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204화 (202/1,050)

203 화

“그럼 잘 먹고 갑니다.”

“잘 먹었어요.”

12시 59분이 되자 일제히 자리 에서 일어난 귀신들이 가게를 나 가기 시작했다.

그런 귀신들을 강진이 배웅하며 말했다.

“내일 봐요.”

배웅을 받은 귀신들이 모두 나

가자 강진이 홀을 정리하기 시작 했다.

쟁반에 그릇들을 올리던 배용수 가 강진을 보았다.

“처녀 귀신 보고 올 거지?”

“도시락 만들었으니 주고 와야 지.”

“그럼 지금 갔다 와.”

“정리하고.”

“그러다가 처녀 귀신 가면 헛고 생이잖아. 이건 나하고 직원들이

할 테니까 다녀와.”

직원들이라는 말에 강진이 웃으 며 선주와 최훈을 보았다. 그들 은 강진과 배용수가 가져다준 그 릇들을 설거지통에 넣거나 음식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진이 자 리를 마저 정리하고는 그릇들을 주방으로 옮겼다.

주방으로 옮겨진 쟁반을 선주와 최훈이 치우자 강진이 한쪽에 있 는 쇼핑백을 들었다.

쇼핑백 안에는 음식이 담긴 통 두 개가 들어 있었다. 거기에 소 주도 두 병 챙긴 강진이 배용수 를 보았다.

“다녀올 테니까 정리 좀 부탁 해.”

“갔다 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가게를 나와 공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 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길거리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 다.

낮에는 회사원들로 북적거리는 길이라면 저녁에는 유흥을 즐기 는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루는 곳 이 바로 이곳, 논현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핫한 지역인 강 남 논현의 밤은 지금부터였다.

그런 밤거리를 걷던 강진이 문 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남자와 여자 둘이 걸어가는 사람 들도 있었고, 여자들끼리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는 남자들끼

리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연말이라 그런가? 다 우르르 다니네.’

혼자 다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 다.

‘용수라도 데리고 올 걸 그랬 나?’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입맛 을 다셨다. 주변에 울려 퍼지는 캐럴을 들으니 확실히 연말 분위 기가 났다.

지금이라도 배용수를 부를까 하

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배용 수를 데리고 와도 어차피 공원 인근에 다가가지도 못한다.

공원에는 처녀 귀신이 있고, 처 녀 귀신이 있는 곳에는 배용수가 가지 못하니 말이다.

사람들을 구경하며 걸음을 옮기 는 강진은 곧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로등이 켜져 있기는 했지만 야심한 시간이라 그런지 공원은 좀 을씨년스럽고 어두웠다.

일반인이라면 조금 무섭다는 생 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강진은 무섭지 않았다.

강원도 깊은 산속을 밤에도 돌 아다녔는데 이 정도쯤이야…….

‘돼랑이 사료 남았으려나?’

돼랑이 사료 사다 준 지 꽤 된 것 같다는 생각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흰둥이한테 가 보고 강원도에 도 가 봐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공원으로 걸

음을 옮기던 강진은 공원 의자에 서 데이트를 하는 여러 커플들을 볼 수 있었다.

한 손에 커피잔을 들고, 한 손 은 맞잡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연인들을 보며 강진이 입맛 을 다셨다.

‘춥지도 않나?’

12월 한 겨울에, 그것도 저녁에 공원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는 연 인들을 보니 괜히 속이 뒤틀어지 는 기분이었다.

‘혼자가 이래서 좋지. 추운 겨울 에 따뜻한 방 안에서 귤이나 까 먹으면 되고, 더운 여름에는 시 원한 가게에서 TV 보면 되 고…… 커플 되면 불편하기나 하 지.’

애써 그런 생각을 하며 자기 위 로를 하던 강진은 곧 정자가 있 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자 쪽을 본 강진은 미소를 지 었다. 정자에는 검이 허공에 두 둥실 떠 있었고 그 밑에 김소희 가 쭈그려 앉아 흰둥이를 쓰다듬

고 있었다.

“이쁘다. 이뻐……. 누구 새끼 야? 엄마 새끼라고? 아이고, 이 쁘다.”

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이며 달려 드는 흰둥이를 살짝살짝 밀어내 고 쓰다듬으며 놀고 있는 김소희 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확실히 저럴 때는 귀여우시단 말이야.’

