람이 고등학생이라고 하던데 요.]
“18살 최종훈입니다. 그리고 혹 시 이수역 근처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수역요? 저희가 듣기로는 논 현 근처로……]
“학생이 이수역 근처에 삽니 다.”
강진의 말에 최종훈이 급히 말 했다.
“형, 저 여기도……
괜히 일자리를 못 잡을까 걱정 되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핸드 폰의 하단부를 손으로 감싸 막은 채 말했다.
“출퇴근 거리가 멀면 일하기 얼 마나 어려운데. 그리고 일단 부 탁만 해 보는 거야. 있으면 좋고 없으면 이리로 와야지.”
그러고는 강진이 핸드폰 하단부 를 감쌌던 손을 떼었다.
[이수역 쪽에는 저희가 관리하 는 건물이 없어서……. 그쪽 관 리하는 업체에 알아봐 드릴 수는 있습니다.]
상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 었다.
“잠시만요.”
강진이 최종훈을 보았다.
“여기서 해야 할 것 같은데.”
“할 수 있어요. 이수에서 여기
까지 얼마 멀지도 않아요.”
최종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수역에서 논현까지 역 세 개 정도이니 멀지는 않았다.
‘폐지 주우러 걸어도 오는 데... 하긴, 근처에서 일하면
오고 가면서 얼굴도 보는 거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상대와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류 작성하고 근무시 간 정하려면 학생을 봐야 하는 데.]
“장소 말씀해 주시면 학생 보내 겠습니다. 필요한 서류가 있나 요?”
[부모님 동의서와 등본 한 통 있으면 됩니다. 동의서는 여기에
양식이 있으니 아이 보내시면 이 쪽에서 처리해서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진이 용역 업체와 통화를 끝 내고는 장소를 적은 메모지와 명 함을 최종훈에게 내밀었다.
“핸드폰 있어?”
“있어요.”
“줘 봐.”
최종훈이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이 없으면 어쩌나 싶었는
데 다행히 핸드폰이 있었다.
‘하긴, 요즘 핸드폰이 없으면 불 편하지. 게다가 집에도 연락해야 할 테고.’
최종훈의 핸드폰으로 자신의 핸 드폰에 전화를 걸어 번호를 딴 강진이 말했다.
“형 번호니까, 일 있으면 전화 하고 일하고 집에 갈 때 들러서 밥 먹고 가.”
“그래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해. 그리
고......"”
잠시 최종훈을 보던 강진이 웃 으며 말했다.
“네가 열심히 동생하고 사는 것 보니 멋져서 그래.”
“멋져요?”
“그럼. 멋지지. 네 나이에 이렇 게 열심히 사는 것이 쉽겠냐?”
잠시 말을 멈췄던 강진이 말을 이었다.
“형은 보육원 출신이야.”
“보육원요?”
놀란 눈을 하는 최종훈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동생하고 이렇게 열심 히 사는 너를 보면 괜히 부럽고 멋지다.”
“제 가요?”
“너는 동생이 있고 어머니가 있 잖아.”
웃으며 최종수의 머리를 쓰다듬 은 강진이 일어났다.
“때로는 무거울 수 있고, 때로 는 벗고도 싶을 거야. 하지 만……
잠시 말을 멈춘 강진이 최종훈 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뒷말은 안 해도 되겠네.’
최종훈은 이미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대로 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열심히 살고 있었다.
“형이 무슨 말 하는 줄 알지?”
“네.”
최종훈의 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위치 보니까 저쪽에 있는 건물 이더라.”
강진이 가게를 나와 손으로 건 물을 가리키자 최종훈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감사합니다.”
“아니야. 혹시 상담하다가 문제 있으면 형한테 연락해. 그리고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 네가 받 는 돈만큼만 일해. 다른 사람 사
정 있다고 그 일까지 더 하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
“네.”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이 수레를 끌고 가려 하자, 강진이 수레를 잡았다.
“이건 형이 맡아 놓을게.”
면접 보러 가는데 수레를 끌고 가는 것도 그런 최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이 건물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런 둘 을 보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두 사람의 등과 걸음이 무척 가벼워 보였다.
그런 두 사람을 보던 강진이 가 게 안으로 들어왔다.
“잘 됐네.”
주방 싱크대에 기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애들이 일해야 하는 상황이
라…… 잘 됐다고 하기도 그렇 다.”
“그건 그러네.”
