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207화 (205/1,050)

206화

거래라는 말에 강진이 할아버지 귀신을 보았다.

“거래요?”

“거래라고 하기는 그렇고. 나 좀 도와달라는 말이지.”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최호철이 눈을 찡그리며 할아버지 귀신을 보았다.

“영감님, 사람을 다섯이나 죽인

놈을 잡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걸로 거래를 하려는 겁니까?”

최호철의 굳은 목소리에 할아버 지 귀신이 웃었다.

“산 사람 일은 산 사람에게 물 어야지, 죽은 나에게 찾아올 일 이 아니지 않나?”

“그래도…… 나쁜 놈은 잡아야 죠.”

“잡아야지. 그래서 나 좀 도와 달라는 거야. 나 도와주고 나쁜 놈도 잡고.”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원하시는 것이 뭔가요?”

강진의 물음에 할아버지 귀신이 그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크지는 않아.”

“뭔데요?”

최호철의 퉁명스러운 물음에 할 아버지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나 너무 미워하지 마.”

“밉네요.”

최호철의 답에 할아버지 귀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말했 다.

“빚 좀 받아줘.”

“빚? 귀신이 무슨 빚을 받아 요?”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할아버지 귀신을 보았다.

“살았을 때 빌려준 돈 말씀하시 는 건가요?”

강진의 물음에 할아버지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 놈한테 돈을 빌려준 것이 있는데…… 그 새끼가 나 죽으니 까 안 갚았어. 그걸 꼭 받았으면 해.”

“그 돈 받아도 쓰지도 못할 텐 데 굳이 받을 이유가 있으세요?”

“왜 없어? 내가 죽었어도 내 마 누라는 살아 있는데…… 그리고 그 돈이면 우리 마누라 폼 나게 여러 턱 쏠 수 있잖아.”

“폼요?”

할아버지가 연세가 꽤 되신 때

돌아가신 것 같으니, 할머니도 연세가 제법 있으실 것이다.

거기에 할아버지는 죽은 지도 최소 삼 년은 넘었다. 삼 년 전 방화 사건을 직접 본 귀신이니 말이다. 즉, 그 삼 년간 할머니는 더 연로하셨을 터였다.

그런 할머니가 무슨 폼 잡을 일 이 있나 싶었다. 그런 강진을 보 며 할아버지 귀신이 말했다.

“마누라가 지금 요양병원에 있 는데.”

“혹시 치매?”

“치매는 아니야. 그냥 나이 먹 고 거동 불편하니까. 애들이

말을 하던 할아버지 귀신이 고 개를 저었다.

“노인 혼자 두는 것보다는 요양 병원이 낫지. 거기서는 말 상대 해 줄 노인들도 많고, 밥도 차려 주고 옆에서 간호해 주는 간호사 들도 있으니까. 이 나이 돼서 집 에 있어 봤자 산송장이나 다름없 지.”

“아......"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할아버지 귀신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 마누라 있는 병실 에 이상한 할망구들이 있어.”

“할머니들요?”

“1인실 쓸 형편은 안 되고…… 그리고 혼자 있는 것보다 여럿 있는 것이 심심하지도 않고 해서 4인실에 있는데. 거기 할망구 하 나가 그렇게 잘난 척을 해.”

“잘난 척?”

“자식이 그렇게 과일을 사다 줘. 같은 병실에 있으니 과일 사 오면 같이 나눠 먹고 하는데

“그럼 좋은 거 아니에요?”

같은 병실에 있으니 누가 과일 을 사 오면 같이 나눠 먹고 할 테니 좋은 것 아닌가 싶었다.

“좋기는 하지……. 그런데 그걸 가지고 그렇게 잘난 척을 해. 내 가 요양병원에 들어왔지만 자식 이 이렇게 먹을 것을 자주 사 온 다고 말이야. 옆에서 보고 있으

면 먹지 말고 뱉어 버리라고 하 고 싶다니까.”

“아……

“그리고 다른 할망구는 그 자식 들이 부침개를 해 와. 자주는 아 니지만 먹고 싶다고 하면 꼬박꼬 박 부침개하고 반찬 해서 보내니 그 집 아들이 장가는 잘 갔지. 요즘 그런 효부가 어디에 있어.”

“음식을 해 오는군요.”

강진의 물음에 할아버지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여편네는 과일을 가져오고 다른 여편네는 부침개와 먹거리 해 오고…… 이러니 우리 마누라 만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죄 지은 사람처럼 기가 팍 죽어 있어. 그 렇다고 안 먹자니 이상하게 보이 고…… 그리고 그 나이 되면 먹 는 재미가 제일 크기도 하고.”

잠시 말을 멈춘 할아버지 귀신 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내가 살아 있을 때는 마누라 먹고 싶다는 것 정도는 먹게 해 주고 어디 가서 기죽지

않게는 해 줬는데…… 그렇게 주 눅 들어서 얻어먹는 것 보고 있 으면 속상해.”

