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황민성과 함께 공원 정자에 도 착한 강진은 플라스틱 통을 두 개 꺼내서는 정자 밑에 두었다.
“뭐 하는 거야?”
“떠돌이 유기견들 먹으라고 음 식 좀 놓는 겁니다.”
“유기견?”
“배고픈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죠.”
“그건……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던 황민성이 문득 계란과 소시지 볶은 게 담겨 있 는 통을 보았다.
“그런데 그건 뭐야?”
“이것도 애들 먹으라고요.”
“사람 먹는 음식 아냐?”
“강아지 먹을 수 있게 한 것이 라 괜찮아요.”
물론 흰둥이만 먹으면 괜찮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차 마시죠.”
말을 하며 강진이 플라스틱 통 을 정자 아래로 좀 깊숙이 넣었 다.
황민성이 흰둥이가 먹는 것을 보지 못하도록 말이다.
강진의 손길에 플라스틱 통이 움직이자, 흰둥이가 얼굴을 박은 채로 같이 움직였다.
그런 흰둥이를 보며 강진이 머 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보온병 뚜 껑에 야관문 차를 따라 주었다.
“여기 좋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차를 받 아 마시며 다리를 꼬았다.
그러고는 멍하니 정자 주위를 보다가 말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멍하니 있어 본다.”
“가끔은 멍하니 있는 것도 좋 죠.”
“그러게 말이다.”
웃으며 야관문 차를 마시던 황
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그분 왔어?”
“ 그분?”
“그 아가씨라고 하는 분 말이 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아.” 하 고는 말했다.
“소희 아가씨요?”
“소희? 이름이 소희야?”
“김소희 아가씨예요. 아! 형도 다음에 그분 보면 꼭 아가씨라고
하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 았다.
“그 여자 나이가 대체 몇이야?”
“그건 왜요?”
“내가 서른아홉인데…… 그 여 자가 아무리 동안이라고 해도 나 보다 나이 안 많을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을 왜 아가씨라고 불 러야 하냐는 것이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웃었다.
“아가씨기는 하잖아요.”
“아가씨?”
“결혼 안 하셨으니…… 아줌마 는 아니잖아요.”
“그건......"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가씨라고 부르라고?”
“존중을 해 주면 존중이 따라오 는 법이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존중을 받고 싶으면 먼저 존중을 보이면 된다.
물론 가끔은 존중을 보이면 호 구로 보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 만…… 그렇다고 같은 급으로 놀 이유는 없다.
존중을 보였는데 오는 것이 무 례라면 상대할 이유가 없다. 어 쩌면 사람을 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존중에 무례로 답하고, 호의를 호구로 보는 이들은 거르면 된
다.
“그래서 아가씨 왔었어?”
“아뇨. 저도 그날 이후 못 뵀습 니다.”
“만나서 이야기 좀 해 봤으면 좋겠는데.”
“그분이 오고 가는 것이 바람 같은 분이라…… 저도 언제 오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더 이상하고 특 이한 사람 같네.”
“특이한 분이시기는 하죠.”
“어디 사는 줄도 모르지?”
‘길거리요.’
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는 강 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 었다.
“그럼 이 공원에 강아지들 먹이 는 언제부터 준 거야?”
“전에 형이 공원 알려주고 나서 부터요.”
“좋은 일 하네. 형이 사료 사줄
까?”
“얘들 얼마 안 먹어요. 아! 형 도 시간 나실 때 한 번씩 하실래 요? 애들 밥 먹는 것 보면 힐링 되는 느낌이에요.”
유기견들이 경계심이 많아서인 지 아니면 귀신인 배용수와 같이 있어서인지 강진이 있을 때는 와 서 먹지 않는다.
하지만 멀찍이 가 있으면 하나 둘씩 나타나서 먹고 가는데, 그 것이 참 마음이 편해지는 모습이 었다.
“힐링이라…… 그럴까?”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실 때 배용수가 말했다.
