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화
박정철과 김흥수의 유골함을 강 진이 보고 있었다. 유골함이 있 는 안치실은 사각형의 칸들이 겹 겹이 쌓여 있는 형태였는데, 그 안에 유골함이 들어 있고 유리로 막혀 있었다.
그리고 가슴 높이에 김흥수와 박정철의 유골함이 있었다.
〈김흥수〉
〈박정철〉
부부가 같이 들어가는 곳인 듯, 박정철의 자리에는 유골함이 두 개였고, 김훙수의 자리에는 그의 것 하나만이 있었다.
강진이 유골함을 구경하는 사이 김흥수와 박정철은 이야기를 나 누고 있었다.
“나 여기 일 년에 세 번은 오는 데 왜 한 번도 너를 못 봤지?”
설날과 추석, 그리고 제삿날에
가족들이 이곳에서 제사를 치러 준다.
그래서 일 년에 세 번은 이곳 납골당으로 소환되어 오는 것이 다.
“여기 올라와서 사진 좀 보다가 바로 제례실로 내려가더라.”
“그래?”
“너도 바로 제례실로 갔을 테 니…… 여기서 얼굴 못 본 거지. 그래서 나는 너 귀신으로 있는 줄도 몰랐지.”
두 귀신의 대화에 강진이 말했 다.
“제례실요?”
강진의 말에 박정철이 설명을 해 주었다.
“여기에 제사상 차리기 어려우 니까, 밑에 제사를 차릴 수 있는 방이 따로 있습니다. 거기서 TV 에 죽은 사람 사진 띄워 놓고 제 사를 치릅니다.”
“그럼 그곳에는 다른 귀신이 못 들어가나요?”
“제사를 안 지낼 때에는 아무 귀신이나 다 들어가도 되는데, 제사를 치를 때에는 주인 귀신 말고는 못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녀석이 귀신으로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눈으로 김흥수를 보던 박정철이 눈을 찡그렸다.
“네가 올라와 보지 그랬냐?”
“제사 끝나면 바로 있던 곳으로 가는데 여기에 어떻게 올라오 냐.”
제사가 끝나면 귀신은 원래 자 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니 이곳 에 올라올 일이 없었다.
그래서 김흥수도 자기 유골 여 기 들어갈 때나 와 봤지, 그 후 로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너 죽은 것도 오 늘 알았어.”
“정말?”
김흥수의 말에 박정철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나 죽었을 때 호섭이가 여기까
지 따라왔다 갔는데, 넌 몰랐 어?”
호섭이는 김흥수의 아들이었다.
“그때는 우리 마누라 옆에 있을 때라…… 몰랐어.”
“호섭이가 제수씨한테 말을 안 했나?”
박정철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아마 할머니 충격 받으실까 봐 말을 안 한 것 아닐까요?”
“충격?”
“얼마 전에 할아버지 돌아가셨 는데 며칠 있다가 친한 친구 분 도 돌아가셨다는 말 들으면…… 충격이 크실 것 아니겠어요? 게 다가 어르신들은 친구 분 돌아가 셨다는 이야기 들으면 건강이 많 이 안 좋아지신다고 하던데.”
말을 하며 강진이 박정철을 보 았다. 실제로 박정철은 김흥수가 죽고 며칠 후에 죽었으니 말이 다.
강진의 말에 김흥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때 우리 마누라 몸이 많이 안 좋기는 했지.”
김흥수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 숨을 쉬며 박정철을 보았다.
“그냥 승천하지……
“너도 귀신 생활해서 알잖아. 승천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그거야…… 그렇지.”
“그리고 그런 말 할 거면 너부
터 하지 그러냐?”
“그것도 그러네.”
웃으며 말을 한 김흥수가 박정 철을 보았다.
“이렇게 된 거 앞으로도 같이 다니자.”
김흥수의 말에 박정철이 그를 보다가 쓰게 웃었다.
“나는…… 같이 못 다녀.”
“응? 왜-”
김흥수가 하던 말을 멈추곤 박
정철을 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찡그렸다.
“너.. 지박령이 구나.”
처음에는 놀랐고 그다음은 반가 워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박 정철에게 지박령 특유의 기운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김흥수의 말에 박정철이 그를 보다가 웃었다.
“맞아.”
“네가 왜? 그리고 여기에 묶일 게 뭐가 있어?”
박정철이 쓰게 웃으며 김흥수의 유골함을 가리켰다.
“너에게 맺힌 것이 많나 보다.”
“내 유골함에 묶인 거야?”