“할아버님 자제분들은?”

“그 애들도 못 하지는 않아. 그 냥 먹고살기 힘드니까. 그 할망 구들 자식들보다는 못 오고…… 용돈 좀 주고 가는 정도지. 그 할망구들 애들이 유난한 거지. 우리 애들이 나쁜 건 아니야.”

그래도 자식이라고 좋게 이야기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강진이 말했다.

“그럼 다른 한 분은요?”

“한 분?”

“4인실이면 다른 할머니도 한 분 계시지 않겠어요?”

“얼마 전에 죽어서 지금은 셋이 서 써. 조만간 새로운 사람 들어 오기 전까지는 그 셋이 한 방 쓰 는 거지.”

한숨을 쉰 할아버지 귀신이 강 진을 보았다.

“사람은 가진 것이 있어야 당당 한데…… 나이 들면 더 그래. 가

진 것이 있어야 자식들이나 손주 들이 얼굴이라도 한 번 들이밀 지, 가진 것 없으면 귀찮게만 보 거든.”

그러고는 할아버지 귀신이 강진 을 보았다.

“어쨌든 친구 놈한테 돈 받아서 우리 마누라 좀 줘. 우리 마누라 주머니에 돈이라도 있는 것 봐야 내 속이 편할 것 같아.”

“빌려준 돈이 얼마인데요?”

“육백만 원이나 빌려줬는데 이

놈이 나 죽었다고 입 싹 닦아 버 렸어.”

“큰돈이네요.”

육백만 원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돈일 수도 있지만, 강진에게는 큰돈이다.

육백만 원이면 강진의 예전 일 년 생활비보다 큰돈이니 말이다.

“그럼 큰돈이지. 그 돈이면 우 리 마누라 죽을 때까지 두유는 쌓아 놓고 먹겠다.”

“두유요?”

“소화가 잘 안 돼서 그런 것도 있기는 한데, 우리 마누라가 두 유를 좋아해.”

그리고는 할아버지 귀신이 강진 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말인데 돈 좀 꼭 받아 줘.”

“그게…… 혹시 각서나 차용증 같은 것 있으세요?”

“친구한테 돈 빌려주면서 그런 걸 누가 만들어.”

“그럼…… 제가 받아 내기

가……

“방법이 없을까?”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신수호 변호사한테 도움을 받 으면 될 것도 같지만……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크잖아.’

전에 채영호의 일을 처리할 때 신수호가 받은 수임료가 이천만 원이다.

귀신이 이승의 일에 관여하는 것이라 수임료가 비싸다고 했었

다.

채영호 때와 지금 할아버지 귀 신의 일이 같지는 않으니 수임료 차이는 있겠지만, 일단 육백만 원은 넘을 것 같았다.

그럼 육백만 원 받자고 그 이상 의 돈을 써야 하니 일단 신수호 에 대한 대안은 패스해야 했다.

“할아버지 이름 말하고 달라고 하면 안 줄까요?”

“그냥 줄 거였으면 진즉에 줬겠 지.”

“그래도 친하셨으니 거금 육백 만 원이나 빌려주신 것 아닙니 까?”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 귀신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으

니…… 칠십 년이지.”

“그렇게 친한데…… 왜 돈을 안 갚으셨을까요?”

“그러니까 더 열받지. 그놈하고 나하고 평생 우정인데 나 죽었다

고 돈을 안 갚아? 최소한 요양원 에 있는 형수 뒷바라지라도 좀 해야 할 것 아냐!”

버럭 화를 내는 할아버지 귀신 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다가 임상옥을 보았다.

그리고는 할아버지 귀신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해주자, 임상옥이 수첩을 꺼냈다.

“돈을 빌려 가신 분 주소하고 연락처 알려주시면 제가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돈은 꼭 받아 주는 거지?”

할아버지 귀신의 말을 전해주자 임상옥이 말했다.

“돌아가신 분에게 거짓말은 하 지 않겠습니다. 만나보고 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말은 해 보 겠지만, 확실히 돌려받는다는 보 장은 할 수 없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임상옥이 강진 이 보는 방향을 보며 입을 열었 다.

“하지만 돈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것이 제 가 어르신에게 할 수 있는 최선 의 약속입니다.”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 귀신이 임상옥을 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할아버지 귀신이 자신 이 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날 자네 식당에서 밥 먹고 집에 오고 있었지. 물론 그때는 자네 식당이 아니라 김복례 여사 님 식당이기는 했지만.”

“그래서요?”

“어쨌든 그날도 고시원 뒷골목 에서 잠시 쉬고 있었거든.”

“뒷골목에서요?”

“그냥 가다 보니 거기였어. 어 쨌든 뒷골목에 있는데 뭐가 팟 하고 벽에 부딪히는 거야.”

“벽 2”

“고시원 벽에 부딪히고는 떨어 지는데 땅에 떨어질 때마다 불꽃 이 튀기더라고.”

