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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208화 (206/1,050)

207화

저녁 8시쯤, 임상옥 교수의 차 를 타고 강진은 가게에 돌아왔 다.

신림 방화 사건의 단서를 얻은 이후에도 사건 현장을 몇 곳 더 돌았다.

그러다 운이 좋게도 두 곳에서 살인 사건 지박령이 된 피해자 귀신을 만났고 그중 한 명에게 범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두 명 다 범인에 대한 기억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한 명은 자 신이 왜 죽었는지, 왜 여기에 있 는지도 기억을 하지 못해서 증거 가 될 만한 내용이 없었다.

강진이 차려 준 저녁을 먹으며 임상옥은 어딘가에 통화를 하고 있었다.

“정감님, 갑자기 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제가 미제 사건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다가 실마리를 몇 개 찾았 습니다. 물론 알지요. 미제 사건 이라는 것이 실마리 한둘 있다고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요. 하지만 없다면 모를까, 새로 찾 은 실마리가 있는데 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미제 사 건 하나가 아닌 최소한 두 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오래된 미제 사건을 괜 히 꺼내서 여론만 나빠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그리고 사건 해결을 하지 못하면 경찰

무능이 다시 도마에 오르게 될 텐데…….]

난감해하는 상대의 목소리에 임 상옥이 한숨을 쉬었다.

‘단서가 나왔다고 해도 쉽게 덤 비지를 못하는군.’

어느 정도 예상은 한 일이기는 했다. 미제 사건이란 경찰이 해 결하지 못한 사건이라 그것을 다 시 꺼내면 경찰의 무능이 다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잊혔던 사건을 다시 꺼

내는 것이기도 하니…… 부담이 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미제 사건을 정감님의 지휘 하에 해결하면 국민들에게 정감님의 이름이 각인되지 않겠 습니까?”

[제 이름이 문제가 아니지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상대의 목 소리에는 살짝 흥미가 이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 비밀리에 수사를 한 후에

진척이 있으면 그때 언론에 알리 면 되지 않겠습니까?”

임상옥의 말에 상대가 잠시 답 이 없었다. 임상옥이 한 말을 지 금 계산하는 중일 것이다.

잠시 말이 없던 상대가 답을 했 다.

[여론이 아니더라도 나쁜 놈 잡 아야 하는 것은 우리 경찰의 일 이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들어오셔서 자세하게 이야기 나 눠 보지요.]

“알겠습니다.”

그걸로 통화를 끝낸 임상옥이 한숨을 쉬었다.

“나쁜 놈 잡아야 하는 것이 경 찰의 일이라…… 말은 좋구만.”

투덜거리는 임상옥의 말에 최광 현이 그를 보았다.

“유인선 정감님 능구렁이잖아 요.”

“그렇지.”

말을 하던 임상옥이 고개를 저

었다.

“총경 자리에 있을 때는 나쁜 놈 잡겠다고 위쪽 지시 여러 번 들이박고 그랬는데…… 위로 올 라갈수록 사람이 정치적이 되어 가.”

“미제 사건 파헤치다가 못 잡으 면 경찰의 무능 문제가 다시 수 면 위로 올라오고 사건은 다시 파헤치기 어렵겠죠.”

경찰하고 여러 번 일을 해 본 최광현이 짐작이 된다는 듯 하는 말에 임상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성공했을 때 생길 달콤 함을 알려 준 거다. 유인선 그 양반도 정감으로 끝낼 생각은 없 을 테니까.”

오래된 미제 사건을 해결하면 대대적으로 뉴스 보도를 할 것이 고, 그럼 그것을 주도한 유인선 치안정감의 이름도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럼 총감이 되는 길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것이고, 더 나아가 서 국회로 가는 길에 보도블록 한 줄 까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유인선 정감이 내일 자 세하게 이야기하자고 말미를 둔 것이다.

그는 내일 자리에서 부담감과 기대감 이 둘을 저울질하다가 결 정을 할 것이다.

“그런데 방화 사건은 어떻게 해 결하실 생각이세요?”

강진이 호기심 어린 물음에 임 상옥이 그를 보다가 수첩을 꺼내 서는 뭐라고 글을 적었다.

그리고는 수첩을 뜯어 접어서는

그에게 내밀었다.

종이를 강진이 받자, 임상옥이 말했다.

“ 봐.”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종이를 펼쳤다.

