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저녁 장사를 마치고 강진은 2층 에서 잠시 쪽잠을 잔 후 식당으 로 내려갔다. 그러다 달콤한 냄 새를 맡고는 말했다.
“냄새 좋네.”
“너 자는 동안 양념 소스 만들 었지.”
강진은 주방에 들어가 그가 만 들었다는 소스를 손가락으로 찍 어 입에 넣었다. 달달한 것이 맛
이 좋았다.
“근데 너무 단 것 아니냐?”
“통닭에 버무리는 거니까 이 정 도가 딱 좋지.”
말을 하며 배용수가 닭들을 가 리켰다.
“일단 초벌로 구워 놨다.”
“초벌?”
강진이 보니 한쪽에 튀겨진 통 닭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는 야채튀김, 오징어튀김, 고구마
튀김들이 있었다.
“튀김도 두 번 튀기면 더 바삭 한 것처럼, 통닭도 두 번 튀기면 바삭하지.”
“다른 튀김도 했어?”
“이왕 기름 쓰는 김에 다른 것 도 좀 튀겼지.”
말을 하던 배용수가 웃으며 손 을 들었다.
“그나저나 이 변탕지옥 고무장 갑 엄청 좋네. 기름이 튀어도 녹 지 않더라.”
“그래?”
“튀김 할 때 녹으면 어쩌나 싶 었는데 그냥 주르륵 흘러내리더 라고. 그리고 뜨겁지도 않고. 확 실히 JS 물건이 품질은 좋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무장갑 을 보다가 말했다.
“그럼 영업 준비는 끝난 건가?”
“손님들이 다른 것 달라고 하면 더 하면 되겠지만, 튀김 요리는 이거면 되겠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냉장고에서 파와 어묵을 꺼냈다.
“어묵국 하게?”
“소주 드시는 분들 있으니 국물 도 하나 있어야지.”
강진이 어묵국을 만들 준비를 하자 배용수가 장갑을 벗었다.
“그럼 나는 좀 쉰다.”
“그래.”
배용수가 홀로 나가 TV를 보기 시작하자, 강진은 음식 준비를
마저 했다. 그렇게 강진이 어묵 국을 준비하고 있을 때 최호철이 가게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냄새 좋네.”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통닭을 가리켰다.
“통닭 잘 준비해 놨습니다.”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웃으며 통닭을 보다가 말했다.
“나 먹을 양념 통닭 한 마리 종 이에 싸 놔 줄 수 있어?”
“종이에요?”
“종이에 싸서 비닐봉지에 넣어 놔줘.”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통닭은 튀기고 바로 먹어야 가 장 맛있는데요?”
“그건 알지. 근데 오늘은 좀 눅 눅한 양념 통닭이 먹고 싶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양념 좀 많이 발라서 해 줘.”
“알겠습니다.”
강진은 가스레인지를 켜서 기름 을 달구기 시작했다.
“그럼 형 나가 있을게.”
“그러세요.”
최호철이 나가는 것을 보던 강 진은 기름이 달궈지자 통닭 하나 를 그대로 넣었다.
11시가 가까워질 무렵, 강진과 배용수는 문밖을 보고 있었다.
배용수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 다.
오랜만에 황민성과 같이 술자리 를 할 것을 생각하니 들뜬 것이 다.
“룰룰!”
콧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준비하 는 배용수를 보던 강진의 핸드폰 이 울렸다.
〈민성 형〉
황민성의 이름에 강진이 전화를 받았다.
“형.”
[강진아, 미안한데 내일 가야겠 다.]
“내일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의 눈치를 힐끗 보았다. 배용수는 형이라는 소리에 이미 이쪽을 보 고 있었다.
“오셨대?”
반갑게 묻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 있으신 것 아니죠?”
강진이 아는 황민성은 약속을 쉽게 어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약속 시간 몇 분 전에 이 렇게 약속을 미루는 것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
[나쁜 일은 아니고, 어머니가 지금 정신이 들었다고 해서 형 지금 강원도 가는 길이야.]
“아! 다행이네요. 그런데 창문 열어 두셨어요? 왜 이렇게 시끄 러워요?”
황민성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 운 소리가 같이 들려오는 것이 다.
[형 지금 헬기 타고 가거든.]
“헬기요?”
[어머니 정신 드셨다는데 언제 차 타고 가. 어쨌든 용수한테 미 안하고 전해주고 형이 내일 술 좋은 거 한 잔 산다고 해 줘.]
