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209화 (207/1,050)

208화

“나 죽인 놈…… 내가 찾아볼 거다.”

잔뜩 경직된 얼굴로 말을 하는 최호철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 형 원수 누군지도 모르잖아 요?”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고 있으 니…… 곧 누군지 알겠지.”

“형이 찾아도……

어떻게 할 수 없잖아요, 라는 말을 하려던 강진의 입을 최호철 이 막았다.

“아직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 후 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어. 지금은 그냥 술이나 먹자.”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주잔 을 들었다.

쨍!

가볍게 부딪히는 소주잔과 함께

두 사람이 소주를 마셨다.

다음 날 아침, 강진은 흰둥이 밥을 챙겨주고 이강혜와 가벼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강혜가 L전자 사장이라는 것 을 알았지만 강진은 그녀를 평소 와 다름없이 대했다.

그리고 이강혜 역시 평소와 다

름없이 강진을 대했기에 두 사람 은 가볍게 차를 마시며 잡담을 나눴다.

“그 아르바이트 학생은 잘 다니 고 있어요?”

최종훈에 대해 묻는 이강혜를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니고 있습니다. 퇴근할 때 가게 들렀다가 가는데 무척 밝습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좋 은 곳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 다.”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한테 일 자리 알려 준 것뿐이에요.”

“다음에도 아르바이트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다음에요?”

“그 녀석이 고2인데 집안 사정 이 어려워서 아무래도 방학 때마 다 계속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집안 사정이 어렵다는 말에 이 강혜가 작게 고개를 젓다가 말했 다.

“지금 하는 아르바이트 일 열심 히 하면 방학 때마다 가서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의문문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일 열심히 하고 사고를 치지 않 는다면 그곳에 말을 해 일을 더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과 같 았다.

“감사합니다.”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어디 회사든 환영받는 법이죠.”

웃으며 말을 한 이강혜가 문득

강진을 보았다.

“다음 주에 크리스마스인데 강 진 씨는 약속 없어요?”

“크리스마스라..

“크리스마스 오는 것도 몰랐어 요?”

이강혜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주위 가게마다 캐럴을 그렇게 틀어대는데 모를 수가 없죠.”

강진에게 크리스마스는 딱히 의

미가 없다. 어렸을 때는 크리스 마스 선물이라도 기대했지만, 나 이 먹은 후에는 그냥 빨간 날이 었고 아르바이트하는 날일 뿐이 었다.

“여자 친구 없어요?”

“없습니다.”

“괜찮은데……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말씀 고맙네요.”

“진짜 괜찮은데…… 제가 아가

씨 한 명 소개해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몸을 일 으켰다.

“크리스마스에 가족하고 오세 요. 제가 맛있는 음식 해 드리겠 습니다.”

가족이라는 말에 이강혜가 웃었 다.

“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오시면 되죠.”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쓰게 웃 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일 또 봐요.”

“작별 인사를 하기에는 너무 빠 르시네요.”

“네?”

이강혜가 무슨 말인가 싶어 보 자 강진이 공원 밖으로 향하는 길을 가리켰다.

“공원 밖으로는 같이 가셔야 죠.”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피식 웃 었다.

“맞네요. 그럼 같이 가서…… 입구에서 작별 인사 다시 하죠.”

“가시죠.”

말을 하며 강진이 카트를 잡았 다.

“제가 끌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저었다.

“이거 끄는 것이 제 힐링 라이

프예요.”

웃으며 이강혜가 카트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런 이강혜의 뒤를 따라가며 강진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식 뭐 좋아하세요?”

“가리는 것은 없어요.”

“그래도 좋아하는 음식은 있으 실 텐데?”

“전에 먹었던 매운 닭발도 맛있 었어요.”

“그거야 가끔 먹기에 좋은 음식 이죠. 매일 매운 닭발만 먹을 수 는 없잖아요.”

그러고는 강진이 이강혜를 보았 다.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면 말씀 해 주세요. 제가 다음에 준비해 드릴게요.”

“영업하시는 거예요?”

“이왕 돈 내고 먹는 것 취향에 맞는 맛있는 식사를 드리려는 거 죠. 그리고 일단 영업은 맞습니

다.”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피식 웃 고는 말했다.

“먹고 싶은 것 있으면 갈게요.”

대화를 하며 공원을 나온 강진 이 가게를 향해 걸음을 옮기자, 이강혜가 자신의 차에 다가갔다.

기사가 나와 문을 열어주자 차 에 올라탄 이강혜가 미소를 지었 다.

그런 이강혜의 모습을 차에 올 라타며 본 기사인 도원규가 웃으

며 말했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젊은 친구하고 대화를 하니 즐 겁네요.”

