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98화 (196/1,050)

197화

이강혜가 몸을 돌려 공원을 벗 어나자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어디 사장님이세요?”

사업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는 했는데 어디 회사라는 이야기를 못 들은 것이다.

“몰랐나 보네.”

“강아지들 밥 주러 와서 호구 조사할 이유는 없잖아요.”

물어보지 않았다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말했다.

“L전자 사장님.”

‘L 전자?’

L전자라면 사성전자와 함께 한 국 이대 전자 회사다.

‘생각보다 더 대단하신 분이네.’

놀란 눈으로 이강혜가 가는 뒷 모습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L전자에도 투자하셨어요?”

“L전자가 투자하기에 좋은 회사

는 아닌데…… 의료기기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라 나도 투자를 했지. 그리고 안전 자산이기도 하고.”

“안전 자산요?”

“L 전자가 물건은 잘 만들지만 사성에 비하면 인지도도 떨어지 고 마케팅도 떨어지고…… 나 같 았으면 마케팅 팀 다 잘랐다.”

“그래요?”

“물건을 잘 만들었으면 마케팅 을 잘해서 팔 생각을 해야지, 광

고 하나 하면 알아서 팔릴 거라 생각을 하고…… 나 같았으면 다 자르고 전문 마케팅 팀에 넘겼 다.”

“그래도 잘 팔리잖아요?”

“물건은 잘 만드니까. 그리고 좋은 일도 많이 하는데 그게 소 문도 나고 해서 인식이 좋지. 어 쨌든 안전 자산으로 투자하기는 했는데 수익률은 떨어져.”

“L전자면 엄청 큰 회사인데 수 익률이 떨어져요?”

의아해하는 강진을 보며 황민성 이 정자에 앉으며 말했다.

“큰 회사는 주가 변동 폭이 얼 마 안 돼. 돈을 벌려면 중소기업 주식 사는 것이 낫지.”

“주가 변동 폭이 크면 손해 볼 확률도 큰 것 아니에요?”

“형은 손해 볼 투자를 해 본 적 이 없다.”

자신감 넘치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그럼 왜 L전자를 사셨어요?”

“망하지 않는 회사는 없지만, 최소한 L전자가 망하는 것보다는 내가 망하는 것이 빠를 테니까. 그래서 안전 자산이라고 하는 거 야.”

잠시 말을 멈춘 황민성이 말했 다.

“그리고 L전자 투자한 이유 는…… 수익률보다는 거기 주식 을 가지고 있으면 여러모로 쓸 곳이 많지.”

“쓸 곳?”

“영업 비밀이라고 할 수 있지.”

웃으며 말을 한 황민성이 문득 강진을 보았다.

“너 주식 하냐?”

“안 하는데요.”

“그럼 앞으로도 하지 마.”

“네?”

“주식해서 돈 따는 일반인은 정 말 드물고, 따더라도 나중에는 다 돈 잃는다.”

“그럴 돈도 없어요.”

“돈 없어도 하는 것이 주식이라 는 거다. 어쨌든 해서 좋을 것 없어.”

작게 중얼거린 황민성이 몸을 일으켰다.

“이제 가자. 형 출근해야겠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정자 밑 에 놓아둔 흰둥이 밥그릇을 챙겼 다.

강진이 밥그릇을 챙기자 흰둥이 가 그 손등을 혀로 핥았다. 그에 강진이 흰둥이의 머리를 쓰다듬

고는 그릇을 챙겼다.

강진이 빈그릇을 챙기는 걸 보 던 황민성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 렸다.

“언제 개가 왔다 갔어?”

개가 오는 것을 보지도 못했는 데 그릇이 깨끗이 비워져 있는 것이다.

“아까 이야기 나눌 때 먹고 갔

어요.”

“금방 먹고 가네.”

“배고픈 애들이니까요. 그럼 가 시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와 함께 공원을 나 섰다.

그러다가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 다.

“혹시…… 출장 요리 좀 부탁할 수 있을까?”

“출장 요리요?”

“어머니한테 네 음식 먹여드리 고 싶어서.”

말을 한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 다.

“그, 김소희가 자주 안아 드리 고 사랑한다 말을 하랬잖아.”

“그랬지요.”

강진의 답에 황민성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사실 엄마 보러 자주 안 갔 어.”

“바쁘시니까요.”

“그거야 핑계지. 일 있으면 미

국도 가고 프랑스도 가는데 어머 니 보러 강원도를 못 가겠냐? 다 른 나라도 아니고 같은 한국에 있는데.”