“아줌마 온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이강혜가 예의 카트를 끌고 오는 것이 보 였다.
드르륵! 드르륵!
카트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함 께 이강혜가 다가오자 강진이 자 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오셨어요.”
강진의 인사에 이강혜가 웃으며 마주 고개를 숙였다.
“왔……
어요. 인사를 하려던 이강혜가 황민성을 보고는 얼굴이 살짝 굳 어졌다.
기분이 나빠 굳어진 것이 아니 라, 살짝 놀란 듯한 기색이었다.
‘아시나?’
그런 생각을 할 때 황민성도 이
강혜를 보고는 급히 자리에서 일 어나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인사드리게 될 줄 몰랐 습니다.”
황민성의 인사에 이강혜가 고개 를 끄덕였다.
“저도 여기서 황 사장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두 분이서 아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이강혜를 보다가 말했다.
“이강혜 사장님을 알아?”
“애들 밥 주다가 알게 됐어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여기서 이렇게 보니 당 황스러우면서도 반갑네요.”
그러고는 이강혜가 정자에 엉덩 이를 붙이고 앉자, 강진이 보온 병을 꺼냈다.
“오늘은 제가 차를 가져왔습니 다.”
“그럼 맛있게 마실게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보온병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다만 컵이 따로 없네요.”
“컵은 제가 있어요.”
그러고는 이강혜가 카트에서 컵 을 꺼내자 강진이 거기에 차를 따라주고는 말했다.
“저도 한 잔.”
“그래요.”
컵을 하나 더 꺼내주자 강진이
거기에도 차를 따라 손에 쥐었 다.
컵을 보며 이강혜가 정자 밑에 있는 사료를 보고는 말했다.
“강진 씨하고는 여기서 애들 사 료 주다가 알게 됐어요. 그런데 황 사장님하고 강진 씨가 아는 사이인 줄 몰랐네요.”
이강혜의 말에 황민성이 뭐라 말을 하려 할 때,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친한 형이에요.”
친한 형이라는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 였다.
“친하게 지내는 동생입니다.”
황민성의 웃음에 이강혜가 그를 보다가 웃었다.
“황 사장님이 웃는 모습,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이강혜의 말에 황민성이 언제 웃었냐는 둣 얼굴을 무표정으로 바꾸었다.
그런 황민성을 보던 이강혜가
카트에서 사료 통을 두 개 꺼내 서는 물과 함께 정자 밑에 두었 다.
“애견 사료는 제가 놓았는데 요.”
“애들은 늘 배가 고프죠.”
이강혜의 말에 황민성이 그것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께서 이런 일을 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산책 삼아서 아침마다 돌고 있 어요.”
“좋은 일 하시는군요.”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 요.”
웃으며 이강혜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 맛이 좋네요.”
“아침에 새로 끓인 겁니다.”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신 이강혜 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마시고 갑니다.”
“벌써 가시게요?”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해서 요.”
말을 하며 이강혜가 컵을 카트 에 넣자 강진도 차를 급히 마시 고는 내밀었다.
그에 이강혜가 웃으며 잔을 받 아 카트에 넣었다. 그리고 막 카 트를 끌고 가려 할 때,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이따 뵙기 전에 한 가지만 물 어도 되겠습니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이따? 오늘 약속이 있으셨나?’
그런 생각을 할 때, 이강혜가 그를 보았다.
“투자자로서 인가요?”
“투자자로서 물음은 이따 뵙고 해도 됩니다. 지금은…… 친한 동생이 친하게 지내는 분에 대한 배려입니다.”
“배려라……
황민성의 말에 이강혜가 그를
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 뭐지 요?”
“이따 주주들과의 만남 주제는 아실 겁니다.”
“디자인 변경 건이겠죠?”
“지금 디자인 변경이 가능하다 보십니까? 아니, 가능하다고 해 도 비용이 더블로 들어가게 됩니 다.”