“그러십니까?”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잡담이 나 하고 가는 친구는 저 식당 사 장이 유일해요.”

웃으며 이강혜가 창밖을 보았 다. 창밖으로 강진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런 강진을 보며 이강혜가 미 소를 지었다. 오늘 강진과 나눈 대화에는 회사와 관련이 된 내용 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강아지와 고양이 이야기, 그리고 아무 의미 없는 잡담이 전부였다.

그녀는 그것이 좋았다. 자신을 평범하게 대해주는 사람과 대화 하는 것이 말이다.

‘우리 남편도 내 앞에서는 사업 이야기만 하는데…… 남편보다 낫네.’

집이나 밖에서나 잡담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이강혜에게 아침 산책은 좋은 힐링이 되었 다.

가게에 돌아온 강진은 점심 장 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 문득 강진이 핸드폰을 꺼냈 다.

“아차! 형한테 전화를 안 했네.”

토요일 저녁에 김소희가 황민성 을 만나겠다고 약속을 잡았다. 그날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이 라 내일 전화를 해야지 했다가 어제 전화를 못 한 것이다.

일단 바로 전화를 걸은 강진은 곧 황민성과 통화를 할 수 있었 다.

[강진아.]

반갑게 전화를 받는 황민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말했다.

“아가씨를 만났는데요. 화요일,

그러니까 내일 11시에 저희 가게 에서 뵙자고 하시네요.”

[내일 11시…… 낮? 밤?]

“밤이요.”

[알았어. 내일 시간 맞춰서 갈 게.]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핸 드폰을 내려놓았다.

“휴! 다행이네.”

내일 황민성이 약속이라도 있으 면 어쩌나 했던 것이다.

“하긴, 약속이 있어도 아가씨 보려고 캔슬하고 오실 형이기는 한데…… 그럼 내가 또 미안하기 도 하고.”

작게 중얼거리며 강진이 영업 준비를 마저 할 때, 배용수가 아 쉽다는 듯 말했다.

“내일 형 오기로 했어?”

"응."

흐.

“처녀귀신 보러?”

« O ”

흐.

“아쉽네.”

황민성과 그동안 시간이 안 맞 거나, 처녀귀신이 와서 보지 못 했더니 같이 술 한잔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황민성이 와도 시간이 안 맞으 면 대화도, 대면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쉬운 것이다.

같은 곳에 있어도 인사 한 번 나누지 못하는 것이 말이다.

그에 강진이 말했다.

“다음에 형 11시에 오라고 해서

술 먹자. 그날은 내가 주방에 계 속 있을게.”

“오늘 오라고 하면 안 되냐?”

“내일도 와야 하는데 오늘도 오 라고 하기는 그렇지 않냐?”

“일단 물어봐.”

배용수의 기대감에 찬 눈에 강 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핸드폰을 꺼내 다시 황민성에게 전화를 걸 었다.

[할 말 더 있어?]

“다른 것이 아니라 용수가 형 못 본 지 오래됐다고, 혹시 오늘 오실 수 있냐고 물어서요.”

[오늘?]

“형하고 술 한잔 하고 싶다고 하는데……

강진이 배용수를 볼 때, 황민성 이 말했다.

[내일 보면 되잖아.]

“그게 용수가 오늘 시간이 된다 고 해서요.”

[그래 알았어.]

“그럼 오실 거예요?”

[용수 몇 시에 오는데?]

“11시요.”

[알았어. 그럼 오늘 보자.]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배 용수를 보았다.

“오신대.”

“아싸!”

기뻐하던 배용수가 주방에 가서

는 냉장고를 보기 시작했다.

“형 오면 뭐 해 먹지?”

“형 소시지 좋아하니까 소시지 삶아 주면 되지. 아!”

말을 하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 았다.

“형 잡채 좋아하더라.”

“잡채?”

“그것도 잡채에 야채 없이 고기 만 들어 있는 거 좋아하더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눈을 찡

그렸다.

“잡채는 여러 야채를 같이 먹어 야 맛있는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잡채에 얽힌 황민성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 하긴 어렸을 때는 야채

싫어하니까.”

“나도 그랬던 것 같아. 어렸을 때 잡채 하면 고기하고 당면만 먹어서 마지막에는 야채만 남았 던 것 같아.”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배용수가 잠시 냉장고를 보다가 말했다.

“일단은 보통 잡채 만드는 것처 럼 하면서 고기는 좀 더 넣고, 형 먹는 곳에는 야채 빼고 당면 하고 고기만 담아서 줘야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문득 그 를 보았다.