김흥수의 물음에 박정철이 웃으 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았을 때도 나를 귀찮게 하더 니…… 죽어서도 나를 귀찮게 하 는구먼.”
박정철의 농에 김흥수가 한숨을 쉬었다.
“정말…… 미친놈이네.”
김흥수의 말에 박정철이 웃었 다.
“가끔씩 놀러 와.”
“이런 미친놈……
작게 중얼거리는 김흥수를 보며 박정철이 그 어깨를 쳤다.
“괜찮아. 너하고 팔십 년을 붙 어 다녔는데 조금 더 같이 붙어 있다 생각하면 된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너
원망 많이 했는데……
“ 나를?”
무슨 말인가 싶어 보는 박정철 을 보며 김흥수가 잠시 망설이다 가 말했다.
“육백만 원……
“육백만 원?”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자신 을 보는 박정철의 모습에 김흥수 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에 강진이 문득 박정철
에게 이야기했다.
“김흥수 할아버지가 어르신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기억 안 나세 요?”
“안 나는데……
“그 돌아가시기 전에 자제 분에 게 육백만 원 찾아오라고 하셨다 면서요?”
“그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박 정철의 모습에 강진이 그를 보았 다.
‘혹시 그 육백만 원이 한인가?’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기 전에 못한 것이 돈을 갚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귀신들은 생전 기억의 퍼즐이 군데군데 빠져 있다. 그리고 가 장 중요한, 자신이 귀신이 되어 버린 한에 대한 기억의 퍼즐은 확실히 빠지게 된다.
그래서 한을 풀고 싶어도 기억 을 하지 못하니 풀지 못하는 것 이다.
그렇다면 아예 기억을 하지 못 하는 일이 한일 확률이 컸다.
김흥수는 기억하고 박정철은 기 억하지 못하는 한…… 그건 김흥 수에게 갚지 못한 돈일 수 있었 다.
“내가 너한테 육백만 원을 빌렸 어?”
박정철의 물음에 김흥수가 고개 를 저었다.
“됐어.”
사실 김흥수는 박정철에게 돈을
못 받아서 서운한 것이 아니었 다.
그저 자기 죽었다고 아내한테 한번 안 찾아오는 박정철에게 서운했던 것이다.
“네가 너한테 돈 신세 진 것이 어디 한두 번이냐? 죽었다고 해 도 갚아야지.”
“신세는 무슨……
“나 사기당해서 길거리로 쫓겨 나게 생겼을 때 너 아니었으면 우리 식구 길바닥에서 굶어 죽었
어. 그때 너 제수씨한테 쫓겨날 뻔했잖아.”
“우리 마누라한테 서운해하지 마라.”
“알지. 집 팔아서 월세로 갔는 데…… 우리 마누라였으면 바로 도장 찍었어.”
두 사람의 말에 강진이 놀란 얼 굴로 김흥수를 보았다.
‘친구 도와주겠다고 집 팔고 월 세를 들어가?’
확실히 이혼을 당해도 열 번은
당할 일이었다. 아무리 친한 친 구라고 해도 집까지 팔아서 도울 사람이 어디에 있겠으며, 그것을 용인할 아내가 어디에 있겠는가.
“너는 내 목숨도 구했는데
“그거야 나 혼자 있으면 무서워 서 너 끌고 다닌 거지. 내가 겁 이 좀 많잖아.”
박정철의 말에 김흥수가 피식 웃었다. 정말 무서웠다면 혼자라 도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박정철은 총 맞은 자신 을 업고 베트콩을 피해 3일을 도 망쳤었다.
겁 많은 놈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김훙수를 보던 박정철이 이번엔 강진을 보며 말 했다.
“그…… 귀신을 위한 식당을 하 신다고 들었습니다.”
박정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김흥수에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모양 이었다.
그래서 놀라지 않은 것이고 말 이다.
“네.”
“죄송한데 저희 아들한테 연락 해서 흥수한테 빌린 돈 좀 갚으 라고 해 주시겠습니까? 흥수 이 름을 말하면 돈을 갚을 겁니다.”
박정철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드님께서 오 늘 할머니 병문안 가서 돈을 주 신다고 하셨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한숨을 쉬며 미소를 지은 박정 철이 김흥수를 보았다.
“제수씨는 어때?”
“일찍도 물어본다.”
“그래서 어떠셔?”
“그냥 그렇지. 다행히 정신은 멀쩡해.”
“다행이네. 우리 나이 되면 정 신 멀쩡한 것만 해도 복이지.”
“ 맞아.”
“그런데…… 자주 못 보지?”