〈귀신을 본다는 것, 즐거운가?〉

뜬금없는 내용에 강진이 의아한 듯 임상옥을 보았다.

“아침에 문틈에 그게 꽂혀 있다 생각을 해 봐. 어떨 것 같아?”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렸다.

“음…… 일단 보낸 사람이 누군 지 모르겠군요.”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럼 어떨 것 같아?”

“당황스러우면서도 불안할 것 같네요. 그리고 누가 나를 지켜 보고. 바로 주위 두리번거릴 것

같은데요?”

“맞아. 자신의 비밀을 누군가가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쪽지 로 왔다는 건 내 비밀을 아는 누 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 각이 들게 만들지.”

쪽지로 왔다는 것은 자신이 거 처하는 곳을 상대가 안다는 것이 다.

나는 상대를 모르는데 상대는 내가 사는 곳을 안다. 이것만 해 도 상당히 불안한 일이었다.

“불안하면 긴장을 하고, 긴장을 하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죠.”

최광현의 말에 임상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잘 배웠다는 듯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말했다.

“하지만 이건 밖에 있는 상대에 게 해야지, 유치장이나 경찰서에 잡혀 온 애들한테 쓰면 안 된다. 불안하고 긴장하면 마음을 닫아 버려서 원하는 자백을 얻어내기 힘들어.”

“알겠습니다.”

최광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임상옥이 강진을 보았다.

“광현이가 말을 한 것처럼 상대 의 실수를 유발하려면 불안과 긴 장감을 만들어 줘야 해. 그래야 뻘짓을 하거든.”

“그럼 이 쪽지로 그가 움직이게 할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몇 가지 아이템이 필요 해.”

“아이템?”

“아까 그 돌 화약 구슬이라고

해야 하나? 정확한 명칭을 모르 겠군.”

“검색해 보니까 지방마다 부르 는 이름이 다른 것 같습니다. 어 디서는 화약 구슬, 어디서는 폭 음탄, 화석탄이라고도 하더군요. 그런데 요즘은 안 파는 것 같던 데?”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고개를 저었다.

“그놈도 구했으니 써먹었겠지. 찾아오면 파는 곳이 있을 거야. 아니면 수제로 만들지 뭐.”

“수제로요?”

“재료만 있으면 총도 만드는 놈 들도 있는데 이런 화약 장난감 정도야.”

가볍게 웃은 임상옥이 말을 이 었다.

“어쨌든 그걸 몇 개 구해서 그 집에 보내야지. 친절하게 쪽지와 함께.”

“문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런 건 좀 애매모호해야 좀 더 무서운 법이지.”

그리고는 임상옥이 메모지에 글 을 적어서는 찢어서는 탁자에 놓 았다.

〈나는 그날 밤 당신이 한 짓을 알고 있다.〉

“스릴러 영화에 나오는 문구 같 네요.”

“어쨌든 쪽지와 화약 구슬이 같 이 있으면 찔리겠지. 그리고 찔 리는 것이 있으면 뭔가 하게 되

어 있지.”

“뭔가 하게 되어 있다면?”

“사람마다 다르니…… 일단 살 펴봐야지. 그리고 뭔가 하는 순 간 잡아들이면 되고.”

“자신 있으신가 보네요?”

강진의 물음에 임상옥이 웃었 다.

“방법이 기발하기는 해도 이놈 은 어디까지나 일반인이야. 사이 코패스 같은 놈이 아닌 이상 꼬 리가 잡힐 수밖에 없어.”

그러고는 임상옥이 손가락을 펼 쳤다.

“짧으면 5일, 길어도 열흘 이내 에 이놈 잡혔다는 뉴스 TV에서 보게 될 거다.”

자신만만한 임상옥의 말에 강진 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범죄 쪽 일은 임상옥이 전문이니 그도 생각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심리학 전공 교수다. 사 람 심리로 밥을 먹는 사람이고 특히 범죄 심리학에는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경찰에서 어려운 사건 이 터지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 겠는가.

일반인 정도야 그의 손바닥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할아버지 돈은 어떻게 하 실 거예요?”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작게 한 숨을 쉬었다.

“어떻게 보면 살인사건보다 이 게 더 난감해질 수 있어.”

“그런가요?”

“일단 귀신 할아버지 나이가 있 으시니 그 친구분도 나이가 상당 하시 겠지.”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임상옥 이 입맛을 다셨다.

“세상에서 가장 소통하기 어려 운 부류 중 하나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 들은 말이 안 통하지. 이유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 람들은 틀렸다 생각하니까요?”