“그냥 당면하고 고기만 넣고 하 면 안 되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무식하다

는 듯 그를 보았다. 그러다가 말 했다.

“너도 이제 요리한 지 넉 달 정 도 됐나?”

“그쯤 되지?”

8월부터 한끼식당에서 일했으니 넉 달 정도 일을 한 셈이었다.

“넉 달이면 이제 요리에 대한 개념이 잡힐 때가 되지 않았냐?”

“왜?”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고는 장갑을 끼고는 라면 봉 지를 하나 꺼냈다.

“라면에 보면 분말 수프가 있고 건더기 수프가 있지.”

“있지.”

“너 라면 먹을 때 건더기 수프 야채 안 먹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건더기 수프 야채는 딱히 손을 대지 않는다.

면발에 딸려 오면 먹기는 하지 만 굳이 건져서 챙겨 먹지는 않

는다. 아니, 오히려 입에 들어오 면 뱉는다.

건조해서 들어가서 그런지 맛이 이상하다 해야 하나? 어쨌든 라 면 건더기 수프에 있는 건더기는 잘 안 먹었다.

“네가 안 먹는 거지만 끓일 때 넣기는 하지?”

“그렇…… 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육수하고 비슷하다는 거네?”

“맞아. 파 싫어해도 김치찌개에 는 파를 좀 넣어야 맛이 있는 것 처럼 잡채에도 여러 야채를 넣어 야 그 맛이 좀 더 풍성해져.”

좋아하는 것만 많이 넣는다고 그 맛이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 라는 말이었다.

“그렇구나.”

강진의 답에 배용수가 말을 이 었다.

“숙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있는 데, 음식은 조화라고 했어.”

“조화?”

“좋아하는 음식, 아니 여기서는 식재라고 해야겠다. 좋아하는 식 재만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 겠냐. 하지만 그건 오히려 입에 안 좋고 몸에도 안 좋아. 잡채도 여러 재료가 어울려 있으니 고기 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아니 겠어?”

“그런가?”

“음식은 조화야. 조화로운 음식 이 몸에도 좋고 입에도 좋다는 것이 우리 숙수님의 지론이시

지.”

그리고는 배용수가 냉장고에 있 는 식재들을 살폈다. 오늘 황민 성에게 해 줄 잡채 레시피를 생 각할 뿐이었다.

그런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피 식 웃고는 말했다.

“점심에 잡채 만들자.”

“점심에 잡채라…… 괜찮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당면을 꺼내기 시작했다. 오늘 음식은 오이 겉절이와 기본 반

찬, 메인으로 바지락 된장국, 차 돌박이 된장국. 거기에 오징어볶 음이었다.

거기에 반찬으로 잡채 하나를 더 넣을 생각이었다. 황민성 맛 있게 먹으라고 미리 연습 삼아서 만들어 볼 겸 말이다.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가게에서 태광무역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 었다.

“강진아, 여기 잡채 좀 더 줘

라.”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잡채를 담아 가져다주었다.

“잡채 어때요?”

“맛있지 뭘 물어.”

그러고는 이상섭이 웃으며 말했 다.

“다른 음식점 반찬 잡채는 고기 한두 점 들어 있을까 말까인데 무슨 고기가 이렇게 많이 들어 있냐?”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형도 잡채에 고기 많은 것 좋 아하시나 봐요.”

“잡채에 들어 있는 고기 누가 싫어하겠어.”

웃으며 말을 하는 이상섭을 보 며 고개를 끄덕이며 강진이 말했 다.

“많이 드세요.”

“잡채 값 따로 받아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제가 음식점 아르바이를 많이 해 봤는데…… 음식 아끼는 식당 치고 잘 되는 식당을 본 적이 없 어요.”

“그래?”

“손이 커야 먹는 장사는 잘 되 는 법입니다.”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슬쩍 말했다.

“그리고…… 뒤에 두 명 있잖 아.”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이상섭 이 말을 이었다.

“뒤에 남자 둘 있는데…… 돈 안 내고 튈 것 같다.”

“그게 무슨?”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뒤에 있 는 손님 둘을 보았다.

“아까 화장실 갔다 오는 길에 보니까, 밥 먹으면서 계속 주머 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것 이…… 수상해.”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손님 둘

을 보았다. 그 말대로 손님 한 명이 한 손을 잠바 주머니에 넣 은 채 밥을 먹고 있었다.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네.’

겨울이라 손이 시려서 그럴 수 도 있다 할 수 있지만…… 보통 밥 먹을 때 주머니에 손 넣고 먹 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 는 더욱…….

‘손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은…… 뭔가 감추거나 불안해할

때 나오는 시그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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