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오신혜의 이름과 함께 사진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스물두 살에 죽어서 장기를 일 곱 사람에게 기증했는데…… 귀 신이라.”
작게 중얼거리던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최소한 착한 일 한 사람은 좋 은 곳으로 보내주지.’
일곱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했으 면 일곱 사람의 인생을 바꾼 것 이다.
그럼…… 좋은 곳으로 갔어야 하는데 귀신이 돼서 납골당에 머 물고 있으니.
‘휴우! 귀신 중에 사연 없는 귀 신이 어디에 있겠어.’
장기를 기증하고 죽은 사람이 납골당에 귀신이 되어 있는 것이 안쓰럽기는 하지만…… 귀신 중 에 사연 없는 귀신은 없었다.
JS 금융 VIP였던 선지해장국 오 순영 여사님도 귀신으로 있었다.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는지 VIP까지 되셨으면서도 말이다.
착하게 살았다고 다 좋은 곳으 로 가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쨌든 오신혜의 사진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커피 한 잔 더 사줘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구경 을 할 때, 경비를 서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 있을 겁니까?”
노인의 말에 강진이 슬쩍 두 귀 신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제 가야죠. 인사만 마 저 드리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노인이 몸을 돌려 내려가자 강 진이 두 귀신을 보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마저 이야기 나누세요.”
“오늘 고마워.”
“아닙니다. 그리고 내일 요양병 원에서 불러 드릴까요?”
“우리 마누라한테 갈 건가?”
“음식이라도 좀 해 드리려고요. 할머니 폼 좀 나시게요.”
“고맙네.”
“그럼 쉬세요.”
강진이 고개를 숙이자 박정철이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았다.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고개를 다시 한 번 숙인 강진이 몸을 돌려 안치실에서 나왔다. 1 층으로 내려온 강진이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들어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 다.”
“어디서 왔어요?”
“서울에서요.”
“그럼 이제 다시 서울 가는 겁 니까?”
“그래야죠.”
“야간 운전이니 조심히 가요.”
“감사합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몸을 돌려 납골당을 나섰다.
납골당을 나온 강진이 휴게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휴 게실에는 아까 본 여자 귀신이 탁자에 있는 커피 잔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커피 한 잔 더 드릴까요?”
“아…… 고맙습니다.”
사양하지 않는 그녀, 오신혜를 보며 강진이 커피를 한 잔 더 뽑 아서는 탁자에 놓았다.
오신혜가 커피 잔에서 반투명한 커피 잔을 들자, 강진이 탁자에 그대로 남아있는 잔을 들었다.
귀신하고 나눠 먹는 것이기는 해도 바로 먹으면 맛이 변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혹시 지박령이세요?”
“아니요.”
“그럼 왜 여기 계세요?”
“여기가 편해서요.”
“여기 가요?”
고개를 끄덕이는 오신혜를 보던 강진이 말했다.
“한 번 저희 식당 오세요.”
“식당? 저승식당요?”
“저희 음식 맛있어요.”
강진의 말에 오신혜가 웃었다.
“서울에 있다면서요.”
“여기서 그리 안 멀어요. 그리
고 제가 식당에서 부르면 바로 오실 수 있는데…… 부르면 오는 거, 할 줄 아시죠?”
“할 줄 알아요.”
“그럼 저희 식당으로 오세요.”
강진의 말에 오신혜가 살짝 웃 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여기가 편해요.”
그러고는 오신혜가 커피 잔을 들고는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오신혜가 납골당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강진 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는 차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강진은 흰 둥이 밥을 주러 가고 있었다. 성 남이 그리 먼 곳은 아니었지만, 운전해서 새벽에 갔다가 새벽에 오니 피곤하기는 했다.
당연히 잠도 많이 못 잤고 말이 다.
“하암!”
크게 하품한 강진이 정자에 도 착해 흰둥이에게 도시락을 주었 다.
밥을 먹는 흰둥이의 머리를 쓰 다듬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살 많이 쪘네.”
그동안 JS 식단을 먹어서 그런 지 흰둥이는 귀신인데도 털에 윤 기가 흐르고 살집도 보기 좋게
올라 있었다.
“앞으로도 많이 먹고 살 좀 많 이 찌자.”