배용수도 입맛이 쓴 듯 가게 입 구를 보다가 몸을 돌렸다.
“손님들 올 시간 됐다.”
배용수가 뒷문으로 나가자 강진 이 입맛을 다시고는 온풍기를 틀 고는 가게 입구에 화이트보드를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늘 그렇듯이 일 등으로 태광무역 사람들이 들어
오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태광무역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시간…….
가게 앞에서 몇 사람이 이야기 를 나누고 있었다.
“이거 오래 기다려야 하는 건 가?”
이유비의 중얼거림에 오자명이 입맛을 다시며 시간을 보았다.
“여기 쓰여 있잖아. 만석이니 이십 분 기다리셔야 한다고. 으! 춥다.”
오자명이 몸을 부르르 떨다가 발을 동동 구르자 한명현이 급히 말했다.
“차에서 기다리시지요. 제가 줄 을 서 있다가 사람 빠지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나만 춥고 자네는 안 춥나?”
“그래도 이십 분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됐어. 됐어.”
“그럼 차근}리 다른 곳에 가시는 것이?”
“이왕 왔는데 먹고 가자고.”
두 사람의 말에 도영민이 가게 를 힐끗 보았다.
“제가 들어가서 양해를 구해 보 겠습니다.”
도영민의 말에 이유비가 고개를 저었다.
“됐어. 기다리라고 이렇게 써
놨는데 들어가서 뭘 물어.”
“알겠습니다.”
그런 국회의원과 보좌관 뒤에 있는 할머니 귀신이 눈을 찡그린 채 가게를 보다가 안으로 스윽 스며들었다.
안으로 들어온 할머니가 식당을 스윽 보며 소리쳤다.
“이것들이 빨리 먹었으면 나가 지 않고 뭐하는 거야!”
하지만 귀신의 외침을 들을 만 한 사람은 강진과 배용수가 유일
했다.
서빙을 하던 강진이 할머니 귀 신을 보고는 눈을 찡그리며 주방 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할머니 귀신이 주방 으로 가며 소리쳤다.
“밖에 우리 손주 꼬추 떨어지게 생겼는데 왜 기다리게 하는 거 야. 자리도 비어 있고만!”
할머니 한쪽에 비어 있는 자리 두 개를 가리켰다. 할머니 귀신 의 말대로 테이블이 두 개는 비
어 있었다.
하지만 강진은 만석까지 손님을 받지 않았다. 만석까지 받으면 손님들이 너무 기다리게 해야 하 니, 차라리 손님을 덜 받는 것이 다.
손님을 많이 받는 것보다 받은 손님들에게 집중을 하는 것이 강 진의 영업 방식이었다.
할머니 귀신의 외침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꼬추 떨어진다고? 할머니가 할
만한 소리네.’
속으로 웃으며 할머니 귀신을 주방으로 들어오게 한 강진이 작 게 말했다.
“밖에 가족 와 있어요?”
“아니. 손주하고 그 애가 모시 는 국회의원님. 어떻게 밖에 국 회의원님을 기다리게 하나.”
국회의원 기다리게 하는 것이 말이 되냐는 듯 보는 할머니 귀 신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그런데 손주님하고 같이 다니
시는 거예요?”
“그럼. 내가 같이 다니면서 챙 겨줘야지. 나쁜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할머니 귀신이 당연한 것 아니 냐는 듯 하는 말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제일 나쁜 사람이 얼마 전까진 할머니 아니셨나?’
원귀가 되어 손주를 괴롭히던 것이 얼마 전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빨리 손님 받아. 나랏
일 하느라 바쁘신 분들을 어떻게 저렇게 밖에 둬!”
할머니 귀신이 조급해하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국회의원이라고 음식 먹을 때 돈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손님일 뿐입니다.”
“나랏일 하는 사람한테 자네는 어떻게……
“제가 딱히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어서요.”
그러고는 강진이 물 컵에 따뜻
한 야관문 차를 따르고는 쟁반에 담아 가게 밖으로 나갔다.
국회의원이라고 다를 바가 없지 만, 그래도 이 추운 날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니 차라도 가져다 주려는 것이다.
‘그냥 다른 데 가셔도 되는데.’
이십 분이라고 적어 놓은 이유 도 기다리지 말고 다른 곳 가라 는 의미이니 말이다.
띠링!
문을 열고나선 강진은 가게 앞
에 서 있는 오자명 일행을 볼 수 있었다.
