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조순례가 잡채를 할 것 같자 강 진은 원장님에게 당면과 재료들 을 부탁했다.
그러고는 장 여사가 조순례를 조심히 식탁으로 모셔왔다.
“어머니 음식 뭐 좋아하세요?”
강진이 할아버지 귀신에게 살짝 묻자, 할아버지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조 여사는 음식 가리는 것이 없는데…… 차돌박이 넣고 끓인 된장국을 좋아해.”
“차돌박이 된장국요?”
“된장 두 숟가락에 고추장 한 숟가락 그리고 청양고추 넣고 호 박, 팽이버섯 넣고 끓인 걸 좋아 해.”
“레시피를 잘 아시네요?”
“운이 좋아 조 여사하고 나하고 같이 정신을 차린 날에 조 여사 가 나한테 해 주고 싶다고 음식
이야기를 했었거든……
말을 하던 할아버지 귀신이 애 잔한 눈으로 조순례를 보았다.
“근데…… 나는 그 음식을 못 먹겠구먼.”
아쉬움이 깃든 눈으로 조순례를 보는 할아버지 귀신을 보며 강진 이 음식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차돌박이 된장국이라……. 칼칼 하게 끓이면 된다는 말이지.’
레시피야 이미 할아버지 귀신에 게 들었고,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 내 것부터 빨리 하고 어 머니 음식 하는 것 봐야겠다.’
생각과 함께 강진이 원장을 보 았다.
“차돌박이 하고 고추장, 된장 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호박하 고 팽이버섯……
강진이 자신이 필요한 야채들과 잡채에 들어갈 기본적인 재료들 도 같이 부탁했다.
“아! 그리고 쌀뜨물도 있으면 좀 부탁드립니다.”
강진의 말에 원장이 직원을 보 자 그가 식당 사람들에게 말을 했다.
그러자 식당 사람이 카운터를 통해 식재들을 보내주었다.
식재들이 준비가 되자 강진이 아이스박스에서 식칼을 꺼냈다.
스윽!
검수림 식칼을 꺼낸 강진이 야 채들을 빠르게 손질하고는 조순 례를 보았다.
재료가 식탁에 놓이자 조순례는
기분 좋게 웃으며 식재들을 만지 작거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커다란 볼을 집어서는 물을 부으려 하자 장 여사가 물 통을 대신 받아 생수를 부었다.
“얼마나 부을까요?”
“많이 많이.”
장 여사가 물을 붓자 조순례가 당면을 집어 물에 담갔다.
그 모습을 강진이 지켜보았다. 재료 준비는 다 됐으니 다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강진은 조순례의 요리 진도에 따라 할 생각이었다. 음 식을 같이 먹을 수 있도록 말이 다.
조순례가 식칼을 잡는 것에 장 여사가 흠칫한 눈으로 그녀를 보 다가 황민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 다.
그녀를 말려야 하는지 묻는 눈 빛으로 황민성을 보았다.
그에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 고는 조순례에게 가려 할 때, 할
아버지 귀신이 급히 말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무서워하니 너무 가까이 가지 마.”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두세요.”
“ 괜찮을까?”
“이미 하고 계시잖아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조순례를 보았다.
탓! 탓! 탓!
조순례는 어느새 당근을 썰어내 고 있었다.
타탓!
단단한 당근을 써는 것이 조금 버거운 듯 보였지만 조순례는 하 나씩 힘 줘서 잘 썰어내고 있었 다.
“잘 하시네요.”
“조마조마하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도 작게 고 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입맛 을 다셨다. 이러다가 조순례가 다치기라도 하면 황민성에게 너 무 미안한 것이다.
“걱정하지 마.”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배용수는 팔짱을 낀 채 조 순례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 얼굴 봐라.”
‘얼굴?’
강진이 의아한 듯 배용수를 보 자, 배용수가 웃으며 조순례의 얼굴을 가리켰다.
“웃고 있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조순례의 얼굴을 보았다. 조순례는 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당근을 썰 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황민성에게 작게 말했다.
“어머니 얼굴 보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어머니를
보고는 미소 지었다.
“웃고 계시네.”
“편해 보이시고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핸드폰을 꺼내려 할 때, 김이슬이 작게 속 삭였다.
“여보.”
김이슬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를 보았다. 김이슬이 핸드폰으로 조 순례를 촬영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어머니가 음식 하실 때부터요. 그리고 촬영음 나면 어머니가 놀 랄 수 있어요.”
“아......"
김이슬의 말에 황민성이 고마운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자신은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김이슬은 어느새 어머니를 찍고 있었다.
그것도 찰칵 하는 소리에 조순 례가 놀랄까 싶어 동영상으로 말 이다.
어머니를 배려하는 마음이 고마 웠다.