박정철의 물음에 김흥수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고 며칠은 같이 있었지. 그 런데 시름시름 앓더라고.”
할머니의 수호령이 아닌 이상은 아무리 남편이라고 해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는데 귀신 한 명이 알려 주더라고. 사 람하고 너무 가까이 있고 쳐다보 고 그러면 안 좋다고.”
박정철의 말에 강진이 문득 주 위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여기 이렇게 귀신이 많 은데 괜찮아요?”
“무엇이 말입니까?”
박정철의 물음에 강진이 말했 다.
“귀신이 많으면 사람들이 무의 식적으로 그 장소를 피하는 데…… 여기는 이렇게 귀신이 많 잖아요.”
말을 하고 보니 아까 경비를 하
시던 노인분 걱정까지 되었다. 귀신 한 명만 붙어 있어도 몸이 아프고 안 좋다.
도영민 가족만 봐도 알 수 있 다. 도영민에게만 원한령이 붙었 는데도 그의 가족들 모두가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는 귀신들이 바글바 글한 곳이니…… 경비 할아버지 몸이 걱정될 정도였다.
강진의 물음에 김흥수가 고개를 저었다.
“장례식장이나 공동묘지와 같이 귀신들이 필연적으로 많이 모이 는 장소는 으에서 따로 관리를 해.”
“관리요?”
“그 뭐라고 하더라……
김흥수가 기억을 더듬는 것을 보며 박정철이 말했다.
“JS 시설 관리국.”
“아! 맞다.”
그러고는 김흥수가 강진을 보았
다.
“JS 시설 관리국 직원들이 와서 여기 시설 관리를 해.”
“관리라면 어떤?”
“진공청소기 같은 걸로 사람들 이 갈 때 귀신 기운 뽑기도 하 고, 방향제 같은 것도 뿌리고 그 래.”
진공청소기로 귀신 기운을 뽑는 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방향제요?”
“그거 뿌리면 귀신들 기운이 좀 사라져. 그래서 사람들이 귀신 있는 곳에도 들어오고 나가고 그 러는 거지.”
김흥수의 말에, 박정철이 설명 을 덧붙였다.
“그리고 여기 일하는 사람들은 JS 시설 관리국에서 따로 관리를 해서 귀신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 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귀신의 설명에 강진이 탄성 을 토했다.
“신기하네요.”
신기해하던 강진이 문득 물었 다.
“JS 금융, JS 시설 관리국, 그리 고 또 뭐가 있어요?”
“사람 죽으면 데려가는 JS 입국 관리소도 있고, JS 추심청도 있 고. 내가 본 애들은 이 정도인 가?”
“추심청요?”
“JS 금융에 돈 많이 빌린 애들 잡으러 다니는 곳입니다.”
“아주 무시무시한 놈들이지. 그 놈들은 피도 눈물도 없어.”
생각만 해도 무섭다는 듯 몸을 떠는 김흥수를 보던 강진이 말했 다.
“그럼 두 분 이야기 나누세요.”
“자네는?”
“저는 여기 구경 좀 하고 있을 게요.”
귀신이 돼서 만난 친우끼리 편 히 이야기 나누도록 강진이 슬쩍 몸을 돌려 다른 유골함 쪽을 구
경했다.
강진이 몸을 돌리자 두 귀신이 서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귓등으로 그 둘의 목소리를 흘 리며 강진은 근처에 있는 유골함 들을 보았다.
유골함에는 생전 고인이 아끼던 물건들과 사진, 그리고 가족들이 남긴 편지 같은 것이 같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아주 어린 나
이에 죽은 아이들의 것도 있었 다.
‘애들은 잘 지내고 있나?’
영수하고 최가은, 이예림 등이 요즘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애 들이 잘 지내고 있나 생각을 하 며 걸음을 옮기던 강진은 어느 유골함 앞에 멈춰 섰다.
“이 사람은……
유골함에는 고인의 사진이 있었 는데, 아까 밖에서 커피 마시고 싶다는 여자 귀신과 똑같았다.
〈오신혜
생: 1997년 **월 **일
졸: 2018년 **월 **일)
‘97년생이면 22살에 죽었네.’
휴학 없이 학업을 계속해 왔다 면, 대학교 3학년 즈음 죽었을 나이였다. 그리고…….
〈장기 기증증〉
기증증이라 써진 카드와 하나의 메모지가 그 앞에 있었다.
〈일곱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 고 떠난 천사 오신혜.
다음 생에도 내 딸로 태어나 줘.
아빠가 이번에 못 준 사랑 다음 생 때는 두 배로 더 해 줄게.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