“불꽃요?”

강진의 물음에 할아버지 귀신이 주위를 보다가 최호철의 허리춤 을 가리켰다.

“벽이 있으면 이쪽에 퍽 하고 부딪혔는데 불꽃이 파팟 튀더라 고. 그리고는 데굴데굴 굴러 가 는데 굴러갈 때마다 불꽃이 튀더 란 말이야. 이게 뭔가 싶어서 가 서 보니까, 옛날에 애들 가지고 놀던 구슬 같은 돌이 있었어. 거 기에 화약인가 뭔가를 발라 놔서 부딪히면 불꽃이 튀기고 돌에 던

져도 불꽃이 튀던 거드라고.”

“아! 그거 나도 기억나네요. 저 어릴 때 애들이 담벼락에 굴려서 불꽃 내고 그랬는데.”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그런 것이 있었어요?”

“지금은 안 팔 거야. 애들 가지 고 놀기에는 위험한 장난감이었 으니까.”

그러고는 최호철이 할아버지 귀 신을 보았다.

“그리고요?”

“그런데 그게 또 날아오더라고. 그래서 누가 이런 걸 던지나 싶 어서 날아오는 방향을 봤는데 고 시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빌라 옥상에서 남자가 그걸 던졌 어.”

“누군지는 아세요?”

“불나고 한참 있다가 그 사람이 울면서 소리치는데 들어보니 고 시원 주인이던데.”

“고시원 주인요?”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임상옥을 보았다.

“고시원 사장 죽었다고 하지 않 았나요?”

“죽었지.”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할아버지 귀신을 보았다. 그 시선에 할아 버지 귀신이 고개를 저었다.

“죽은 건 거기 안주인이고, 던 진 건 그 남편이었어.”

“아!”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탄식을 토했다. 보통 사장이라고 하면 남자를 떠올린다.

그래서 사장이라고 해서 남자가 죽었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럼 그 돌 때문에 불이 난 겁 니까?”

“그 돌이 두 번인가 날아왔을 까? 그 돌이 쓰레기봉투에 떨어 졌는데 거기서 불이 확 솟구치더 니 순식간에 고시원 벽을 타고 올라갔어.”

강진이 할아버지 귀신에게 들은 것을 이야기해 주자, 임상옥이 트렁크를 열었다.

그러고는 트렁크에서 사건 파일 을 꺼내더니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발화 지점으로 추정된 장 소가 쓰레기봉투를 놓는 곳이었 어. 당시 불길은 벽 내 단열재에 옮겨붙어서 빠르게 번져 나갔는 데……

임상옥이 사진 하나를 꺼내 보 여주었다. 새까맣게 타들어간 벽 에 난 틈이 있었다.

“이 틈을 통해 벽 안의 단열재 로 불이 옮겨붙었어. 미리 준비 를 해 놨다면 단열재에도 휘발성 물질을 뿌려 놨겠지. 그래서 불 이 빠르게 번져 나간 거고.”

말을 하던 임상옥이 눈을 반짝 이며 말했다.

“당시 고시원 사장의 남편은 근 처에 있는 친구 집에서 술을 마 시고 있었어.”

그러고는 사건 파일을 뒤적여 종이 하나를 꺼냈다. 그곳에는 남편의 행적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용을 본 임상옥이 핸드폰으로 지도 맵을 키고는 친구 집 주소 를 입력했다.

“친구 집 빌라에서 마셨다고 하 고 거리는 대략 40미터……

“40미터 떨어진 곳에서 고시원 맞추려면 쉽지 않은 것 아닙니 까? 게다가 쓰레기봉투가 있는 곳에 돌이 떨어져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강진의 물음에 임상옥이 입을 열었다.

“야구 선수였어.”

“네?”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 선수를 했어. 지금은 야구 동호회를 하 고 있고 그날 고시원에 없던 것 도 지방에서 야구 동호회 경기를 하고 친구하고 술 마셨다는 것이 그의 알리바이였거든.”

“알리바이? 그가 용의자 중 한 명이었나요?”

“부부 중 한 명이 죽으면 그 배 우자가 가장 유력한 용의선상에

놓이니까. 하지만 알리바이가 있 었지. 불이 났을 때 멀지는 않아 도 떨어진 곳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임상옥이 돌을 하나 집어서는 힘껏 던졌다.

탓!

십 미터 정도 날아가다가 떨어 지는 돌을 보며 임상옥이 말했 다.

“지금은 확신이 있지.”

“그런데 증거가 없는데 잡으실

수 있겠어요?”

확신이 있다고 해도 사 년 전 사건에 증거도 없다. 잡을 수 있 을지…….

강진의 의문에 임상옥이 피식 웃었다.

“증거는 없기는 왜 없어.”

“있어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있잖아.”

임상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 었다.

“불 지른 놈보다 더 확실한 증

거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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