흰둥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는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그녀

를 불렀다.

“아가씨.”

강진의 부름에 김소희가 입을 다물고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있다가 말했다.

“……언제 왔는가?”

“방금 왔습니다.”

“방금? 혹시 내가 하는 말 들었 나?”

“무슨 말씀 하셨습니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어쩐 일인가?”

화제를 돌리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여기 계신다고 해서 식 사라도 챙겨 드리려고 왔습니 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흰둥이 턱을 손으로 슥슥 긁다가 말했 다.

“아이가 먹을 것도 가져왔나?”

“그럼요.”

“그럼 줘 보게.”

그제야 김소희가 자리에서 일어 나며 흰둥이를 들어 안았다.

왕! 왕!

기분 좋게 김소희의 품에서 짖 으며 그녀의 가슴께에 머리를 문 대는 흰둥이의 모습에 강진이 입 맛을 다셨다.

‘사람이었으면 벌써 목이 달아 났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통을 꺼내고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 다.

저 멀리 연인 몇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이기는 했지만 어두 운 곳이라 여기가 자세히 보이지 는 않을 것이다.

그에 강진이 통 뚜껑을 열었다.

“양념이 좀 약하기는 할 텐데 맛은 괜찮을 겁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통 안을 보았다. 통 안에는 소시지 볶음

밥이 들어 있었다.

“여기 수저요.”

강진이 일회용 수저를 주자 그 것을 받던 김소희가 말했다.

“JS 물건이군.”

일회용 수저가 자신의 손에 잡 힌 것이다.

“음식도 JS 편의점 음식으로 만 든 겁니다. 그래서 맛은 좋을 겁 니다.”

그리고는 강진이 손을 내밀었

다.

“흰둥아, 밥 먹자.”

강진의 말에 김소희의 품에 안 겨 있던 흰둥이가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끼잉! 끼잉!

그런 흰둥이를 강하게 안으며 못 나가게 하던 김소희가 입맛을 다시며 손을 놓았다.

나가고 싶어서 우는 소리를 내 니 놓아 준 것이다.

김소희의 품에서 나온 흰둥이가 바로 강진에게 다가와 그 손을 핥았다.

“먹을 것 때문에 그런 것이야.”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강진의 앞에 음식이 담긴 통이 있으니 그쪽으로 갔다는 말이었다.

“물론이죠. 흰둥이도 아가씨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손을 핥는 흰둥이를 보 며 강진이 슬며시 음식 통을 김 소희의 앞으로 밀었다.

강진의 행동에 흰둥이가 머리를 돌려 김소희 쪽으로 갔다. 흰둥 이도 눈치가 있으니 자신에게 먹 을 것을 줄 사람이 김소희라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김소희가 웃으며 볶 음밥에 들어 있는 소시지를 집어 내밀었다.

“흰둥아, 고기. 고기.”

김소희의 말에 흰둥이가 소시지 를 받아먹었다. 그런 흰둥이를

귀엽다는 듯 보는 김소희가 다시 소시지를 집어 내미는 걸 강진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강아지한테 이렇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을 그냥 지켜보는 것도 재밌다.

힐링이 된다고 해야 할까? 소시 지를 흰둥이에게 골라 주던 김소 희가 손을 떼어내자 흰둥이가 그 녀를 보았다.

자신과 통을 번갈아 보는 흰둥 이 모습에 김소희가 웃으며 말했 다.

“먹어.”

왕!

김소희의 말에 흰둥이가 통에 머리를 박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 다.

흰둥이가 허겁지겁 밥을 먹는 것을 김소희가 멍하니 보았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재밌는 것은 없다는 듯 말이다.

그런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쇼 핑백에서 통을 하나 더 꺼내 뚜 껑을 열었다.

“아가씨도 드세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로운 통을 받아 숟 가락을 움직였다.

말없이 소시지 볶음밥을 먹던 김소희에게 강진이 소주를 따라 주었다.

“다음에는 JS 소주로 준비하겠 습니다.”

“이 정도면 되었네.”

잔을 든 김소희의 손에는 반투 명한 소주잔과 소주가 들렸다.

스윽!

시원하게 소주를 마신 김소희가 소시지 볶음밥을 한 입 떠서 먹 다가 문득 자신이 먹는 것과 흰 둥이가 먹는 것을 번갈아 보았 다.