그런 황민성의 시선에 김이슬이 슬며시 고개를 돌려 다시 촬영을 하자, 황민성이 이번에는 원장을 보았다.
그 시선에 원장이 고개를 끄덕 이고는 직원들에게 조용히 하라 는 시늉을 하고는 한 명에게 뭔 가 말했다.
“직원들에게 식사 시간 조금 늦 추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환자분들 배식도 최대 한 조용히 옮기고.”
고개를 끄덕인 직원이 구내식당 을 나가자, 황민성이 말했다.
“환자분들 배식이 이쪽으로 나 갑니까?”
“아닙니다. 주방 쪽에 엘리베이 터가 있어서 그곳을 통해 각층으 로 올라갑니다.”
구내식당이지만 환자들은 이곳 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 모두
각자의 방에서 요양사와 간호사 들의 도움을 받으며 따로 식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음식들은 카트를 통해 주방에서 바로 각층으로 옮겨진 다.
카트에 음식이 실린 채로 사람 들이 타는 엘리베이터로 이동을 하면 냄새가 나게 되니 그것을 막는 것이다.
이곳은 일반 요양원이 아니라 VIP들을 위한 특급 요양원이니 말이다.
어쨌든 주위를 조용히 시키자 주방에서 들리는 음식 만드는 소 리와 조순례의 칼 소리만이 조용 하게 구내식당에 퍼졌다.
탓! 탓! 탓!
당근을 썰고 채를 썬 조순례가 양파를 잡고는 떨리는 손으로 껍 질을 벗겼다.
그리고 껍질을 벗긴 양파를 썰 었다. 재료를 하나씩 준비한 조 순례가 고기를 보고는 눈을 찡그 리며 몸을 떨었다.
“이거 잡채 아냐. 이거 고기 커.”
조순례의 말에 강진이 고기를 보았다. 고기는 돼지 등심 부위 로 보였다.
다만 잡채용은 아니고 통으로 돼 있었다. 조순례는 이 고기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칼을 들어서는 등 심을 잡았다.
“잡채 고기 만들어 드릴게요.”
그러고는 강진이 등심을 잡고는
검수림 식칼로 빠르게 썰기 시작 했다.
조순례가 뭔가 발작을 하기 전 에 최대한 빠르게 고기를 썰어 주려는 것이다.
스륵! 스륵!
강진의 식칼을 통해 잡채용으로 쓸 고기들이 빠르게 썰어지기 시 작했다.
잡채용 고기를 빠르게 썰어 주 자 조순례가 손으로 고기를 쥐었 다.
“소금.”
조순례의 말에 강진이 소금을 집어 주었다. 그러자 조순례가 고개를 저었다.
“소금! 소금! 소금!”
연신 소금을 달라고 소리를 지 르는 조순례의 모습에 강진이 당 혹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녀에게 준 것이 소금인데
배용수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급히 말했다.
“야! 우리 가게 천일염 줘.”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소금을 보다가 아이스박스를 열어서는 작은 소금 항아리를 꺼냈다.
“여기 소금요.”
소금 항아리 뚜껑을 열어주자 조순례가 소금을 보고는 손으로 집었다.
항아리에는 굵은 천일염이 들어 있었다. 천일염을 손으로 집은 조순례까 손가락으로 굴리다가 소금을 놓았다.
톡톡톡!
소금이 손가락에서 떨어져 나가 는 것에 배용수가 말했다.
“정신없는 양반이 소금 질을 살 피네.”
강진이 배용수를 보자 그가 말 했다.
“좋은 소금은 손으로 쥐고 놓았 을 때 손에 붙지 않고 후드득 떨 어지거든. 그런 소금에서 단맛도 나고 쓴맛도 없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순례를 보았다. 조순 례는 소금을 손바닥에 올리고는 손바닥을 비볐다.
드륵! 드륵! 드륵!
조순례의 손바닥에서 소금이 갈 리며 잡채 고기로 떨어졌다. 그 리고는 고기를 손으로 비빈 조순 례가 후추를 솔솔 뿌리고는 프라 이팬에 고기를 올렸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고기를 휙휙 저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살며 시 버너의 불을 올렸다.
달칵! 화아악!
‘확실히 정신이 없기는 하시네.’
치매 걸리신 분 치고는 그래도 요리를 잘 하시는 것 같았지만 디테일은 좀 떨어졌다.
버너에 불을 안 켜고 고기를 볶 으려 했으니 말이다.
촤아악!
불이 올라오며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자 조순례가 익숙하 게 고기를 구웠고, 강진과 배용 수는 긴장된 눈으로 그것을 보았
다.
불을 다루기 시작하니 다칠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조순례는 불에 다치지도 않고 고 기를 잘 볶아냈다.
그것을 보며 강진이 힐끗 당면 을 보았다.
‘원래라면 한 시간은 담가둬야 할 텐데.’