“그건…… 그렇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가서 엄 마 보면 속이 답답하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은 답을 하 지 않았다. 치매가 걸린 엄

마…… 어떠한 느낌인지 짐작만 할 뿐이지, 타인이 뭐라고 할 수 없는 슬픔이기에 말을 아꼈다.

“가장 힘든 건 엄마겠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보 면 속이 터질 것 같다. 그래서 자주 못 가겠더라고.”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강진을 보며 황민성이 말을 이었 다.

“그런데 그 김소희가 하는 말 들으니까, 나는 답답하지만 엄마

는 얼마나 외롭고 무서울까 싶더 라. 엄마는 나 아플 때 늘 머리 맡에 앉아서 머리 쓰다듬어 주고 그랬는데……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자식이 아프 면 그 옆을 늘 지킨다.

하지만 자식은…… 왜 아프냐고 화를 낸다. 일 좀 그만하라니까. 몸 관리 좀 하지, 병원 가라는 말로…….

옆을 지키기보다는 병원을 가라 고 하고 돈을 준다. 그것이 어머

니와 자식의 차이였다.

말없이 걸음을 옮기던 황민성이 말했다.

“그래도 음식은 잘 드시니까, 맛있는 음식 좀 해 드리고 싶 다.”

“해 드려야죠.”

“그럼 언제 시간 되겠어?”

황민성의 물음에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토요일 점심 장사 끝나고 저녁

식사 해 드리는 걸로 하겠습니 다.”

“고맙다.”

“아니에요. 형 어머니시면 저에 게도 어머니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 다가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형이 사람한테 쉽게 마음 주는 사람 아닌데 이상하게 너한테는 마음이 쉽게 열린다.”

“남자 마음 그리 좋아하지 않는 데.”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 었다.

“연애 안 하냐?”

“지금은 일만 하려고요.”

“네 나이가 연애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일만 하면 어떻게 하 냐? 형이 좋은 여자 좀 알아봐 줄까?”

“좋은 여자요?”

“형 주위에 예쁜 여자 많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좋은 여자가 예쁜 여자예요?”

“소개팅 할래? 라는 질문에 남 자는 십 대 때도 예쁘냐? 이십 대 때도 예쁘냐? 삼십, 사십 대 에도 예쁘냐 딱 하나야. 예쁜 여 자 싫으면 다른 쪽으로 알아봐 주고.”

“저도 남잔데 예쁜 여자 싫겠어 요? 다만……

“왜?”

“여자를 제대로 사귀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뭐야, 모쏠이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쓰게 웃 었다. 강진도 여자친구를 사귄 적은 있었다.

중학교 때 풋사랑이기는 했지 만…… 어쨌든 그것도 연애라고 하면 연애였다.

그러고 그 후에는 연애라는 것 을 할 여유가 되지 못했고 말이 다.

하지만 황민성에게 그런 이야기 까지 할 생각이 없는 강진이 말

을 돌렸다.

“저도 슬슬 일하는 시간을 정하 려고 생각 중이었어요.”

“일하는 시간?”

“사람이 쉬기도 하면서 일해야 지. 일주일, 한 달 내내 일할 수 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래서 언제 쉴까 생각했는 데……

잠시 생각을 하던 강진이 말했

다.

“주말에 점심 장사까지는 하고 저녁 장사는 쉬려고요.”

일단은 이렇게 할 생각이었다. 나중에 일정 봐서 일요일이나 하 루 통으로 쉴 수도 있지만…….

“저녁 장사만 쉬려고? 그냥 하 루를 쉬지 그래?”

“일단 해 보고요.”

그리고 일요일에는 사건 현장에 도 가 봐야 하고. 겸사겸사 쉬는 날을 정하기는 해야 할 때였다.

아직 본격적으로 장사한 지 며 칠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가게 가면 쉬는 날부터 적어 놔야겠다.’

그래야 손님들이 헛걸음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럼 토요일에 부탁해.”

“그런데 메뉴를 어떻게 하실 건 가요?”

“그냥 집에서 먹는 저녁 밥상 느낌으로 해 줘. 될까?”

“그럼요.”

“고마워.”

웃으며 황민성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길가에서 차 한 대가 천 천히 다가왔다.

차가 옆에 서자 황민성이 차에 타며 말했다.

“전화할게.”

“들어가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손올 들 어 인사를 대신하곤 차에 탔다.

문이 닫히자, 차가 출발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가게 안 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카운터 에 올려놓은 화이트보드에 글을 적었다.