“용수 내일은 안 될 거예요.”
[그래? 용수한테 미안한데.]
“용수 신경 쓰지 마시고 어머니 잘 뵈세요. 아! 그리고 제 인사 도 좀 전해 주시고요.”
[그래. 알았다.]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배 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어느새 강진의 핸드폰에 귀를 가져다 댄 채 옆에 서 있었다.
통화 내용을 다 들은 배용수는 시무룩한 얼굴로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모 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나하고 잘 지내는데도 그리 정 이 그립냐?’
귀신 생활이 외로워서인지 배용 수는 정에 목말라했다. 그런 배 용수를 보던 강진은 고개를 젓고 는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 다.
문 앞에 모여 있는 귀신들을 보 며 강진이 말했다.
“오늘은 통닭으로 준비했습니
다.”
“통닭?”
“양념 통닭도 있어요.”
“여기서 통닭 먹을 줄은 생각을 못 했네.”
한 귀신의 말에 다른 귀신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한식이나 중식 같 은 것은 많이 먹었는데, 여기서 통닭은 처음이네.”
귀신들이 서로를 보며 하는 말
에 강진이 웃으며 귀신들 옆에 서 있는 최호철을 보았다.
“호철 형이 통닭 먹고 싶다고 해서 이왕 하는 것 많이 했어요. 그래도 혹시 통닭이 싫다거나 닭 이 싫다거나 하시는 분은 따로 메뉴 말씀해 주세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서로를 보았다. 딱히 통닭을 싫어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긴, 통닭은 그동안 한 적이 없으니 이 귀신들도 정말 오랜만 에 먹는 거겠지.’
통닭을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 도 한 번만 먹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싫어하는 사람이 워낙 드물기도 하고…….
이것은 귀신들도 마찬가지인 것 이다.
“그럼 통닭으로 미리 세팅해 놓 을게요. 바로 앉아서 드세요.”
“고마워!”
“통닭에 시원한 맥주…… 크윽! 오늘 산 사람 기분 좀 내겠네.”
“여름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아쉬워하는 귀신들을 뒤로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 강진은 여자 귀신들에게 말했다.
“통닭 자리로 세팅하세요.”
“바로요?”
오늘부터 일하기로 한 여자 귀 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진 이 말했다.
“자리마다 후라이드 하나, 양념 하나씩 하고, 접시 네 개씩 세팅 해 주시면 돼요.”
지시를 마친 강진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한 번에 통닭이 여럿 나갈 것을 생각해서 배용수가 통 닭을 열심히 튀기고 있었다.
촤아아악! 촤아악!
맛있는 소리를 내며 튀겨지는 통닭을 보던 강진이 접시에 그것 을 담기 시작했다.
강진이 통닭을 담아 내놓자 여 자 귀신들이 비닐장갑을 끼고는 접시들을 서빙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1시가 되는 것과 동시
에 문이 열렸다.
띠링! 띠링!
“이야, 맛있는 냄새 나네.”
“통닭이라…… 이거 정말 오랜 만이네.”
“오늘은 치맥 데이로구나!”
귀신들이 웃으며 들어오는 것에 강진이 자리를 가리켰다.
“일단 기본은 통닭입니다. 양념 도 있으니 알아서 드세요.”
“이 사장 고마워. 이거 죽고 나
서 더 잘 먹는 것 같아.”
귀신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는 것을 보던 강진이 입구를 보았 다.
‘근데 왜 호철 형 안 들어오 지?’
그에 강진이 주위를 보다가 문 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가게 앞에 서 있는 최호철을 볼 수 있었다.
“형, 왜 안 들어와요?”
강진의 말에 가게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최호철이 안으로 들어 갔다.
화아악!
문을 경계로 귀신의 몸에서 사 람으로 변하는 최호철을 보며 강 진이 빈자리를 가리켰다. 최호철 이 자리에 앉자 강진이 주방에서 봉투를 가지고 왔다.
“형이 말한 대로 눅눅해진 통닭 입니다.”
봉투를 열자 뜨거운 김이 올라 왔다. 강진이 많이 눅눅해지라고
봉지를 꼭 묶어 뒀던 것이다.
봉투를 걷어내자 종이 달력에 싸인 양념 통닭이 모습을 드러냈 다.
“맛은 모르겠지만, 포장은 정말 옛날식 이네.”
“그래요?”
“체인점 아닌 시장 통닭들은 이 렇게 달력에 담아서 팔았거든.”