자신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 고 밥을 마구 먹어치우는 흰둥이 를 쓰다듬던 강진이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가씨는 갔어?”
강진의 말에 흰둥이가 밥을 먹 다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 다.
말귀를 알아듣는 흰둥이를 보며
강진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 다.
‘밤에만 여기 계시는 건가?’
김소희를 떠올리며 흰둥이를 쓰 다듬던 강진의 귀에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고개를 돌리니 이강혜가 카트를 끌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 다.
그 모습에 강진이 흰둥이 밥그 릇을 정자 밑 깊숙이 집어넣고는 이강혜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셨어요?”
“날씨가 많이 추워요.”
따뜻한 롱 패딩을 입고도 춥다 는 듯 몸을 떠는 이강혜에게 강 진이 들고 온 쇼핑백을 내밀었 다.
“이거 드세요.”
“뭐예요?”
“동그랑땡하고 전을 좀 만들었 습니다.”
전이라는 말에 이강혜가 웃었
다.
“명절도 아닌데 뭘 이런 걸 만 들었어요?”
“주문이 들어와서요. 만드는 김 에 좀 더 만들었습니다.”
“전도 주문을 받아요?”
“고객이 원하면 제가 할 수 있 는 한 해 드려야죠.”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재차 웃 으며 쇼핑백을 받았다.
“맛있게 먹을게요.”
쇼핑백을 받은 이강혜가 그 안 을 들여다보았다. 안에 든 반찬 통에 전들이 담겨 있었다.
“뭘 이리 많이 주세요?”
“하는 김에 좀 더 했습니다.”
오늘 잠을 많이 못 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전을 부쳤기 때문이 었다.
배용수가 혼자 해도 된다고, 자 라고 했지만 아무리 귀신이라도 배용수에게만 맡겨두고 자기 그 래서 한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서 전을 만들었다.
김흥수 할아버지의 아내 분 폼 좀 나게 해 드리려고 꽤 많이 만 들었는데 생각보다는 빨리 끝났 다.
TV를 보는 선주와 여자 귀신들 이 전 부치는 걸 거들었고, 최훈 도 옆에서 심부름 같은 것을 해 주니 금방 끝난 것이다.
“저는 오늘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럼 같이 가요. 추워서 저도
일찍 들어가야겠어요.”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이강혜와 함께 강진이 공원을 나 섰다.
공원 입구로 향하던 중, 이강혜 가 물었다.
“연말에 캣맘 모임이 있는데 오 시겠어요?”
“모임요?”
“이 근처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끼리 연말에 모여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는 거예요.”
“몇 분이나 모이시는데요?”
“많지는 않아요. 나까지 포함해 서 다섯 명인데…… 아! 그중에 강진 씨하고 비슷한 나이대의 총 각도 둘이 있어요.”
“남자도 있어요?”
“그럼요. 애들 좋아하는 건 남 녀노소 없으니까요.”
그러고는 웃으며 이강혜가 말했 다.
“강진 씨도 오면 남자가 세 명 이네요.”
“언제 하시는데요?”
“27일, 이번 주 토요일에 하기 로 했어요. 아!”
짧은 탄성을 내뱉은 이강혜가 강진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분들에게는 제가 직 장 다닌다는 말, 하지 말아 주세 요.”
직장이라는 말에 강진이 웃었 다.
“다른 분들은 이강혜 씨 직업에 대해 모르세요?”
강진의 물음에 이강혜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전자 가게 하나 한다고 했어요.”
“전자 가게라…… 틀린 말은 아 니네요.”
규모가 다르기는 하지만 L전자 도 전자 물품을 파는 곳이기는 하니 말이다.
“말 안 할게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작게 한 숨을 쉬었다.
“제가 이상한가요?”
“뭐가요‘?”
“괜히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직업 숨기고 사람들 만나 는 거요.”
“굳이 사람 만날 때 자기 직업 을 말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그런가요?”
“그럼요.”
“고마워요.”
웃으며 이강혜가 물었다.
“그래서 시간 되겠어요?”
“밥을 먹는 자리인 것 같은 데…… 저는 영업을 해야 해서 요.”
“그럼 강진 씨 가게에서 모임을 할까요?”
“저희 가게에서요?”