하지만 지금 재료 준비하는 시 간을 보면 당면이 불 때까지 시 간이 남을 것 같았다.
그에 강진이 조순례를 보았다. 조순례는 고기를 볶고 다른 재료 들도 볶아 접시에 담고 있었다.
손이 떨려서 재료들이 예쁘게는 아니고 좀 섞이기는 했지만…….
‘나중에 다 같이 넣고 볶을 거 니까.’
조순례가 프라이팬을 옆으로 놓 고는 냄비를 버너에 올렸다. 그 리고는 당면을 만지작거리는 것 에 배용수가 말했다.
“일단 불 끄고 냄비에 따뜻한
물 부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버너 불 을 끄고는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 을 받아서는 냄비에 붓고 불을 켰다.
촤아악!
뜨거운 물이 곧 끓어오르자 조 순례가 물에 담가 놓은 당면을 냄비에 넣었다.
그리고는 젓가락으로 당면을 빠 르게 휘저었다.
그 모습을 본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다.
“너도 시작해라.”
“지금?”
“뜨거운 물에 담가서 바로 볶으 실 모양이야. 저렇게 하면 잡채 금방이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냄비에 쌀뜨물을 붓 고 끓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준비해 놓은 재료들을 넣기 시작했다.
된장과 고추장 섞은 소스와 버 섯, 차돌박이, 청양고추와 고춧가 루 조금, 두부까지…….
이제 끓기만 하면 되기에 강진 은 자신이 가져온 밑반찬과 김치 들을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칼칼한 냄새가 나는 된장국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강진이 반찬들을 다 른 식탁으로 옮기려 하자 황민성 이 다가와 그릇들을 대신 집었 다.
“내가 할게.”
“같이 해요.”
강진이 음식들을 식탁으로 옮기 자 황민성이 그것을 돕다가 끓고 있는 된장국을 보았다.
“차돌박이 된장찌개네. 맛있겠 다.”
“좋아하세요?”
“어렸을 때 가끔씩 먹은 기억이 나네.”
“조금 더 끓여야 돼요.”
그러고는 강진이 조순례를 보았 다. 조순례는 프라이팬에 당면을 넣고 양념과 재료들을 넣고 휘젓 고 있었다.
촤아악! 촤아악!
빠르게 당면과 재료들을 살짝 볶아낸 조순례가 두 접시에 잡채 를 나눠 담았다.
그런데 두 접시의 잡채가 조금 특이했다.
한 곳에는 야채가 수북한데, 한 곳에는 고기와 당면이 많이 담겨
있었다.
조순례가 잡채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환히 미소를 지 으며 황민성을 바라보았다.
“민성이 왔구나.”
조순례의 말에 황민성의 얼굴에 놀람과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엄마?”
“그래, 아들.”
웃으며 조순례가 황민성에게 다 가와 손을 잡았다.
“아들,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조순례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를
부드럽게 안았다.
“사랑합니다.”
황민성의 말에 조순례가 웃었
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사랑합니다.”
황민성의 말에 조순례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안았다.
“그래. 엄마도 아들 사랑해.”
조순례의 말에 김이슬이 살며시 다가왔다.
“어머니.”
“우리 며느리도 같이 왔네. 바 쁜데 어떻게 왔어.”
“어머니와 식사하려고 왔죠, 여 보?”
김이슬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매 환자라고 늘 정 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끔 그리고 갑자기 이렇게 정 신을 회복할 때가 있었다. 그 시
간이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었는 데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엄마, 우리 밥 먹어 요.”
“그래. 밥 먹자.”
조순례도 지금 자신이 정신을 차린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는 듯 웃으며 황민성의 손을 잡고 식탁에 앉았다.
그 모습에 강진이 조순례가 만 든 잡채를 들고 자리로 가지고
왔다.
잡채를 본 조순례가 가볍게 웃 었다.
“잡채를 왜 이렇게 담았데?”
“맛있어 보이는데요.”
잡채를 보던 조순례가 웃었다.
“예전에 네가 야채 먹기 싫다고 고기하고 당면만 넣고 잡채 만들 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기억나 니?”
“제가요?”
“너 잡채 해 주면 고기하고 당 면만 쏙 빼 먹었잖아. 그래서 네 그릇에는 시금치하고 야채만 남 고.”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하는 조 순례를 보던 황민성이 잡채를 보 았다.
그리고 알았다. 엄마가 왜 자신 이 좋아하는 요리로 잡채를 선택 했고, 두 그릇의 잡채를 만들어 냈는지 말이다.
당면과 야채가 있는 잡채는 어 머니 당신의 몫이었고, 고기가
가득 담겨 있는 잡채는…… 황민 성 자신의 것이었다.
고기만 골라 먹던 자신을 위해 고기가 가득 담긴 잡채를 만들어 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