강진의 답에 임상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 중에는 그 런 분들이 많아. 살아오신 경험 이 있으시니 아무래도 다른 사람 들 말보다는 자신의 경험이 길이 고 정답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 거든.”

임상옥의 말에 강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들이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가는 길이 정답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기는 하다.

“소리부터 지르시면 난감하겠네 요.”

“하아! 걱정된다. 소리 지르고 화부터 내기 시작하면 정말 대화 하기 어려운데……

고개를 젓던 임상옥이 강진을 보았다.

“어쨌든 오늘 수고했어.”

“운전하시느라 교수님이 더 힘 드셨죠.”

“그래. 우리 둘 다 수고했다.

임상옥의 말에 최광현이 그를 보았다.

“ 저는요?”

“내가 모는 차 타고 다닌 놈이 한 것이 뭐냐?”

“교수님 입에 맛탕 꼬박꼬박 챙 겨 넣어 드렸는데요.”

최광현의 말에 임상옥이 혀를 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주방에서

쇼핑백을 두 개 들고 나왔다.

“이거 가져가서 드세요.”

“전에 준 것 있는데 뭘 또 이런 걸 챙겨 주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최광현이 웃으며 쇼핑백을 잡았다.

“하나는 반찬이고요. 하나는 오 늘 만든 맛탕 남은 것하고 석청 인데 이건 교수님 가져가서 드세 요.”

맛탕과 석청이라는 말에 임상옥 이 쇼핑백을 받아 안을 보았다.

쇼핑백에는 고구마 맛탕이 봉지 에 싸여 있었고, 유리 통 안에 진득진득한 석청이 담겨 있었다.

“벌집도 같이 있네?”

“못 먹는 부위는 떼어냈으니 벌 집도 드세요. 벌집도 몸에 좋대 요.”

“이거 귀한 것 같은데?”

“귀하죠. 강원도 산속 인적 하 나 없는 오지 절벽 안에서 채취 한 겁니다.”

“오, 말만 들어도 귀해 보이네.”

“맛있게 드세요.”

강진이 웃는 것에 임상옥이 고 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다음 주에 또 보자.”

“그 빚 받는 것 어떻게 되는지 연락 주세요.”

임상옥이 바라보자 강진이 입맛 을 다시며 말했다.

“돈을 못 받게 돼도 할머니한테 음식 대접해 드리는 것 정도는 제가 해 드릴 수 있잖아요.”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 연락하마.”

그러고는 임상옥이 문을 열고 나가자 강진이 둘을 배웅하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강진은 최호철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늘 재밌었어.”

최호철은 기분 좋은 얼굴로 술

을 연신 마시고 있었다. 그런 최 호철을 보며 강진이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귀찮지 않으셨어요?”

“아니야. 살아 있을 때 느낌도 있고 좋았어. 확실히 나는 경찰 이 천직이었나 봐.”

기분 좋게 웃으며 술을 마시는 최호철을 보던 강진이 슬며시 말 했다.

“형.”

강진의 부름에 최호철이 그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몰라. 기억 안 나. 기억났으면 귀신 몸으로라도 거기 가서 난리 를 피웠겠지.”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자신이 할 말을 짐작했 는지 최호철이 바로 답을 한 것 이다.

강진이 물으려던 것은 바로 최 호철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최호철은 양팔이 으깨져 있고,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누가 봐도 좋게 죽은 것은 아니 었다. 아니, 어디서 고문이라도 당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최호철이 강력계 형사였다고 하 니…… 어디 조폭들한테 당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 죽었는지 물으려 고 했는데 최호철이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최호철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기억을 하지 못한 다.

그뿐 아니라 생전의 기억도 띄 엄띄엄하고 말이다. 그래서 강진 을 처음 봤을 때 그를 잘 기억하 지 못했었다.

술잔을 입에 대던 최호철이 문 득 강진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 데…… 내 죽음에 대해 임상옥 교수님한테 말해서 알아보려고 하지 마.”

“알았어요.”

강진의 답에 최호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요즘 가끔씩인데 옛날 기억들 이 조금씩 떠올라.”

“그래요?”

“너에 대한 것도 조금씩 기억나 더라.”

“저에 대해 기억이 나요?”

“많이는 안 나.”

웃으며 말을 한 최호철이 술잔 을 입에 대며 말했다.

“나 죽인 놈…… 내가 찾아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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