그러고는 강진을 보았다.

“흰둥이가 먹는 것과 내가 먹는 것이 같아 보이는군?”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침을 삼 켰다.

‘아…… 개밥.’

맛있게 먹으라고 JS 식재로 음 식을 만들었다. 귀신 영업시간이 아니더라도 JS 식재로 음식을 만 들면 귀신도 맛있게 먹을 수 있 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게에 있는 JS 식재는 흰둥이 먹으라고 가져다 놓은 것 뿐이라 그걸로 조리를 한 것이 다.

그러니 흰둥이 음식과 김소희의 음식은 같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프라이팬에 같이 볶아서 덜 때 두 개로 나눈 것뿐이다.

물론 사람이 먹어서 안 될 것은 없다. 다 사람 귀신이 먹으라고 파는 식재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흰둥이가 먹는 것과 같 다고 하면 김소희한테 ‘불편하 군.’이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그에 강진이 애써 웃으며 말했 다.

“아가씨 주려고 음식을 만들었 는데 좀 남아서 흰둥이도 주려고 챙겨 왔습니다.”

“그랬나? 잘했군.”

김소희의 답에 강진이 작게 안 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가씨가 의외로 단순해서 다 행이군.’

둘이 같이 먹으라고 같이 만들 었다고 하면 분명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개와 내가 먹을 것을 같이 만 들었다는 말인가? 그럼 개밥을 지금 나에게 준 것인가? 불편하 기 짝이 없군.”

이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 지만 아가씨 것을 만들고 남은 것을 흰둥이에게 주려고 가져왔 다고 하면 주는 김소희가 되는 것이다.

확실히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이 다 른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귀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수저로 소시지 볶음밥을 먹으며

소주를 마시던 김소희가 소시지 를 하나씩 집어 흰둥이에게 내밀 었다.

그녀는 소시지는 흰둥이 주려고 볶음밥만 먹은 모양이었다.

어느새 자신 몫의 밥을 다 먹은 흰둥이는 김소희의 무릎에 앞발 을 올린 채 꼬리를 혼들었다.

그리고 김소희가 주는 소시지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시락을 다 먹은 김소 희가 흰둥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것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요새 잘 먹어서 그런지 살이 좀 오른 듯합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봤을 때는 뼈가 만져져 안쓰러웠는데 지금은 살도 잡히 는 것이 많이 좋아진 듯하네.”

“아가씨께서도 개를 키우셨습니 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에는 네 마리의 개가 있었지. 용맹하기가 호랑이와 싸 워도 능히 지지 않을 놈들이라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사냥을 갈 때에는 늘 앞세워 갔지.”

“호랑이하고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말했다.

“실제로 그 네 녀석이 호랑이도 잡은 적이 있어.”

“대단하네요.”

“호랑이뿐인가. 그 녀석들한테

당한 왜구들도 수십은 될 것이 야.”

“왜구도…… 잡았습니까?”

“잡다 뿐인가? 애들이 얼마나 용맹한지 조총이 쏟아져도 번개 처럼 뛰어가서 그놈들 목줄을 물 어뜯어 버렸지.”

“총알을 맞으면 죽을 텐데?”

“한지를 여러 겹으로 붙이면 갑 옷처럼 단단해지고 질겨지네.”

“한지?”

“튼튼하기가 조총도 막을 만했 지. 게다가 가볍고 움직임에 방 해가 되지 않아 무척 좋았네.”

“그런 갑옷이 있었군요. 그럼 개들에게 그것을 입힌 것입니 까?”

“애들이 용맹하다 해도 총알을 맞으면 다치고 죽지 않겠나. 그 래서 머리와 앞가슴과 등 부분을 한지 갑옷을 입혔는데 효과가 좋 았지. 게다가 이 녀석들이 왜놈 들 사이에서 날뛰면 그놈들이 우 왕좌왕하는데……

웃으며 김소희가 손을 내밀었 다.

스르륵!

허공에 두둥실 떠 있던 검이 그 녀의 손에 저절로 다가와 잡혔 다.

“그때 우리들이 그놈들을 덮치 면 끝이었지.”

검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김소희 가 흰둥이를 보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개는 인간 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동료이

자 가족이다.”

흰둥이를 보던 김소희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불편한 일이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하는 불편하 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 다.

키우던 흰둥이를 놓고 간 전 주 인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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