“오셨어요.”
강진이 나오는 것에 오자명이 화색을 띄우며 말했다.
“이제 들어가도 되는 건가?”
“지금 손님들이 계셔서 제가 메 뉴를 빼기가 어렵습니다. 밖에서 기다리시는 것 같아서 따뜻한 차 라도 드리려고 나왔습니다.”
“그런가?”
아쉽다는 듯 가게 안을 보는 오 자명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오자명은 나이가 많다. 그런 노 인이 이 추운 겨울에 밖에서 떨 고 있으니…….
“추우시면 안에서 기다리시겠어 요?”
“그래도 되나?”
“제가 혼자 메뉴를 다 빼기도 어렵고 손님 접대도 어려워서 탁 자를 모두 받지 않습니다. 그래
서 빈자리는 있습니다. 대신 주 문은 손님들 나가시고 받아야 하 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좀 들어가지. 그렇지 않 아도 추웠어.”
오자명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문을 열어주자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가게 안에 들어오자 따뜻한 훈 기가 느껴졌다. 그에 오자명이 미소를 지었다.
“장사가 잘 되네.”
“주변 직장인 분들이 자주 오셔 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5분 정도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 다.”
“괜찮아. 이야기나 하면서 기다 리겠네.”
“알겠습니다.”
강진이 쟁반을 들고는 태광무역 사람들의 반찬들을 살폈다.
모자란 것이 있으면 알아서 채 워주고, 더 달라는 것이 있으면 챙겨 주었다.
원래 반찬들은 처음에만 서빙하 고 모자란 것은 셀프로 했는데 지금은 강진이 알아서 챙겨주었 다.
음식이야 주방에서 배용수가 만 들고 있으니 서빙을 할 여유가 있었다.
밥을 다 먹은 태광무역 사람들 이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 다.
같이 와서 먹었으니 식사를 마 무리하는 것도 거의 같이 하는 것이다.
“오늘도 잘 먹었어.”
“오늘도 와 주셔서 감사합니 다.”
“맛있으니 오지. 내일은 뭐 할 거야?”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점심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내일 점심을 찾으세요?”
“요즘 점심 먹는 낙으로 살아.”
웃으며 말올 한 임호진이 계산 을 하고 가게를 나가자 장성태
과장도 계산을 하고는 슬며시 말 했다.
“저기 있는 사람들 국회의원 아 닙니까?”
말을 편하게 하는 임호진과 달 리 장성태는 여전히 존댓말을 하 고 있었다.
장성태 과장의 말에 강진이 이 유비 쪽을 보고는 웃었다.
“그냥 손님입니다.”
“대단하네요. 국회의원이 와서 기다렸다가 먹고……
“밥 먹으러 오는 데에 그런 것 이 어디에 있어요.”
엄지를 치켜세우는 장성태 과장 을 보며 가볍게 웃은 강진이 계 산을 해 주고는 카드를 내밀었 다.
“앞으로도 장사 잘 됩시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장성태가 강진을 보며 말했다.
“혹시 주말에 예약이 됩니까?”
“그럼요.”
“그럼…… 일요일 오후 여섯 시 에 한 열다섯 정도 예약 좀 할게 요.”
“열다섯 명요?”
“친구들하고 부부동반 모임이 있거든요.”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홀이 따로 없어서 조금 불편할 수도 있으실 텐데……
“괜찮아요. 그냥 테이블만 좀 붙여 주세요.”
“알겠습니다.”
“드실 음식들 미리 말씀해 주시 면 그에 맞게 준비해 놓겠습니 다.”
“그럼 일요일에 봐요.”
장성태가 직원들과 가게를 나가 자 강진이 오자명 테이블에 다가 갔다.
“식사 어떻게 해 드릴까요?”
“이 친구가 여기서 맛있는 걸 먹었다고 해서 그것 좀 먹으려고 왔습니다.”
이유비가 도영민을 가리키자 강 진이 그를 보았다.
“어떤 걸 해 드릴까요?”
“전에 해 주신 삼겹살 콩나물찜 을 말씀드렸더니 먹어보고 싶다 고 하셔서요.”
도영민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차 마시고 계세요.”
주방에 들어간 강진이 배용수를 보자, 그가 이미 삼겹살 콩나물
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 이 홀로 나와 태광무역 직원들이 먹고 간 자리를 치우기 시작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