최호철이 웃으며 통닭을 볼 때, 강진이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왔다.
“용수야, 너도 와서 먹자.”
“어묵국만 좀 내고.”
미리 끓이면 어묵이 퍼지니 손 님이 들어오자 끓이는 것이다. 물론 육수 준비는 미리 해뒀으니 어묵과 파만 넣고 팔팔 끓이면 완성이었다.
“그럼 나는 먼저 먹는다.”
“사장님 마음대로 하세요.”
배용수의 농에 강진이 웃으며 최호철에게 맥주를 따라주려다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최호철
이 통닭을 멍하니 보고 있는 것 이다.
“왜 그래요?”
“형이 기억이 조금씩 난다고 했 잖아.”
“네.”
“그 기억 속에 통닭이 있더라 고.”
“통닭에 얽힌 기억이야 많죠.”
“ 맞아.”
고개를 끄덕인 최호철이 말했
다.
“형도 너하고 비슷해.”
“저하고요?”
“형도 열다섯에 보육원 들어갔 거든.”
“아……
“너도 기억이 있을 거야. 어느 날 아빠가 사 오는 통닭에 대한 기억.”
“기억나죠. 우리 아빠도 가끔씩 기분 좋은 날 통닭 사 왔거든
요.”
“기분 좋은 날이라……
작게 중얼거린 최호철이 물었 다.
“그게 아주 맛이 좋았지?”
“그럼요. 그때 통닭이 귀한 음 식은 아니었지만 생각지도 못하 게 맛있는 것 먹을 수 있었으니 까요. 밤늦게 먹는 통닭이 또 맛 있잖아요.”
말을 하며 강진이 미소를 지었 다.
“술 취해서 人} 가지고 온 것 보 면 통닭이었죠. 이상하게 술 마 시면 통닭을 사 오더라고요.”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피식 웃 었다.
“전화는 안 하시디?”
“전화요?”
“술 마시고 전화해서 우리 아들 뭐 먹고 싶으냐고 안 묻던?”
“아…… 어렸을 때는 그런 전화 받았던 것 같네요.”
강진의 답에 최호철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통닭을 보았다.
“오늘 아버지가 생각이 나더라 고. 아버지가 사다 주신 통닭도 생각이 나고.”
말을 하며 싱긋 웃은 최호철이 젓가락으로 닭 날개를 집어서는 입에 넣었다.
스륵! 스륵!
껍질이 부드럽게 벗겨지며 살코 기가 먼저 입으로 들어갔다. 뒤 이어 습기로 부드러워진 껍질을
입에 넣은 최호철이 말했다.
“아버지가 통닭을 사 올 때는 힘들었을 때였던 것 같아. 일하 는 것이 힘들고 삶이 힘들었을 때.”
“힘들었을 때요?”
강진의 물음에 최호철이 말했 다.
“아빠가 통닭을 사 오면 나는 오늘 아빠 기분 좋아서 사 왔구 나 하고 생각했거든.”
“그렇지 않아요? 우리 아빠도
기분 좋을 때 사 오셨는데?”
강진의 물음에 최호철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 기분 좋 은 날 집에 가는 길에 아들 먹고 식은 것 사다 주고 싶을 수 도…… 근데 형이 일을 하다 보 니까.”
잠시 말을 멈추는 최호철의 모 습에 강진이 물었다.
“왜요?”
일이 힘들고 삶이 힘들면 생각
나는 것이 보고 싶은 사람들이더 라고.”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 시 고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불 이 꺼진 고시원 방에 들어갈 때 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났 으니 말이다.
그런 강진을 보며 최호철이 말 했다.
“힘든 일 생기면 보육원에 그렇 게 가고 싶더라고.”
말을 하던 최호철이 웃었다.
“그럴 때 통닭을 사 가. 아마도 어릴 적에 아빠가 통닭을 사 왔 을 때 그 좋았던 기억 때문인 것 같아.”
“음식은 추억이라고 하잖아요.”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억이라…… 어쨌든 일이 힘 들면 쉬는 날에 보육원에 통닭을 사 갔어.”
“아…… 기억나요. 형이 가끔
통닭 잔뜩 사 오셨죠.”
“후! 애들이 많으니 그 통닭 값 도 엄청 나왔지.”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육원 아이들이 많다 보니 한두 마리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다.
최호철이 통닭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통닭을 사 오던 아빠도 지금 나와 같지 않았을까? 일이 힘들 고 지쳤을 때…… 통닭을 사 오
셨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