핸드폰 디자인 변경은 단순히 모양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부
기기들의 위치와도 관련이 있다.
즉 대부분 다 뜯어고쳐야 한다 는 말과 같았다.
“그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 까?”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배려가 되는 건가요?”
“최소한 제가 그 자리에서 공격 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이 자리에서 듣게 되면 그곳에 서는 나서서 공격하지는 않을 것 이란 의미였다.
애초에 황민성은 투자에 관해서 는 강하게 비판하고 공격하는 스 타일이 었다.
오죽하면 마음에 안 드는 투자 계획서는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리 겠는가?
그런 의미로 황민성이 침묵을 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이강혜 에게는 도움이 된다.
그에 황민성을 보던 이강혜가 말했다.
“답은 간단해요.”
“뭡니까?”
“물건 파는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물건이 소비자의 마음 에 들까 싶더군요.”
이강혜가 강진을 보며 살짝 웃 었다. 하지만 강진은 그녀가 왜 자신을 보고 웃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 저거 내가 해 준 말이구 나.’
음식에 관한 것을 이야기할 때
그런 말을 했었다.
이강혜의 말에 그녀를 물끄러미 보던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들은 수긍하지 않을 겁니다.”
황민성의 말에 이강혜가 그를 보았다.
“황 사장님은 수긍하신 겁니 까?”
이강혜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판매자의 마음에 안 드는 물건 은 당연히 소비자의 마음에도 들 지 않는다는 말씀…… 동감은 합 니다. 하지만 저는 수치로 투자 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 금 이 뉴스가 퍼지면 주가는 요 동을 칠 것이고 그건 제가 바라 는 우상향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서요?”
“오늘 네 시까지 저희 회사가 가진 L전자 주식을 매입해 주시 기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이 사 장님에게 드리는 최선의 배려입
니다.”
황민성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배려였다.
황민성의 회사가 가진 L전자 주 식은 대략 천 억 가량. 11조 회 사의 규모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 지만 이런 작은 주식들이 모여서 큰 주식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천 억에 불과한 주식이 기는 하지만 황민성이 주식을 시 장에 판다면 이는 상징적 의미가 더 컸다.
황민성이 팔면 주가가 떨어진다 는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이강혜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 종가 기준으로 해 주신다 면 그렇게 하지요.”
황민성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드리죠. 아니 이건 어때요. 주식을 가지고 있으세요.
대신…… 내년 하반기 저희 전략 폰이 출시되면 그때 오늘 종가에 10퍼센트 더 쳐서 매입해 드리 죠.”
이강혜의 딜에 황민성이 그녀를 보다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 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 었다.
“계약서 작성해 주실 수 있습니 까?”
“황민성 사장님과 저 두 사람이 입을 맞췄다면 그걸로 계약서가 되는 것 아닐까요?”
자신과 같은 사람이 허언을 하 겠냐는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 었다.
“사업은 계약서로 말을 하는 겁 니다.”
황민성의 말에 이강혜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 황민성 씨는 주주들 자리에 서 저를 지지해 주시기 바랍니 다.”
이강혜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수긍하지 못한 투자를 지 지해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공 격은 하지 않겠습니다.”
부족하고 아쉽기는 하지만 황민 성이 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이강혜로서는 만족스 러운 결과였다.
“계약서는 주주 모임 후에 드리 도록 하지요.”
끄덕!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강 혜가 그를 보다가 강진에게 고개
를 돌렸다.
“본의 아니게 속인 것이 됐네 요.”
“그냥 말을 안 하신 거지, 속인 것까지는 아닙니다.”
“그런가요?”
“그럼요. 그리고 직업 뭐라고 물은 적도 없고 말을 하신 적도 없잖아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편하게 볼 수 있는 거죠?”
“외상만 하지 않으시면 편하게 볼 수 있지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피식 웃 었다.
“음식 맛있었어요. 그럼 또 봐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