〈토요일 일요일 저녁 장사는 쉽

니다.〉

글을 적은 강진이 가게 앞에 화 이트보드을 놓고는 점심 장사 준 비를 하기 시작했다.

“겉절이는 손님 오면 바로 무치 는 것으로 하고, 배추된장국은 솥에 끓여서 덜어 내 주는 것으 로 하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에 들어가 점심 장사를 할 재료 준비를 하기 시 작했다.

토요일 점심 장사를 마무리한

강진은 식재료를 아이스박스에 챙겨 넣고 있었다.

제법 많은 식재료를 챙겨 넣는 강진의 모습에 배용수가 말했다.

“요양원 식당에 식재들 있다고 했는데 뭘 그렇게 챙겨?”

“혹시 모르잖아.”

말을 하며 아이스박스 두 개에 필요하다 생각되는 식재들을 잘 챙겨 넣은 강진이 뚜껑을 덮고는 시계를 보았다.

“이제 오실 때가 됐는데.”

띠링! 띠링!

풍경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황 민성이 들어오고 있었다. 황민성 은 조금 편안한 복장을 입고 있 었다.

“형......" 응?”

황민성을 부르던 강진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황민성 뒤를 따 라 젊은 여자가 들어오는데…….

‘와……

입이 쩌억 벌어질 정도의 미인 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

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 녀는 검은 단발머리에 얼굴 한쪽 을 살짝 가리고 있었는데 그 모 습이 무척 세련돼 보였다.

거기에 패딩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또 청순해 보였다.

세련됨과 청순함이 같이 있 는…… 엄청난 미인이었다.

‘와…… 진짜 예쁘다.’

커피숍 아르바이트부터 여관 저 녁 아르바이트, 거기에 공연 무

대 설치 아르바이트까지 여러 아 르바이트를 해 본 강진은 연예인 부터 예쁜 일반인까지 수많은 여 자를 보았다.

그리고 그중 눈앞의 사람이 가 장 예뻤다.

강진이 넋 빠진 얼굴로 그녀를 보자 배용수가 그 어깨를 툭 쳤 다.

“민성 형과 같이 온 사람이야.”

“ 아.”

황민성이 지금 온 이유는 어머

니를 보기 전 강진을 데리러 온 것이다. 그런 상황에 동행하는 여성이면, 황민성의 아내일 확률 이 컸다. 나이 차는 좀 나 보이 지만 말이다.

배용수의 말에 상황을 파악한 강진이 급히 표정 관리를 했다. 형수가 되는 여자를 이렇게 빤히 쳐다보는 것은 무례한 것이니 말 이다.

급히 표정을 관리한 강진이 웃 으며 말했다.

“형수님이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보았다.

“인사해요. 나하고 친한 동생, 이강진이에요.”

‘아내에게 존대를 하시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그녀에 게 고개를 숙였다.

“이강진입니다. 형님한테 형수 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들은 적은 없다. 예의상 한 말일 뿐이었다. 강진의 말에 여자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미소

를 지었다.

“김이슬이에요.”

“이강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 니다.”

강진의 말에 김이슬이 가볍게 웃어 보이자 황민성이 말했다.

“ 가자.”

“네.”

그러고는 강진이 아이스박스를 들자 황민성이 의아한 듯 말했 다.

“거기 식당에 어지간한 식재 다 있을 텐데.”

“몇 가지만 챙겼어요.”

“몇 가지가 아이스박스로 두 개 야?”

“챙기는 김에 좀 더 챙겼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고는 남은 아이스박스를 하 나 챙겨 들었다.

“끄응! 묵직하네.”

그러고는 황민성이 입구로 가며

말했다.

“여보, 문 좀 열어주세요.”

“네.”

황민성의 말에 김이슬이 문을 열어주었다.

문을 통해 밖으로 황민성이 나 가자, 길가에 정차하고 있는 벤 에서 기사가 급히 나와서는 아이 스박스를 들고는 트렁크에 실었 다.

뒤이어 강진이 아이스박스를 들 고 나오자 기사가 그것 역시 받

아서는 트렁크에 실었다.

“자, 출발하자.”

황민성이 차에 다가가자 문이 스르륵 알아서 열렸다. 김이슬이 먼저 차에 오르자 황민성과 강진 도 차에 올라탔다.

차에 탄 강진은 확실히 황민성 이 돈이 많기는 하구나 하는 생 각이 들었다.

안에 타면서도 굳이 허리를 숙 이지 않을 정도로 차고가 높았던 것이다.

‘와. 차 정말 좋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자 차가 부드럽게 출발을 하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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