“불편하실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저야 손님들 오는 건데 나쁠 이유가 없죠.”
“그럼 토요일 12시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 입구에 도 착한 강진이 이강혜와 인사를 하 고는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 * *
성수역 인근에 있는 요양병원 주차장에 강진이 차를 주차시켰 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린 강진 이 입을 열었다.
“김흥수, 김흥수, 김흥수.”
강진의 부름에 김흥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윽!
모습을 드러낸 김흥수가 강진을 보았다.
“음식은 다 했어?”
“했습니다.”
“넉넉하게 많이 하지 그랬어.”
김홍수의 말에 강진이 트렁크에 서 아이스박스를 꺼냈다.
“이 정도면 넉넉한가요?”
“이게 다 음식이야?”
“폼 한 번 제대로 내시라고 많 이 했습니다.”
“허어…… 이걸 누가 다 먹어?”
“병실 분들도 드시고 병원이면 의사나 간호사분들도 계실 거잖 아요. 그분들 드시면 되죠.”
강진의 말에 김흥수가 놀란 눈 으로 아이스박스를 보다가 말했 다.
“그럼 들어가자고.”
김홍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식이 담긴 아이스 박스를 들고는 요양병원으로 걸 음을 옮겼다.
요양병원으로 들어선 강진에게 김흥수가 말했다.
“7층이야.”
김홍수가 앞장서서 엘리베이터 를 타자 강진이 그 옆에 올라탔 다.
그리고 7층에서 내린 강진에게
김흥수가 말했다.
“여기 신발장에서 실내화로 갈 아 신어.”
“아무거나 신어도 돼요?”
으 O ”
흐.
김흥수의 말에 강진이 신발장에 서 실내화를 꺼내 갈아 신었다.
“이리로 와.”
김흥수가 다시 앞장서서 가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갔다. 간호 사 스테이션에 간호사들이 앉아
서 뭔가 하고 있었지만, 강진에 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방문자 확인 같은 건 안 하나 요?”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여기는 안 해.”
“위험하지 않아요?”
“글쎄. 나 여기 있을 때는 별다 른 일 없었는데……
그렇게 말하던 김흥수가 한 병 실 앞에 멈춰 섰다.
“여기야.”
김홍수의 말에 강진이 슬쩍 병 실을 들여다보았다. 병실에는 할 머니 세 분이 TV를 보며 누워 있었다.
“어느 분이에요?”
“저기 창에서 두 번째에 있는 강향숙.”
김홍수의 말에 강진이 아이스박 스를 들고는 병실 안으로 들어섰 다.
“안녕하세요.”
강진의 인사에 할머니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누구?”
“누가 또 뭘 보냈나 본데? 언니 아들이 보낸 건가?”
한 할머니가 창가에 있는 할머 니에게 말을 걸자, 할머니가 고 개를 저었다.
“아들한테 그런 이야기 못 들었 는데?”
“나도 우리 아들이 뭐 보낸다는 이야기 없었는데?”
두 할머니들의 말에 강진이 웃 으며 강향숙 할머니를 보았다.
“강향숙 할머니시죠?”
“ 나?”
놀란 눈을 하는 강향숙 할머니 를 보며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음식 배달 왔습니다.”
“음식? 나한테?”
“네.”
그러고는 강진이 아이스박스 뚜 껑을 젖혔다. 뚜껑을 열자 고소
한 기름 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이스박스 안에 든 플라스틱 통에 전들이 채워져 있었다. 그 에 강진이 플라스틱 통들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여러 종류의 전들이 모 습을 드러냈다.
“전이네?”
“맛있겠다.”
침대에서 내려와 전을 보는 할 머니들을 보던 강진이 강향숙을 보았다.
“강향숙 할머니께 보내는 부침 개입니다.”
강진의 말에 강향숙이 의아한 듯 고개를 숙여 부침개를 보다가 물었다.
“혹시 우리 아들이 보낸 거요?”
강향숙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주문하신 분은…… 김흥수 님 이십니다.”
강진의 말에 강향숙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김흥수는 우리 남편 이름인 데?”
그리고 의아한 건 김흥수도 마 찬가지 였다.
“이 사장, 내가 주문했다고 하 면 어떡해?”